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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스콧 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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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사회'에 해당되는 글 29건
  1. 2010/04/05 도시의 기억과 부풀려진 허구 (1)
  2. 2009/12/23 승자도 패자도 없는 도박중독 사회와 도시
  3. 2009/12/14 짐멜, 메트로폴리스와 정신적 삶
  4. 2009/09/18 [연극] 오늘, 손님 오신다
  5. 2009/09/01 일상생활이라는 중매쟁이와 도시공간에 대한 단상 (1)
  6. 2008/10/22 [10.21 부동산 대책]과 주술경제 (2)
  7. 2008/10/21 도시 비정규노동자의 삶과 고시원 살인방화
  8. 2007/11/28 지역사회와 노동운동의 개입전략
  9. 2007/08/26 [카스텔] 정보도시와 방법론적 전환의 결과 - 이중도시
  10. 2007/08/02 겨울철쭉의 독서일기 -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도시와 그 시민에게 미치는 영향"
  11. 2007/07/09 [교수신문] [기획 _ 도시연구 현황과 쟁점] ④ ‘건축’으로 본 도시 - 위태롭고 지루한 풍경…상상력의 빈곤
  12. 2007/06/23 [교수신문] 기획 _ 도시연구 현황과 쟁점 ② 도시공간의 정치경제학
  13. 2007/06/18 [교수신문] [기획 _ 도시연구 현황과 쟁점] ① 도시사 / 도시공간, 역사행위 주체·구조로 바라보기
  14. 2007/01/27 도시 삶과 비정규 노동, 그리고 그 저항의 사회적 징후들 - 무기력한 젊은 부랑자들? (1)
  15. 2007/01/18 어느 청년의 고민 - "너무 답답하고 어떻게 해야될지를.....모르겠네여..."
  16. 2006/12/26 지역활동에 관하여 - 시민운동의 경험을 통해 노동운동에 드리는 제언
  17. 2006/12/10 사회적 재생산과정에서 부동산 소유 구조의 분리, 그리고 노동자들의 주택소유가 갖는 의미의 이중성
  18. 2006/12/10 매혹의 도시, 맑스주의를 만나다
  19. 2006/11/22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속의 도시 공간과 시간, 그리고 재생산
  20. 2006/11/10 자본의 위기와 그 변화의 징후 - 도시 노숙인
  21. 2006/11/03 2005년 행정구역별 인구분포
  22. 2006/11/03 영문 참고문헌 - Understanding the Post-Industrial City
  23. 2006/11/03 영문 참고문헌 - Industrial and Post-Industrial Cities
  24. 2006/11/03 Cultural Clusters and the Post-industrial City:
  25. 2006/10/30 도심 주변의 산과 문화, 그리고 가을 산행
  26. 2006/10/26 도시에서 공원이라는 장소(공간)이 갖는 의미
  27. 2006/10/25 Matt의 서울(한국) 기행 - Gusts Of Popular Feeling (3)
  28. 2006/10/24 한국 참고문헌 (1)
  29. 2003/10/31 출판흐름 : 생활공간으로서의 '도시' 조명한 책들 - "도시는 유기체다"...인간척도에 기반한 도시만들기
우연히 'KBS 다큐멘터리 3일'을 보다. 가끔 보는 프로그램이지만 어제 방영한 '도시의 기억 - 서울 장사동 기계 공구 골목 72시간 ' 이라는 프로그램은 최근 본 다큐 중 가장 재미있게 봤던 프로그램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은 나중에 사료로의 가치가 더 클 수 있다는 생각이다. 내게 시간이 허락된다면 이 프로그램과 같이 도시라는 장소 속에서 만들어지는 삶의 모습과 기억들을 정리해보고 싶다.

먼저 도시 속의 삶과 노동을 끄집어 내는 시각과 그걸 보여주는 방식이 건강하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방송에서는 대부분 도시의 삶과 노동을 깔끔한 정장차림의 화려한 모습만 보여주곤 했다. 한마디로 부풀려진 허구다. 그리고 이러한 부풀려진 허구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정상과 비정상에서 정상의 모습으로 받아들이게 해왔다. 하지만 그런 걸 볼 때마다 사람들은 한편으로 소외를 느낀다. 그리곤 삶을 오히려 고달프게 만든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서는 가끔 허구를 벗는다. 이번 프로그램이 그런 모습 속에서 따뜻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이와 관련해 향후 쓸 수 있는 자료들을 추려서 남기다.  
[KBS 다큐멘터리 3일] - 도시관련 방영 프로그램 리스트 




얼핏 고종석이 쓴 '도시의 기억'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딱히 재미있는 책은 아니다. 읽다보면 고종석이 방문한 도시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그가 방문한 도시에 대한 그의 상식을 읽고 있는 기분이다. 뚝뚝 묻어나는 그의 상식과 교양이 오히려 허영같기도 하고 거부감이 들기도 하던 책이다. 하지만 서문에 그가 남긴 몇 마디에는 수긍이 간다.


도시들은 닮았다. 그러나 닮았으면서도 엄연히 다르다. 그 다름은 오래된 건축물이나 박물관의 유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다름은 비슷한 듯 보이는 일상 속의 도시인들, 그 시민들의 '영혼'속에도 있다. ... 그것은 그 도시들이 제가끔 겪은 역사의 중량 덕분이다. 역사의 울타리 속에 간직된 그 고갱이가 서울을 서울로 만들고, 서울 사람을 서울로 만든다. 나는 세계화로 환원되지 않는 그 고갱이를 그 도시의 '영혼'이라고 부르려 한다.
그러니, 영혼은 촌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도 있다. 사람들이 파리에서 무수한 화가들을 떠올리고 빈에서 무수한 음악가들을 떠올리는 것은 상투적인 만큼이나 정당하다.

*고종석(2008), 도시의 기억, 개마고원, pp.16-17.


승자도 패자도 없는 도박중독 사회와 도시



1. 도박중독 사회

요즘은 한국사회 전반이 이미 도박중독사회 또는 투기사회로 변했다는 생각이다. 잠정적으로 나는 이러한 결과를 가져오는 사회적 원인이 한국사회의 1) 급격한 산업화 경험과 2) 개발주의 속에서 형성된 3) 천민 자본주의적 성향, 그리고 4) 도시적 삶의 양식들이 결합한 결과라는 생각이다. 구체적인 분석은 해봐야 하겠지만, 이는 결국 계급문제로 귀결될 수 있다.

마침 어제 <MBC 프라임>에서 '위험한 행운' 이라는 주제로 도박중독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주요 내용은 '한국의 경우 도박중독 유병률 9.5%로 18세 이상 성인 10명 중 한 명이 도박중독이며, 도박중독은 가족 해체와 각종 범죄로 이어지고 있으면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체계적인 도박중독 예방과 치유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방송에서는 도박은 개인의 문제, 마음만 먹으면 고칠 수 있는 나쁜 습관으로 여기지만 도박중독은 일반인에 비해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충동조절 장애를 수반하는 질병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도박중독의 예방과 치유를 위해서는 외국과 같이 사행사업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제언을 하고 있다.

방송내용에 따르면 도박중독의 원인은 결국 개인들이 경험한 '위험한 행운'이고, 그 속에서 도박중독이라는 질병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도박중독자의 증가가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키기 때문에 이를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책임의 주체는 사행사업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질병차원에서 보고, 개인에 대한 사회적 질병퇴치 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거다. 이런 걸 사회병리학적 문제설정이라고 하나?  참...중세시대적 발상이지만 대부분의 정부정책, 또는 복지프로그램, 사회운동이란 게 이런 식이다.

2.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도박
하지만 왜 문제 설정을 이렇게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사회에서 도박은 일부의 사회적 문제도 아니고 개인의 병적인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문제설정이 빗가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나마 MBC니까 이런 식으로라도 프로그램을 만들고 방송하지 싶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뒤르켐이 자살을 사회적 현상으로 보고 '자살론'을 통해 자살의 사회적 원인과 유형을 분석하고 자살의 일반적 성격을 도출하고 있다. 뒤르켐도 사회병리학적 관점에 있지만, 차라리 뒤르켐 같이 한국사회에서 도박중독 현상도 사회적 현상으로 보고 도박의 사회적 원인과 유형을 살펴봤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으면 왜 한국사회에서 도박과 같은 사행사업이 성장하고 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그러한 원인을 MBC 프라임에서와 같이 '불행한 행운'이라는 식으로 개인에게 돌리는 것에서 한 발 더 나간다면 기껏해야 정부 정책으로 돌리는 거다. 물론 한국의 사행사업은 2000년 이후 기존의 경마(1922년)와 경륜(1994년) 외에 카지노(2000년), 스포츠토토(2001년), 로또(2002년), 경정(2002년), 메인카지노 개장(2003년) 등 새로운 업종의 도입과 사행성 게임물 양산 등으로 인해 증가한 측면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원인을 돌리다보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설명하지 못하는 게 너무 많다. 예컨대 왜 우리 애들이 특목고를 가고 좋은 대학을 가려고 하는지, 왜 친구들이 조금이라도 돈이 있으면 주식과 부동산 투기에 열을 올려야 하는지, 왜 88만원 세대가 몇 백대 일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지...좋은 말로 노력의 결과를 얻기 위한 투자로 생각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한다. 하지만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이는 또 다른 형태의 로또 잡기의 한 형태라는 걸 서로 잘 알고 있다.

3. 아이러니
로또 잡기의 사회적 게임에서 성공하면 승자winner고 실패하면 패자looser다. 대부분이 실패하지만 간혹 작은 성공의 경험들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크게 성공하는 케이스는 꼭 있다. 이런 성공신화가 없으면 도박중독 또는 투기사회를 유지시킬 수 없다.   

아무튼...이렇게 삶의 로또를 잡으려는 우리들의 삶을 단순히 기회주의적이고 이기적으로만 볼 수 있을까? 그리고 승자와 패자로만 나눌 수 있을까? 어쩌면 팍팍한 이 한국 사회에서 모두다 따뜻한 꿈을 이루려 똑같이 몸부림 치고 있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사실 그 속에서 누구도 승자도 패자도 없다. 아이러니한 건 그 속에서 자신을 억제하고 서로를 타자화하며 사회적으로 서로를 죽여가고 있을 뿐이다. 각자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구멍이 나고 있는 거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자본주의 경제에서 '구성의 오류'The fallacy of composition가 나타나고 있는 거다.

[관련기사]
한국사회, `한탕주의'만 커간다 연합뉴스 경제 2010.06.10 (목)



짐멜, 메트로폴리스와 정신적 삶


짐멜의 '메트로폴리스와 정신적 삶'(Georg Simmel, "The Metropolis and Mental Life")을 만났다.  왜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삶의 모습이 계산적이고 까칠할 수밖에 없나를 맑스나 베버와 같은 고전사회학자들보다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도시적 삶의 자유와 노동의 분화,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보여지는 삶의 태도들. 어쩌면 이 도시에서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서로를 그저 '일반화된 타자'로 여기고 살아야 하는 이유는 일종의 자기방어적 삶의 모습이다. 짐멜은 이러한 우리들의 삶의 모습들을 구태여 미워하거나 서운해하지 말자는 거다.

사회학에서는 맑스, 뒤르켐, 베버의 저작을 고전으로 삼기도 한다. 여기에 짐멜의 저작도 사회학적 고전의 반열에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짐멜의 저작은 맑스, 뒤르켐, 베버의 저작과 같이 체계적인 분석 속에서 이루어진 저작이 아니다. 짐멜의 저작은 대부분 article형태로 전체적인 사유체계는 글 속에서 유추해야 한다. 읽다보면 맑스, 베버, 뒤르켐의 사유들을 넘나들게 하며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게 짐멜이 갖는 힘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쉬움도 남는다. 하지만 체계적인 분석을 했다면 어땠을까? 오히려 지금보다도 뒤안길에 머물고 있을지도 모른다.

짐멜의 저작은 맑스의 사고와 유사하면서도 맑스가 분석하지 않은 지점을 건드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맑스는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의 생산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짐멜은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의 소비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지점은 맑스의 '자본론'에서 상품과 화폐분석이 짐멜의 '돈의 철학'과 만나게 한다. 맑스는 물질적 생산 속에서 소외를 도출하고 이를 정신적 소외와 연결시킨다. 하지만 짐멜은 물질적 소비 속에서 소외(돈의 철학)을 도출하고 정신적 소외와 연결시키고 있다.

물질적-정신적 생산과 소비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서로 동떨어질 수 없는 구조다. 헤겔과 맑스의 변증법은 이러한 물질적-정신적 생산과 소비가 서로 순환하며 재생산하는 관계 구조에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헤겔은 정신에, 맑스는 물질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맑스는 물질적 생산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문화를 '(임금노동, 상품형태와 같은) 관습적이고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을 자연적이고 불가피한 것으로 보이게끔 하는 것'으로, 실재에 대한 잘못되고 왜곡된 관점을 만들어내는 '허위의식'으로 보고 있다. 즉, 이데올로기적 지배를 위한 수단일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맑스의 분석은 기존 부르주아적 문화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을 뿐 노동자문화에 대한 분석은 하지 않고 있다. 적어도 맑스의 이론틀에서 보면 더 상세한 분석이 필요하다. 생산을 사회적 생산이라는 틀 속에서 분석하는 맑스의 틀에 의하면 문화도 사회적 생산과정에 의해 이미 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사회적 관계에서 소외되었건 아니면 지배자에 의해 전유되었건 문화 생산은 이미 사회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질적 생산과 정신적 생산, 그리고 그 소비를 통해 재생산되는 물질적 생산과 정신적 생산의 관계에 대한 분석의 결여는 베버의 계층구조에 의해 재구성되고 유형화되며 대체되었다. 하지만 베버의 저작에서는 물질적 생산과 정신적 생산, 양자의 규정관계를 모호하게 분리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는 파슨스의 이론으로 연결된다. 이에 반한 글들로 E.P Thompson의 '영국노동계급의 형성'이나 P.Bourdieu의 글들이 있지만 일반이론적 시도로 연결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이론적 공백 속에서 서비스사회로의 사회구조 변화와 문화산업 확대는 향후 베버와 파슨스의  이론에 기반한 사회학 이론들이 지금보다 힘을 얻고 득세할 수 있다.  

짐멜의 글도 베버나 맑스와 같이 사회구조를 도출하거나 거시 사회이론적 구축을 시도는 하지 않는다. 또한 물질적 생산과 정신적 생산의 규정관계를 도식적으로 구분하거나 유형화하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그 글들 속에 있는 단편적인 분석들은 오히려 거시 사회학 이론이나 사회학일반이론 차원으로 끌어올려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다. 이와 함께 예전에 남겼던 내 생각의 단편들(2006/11/03 자유의 재구성과 도시의 탈정치적 지배 )과도 연결해 봐야 할 것 같다. 




소통할 수 없는, 공간의 미시적 분화
도시의 공간, 그 공간은 보이지 않는 벽으로 나누어진다. 마치 꼴라쥬처럼 덕지덕지 벽 속에 갇혀 하나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물리적 공간의 벽이 아닌 관계적 공간의 벽, 서로 인식하고 소통할 수 없는 벽을 통한 차단. 서로 다른 계급관계들이 동시에 이 좁은 공간에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것도 안전하게...그 속에서 사람들은 위안을 느끼며 살아간다.


[관련연구]
조은진(2007), 상류층 주거지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배제양식 - 강남 타워팰리스 주거 공간 및 공간 경험 분석, <경제와사회> 통권 제76호, 2007. 12., pp.122~163.

이 연구는 최근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고 있는 서울시의 고급 주상복합단지를 특정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분’과 ‘배제’, 그리고 공간의 ‘열림’과 ‘닫힘’이라는 이중적 특성의 맥락에서 분석하고 있다. 특히 2002년 시공 완료 전후로 강한 반향을 일으키며 고급 주상복합 거주지의 대표격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강남의 타워팰리스 단지를 대상으로 이러한 공간 분석을 시도했다. 공간 분석의 과정은 우선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기존 주거 공간과의 구별된 공간적 특성을 끌어내고, 이 공간이 지니는 공간적 상징성, 혹은 상징적 알레고리를 독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의 독해와 함께 그 안에서 실제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에 대한 미시적인 연구를 함께 하여 공간과 공간을 경험하는 사람들, 이 둘 간의 상호적 관련성을 읽어낸다. 전통적인 부자 동네인 평창동, 성북동 단독주택은 높은 돌담을 통해 타 계층에 대한 강한 구분과 배제의 기제를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에 반해 최근 새로운 부촌으로 각광받고 있는 타워팰리스 공간은 아케이드 구조와 주상복합 구조를 기본으로 하여 외관상 ‘열린 공간’이지만, 또한 명확하게 구분되는 ‘그들만의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중정(中庭) 형태의 공간 배치와 주상복합이라는 기본 주제를 바탕으로 주거 공간, 소비 공간, 여가 공간, 자연 공간을 결합시킨 공간 통합의 모습은 과거보다 더 영리하고 효율적으로 다른 이들과 자신들을 구분 짓는 배제의 원리를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열려 있되 닫힌 공간’, ‘보이지 않는 벽’을 통해 그들만의 공간을 견고하게 확보해내려는 시도는 주민 정체성 구현의 방식에서도 외부와 자신을 구분 짓는 외향적 배제의 방식이 나타나는 동시에 특별함, 구분됨의 이미지를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는 방식은 커뮤니티나 사조직, 개인 스스로에 대한 인식 면에서 내향적 배제의 방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연구 과정을 통해 특정 주거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계층 배제 방식의 변화와 그 구체적인 특성을 밝히고 나아가 공간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양식과 공간 인식의 방식을 통해 좀 더 구체적인 수준에서의 공간과 사람 연구를 시도했다. 이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계층 양극화가 드러나는 한 부분으로서의 주거 공간 문제를 공간 분석의 수준에서 검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일상생활이라는 중매쟁이와 도시공간에 대한 단상



송용한

I. 도시공간?

요즘은 내가 사는 동네라는 이 도시공간에 대한 생각들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를 않고 있다. 언제부터 내가 이 도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20대까지만 해도 나는 이 도시를 떠나고 싶어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 도시에 남아 있다. 그렇다고 훌쩍 이 도시를 떠나는 생각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때론 아무 계획없이 그렇게 이 도시를 떠났다 돌아오곤 한다. 그러나 이제 그 떠남은 더이상 떠남이 아이다. 기껏해야 며칠 아무 생각없이 여행을 다녀와 내 방에 놓여 있는 초상화를 보는 것, 그 이상이 되지 못한다.

20대까지 나는 이 도시가 나의 삶에 주는 의미를 몰랐던 걸까? 아마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이 도시를 떠난다는 것이 의미하는 게 삶의 조건들을 바꿔야 한다는 것임을 안다. 그 삶의 조건들은 사람에 따라서는 선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그 삶의 조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선택이 아닌 받아들여야 하는 하나의 주어진 조건으로 좁혀진다. 나도 마찬가지다. 비록 이 도시 속에서 주변적으로 머문다 할지라도 말이다.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역설적인 건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삶의 조건에 대한 선택 가능성은 줄어듦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선택의 조건을 만들어 간다는 희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II. 일상생활이라는 중매쟁이

하루하루의 일상생활은 기호화되지 않고 식별할 수 없거나 상징화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보편적으로 되어버린 역설적인 상태, 그런 '대중 주변성'이라는 상태 속에서 일상생활이 구성된다. 하지만 그 일상 속에서 우리들이 만들어낸 사회구조는 조금만 떨어져서 바라보면 너무나 명확하게 기호화되고 식별할 수 있는 상징구조들로 드러나곤 한다. 

아마도 내 머리 속에서 맴도는 건 일상생활 속에서 보이지 않던 그 공간들이 다른 형식으로 드러나는 과정 속에서 오는 혼란스러움은 아닌가 싶다. 그것들에 대한 식별은 때로는 명확히 드러나기도 하고 때로는 희미하게 흔적만 남기도 했다. 그것들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 희미한 겹침과 간섭이 일상생활을 통해 중매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일상생활에 의한 보임과 보이지 않음의 중매라고나 할까?

거칠게나마 그 중매쟁이 역할을 하는 일상생활들을 구분하고, 그동안 내 머리 속에 남아 맴도는 공간에 대한 기억들을 잠깐 내려놓고 싶다. 언젠 다시 보게 될지는 모르지만....

구 분

보이는 일상생활 구조(제도)

경제제도

정치제도

사법제도

교육제도

사회제도

보이지않는일상생활
구조

물  적  구  조

사회관계구조

시 공 간 구 조

의미 행위구조



III. 도시공간에 대한 기억들 : 공간의 사회성

1. 화장실 낙서(미시->거시)
대학다닐 때는 한 때 화장실 낙서에 빠진 적이 있었다. 처음 낙서를 접한 건 전철역 공중화장실이었던 것 같다. 이런저런 낙서들... 물론 화장실 낙서에는 음란물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그 화장실이 어느 공간에 있냐에 따라 낙서의 내용들이 다르다는 점이다. 이후 나는 어디를 가더라도 기회가 되면 화장실을 들러 화장실 벽에 있는 낙서들을 보곤 한다. 물론 식당 벽이나 그냥 거리에 있는 낙서들도 습관적으로 보곤 한다. 아직도 그 버릇은 남아 있다. 고상한 사람은 나를 변태로 볼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기억을 남겨보면, 90년대만 해도 대학에 있는 화장실 낙서들을 보면 각 대학의 이슈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 대학 화장실에는 낙서가 없다. 웃기는 건 가끔 총학에서는 화장실에 낙서판을 설치하곤 한다.

전철역과 같은 공중화장실의 낙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공중 화장실의 낙서가 모두 음란물로 가득찼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나는 공중화장실이야말로 그 사회 속에서 억제되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을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대부분 음란물로 채워졌더라도 말이다(요즘은 그런 낙서마저도 없다). 재미있는 건 요즘 그 공중화장실의 낙서에 장기기증 안내문(?)과 동성애자 연락처가 간혹 눈에 보인다는 점이다. 언제부터인가 이 사회는 장기를 공공연하게 사고 파는 사회가 된 것이다. 어쩌면 최악의 상태가 아닌가 싶다.

아무튼, 개인적으로 화장실 벽에 낙서들이 많으면 그 공간은 살아 움직이는 공간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 화장실의 낙서들이 깨끗하게 없어졌다. 시민의식이 성숙해지고 화장실 깨끗히 쓰기 운동을 통해서라고 하지만 그거 다 웃기는 소리다. 익명을 통해 감춰진 생각의 자유로운 배설물들은 그런 식으로 막을 수는 없다. 어떤 식으로든 어디선가 배설되고 있다. 요즘은 그게 인터넷으로 옮겨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이 글도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하나의 낙서에 불과하다).

예전의 화장실 낙서가 사라진 요즘, 그 화장실 낙서의 사회성은 특정인 또는 특정 장소를 통해 재구성된다. 그리고 그렇게 재구성된 낙서는 더이상 익명성과 개별성으로 머물지 않고 보이는 권력구조 또는 경제구조 속으로 흡수된다.   

예컨대 대학의 총학생회가 화장실에 설치한 낙서판과 같이, 또는 최근 없어진 정동 세실레스토랑의 낙서처럼 말이다. 정동 세실레스토랑은 그 곳이 민주화의 산파 장소라고 하지만 정작 벽에 걸려진 낙서들을 보면 가관이다. 한때 민주주의를 억압하던 권력의 장본인들이 보기 좋게 싸인들을 남기고 갔다. 그 권력의 상징들이 정동 세실레스토랑이라는 장소와 만나 벽에 낙서 아닌 낙서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때로는 단 페르조브스키의 낙서와 같이 좋은 말로 예술상품이 되기도 한다.


2. 컴퓨터 메인보드와 도시공간(거시->미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장소, google map을 통해 클리핑해 놓았던 2007년 우리동네 사진이다. 요즘 내 머리 속에 남아 도시공간에 대한 생각들을 맴돌게 하는 모습들 중의 하나다. 중앙을 중심으로 좌측은 공원, 시청, 도서관 같은 공공기관이 들어서고 우측으로 오며 병원, 상가들이 들어서 있다. 그리고 중앙 우측으로는 단독주택과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있다. 소위말하는 주택단지다. 그리고 그 주택단지의 우측 끝자락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운동장이 보인다. 그 공간들은 길을 통해 나눠지고 연결되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내는 이 일상생활의 공간, 이 곳에서 접하는 공간은 흡사 컴퓨터의 메인보드와 같이 하나하나 구획과 기능이 나누어져 있다. 길까지 어떻게 이렇게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나는 이 컴퓨터 메인보드 같은 도시공간 속에 놓여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게는 그냥 일상의 공간이고 거리이고 길은 그저 길이거나 산책로일뿐이다. 그 속에서 컴퓨터 메인보드와 흡사한 공간을 만들고 있는 나, 아니 우리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정치지리학을 하는 사람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자본에 의해 공간이 축조된 결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자본의 힘이다. 하지만 꼭 자본주의 사회 속의 도시 모습만은 아니다. 공산주의 사회 속의 도시공간이 보여주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도시행정학을 하는 사람들은 도시공간에 대한 합리적 이용 과정 속에서, 즉 합리성에 의해 축조된 결과라고 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합리성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도대체 이런식의 축조형태가 삶의 합리성 추구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3. 숨은 도시공간
며칠전 여의도에 있는 국회도서관에 갔을 때다. 입법조사관으로 있는 분의 안내로 국회도서관에 있는 카페에 들르게 되었다. 그 곳에 그런 카페가 있으리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전망 좋은(?) 조용한 카페가 국회도서관 내에 위치하고 있었던 거다. 값도 저렴하고 일반 카페보다도 넓은 공간이 마땅히 쉴 곳이 없는 여의도 공간의 국회도서관 안에 자리잡고 있는거다. 그 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들던 생각은 아는 놈 아니면 이 곳은 찾아올 수 없는 공간이라는 생각이었다.

종로, 음식점마다 항상 붐비고 서비스도 좋지 않다. 지난달 토론회를 마치고 저녁을 하기위해 사람들과 들렀던 르미에르 종로타운, 피마골을 헐고 들어선 그 건물의 번잡함을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앞선다. 그러다 맥주라도 한잔 하고 가자는 사람들의 만류에 들른 파이낸스 빌딩 지하 아케이드 공간. 바로 한 블럭 차이인데 그 공간은 너무나 한산하고 조용했다.

가끔 보면 이런 식으로 도시공간은 숨는다. 어쩌면 그 숨고 드러남을 통해 공간이 재구성되고 컴퓨터 메인보드를 구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 결의 차이는 무엇일까?  

IV. 일상생활의 시점
언젠가 공간에 대한 생각에서 공간을 보는 시점이 여럿 존재함을 남겼듯이, 일상생활에도 그 여러 시점들이 개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여러 시점들(示占, 視占, 始占, 時占, 是占)에 따라 일상생활이 중매하는 드러남과 드러나지 않음의 구조는 상대적으로 바뀌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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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 부동산 대책]과 주술경제




1. [10.21 부동산 대책]
이명박 정부에서 부동산 대책이라는 것을 내놨다. 요는 수도권 주택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를 해제하고, 9조원을 투입해 건설사 보유 토지와 미분양 주택 등을 매입해 주겠다이다.
뭐 특별히 한국사회니 한국경제니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당장 내가 살아가며 닥치게 될 현실의 문제이기도 하고 미래의 문제이기도 하다. 음...생각해보니 하도 갑갑해서 나가 담배 한 대 피우고 들어와 앉았다. 젠장 인생 참 뭐 같다. 기사와 책, 그리고 남의 글 등에 대한 클핑일일지라도 관련 자료들을 정리하고 좀 더 생각을 해봐야 겠다. 쩝.

  • 정부, 건설사에 9조원 안팎 직접 지원연합뉴스 | 10.21 16:02
  • 미분양·택지매입, 회사채 보증 등 총망라노컷뉴스 | 10.21 16:20
  • 9조2천억원 어떻게 지원되나연합뉴스 | 10.21 17:48
  • 금융위 "유동성 공급대책,CD금리 낮출 것"머니투데이 | 10.21 16:22
  • 건설업체 총 9조원 지원..구조조정도 병행노컷뉴스 | 10.21 16:18
  • 돈풀고 대출규제 완화해 건설경기 부양아시아경제 | 10.21 16:02
  • 투기억제 장치 풀어 '주택 거품 부메랑' 우려경향신문 | 10.21 18:24
  • 가계빚 부담→금융부실 가능성 완화노컷뉴스 | 10.21 16:04
  • '참여정부 부동산투기 근절책 원점으로'이데일리 | 10.21 16:14
  • "거래 활성화 기대..거시경제가 관건"연합뉴스 | 10.21 16:02
  • 건설업 구조조정 본격화되나머니투데이 | 10.21 16:08
  • [해설] 10.21부동산대책, 버블 키워 버블 막는 ‘최악방식’ 데일리서프라이즈 | 10.21 16:55
  • 이건 누가 봐도 그동안 부동산 투기로 폭등한 집값이 내리려고 하니까 정부돈(세금)으로 일단 부동산 값 내리는 거 막고, 돈 있는 사람들에게는 투기억제 장치를 풀어서 투기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겠다는 의미다. 말이야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면 경제 전반에 오는 충격이 커서 미리 막아보겠다고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거품이 빠진 다음에 해야지 지금은 그럴 시기가 아니다. 나중에는 더 큰 자금을 투여해도 막지 못하는 파국이 올 수도 있다.

    결국 [10.21대책]은 부동산 버블 붕괴가 오는 시기를 조금 지연시키는 결과가 되고, 그 사이 투기했던 사람들은 세금으로 챙길 거 챙기고 빠져나간다. 외국 자본은 이미 빠져나가고 있다는 기사도 보인다.

    [관련기사]
    외국투자자, 이번엔 부동산 매각 행렬 : [한겨레] GE 등 도심빌딩 잇따라 매물로 내놔 주식, 채권에 이어 외국투자자의 ‘셀 코리아’ 현상이 부동산 시장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겨레 | 10.21 22:13

    그러다 부동산 버블을 버티지 못하고 붕괴되면 이미 챙겨 나갔던 돈들이(그 돈이 국내 돈이건 국외 돈이건)이 다시 들어와 전국을 부동산 투기판으로 만들 것이다. 죽어나는 건 집 한 칸 살 돈 없는 서민들이고, 그 투기판을 앉아서 보고만 있다가 당하는 거다. 그리고 아~이래서 돈이 돈번다는 말을 하는구나 하는 말을 실감하게 될 거다. 더 환장하는 건 그 돈이 내가 낸 세금이라는 거다.

    국가가 총자본을 대변하는 기구라면, 장기적으로 볼 때 적어도 이거는 아니다라는 생각이다. 정말 시장을 왜곡하는 짓을 하고 있는거다. 한마디로 현 정부가 한국 자본주의의 장기 발전을 막고 있는거다. 그리고 아무리 이명박 정권이 '강부자' 정권이라고 해도 요즘 너무 한다는 생각도 든다.

    경제 전문가도 아니고 부동산 전문가 아닌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게 기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각종 경제지표와 세계경제의 흐름이 보이는 지금의 상황에서 그렇지 않을 거라는 생각. 그거야 말로 주술적인 생각은 아닌가 싶다. 우리들은 어쩌면 이런 주술자들의 주문을 들으며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나중에는 그 제단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 운명에 놓일지도 모른다.    

    2. 한국의 부동산 문제
    한국의 부동산 문제. 내가 일일히 열거하기보다 최근 손낙구가 쓴 '부동산 계급사회' 라는 책을 살펴보면 일목요연하게, 그것도 통계를 바탕으로 잘 정리하고 있다. 그 책의 주요 내용을 알라딘에 소개된 소개문을 통해 간략히 보면 아래와 같다.

    [관련자료]
    부동산을 빼고는 그 어떤 것도 설명하기 어려운 우리 사회의 현실을, ‘부동산 계급사회’라는 개념을 불러들여 파헤친다. 한국의 부동산 문제는 단순히 주거 문제가 아니다. 교육과 학력, 건강과 수명, 불평등과 빈곤 및 노동쟁의 역시 부동산을 빼고 설명할 수 없다.

    한국 경제의 미래, 정치 부패, 인사 부정, 재벌 비리 이 모든 것도 잘 들여다보면 부동산 문제다. 아파트에 사는지 연립주택에 사는지, 아파트에 산다 해도 어느 브랜드의 몇 평에 사는지, 주택 말고 땅이나 건물이 있는지 등, 부동산과 관련된 몇 가지 정보만 알아도 그 사람이 어떤 정치의식을 갖고 어떻게 투표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최근의 선거 결과를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변수는, 강남이냐 강북이냐, 재건축, 뉴타운 개발 할거냐 말거냐 등 단연 부동산이다. 언론의 논조도 잘 들여다보면 부동산 광고 수주 여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부동산에 울고 부동산에 웃는 나라, 직업과 노동 소득보다는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자산 소득이 불평등의 잣대가 되는 사회, 대한민국은 부동산 계급사회다(알라딘, 2008).

    좀 과정된 것 같지만 통계가 보여주는 현실이다. 나도 손낙구와 같이 한국 사회의 문제를 '부동산 문제'와 '비정규노동 문제'로 보는 입장이다. 내 현실이기도 하다. 아무튼 여기서 세부적으로 정리하기보다 다시 읽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마침 그의 동영상 강의가 인터넷에 떠 다녀서 남겨본다.

    [관련자료]
    [동영상]손낙구, 부동산 계급사회와 마주보기

    3. 주술경제?
    아마 웬만한 직장인들치고 펀드나 주식투자 하지 않는 사람 없을 거다. 특히 3-40대들이 모인 술자리에서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얘기들다1). 이번에 얼마 벌었네, 잃었네 하며...(용어 자체가 진짜 도박이고 게임이다). 직장생활 하며 없는 돈 쪼개서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한다는 거, 이것도 알고보면 한국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고 참 복잡한 얘기다. 아무튼 이 돈들이 요즘은 반토막이 나서 허탈하다. 그렇게라도 모아서 나중에 집 사려고 했던 건데, 결론은 그 돈이 없어진 거다. 

    4-50대 집 가진 사람들치고 담보대출 받지 않은 사람 참 드물다. 그렇게 대출받아서 집늘리고 부동산 값 오르는 재미에 그나마 살았다. 남들은 투기라고 하지만 겨우 집 한 채 장만한 거. 그리고 보니 어느새 집 값 올라가고 그 재미에 빠져 재산 늘리게 된다. 그렇게라도 재산 늘리지 못하면 바보소리 듣는 사회다. 한마디로 투기사회다. 이것도 한국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고 참 복잡한 얘기다. 그런데 요즘 그 집값이 내리고 있고 대출이자 갚기에 벅차다. 슬슬 집을 내놔야 할 판이다. 거기다 요즘은 주택 공급 확대정책으로 팔리지 않는 집까지 쌓여간다. 속이 탄다.

    좀 시간이 지나면 오르겠지 하겠지만 정작 그 많은 집에 들어가 살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그나마 젊은 세대들은 88만원 세대라고 해서 비정규직으로 직장생활을 하며 하루하루 살기 버겁다. 저축하기도 힘들고, 결국 나중에 주택이 남아돌아도 그걸 살 여력이 없다. 거기다 인구감소로 젊은 층이 갈수록 줄어든다. 한마디로 지금 젊은 세대는 미래에 부동산 구매력도 없고 그나마 수요층마저 줄어들고 있는 거다. 뭐 물려 받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종합해보면 공급은 과잉이고 수요가 없다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는 거다. 이건 내 생각이기보다 아래 김광수 경제연구소의 진단이다2).  거기다 경제성장도 저성장 시대로 접어드는 판에 지금과 같은 정책이 실효를 거둘거라고 말하는 것. 그리고 실제 그 정책을 시행하는 것. 바램을 현실에 맞추기보다 그냥 그 바램을 밀고 나가는 거다. 그리고 잘 될거라고...믿고 따르라는 것. 이거야말로 주술경제가 아니고 뭔가 하는 생각이다.

    거기다 투기의 길까지 열어 놓겠다니...땅 사서 국유화 한다고 해도 그렇다. 그 땅 팔때는 싸게 팔고 오른 땅을 지금 사겠다니...세금 가지고 지들끼리 나눠먹으며 장난하는 것도 유분수지 정말 분개할 일이다.

    [관련자료]  
    0.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 금리 인하가 환율 폭등 부추긴다 (뒷부분 부동산 정책부분 참조)

    0. 블로그(불량사회)
    버블 붕괴 막기 위한 정부 총력전 효과있을까?


    0. 진보신당
    [논평] 국민의 돈으로 ‘부동산 버블’ 키우겠다는 강부자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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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1) 비정규직으로 생활하는 사람들과 같이 정말 없는 사람들은 하루하루 살기도 힘든데 그런 데 투자할 돈이 없어서 걱정이다. 하루하루 살기도 힘들고 전에는 그런 술자리에서 기죽고 있어야만 하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요새는 그나마 다행이다 하며 가슴을 쓸어내릴지도 모른다.

    2) 김광수 경제연구소. 작지만 정부부처를 비롯해 유수 기업을 회원으로 두고 있고, 그 분석이 정확해 그들의 분석을 바이블처럼 여기기도 한다는 곳이다. 그만큼 믿을만한 경제분석을 내놓는 곳이다.

    [이후 부동산 관련 자료]
    끝없는 집값 하락! 김 PD, 하우스푸어를 말하다 레이디경향 경제 2010.09.10 (금)
    서울 집값 하락세‥부동산 거품 빠지나? MBC TV 경제 2010.05.15 (토) 오후 10:13
    부동산 시장, 하반기 회복 가능성은? 연합뉴스 경제 2010.05.14 (금) 오후 3:55
    5년 후에도 부동산시장 ‘강남불패’ 이어질까 매경이코노미 경제 2010.05.14 (금) 오후 8:03
    가계 부채부담, 부동산 가격이 금리·소득보다 영향 커 아주경제 경제 2010.05.12 (수)
    IMF, 한국 등 亞국가들 부동산 거품 경고
    서울파이낸스 경제 2010.04.23
    100억이상 초고가 부동산 낙찰가 절반 이하로 ‘뚝’ … 경매장서 푸대접 경제투데이 경제 2010.04.22
    [내일시론]부동산 불패신화 깨지나(김진동) 내일신문 칼럼 2010.04.22 (목)
    40~60대가 만든 '부동산 거품', 2030 죽는다
    오마이뉴스 경제 2010.04.13 (화)
    교포들 강남 부동산 대거 사들인다 서울경제 경제 2010.04.13 (화)
    은행권 `부동산 대세하락` 예상 매일경제 경제 2010.04.13 (화)
    부동산 거품, 꺼지기 시작했나? 서울파이낸스 경제 2010.04.13 (화)
    "성급한 부동산 출구전략이 건설업계 위기 초래" 헤럴드 생생뉴스 경제 2010.04.12 (월)
    부동산박람회도 '썰렁', 그나마 '상가'가 대세? 아시아경제 경제 2010.04.09 (금)
    신도시 아파트 하락세 '지속'…부동산 경기 침체 SBS 경제 2010.04.09 (금)
    강만수-최중경, 부동산 규제 화끈하게 풀었다(上) 이데일리 경제 2010.04.08 (목)
    추락하는 수도권 신규분양.. 1순위 대거 미달 파이낸셜뉴스 경제 2010.04.14 (수)

    도시 비정규노동자의 삶과 고시원 살인방화

    송용한

    1. 내 스스로 위안이라도 해야하나?
    고시원 살인방화와 관련된 기사가 사회면 일면을 장식하고 있다. 이럴땐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우선 죽은 사람들에게 애도의 마음을 전해야할 거다. 그리고 방화범에 대한 생각에 앞서, 이 사회 속에서 나의 무력감을 느낀다. 이번 고시원 방화사건은 어쩌면 우리들이 느끼는 이 무력감에 대해 표출되는 한 개인의 사회적 저항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극단적 행위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는 "고시원 살인·방화는 '반사회성인격장애'의 전형"라는 표제를 달고 있다. 경찰에서는 정신병적인 증세로도 보고 있다. "다행이다...그래도 나는 아직 그런 '반사회성인격장애'는 아닌가보다"라고 내 스스로 위안이라도 해야하나?

    2. 삶의 무게들 - 비정규노동과 부동산 문제
    한겨레 신문 기사 ['궁핍, 사회불만의 흉기', 고시원 참극]에서 보듯이, 방화범(정씨)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02년 서울로 올라와 식당 보조원과 주차요원 등으로 일했으며, 최근엔 고시원 인근 분식집에서 배달원 일을 해 왔다. 정씨와 같은 조건에서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사실 이런 류의 단순서비스직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월급은 받아야 보통 100만원 내외, 많아야 150만원 정도다.  

    이 돈으로 사실 정상적인 가족 생활, 그것도 서울에서 결혼해서 집을 얻고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결혼은 둘째치고 집을 얻는 것만으로도 버겁고 힘든 일이다. 싸도 몇 억대를 넘는 집을 산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고, 전세를 얻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이런 조건에서 비정규직으로 일을 하며 원룸이나 월세라도 얻고 생활하려면 한달 번 돈의 반 이상은 집세로 내야한다. 서울 변두리라면 40정도면 가능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변두리로 나가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설사 변두리가 아니라 도심에 일자리를 구한다 해도 출퇴근 시간만 한 두 시간은 족히 걸린다.

    결국 시급이 다른 조건보다 좋은 조건에서 일자리를 구하려면 어떻게 해서라도 도심 안에서, 그것도 잘 나가는 동네서 일자리를 구해야한다. 그리고 일하는 곳에서 쪽방을 내주거나 일 끝나고 가게 쇼파 같은 곳에서라도 자라고 하면 다행이다. 이런 조건도 어려울 경우 도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주거공간이 고시원이다. 말 그대로 쪽방의 또 다른 이름이 고시원인 거다1).

    그 곳에서 정씨는 빡빡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거다. 그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었던 사람도 정씨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비정규노동 문제'와 '부동산 문제'가 얽혀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우리의 삶을 내리누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3. 이중도시와 감정노동
    강남이라는 공간. 이 공간은 전형적으로 '이중도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공간이다. 이 동일한 장소에서 강남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러한 향유를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강남에는 한국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를 비롯해 백화점과 음식점, 그리고 고급 유흥시설들이 즐비해있다. 아파트에는 경비아저씨가 있고, 백화점에는 판매원과 주차요원, 청소부가 있고, 음식점에는 식당 보조원, 배달원이 있다. 이런 일들은 정씨가 해 온 일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씨가 해 온 그 일들의 대부분 '감정노동'에 속하는 일들이다.

    감정노동. 고객에게 무시를 당해도 웃음 지으며 화나는 나의 감정을 항상 참아내야하는 일이다.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지...그나마 돈이라도 많이 주면 그렇다치지만 그렇지도 않으면서 언제까지 참아내야한다는 말인가. 이건 말이 감정노동이지 인간의 영혼을 파는 일들이다. 이런 일을 저임금의 비정규직으로 생활하며 하루하루 참고 견뎌내야 한다는 거.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삶인데 정말 우울증, 화병, 대인기피증, 공황장애 등에 걸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이번 고시원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은 이 이중도시 속에서 감정노동을 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뎌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게 조금이라도 아끼며 빨리 버는 방법이기도 하다. 남들은 어떻게 저렇게 사나 하겠지만, 그래도 가슴 속에 꿈을 갖고 쇠붙이 같은 삶의 무게일지라도 열심히 길을 달려간다.

    4. 삶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는 무력감
    하지만 가끔은 더이상 넘을 수 없는 벽.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내가 오를 수 없는 산이 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들. 그럴 때는 지금까지 가져왔던 희망조차도 무너지고 더이상 삶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혼자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그 무력감...

    이 무력감. 당사자인 나의 책임으로 물어야할까? 하지만 나도 나름 열심히 살아왔는데...더이상 내가 어쩔 수 없서서 그러는 건데.... 그럼 당신의 책임으로 물어야할까? 하지만 당신도 남에게 피해 입히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할텐데... 그럼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5. 인정투쟁과 사회적 대책?
    결국 우리는 이렇게 양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양분된 두 당사자 가운데 한 사람만이 위협을 자신의 인격성과 관련된 문제로 인식한다. 그 이유는 상처받은 주체만이 대항 행위를 통해 자신의 전 인격체의 불가침성을 위해 투쟁하기 때문이다(엑셀 호네트, [인정투쟁] p.57)

    하지만 이 사회가 그 문제에 대해 그건 너 혼자만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대답할 때...상처받은 한 개인은 혼자 분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확 불지르고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 싶다. 더 비참한 건 이렇게 상처받은 주체만이 위협을 자신의 인격성과 관련된 문제로 인식하고 혼자 죽음으로 해결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정작 상처를 준 이 사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사회가 가한 위협이 한 인격성을 어떻게 파괴했는지에 대해 생각하기보다 오히려 그들을 정신병자로 분류한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정상적인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치안을 강화하고, 그들을 격리시키고 교정할 생각부터 한다. 그런 사회적 정당성 속에서 치안사업, 교정사업, 복지사업은 더욱 확대된다.

    그 울타리 속에 들어간 우리들은 한편으로 위안하겠지만...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 높은 벽을 느끼고 곧 무력감에 빠져들거다. 그러다 우리들은 다시 그 울타리 밖으로 내쳐질거다. 그 때에는 일본과 같이 '도리마' 공포가 한국 사회에도 확산되고 있다고 언론들은 떠들어댈거다...참 쓸쓸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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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번 방화사건을 계기로 고시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극단에는 고시원을 폐쇄하겠다고 난리를 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 이들이 어디로 갈지 의문이다. 찜질방? 그것도 하루이틀이지...아니면 노숙인?      


    [관련기사]
    지역사회와 노동운동의 개입전략
    Local Community and Trade Union's Intervention Strategy



    김현우  이상훈  장원봉

    한국노동사회연구소 | 프리드리히에베르트재단

    책을 내면서

    21세기 들어와 우리나라에서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Coporate Social Responsibility) 못지않게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기대와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 노동조합운동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필요는 실제적이다. 우선 당장, 아무리 내부 결속력이 높아도 지역과 긴밀히 결합하지 않은 투쟁은 성공을 거두기 어려워졌다. 예를 들어 2004년 LG칼텍스(현 GS칼텍스) 노동조합은 비정규직들에 대한 차별적 처우들을 시정할 것과 대형 공해유발 사업장으로서 지역사회발전기금을 설치할 것, 주 5일제 시행시 신규인력채용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통한 청년실업해소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전개했지만, “노동귀족의 배부른 파업”으로 매도되었고 일방적인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노동운동은 언제나 자본과 보수언론의 공세에 맞서 싸워 왔지만, 투쟁시기에만 반짝하는 ‘언론플레이’로는 이러한 공세를 이기기 어렵다. 일상적 시기에 노동조합운동의 사회적 의의와 문제의식을 확산시키고 사업을 전개하여 노동운동의 든든한 우군을 확보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된다.

    대기업 노동조합이 지역사회의 산업발전 역량을 강화하는 산업입지 전략을 사용자의 사회적 책임 활동과 함께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시되고 있다. 지역사회 여론으로부터 점점 고립되고 있는 노동운동의 사회적 정당성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대기업의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활동, 즉 사회복지시설의 공동이용, 직업훈련 및 교육시설의 공유, 지역노동시장제도의 공동개발은 물론, 하청 및 협력업체, 비정규직에 대한 노조의 책임 있는 태도와 구체적인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접근 방향이 좀 다르긴 하지만,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의 민주노동당에서도 지역조직 개편 논의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지역조직들이 지역 시민사회 내에 아무런 확고한 조직적 토대 없이 보수정당들과 경쟁한다는 것이 순전히 선거 상의 성과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한계가 명확하다는 문제의식이 하나라면, 당 조직이 인적 자원과 물리적 자원을 활용하여 비정규직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지역 전진기지 역할을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또 하나다.

    한편 생활임금, 고용정책, 산업정책, 대중교통 등 지방자치체의 정책과 행정이 노동자의 삶이나 노동운동에 직접 영향을 주는 가능성과 여지가 증대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지방자치제도가 성숙하고, 노동운동 출신의 인사들이 지방의회와 지자체에 진출하면서 이러한 측면에 대한 활용가능성과 필요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노동조합의 인식은 아직 매우 미흡하며 대응전략도 거의 부재한 상황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2004년 민주노총 일부 산별연맹의 사회연대기금 요구, 과기노조의 대전지역 주민사업, 보건의료노조의 공공병원 확대 요구, 지하철노조와 철도노조의 안전요원 확충 요구, 공무원노조의 부패감시 활동 선언 등에서 노동조합운동이 지역 이슈와 결합하는 실천의 단초가 발견되고 있다.

    이 연구는 그러한 사례들을 통해 노동운동의 지역사회 개입 전략을 모색하기 위한 시도이다. 물론 ‘지역사회’라는 개념도 매우 다양하게 해석되고, 노동운동의 관여나 개입 수준의 스펙트럼도 매우 넓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이 연구에서 모두 다룰 수는 없다. 이 책으로 묶여진 내용은 그 시론적 작업에 해당한다.

    이 책의 1장에서는 지역사회의 개념과 노동자와 노동운동 조직이 지역사회를 중요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를 서술하고, 2장에서는 영국과 한국의 경험을 통해 지역사회와 노동운동이 결합해 온 역사를 살펴보았다. 3장은 노동운동이 지역사회와 관계를 맺는 모델을 몇 가지로 나누어 유효적절한 접근 방식을 추출해보고자 했으며, 4장에서는 우리나라 노동운동에서 지역사회와의 결합과 개입을 시도한 시사적인 사례를 통해 지역사회 전략의 현실적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자 했다. 이어 5장은 지역사회 개입 전략을 일선에서 고민해야 할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의식을 조사하여 그 결과를 정리하였다. 이러한 결과들에서 한발 더 나아가서 6장은 노동운동의 지역사회 개입전략이 좀 더 고민해야 할 내용으로 지역 노동시장에 대한 개입과 노동력 재생산 영역에 대한 개입 방안을 정책적으로 제안하고자 했으며, 7장에서 이러한 연구 결과의 함의를 종합하였다.

    이 책을 위한 연구․조사 사업은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의 후원으로, 2005년 한 해 동안 본 연구소의 김현우 연구위원과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의 이상훈 연구원,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의 장원봉 연구위원이 진행하였다. 연구를 담당한 연구원들과 조사와 자료수집에 적극 협조해 준 양대노총 광역시도 지역본부 간부들과 산별연맹 활동가들,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은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에 깊이 감사드린다.


    2006년 1월 6일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김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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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나 이러한 그의 맑스주의적 연구방법론은 1983년 출판한 '도시와 민중(The city and the Grassroots)'에서 완전한 자기부정으로 표현된다. 즉 그는 과거 자신이 구조주의적 맑스주의에 그렇게 집착하여 도시사회 공간을 인식한 방법론을 '대실착'이었다고 자조한다. 이 책에서 카스텔은 도시사회운동을 다루기는 하지만, 더이상 정치경제학적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는다. 도시는 이제 집합적 소비과정과 관련된 투쟁의 장의로 정의됮 않으며, 그 사회의 특정 역사적 단계에 따라 특정 공간 형태에 부여된 사회적 의미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도시사회운동은 집합적 소비재를 둘러싸고 발생하는 운동뿐만 아니라 문화적 정체성을 가진 공동체를 창출하기 위한 운동, 그리고 국지적 자주관리를 달성하기 위한 운동 등으로 다양한 특징을 갖게 된다....(카스텔, 200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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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겨울철쭉의 독서일기
    http://member.jinbo.net/~rudnf/red/board.php3?table=reading&query=view&l=39&go=68&p=5

    <경제의 세계화와 도시의 위기>/사스키아 사센/푸른길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도시와 그 시민에게 미치는 영향"


    가끔 좋은 책들이 묻혀있는 경우를 발견한다. 이 책도 그런 경우. 요즘에 유행하는 얄팍한 혹은 저널리즘적인 세계화 비판서들 보다 훨씬 알찬 내용을 보여준다.(나는 이 책을 다른 책의 각주를 통해서 알았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서는 아니다. 오히려 약간 '빗나간' 주제를 다룬다. 바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과정에서 '도시', 그리고 그곳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변하는가하는 문제이다.

    생산이 탈지역화하고, 자본이 초민족화하면서 생산의 입지는 분산된다. 금융자본의 운동과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이 낳은 결과이다. 그럼 대도시는 쇠퇴하는가?

    예상밖으로 저자는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다. 물론 금융중심지로 도약하지 못한 어떤 도시들은 쇠퇴한다.(혹은 이 과정에서 제3세계의 공업도시는 생산입지의 변경으로 인해 팽창할 수도 있다.중국과 동남아시아의 대도시들.) 그러나 초국적 거대도시들(뉴욕, 런던, 파리, 도쿄 등)은 오히려 더욱 팽창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이 도시 지역이 생산자본의 초국적화에 맞물리는 초민족적 자본의 금융화의 중심지이기 때문.(90년대 이후의 이른바 '신경제'에서 자본의 축적은 생산에서 금융부문으로 이동한다.) 금융거래를 중심으로 도시의 기능이 팽창하고, 또한 이러한 입지에는 금융거래의 인프라를 제공하는 정보통신 기업이 집중된다. 이에 따라 오히려 초국적 거대도시들은 팽창한다.

    우리나라의 서울의 예도 그렇다. 금융기능이 우리 나라에서 유일하게 집중되며, 아무리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정보통신 산업에 투자한다, 무슨 '벨리'를 만든다고 해도 서울 강남에 정보통신 기업은 집중된다. 자본의 축적양식이 금융적인 것으로 변화하면서 이에 따라 기업의 입지 조건도 바뀌고 도시의 성장도 바뀌는 것이다. 한편으로 인천과 같은 공업도시들은 고유의 생산 기능을 상실해가고 서울의 위성도시화한다.(대우 자동차가 GM에 매각될 경우 부평공장의 폐쇄는 기정사실로 보이는데, 그 경우 이 과정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한편,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도시의 하부 구조에 저임금의 단순노동, 하인노동(피부관리사 등과 같은 것이나 파출부 등)을 양산한다. 어떤 첨단 빌딩도 청소부나 보일러 관리공 없이 운영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첨단의 도시와 주거지역도 편의점의 파트타임 저임금 노동력 없인 운영될 수 없다.

    결국 도시의 계층분화는 더욱 진전되고, 대도시의 인구는 금융과 정보통신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귀족들과 하층 비정규직, 하인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들로 분할된다.(이러한 노동인구의 분할에 대해서 이 책은 도시공간의 분석을 통해 답하고 있지만, 이러한 도시 풍경의 변화는 금융세계화 과정과 떨으뜨려 사고할 수 없다. 이와 같이 노동인구를 분할하는 데 있어 금융세계화가 미치는 영향과 그 매커니즘에 대해서는 <신자유주의와 노동의 위기 : 불안정 노동 연구>(사회진보연데/문화과학사)를 참고할 수 있다.)

    이러한 모습도 역시 서울과 같은 도시에 들어맞는다.(물론 서울보다는 뉴욕이나 런던, 도쿄에 잘 들어맞겠지만.) 이른바 '테헤란 벨리'와 여의도 증권가의 고임금 직종의 노동자들이 존재하는 한편에 열악한 조건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이들은 주거지역도 중산층 아파트와 좁은 다세대 주택, 이런 식으로 분할된다.

    이 책은 이렇게 추상적인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과정에 대한 인식을 구체적으로 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자본의 축적 양태의 변화에 따른 효과가 우리의 삶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드러나는지를 보여준다.

    그럼 이 책이 그리는 미래는 디스토피아일까? 글쎄, 저자는 명확히 답하고 있지 않지만, 이러한 모순된 상황, 즉 거대한 금융자본의 축적과, 한편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의 공존은 그대로 유지될 수 없다. 인간은 자신의 삶의 조건들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은 도시의 변화과정에서 도시공간을 '정치화'하면서 더욱 확산될 것이다.

    또한 초국적 도시의 팽창과 더불어 쇠퇴할 수밖에 없는 '민족국가'의 통치성의 위기는 이 체제의 근본적 불안정성을 심화한다. 역사적으로 대중을 지배하는 체제로 효과적으로 정착한 '민족국가'는 내부로부터 초국적 대도시와 시골, 쇠퇴하는 도시로, 그리고 초국적 도시 내부의 분열로, 몇겹으로 분열돼 간다. (저자는 이에 따라 미래가 초국적 거대도시들의 네트워크가 지배하는 새로운 세계의 모습을 띨 수도 있다고 진단한다. 민족국가라는 자본주의 고유의 국가형태가 도시의 연합에 의한 초국제적인 지배로 변환된다는 예상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자본주의가 민족국가 형태를 취하는 것은 그것이 여러가지 대안 중 가장 효과적으로 대중을 지배할 수 있도록 했으며 자본축적에 유리한 조건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금융세계화는 스스로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묘굴인이 될 것인가?

    미래는 여전히 구성중일 것이지만, 이 책이 진단하는 바는 거의 가시적으로 들어맞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시적인' 미래에 대해서 우리의 대응은 무엇이어야할 것인가?

    등록일 : 2001-10-05 [1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