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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스콧 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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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회/민주주의와사회운동'에 해당되는 글 11건


1.
지방선거가 끝났다. 언론에서는 선거결과를 민주당 압승, 한나라당 패배로 MB정권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는 식으로 정리하고 있다. 곧 학계에서도 선거결과에 대한 평가 토론회들도 봇물처럼 나올 것이다. 일종의 정치적 의례행사들이지만 어떤 식으로 평가할지 두고 볼 일이다. 언론과 같이 MB정권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고 민주당 압승이라는 식의 평가는 아니었으면 싶다. 이와 관련해 단상을 남기다.  

2.
가장 큰 의문은 MB의 지지도가 50%가 넘는 현 상황에서, 이번 선거가 MB정권에 대한 국민의 평가로 볼 수 있는가는 하는 점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노동자 계급이 형해화된 한국사회에서 경제적 이익을 따르는 국민의 실리적 선택이 현실화되어 나타난 결과라는 생각이다. 이것을 MB정권에 대한 심판으로 볼 수는 없다. 물론 4대강 문제, 세종시 이전문제, 북풍이 선거과정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단기적인 정치 이슈에 지나지 않는다.

3.
이번 결과는 심하게 말하면 국민의 기회주의적 선택일 수 있고, 좋은 말로 하면 MB정권에 대한 견제로 국민은 지방선거를 통해 일종의 정치적 보험을 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죽은 김대중과 노무현이 산 이명박을 이겼다거나, 야당의 압승이라는 식의 평가는 착각일 수 있다. 향후 선거도 경제적 실리를 따르는 국민적 선택과정에서 야당에 대한 지지는 언제라도 돌아설 수 있다. 지금은 대안이 없기 때문에 나온 선택이다.

4.
이러한 선택은 대선결과와 의회구성이 서로 상반된 형태로 구성되어 굴러갈 수 없는 일종의 이중적(TWO TIRE) 정치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 노조로 치면 노조위원장과 지도부는 보수적인 노선을 찍어주고, 대의원들은 진보적인 성향의 대의원을 선출해 놓은 꼴이다. 이와 같은 결과는 노무현 정권때 노무현이 좌측 신호등 켜고 우회전을 하게 했듯이, 이명박 정권도 우측 신호등을 켜고 있지만 무턱대고 우측으로 갈 수 없게 만들 것이다. 다음 대선 결과와 정권도 향후 유사한 경로를 밟을 수 있다.

5.
장기적으로 보면 진보건 보수건 죽도밥도 되지 않는 차선의 선택들만을 가져가게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보 내부, 보수 내부에서의 분열은 필연적으로 일어나고 합종연횡하며 정치적 연합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밟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단기적이고 실리적 이익을 선택한 국민은 장기적으로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심화된 갈등 속에서 편가르기의 스트레스만 안고 갈 수 있다.   

[관련기사]
대선 '밑천' 몽땅 뺏기는 진보, 재벌개혁 '알박기'에도 속수무책? 미디어오늘 2011.08.19(금)
한나라, 거의 만장일치로 MB노믹스 뒤집다 조선일보 정치 2011.07.11 (월) 오전 9:25
"경제가 문제였다"...때늦은 반성문 노컷뉴스 정치 2011.05.02 (월)
3040세대는 왜 분노했나 내일신문 정치 2010.06.08 (화)
야권연대 ‘암울하다’ vs ‘반MB연합 힘 과시’ 참세상 사회 2010.06.07 (월)
'야당의 재구성', 격동이 시작됐다 프레시안 정치 2010.06.04 (금)
'죽은 김대중-노무현'이 '산 이명박'을 이겼다 오마이뉴스 정치 2010.06.03 (목)
경실련, 6.2지방선거 평가·개산방안 토론회 뉴시스 사회 2010.06.02 (수)







I.
자의반 타의반 ‘한국 민주주의 회고와 전망’ 심포지엄 토론회에 들르다. '열광과 좌절의 싸이클을 넘어-민주주의 위기와 제2의 민주화 모색'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내겐 최근 참가했던 토론회 중 가장 많은 아이디어를 던져주는 토론회가 아니었나 싶다. 관련 기사와 핵심주제들, 그리고 내게 남는 단상들을 남기다.

[관련기사]
- 관련 자료집 [열광과 좌절의 싸이클을 넘어] 다운로드
- [알림] ‘한국 민주주의 회고와 전망’ 심포지엄 한겨레 생활/문화 2010.04.12
- “한국 참여민주주의 심각한 위기” 한겨레 사회 2010.04.14 (수)
- 최장집, “민족 중심의 민주/반민주구도 퇴영적이고 과거지향적” 폴리뉴스 정치 2010.04.14
- [제2의 민주화 모색 토론회]박태균, “4.19혁명, 미국 헤게모니 역할이 중요” 폴리뉴스 사회 2010.04.14
- [제2의 민주화 모색 토론회]김진호, “촛불, 불온한 시민종교의 탄생” 폴리뉴스 사회 2010.04.14
- [제2의 민주화 모색토론회]고정갑희, “적녹보라적인 운동으로 전환해야” 폴리뉴스 사회 2010.04.14
- [제2의 민주화 모색 토론회]홍종학, “해밀턴 전략 통한 성장 필요” 폴리뉴스 사회 2010.04.14
- [제2의 민주화 모색 토론회]고병권, “스스로의 근거를 문제 삼을 수 있는 체제가 민주주의” 폴리뉴스 사회 2010.04.14
- [제2의 민주화 모색 토론회]김종엽 “민주적 법치와 복지국가 선순환 안돼 MB정부 등장” 폴리뉴스 사회 2010.04.14
- [제2의 민주화 모색 토론회]김정훈, “진보와 보수의 갈등은 합리와 비합리의 갈등” 폴리뉴스 사회 2010.04.14
- [제2의 민주화 모색 토론회]최갑수, “노무현 정권도 ‘기업 프렌들리’였다” 폴리뉴스 사회 2010.04.14
- "참여정부, 재벌과 관료들에게 포획돼 있었다" 노컷뉴스 정치 2010.04.15

II. 내부화된 외부 주체와 잃어버린 주체


최장집은 기조연설을 통해 한국사회 민주화의 장애로 국가의 부활과 시민의 정치 참여 위기, 허약한 정당체제를 지적하고 있다. 이는 한국사회가 겪은 압축적 근대화의 결과이다.

이러한 압축근대화 속에서 한국사회는 "민주화 세력이 한 번도 헤게모니를 잡은 적이 없다. 비록 정권을 잡은 적은 있지만 진보이념이 사회자체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헤게모니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험을 해왔다"(박태균). 그러나 정일준은 이 과정에서 "미국은 '내부화된 외부 또는 구성된 외부'로 단순히 외부로 볼 수 없는 한계가 있으며, 한국사회는 '압축적 미국화'를 경험했다"고 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압축근대화 속에서 한국과 미국은 동일한 주체로 결합되는 '구조적 접합의 장' 속에 놓여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정일준은 주체보다 주체의 접합이 이루어지는 장에 대한 분석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미국이라는 '내부하된 외부주체'에 반해, 역으로 잃어버린 주체가 있다. 일종의 '사장된 내부주체'라고 할까?  고정갑희는 이러한 문제를 여성을 비롯한 대안적 주체들의 틀 속에서 보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잃어버린 주체, 또는 주체의 누락이 어떻게 생산되는가도 고민해봐야할 지점이다. 고정갑희는 '가부장적 폭력'과 '국가폭력' 그리고 '자본의 폭력'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은 일반적으로 가부장은 문화나 이데올로기로 보지만, 사실은 문화가 아니고 자본과 국가가 어우러진 결과로 엄연한 하나의 체제로 봐야함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 세 폭력들의 어우러짐 속에서 이 사회는 다양한 주체를 누락시키고 제외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사례가 낙태문제, 매춘노동의 문제, 기륭전자 여성노동자 문제, 이주노동자 문제, 용산참사 문제 등일 것이다.

하지만 잃어버린 주체나 누락된 주체를 말하고 재해석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김원은 민주화 과정에서 이러한 주체가 왜 재해석되지 못했나를 봐야함을 주문한다. 그것은 기존 민주화 운동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그러한 비판 또는 반성없이 민주화 주체에 여성 주체와 같은 잃어버린 주체를 추가하는 사유는 단지 '온정주의'적 시각에 지나지 않는다.


III. '천민적으로 시장화된 시민주체'와 '한국적 시민종교의 탄생'

0. 천민적으로 시장화된 주체

랑시에르는 정치와 민주화, 그리고 주체 문제에 대해 '정치의 제도화'를 주장한다. 최장집도 이러한 선상에 있다. 이에 반해 조희연은 '정치의 사회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는 주체의 구성과 이의 실현이 제도를 통해 또는 사회를 통해 이루어져야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김진호는 한국사회의 압축적 근대화는 '정치의 사사화'로 수렴되고 있음 주장한다. 다시말해, 최장집이나 조희연의 생각은 일종의 바램일 수 있지만 현실은 그 반대라는 것이다.
김진호가 보기에  한국사회는 압축적 근대화 속에서 독재와 시장화의 경험을 겪고, 이 속에서 시민은 "천민적으로 시장화된 시민"이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대중의 무한 경쟁 상황이 통합 축"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일상생활 속의 정치와 권력은 개인의 영달과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며, 이를 위한 무한경쟁은 체제의 붕괴가 아니라 오히려 현 체제를 유지시키는 일종의 통합 기능을 한다는 역설이 성립하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이러한 무한경쟁은 "타자의 몰락과 자신의 주체화란 모순적 딜레마"을 겪게 한다. 이러한 딜레마는 민주화 속에는 불안과 딜레마가 있음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민주화는 좋다라는 식으로 '감정적 공조'를 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 이것을 사회적으로 묶어주는 '의미의 틀'이 없는 것이다. 즉, '감정적 공조'는 가능하지만 현실로 돌아와서는 내가 살고봐야하는 것이다.

0.  '한국적 시민종교의 탄생' : 종교의례 같은 착각 속의 민주화?
김진호는 '감정적 공조'는 있으나 그것을 엮는 '의미틀'이 부재하는 현 상황은 마치 '종교의례'와 같다고 본다. 종교의례는 의례 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틀을 열어 놓고 이중적 생활을 가능하게 한다. 즉, 현재 나타나는 민주화는 이러한 종교의례와 같은 착각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촛불시위와 같이 사람들은 모이기도 하지만 그것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절에 가서는 무소유를 생각하면서도 현실로 돌아와서는 하나라도 더  늘리는 부동산투기를 해야하는 것이다. 교회에 가서는 사랑과 믿음을 얘기하지만 현실에 그런 사람은 바보다. 항상 의심하고 확인해야 한다.

결국 한국사회 속의 주체들은 존재의 딜레마를 해소하기위해 마치 '종교의례' 같은 정치적 착각 속의 의례 속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김진호는 촛불시위를 오히려 불온하게 본다. 그리고 이를 '한국적 시민종교의 탄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진보적으로 생각한다는 사람들은 촛불시위를 불온하게 보지 않았다. 아니 오리혀 새로운 주체의 형성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김진호의 시각에서 보면 기존의 촛불시위에 대한 진보의 생각과 평가는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일종의 '한국적 시민종교의 탄생'을 찬양하며, 종교적 의례 속에서 안일함을 추구하는 이중적 생활을 하는 것일 수 있다.


IV. 제2의 민주화와 모순적 시민

하지만 김진호의 주장처럼 한국사회에서 주체를 '천민적'으로 시장화된 주체로 볼 수 있는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그렇게 되면 남는게 없다. 이성백은 오히려 근대화, 그리고 근대화된 시민이 의미하는 것은 '시장의 인간'으로 봐야 함을 지적한다. 이를 두고 '천민적으로 시장화된 시민'으로 평가하는 것은 오히려 시민을 고대의 철인으로 보려는 생각인 것이다. 즉, 김진호와 같은 비판은 '계몽적 민주화'의 사유 속에서 민주화를 바라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이성백은 마키아벨리적 시민이 오히려 근대적 시민이고, 그 속에서 존재의 딜레마를 겪는 것을 받아들여야 함을 주장한다. 비록 권모술수적으로 움직이는 시민을 근대시민으로 받아들일 때 제2의 민주화가 오히려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전에는 이러한 시민을 믿지 못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보고 누군가 지도를 해야했던 민주화가 지난 민주화라고 하면, 이제는  그것을 벗어나야하고 이를 위해 있는 그대로의 주체를 인정해야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근대사회에서 주체는 항상 '천민적으로 시장화된 시민'으로의 압력에 있으며, 이에 대한 딜레마 속에서 항상 저항이 존재하고 재구성된다고 본다. 일종의 주체의 변증법적 재구성이라고 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 국면이 어떠한 국면에 있느냐 하는 점이라는 생각이다. 그에 대한 판단이 부재하는 것은 양비론적 시각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판단을 유보하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거다. 이와 관련해, 나는 '천민적으로 시장화된 시민'의 심화라는 김진호의 지적에 동의한다.  

노무현, 고인의 명복을 빌며...
- 노무현을 왜 그렇게 궁지로 몰았던 걸까? -


노무현.
노무현이 2009년 5월 24일 자살을 했다. TV에서는 하루종일 노무현 소식을 전했다. 개인적으로 정치적 지지자는 아니었지만 슬픔과 함께 사회적으로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은 리더를 잃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분노가 일고 갑갑하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의 한 순간. 오늘은 역사의 한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식으로 해석되고 기록될런지는 의문스럽다. 분명한 건 역사의 한 순간으로 남게 될 거다. 그 속에 서 있는 지금의 내 생각을 남기는 것도 필요하다.  

적대의 정치적 타살. 나는 개인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이 정치적 보복에 의한 정치적 타살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는 물론 언론과 검찰이라는 권력장치가 작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 사회 속의 형식적 민주주의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적대의 정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시각. 적대의 정치적 타살이라는 생각은 내 생각일 뿐. 나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거다.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이 뇌물수수 혐의가 밝혀지면서 이를 피하려 자살했다는 생각이다. 그러면서 하는 소리가 "한 나라의 대통령까지 한 사람이 죄가 없으면 끝까지 살아서 밝혀야지 자살이나 하고,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식구들한테 미루기나 하고..." 조갑제.com가 같은 보수주의자들은 언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라는 표현 자체를 자살로 바꿔야 한다고 딴지를 걸고 있다. 그리고 노무현의 죽음을 이전 뇌물 수수협의로 조사를 받다 자살한 사람들과 다를 게 뭐냐며 반문한다.  

검찰과 언론의 개그. 검찰에서는 노무현에 대한 수사를 종결짓는다고 한다. 수사 대상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언론에서는 특집을 다루며 하루종일 애도의 뜻을 표한다는 말을 한다. 글쎄... 내 생각으로는 검찰이나 언론이다 개그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아쉬움에 대한 애도와 두려움. 그동안 노무현 흠집내기와 죽이기를 하던 보수세력들에게 있어 노무현의 죽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 반대 세력의 분노를 일으키고 향후 결집을 위한 상징으로 노무현이 살아있을 때보다 더 강하게 살아 남게 될 거라는 거다. 보수세력이 노무현의 죽음에 애도의 뜻을 표하는 건 살아있지 않은 아쉬움과 죽어서 살아날 거라는 두려움에 대한 애도이다. 그리고 향후 권력은 자기 보신을 위해 다시 같이 움직이게 될 거다. 

정치적 부담과 상징. 정치적으로는 보수세력에게는 이러한 계기는 정치적 치명타로 다가올 수 있다. 그리고 그 반대에서는 죽은 노무현을 현재로 살려내려는 상징작업을 할거다. 그렇게 노무현은 죽지 않고 살아남게 될 거다. 하지만 노무현이 살아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보수세력은 그 싹을 잘라야하는 부담감을 안게 되었다. 그 부담감을 없애기 위해서는 지금의 이 국민적 애도의 분위기가 가라앉고 나면, 향후 죽은 노무현을 꺼내 다시 죽이는 작업을 하게 될 거다. 아니면 싹이 될런지도 모르는 측근들 죽이기로...

편나누기와 상징싸움. 앞으로 검찰이 노무현에 대한 수사를 종결하겠다고 했지만 그건 모를 일이다. 그리고 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단체들, 정치-검찰-언론권력들은 이미 상징만들기 작업과 그 상징의 싹 지우기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남기는 글.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상징싸움의 한 쪽에 편에 서 있는 글이 될거다.

왜 그랬을까? 원래 정치는 나중을 생각해서 상대를 궁지까지 몰지 않고 대충 풀어주던데...그리고 나중에 놓아준 놈이나 빠져 나온 놈이나 다시 지들끼리 헤쳐 모이곤 하던데...그래서 사람들이 정치하는 놈들은 다 똑같다고 욕하고. 그런데 노무현은 왜 그런 궁지로 몰아 넣었던 것일까? 노무현에게는 나중에 같이 해먹을 만한 게 없었나? 한나라당과 이명박은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 그런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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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유지 받들어” 친노진영 총결집… ‘시민주권모임’ 출범 국민일보 정치 | 2009.09.02 (수)

[서프라이즈]
그분은 알고 계셨다. : - 방법은 하나. 우리가 역사의 기록자가 되는 것 뿐.
노무현 전 대통령... - 누가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 몰았는가

[조갑제.com]
이것을 바라고 당신이 자살했습니까? 
전 대통령 盧武鉉의 죽음 

  • 조갑제 "盧 실족에 의한 추락사 가능성" 머니투데이2009-05-27
  • 지만원 "시체 가지고 유세하는 노사모 못봐주겠다" 노컷뉴스200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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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단협]에서 제2차 시국성명서를 발표했다. 2008년 촛불집회와 그동안 이명박 정부가 대응해온 과정들은 현정부의 성격과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와 관련해 [학단협] 성명서는 현재 국면을 요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자료로 남기다.-용한-


    [학단협]제2차 시국성명서
    이명박 정부는 퇴행적인 공안정국 획책을 중단하고 국민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의 정체를 규정하는 기본적인 출발선이다. 국민들은 이런 합의에 근거하여 자신의 권력을 대한민국 정부에 위임했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이 파괴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이명박 정부는 오히려 공권력을 사용하여 국민을 협박하고 헌법의 기본권인 언론과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심각하게 파괴하고 있다.

    오늘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의 위기는 이명박 정부의 반민주적 국정태도로부터 비롯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광우병국민대책회의의 현안토론 제안을 거부하고 위헌 소지가 있는 미국 쇠고기 수입 고시를 강행했으며, 촛불집회를 ‘불법집회’로 단정하고 국민의 소리를 외면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기틀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자신의 측근 인사들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과 YTN사장으로 임명하는 한편, MBC PD수첩에 대한 보복수사와 KBS에 대한 표적 감사 등을 통해 언론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 게다가 시민들의 자유로운 소통과 의사표현의 공간이었던 인터넷조차 감시․통제하려 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국민주권 상실의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시민들은 더 많은 민주주의, 더 실질적인 주권행사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는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시키는 것이다. 한-미 쇠고기 재협상에 대한 요구는 국민들의 뜻이며 국민들에 의한 정당한 권리 행사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국민들을 ‘불온하고 폭력적이어서’, ‘따끔하게 다스려져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는 언어도단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반란이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결코 훈계나 다스림을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의회와 행정부, 사법부가 국민의 감시와 통제를 받아야 한다. 민주공화국의 주인은 국민이다. 시민은 깨어있어야 한다. 국민들이 인터넷과 각종 매체를 통해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시민적 지성을 만들어가는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살아있음을, 날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만일 민주주의적 주권의 확장과 행사를 부정하고 정부가 국민 위에 군림하려 하거나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자 한다면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민들의 정당한 주권적 표현인 촛불집회를 폭력적 불법집회로 호도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조중동을 비롯한 일부 보수언론, 그리고 법원, 검찰, 경찰을 동원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이다. 현 시국에서 불법과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그것은 ‘촛불민심’이 아니라 국민을 무시하는 독선적인 이명박 정부, 조중동의 보수언론, 그리고 시민의 보호자이기를 거부한 채 정치권력에 충실히 따르는 법무부․검찰청․경찰청이다. 이들은 국민의 종으로 자임하기 보다는 스스로 국민을 지배․압제하는 절대 권력의 화신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그들은 촛불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한국 민주주의의 산실이자 시민정신의 역사가 고스란히 깃들어 있는 서울광장을 원천봉쇄하고 광우병국민대책회의와 진보연대, 참여연대 등을 압수수색하고 여성과 노인, 아이들, 직무수행중인 기자들, 심지어 다친 사람들을 치료하는 의료인들까지 무자비하게 짓밟고 있으며 국회의원과 변호사조차 불법적으로 강제 연행하여 그 수가 천명에 육박하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정당한 소비자 주권의 표현인 조중동의 ‘불매운동’조차 각종 기관을 이용하여 탄압하고 있다. 심지어 사법적 권위를 갖추지 않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온라인 게시물에 대한 불법을 판정하고 이에 대한 삭제를 지시하고 있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는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 자체를 스스로 파괴하고 있다. 따라서 불법과 탈법을 자행하고 있는 것은 ‘촛불’이 아니라 오히려 ‘정부’라는 점에서 오늘 한국 민주주의가 처한 위기의 심각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6월 30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폭력적인 경찰에 의해 강제 봉쇄되었던 서울광장을 되찾았지만 촛불집회의 시위대는 더 이상 청와대를 향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청와대가 아니라 남대문으로 발길을 돌렸다. 세간에서 말하는 ‘명박산성’은 국민들의 발길을 더 이상 청와대가 아닌 곳을 향하도록 만들고 있다. 소통의 부재, 지배 권력의 독선과 권위주의적 공안통치, 선량한 시민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탄압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이 민심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겸허하게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더 이상 민심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 또한 그 민심을 가리기 위한 각종 언론과 매체에 대한 장악 음모를 중단해야 한다. 아울러, 검․경의 물리력을 동원하여 공안정국을 조성함으로써 국민을 협박하는 반민주적 폭력을 중단해야 한다.

    현재의 촛불은 절대 꺼질 수 없다. 오히려 촛불은 부당한 권력이 억누를수록 더 거대한 횃불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최근 천주교사제단에 이어 불교계와 기독교계가 일어서고 있다. 종교계를 비롯하여 원로들조차 정부의 불법과 탈법에 대한 준엄한 비판의 입장을 천명하였다. 작금의 우리사회를 무질서와 혼돈으로 몰아넣는 것은 바로 이명박 정부이며, 지성과 대화, 소통이 아니라 야만과 폭력, 강제와 탈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 역시 한나라당 정권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작금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고 자신들의 과오와 탈법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날로 어려워지는 경제환경 하에서 더 이상의 국력을 소모해서는 안 된다. ‘경제위기’가 다가오는 우려스런 상황 속에서, 경제 재도약을 위한 국력을 모으는 것은 ‘촛불민심을 강압적으로 짓밟는 공권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의사 존중을 통해 이루어지는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온전하게 받드는 데에서만 올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더 이상의 거짓과 기만을 중단하라.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으나 권력으로 진실을 거스를 수는 없다. 이에 진리와 학문을 다루는 우리 교수들은 더 이상 이같은 사태를 두고 볼 수 없기에 이명박 정부에 대해 다음과 같은 조처를 요구하며, 그와 같은 조처가 이루어질 때까지 어둠을 밝히는 촛불의 시민들과 함께 하는 대학의 지성이자 민주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끝까지 싸워나갈 것을 분명히 밝혀두는 바이다.

    첫째, 이명박 정부는 쇠고기 수입고시를 즉각 철회하고 재협상에 임하라.

    둘째,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 앞에 진심으로 사죄하라.

    셋째, 전방위적으로 진행되는 언론 장악 음모를 중단하라.

    셋째,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촛불시위에 대한 왜곡을 중단하라.

    넷째, 공안정국 조성 책동을 중단하고 촛불 시위에 대한 폭력 진압과 인권 탄압을 중지하라

    다섯째, 어청수 경찰청장을 즉각 해임하고 국무총리 한승수를 비롯한 내각의 인적 쇄신을 단행하라.

    여섯째, 촛불시위 관련 구속자, 연행자를 즉각 석방하고 촛불집회를 보장하라.

    일곱째, 독재정권의 무기였던, 민주 인사와 단체에 대한 불법적 탄압을 당장 중단하고, 배후 세력을 철저하게 색출하여 엄벌하라.

    여덟째, 인터넷에 대한 통제 음모를 중지하고 국민의 자유로운 소통을 보장하라.


    2008년 7월 4일

    전국교수노동조합,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한국학술단체협의회



    위로

    공고화에 대한 견해:
    - 민주주의 제도정치 중심주의에서 사회중심주의 관점으로의 전환의 필요성
    - 시민사회의 저항적 활성화에서 시민사회의 주체적 활성화. 이 부분에서 시민사회, 주체를 나눠서 살펴봐야 함. 기존 공고화론에서 엘리트의 분점이란 견해도 이를 반영하는 것이며,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에서 전통적 지식인데 대응하여 유기적 지식인을 끌어오는 것도 이러한 지점에 있음. 그러나 우리는 이를 분리하여 분석하지 않고 있으며, 이로 인해 혼란이 야기되기도 함. 즉, 사회운동 주체 분석에 있어 문제제기(프레임 형성) 및 운동의 리딩그룹, 운동의 지지그룹, 잠재적 지지그룹, 방관그룹으로 나누고 각 층위의 역할과 이들의 상관관계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정치를 (기존 연구와 같이) 지배자 집단의 권력 쟁취경쟁으로 보고, 주체를 지배집단에 한정하는 분석이 일관성을 가질 수 있음.


    위로
    최근 조희연-강준만 교수의 진보논쟁이 올초 조희연-최장집의 논쟁에 이어 다시 재현되고 있다. 서울신문 10월 23일자에 나온 강준만 교수의 주요 논지는 다음과 같다.

    지난 5월 발표한 글에서 강 교수는 조 교수의 전략을 ‘동원정치’라고 불렀다. 강 교수는 단적으로 물었다.“지금 분노·위협의 동원정치가 가능한가?” ‘민중의 분노’로 대별되는 대중의 급진화 전략이 현 시기에 타당하냐는 것이다.

    강 교수는 “1987년 이후 해온 게 그거 아니었나? 아직도 모자라서 또다시 그걸 해야 하는가?”라며 동원정치가 시대착오적임을 역설했다.

    강 교수는 다시 묻는다.“도박은 노무현만으로 족하지 않나?” 강 교수에게 동원정치는 노무현 정부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는 “사실 분노·위협의 동원정치는 노 정권 내부에서 과잉이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노무현 스스로 그 선두에 서서 ‘시민혁명’을 선동하기도 했다.”면서 “노 정권을 ‘자폐정권’으로 만든 것 이외에 무슨 성과가 있었냐.”고 지적한다.

    강 교수는 조 교수의 또 다른 해법인 ‘헤게모니 전략’과 ‘동원정치 전략’의 방법론적 충돌도 날카롭게 꼬집는다. 전자가 대중의 분노에 기반한 급진적 전략이라면 후자는 구체적인 정책을 토대로 한 차분한 접근이란 것이다. 양립할 수 없다는 게 강 교수 판단이다. 그는 “나는 조희연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아비투스(습속)에 의해 자꾸 큰 그림(거대담론)만 그리려 드는 게 안타깝다.”면서 “구체적 실천을 하나 멋지게 성공해 놓고 그 성과의 토양에서 출발하는 거대담론을 생산하면 안 되는 걸까?”하고 물었다....

    서울신문 / 기사일자 : 2007-10-23    24 면

    이에 대해 조희연 교수가 [인물과 사상] 11월호에 반론의 글을 쓴 것이다. 그리고 언론은 이를 받아 다시 '진보논쟁(?)'에 불을 지피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이런 식의 논쟁에 아쉬움이 있다. 좀 따져보고 싶지만...일단 드는 생각만 정리를 해본다.

    먼저 강준만 교수는 [인물과 사상]에 '강준만의 세상 이야기'란에 글을 썼다. 아쉬움이라면 강준만 교수가 그의 방식으로 가볍게 '세상 사는 이야기'에 쓴 글을 조희연이 장문의 반박글을 쓰고, 언론이 이를 받아 이슈화시키는 것이다. 물론 아예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것, 즉 이슈로 만들지 않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좀 더 서로 지면을 할애해 내용이 깊어졌으면 하는 점과, 이런 식으로 언론을 통해 논쟁이 이슈적으로 처리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생각이다.

    사실 강준만식의 글쓰기에는 매력이 있다. 글을 읽다보면 그의 글은 가볍게 읽히지만 한편으로는 다시 생각하게 하고 그의 논리에 수긍을 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 그만큼 대중의 생각을 읽고 대중의 용어를 통해 그의 생각을 풀어내고 설득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대중의 생각과 용어를 이론적으로 또는 개념적으로 따져보고 분석해봐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나는 느낀 그대로, 있는 그대로 글을 쓰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학자라면 그 느낌과 생각을 분석해보고 성찰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느낌과 생각을 설명해줘야 한다. 한마디로 상식적인 생각과 용어 속에 은폐되어 측면들을 밝혀내고, 우리들이 이해할 수 없거나 모순적인 측면들을 밝혀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강준만의 글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공감을 하게 하고 생각을 해보게 하지만, 문제는 그 수준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때로는) 지배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중의 상식적 수준의 생각을 반복하고, 그 수준에서 대중적 담론을 재생산하며, 대중을 빌어 대중의 생각을 그 수준에 머물게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를 잘못된 상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지식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언론(미디어)의 지배권력적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역으로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고 유사한 논리를 펴고 있더라도, 강준만의 용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조희연의 용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다. 또한 내가 강준만 보다 조희연의 언어에 익숙하고 그 개념 속에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가지는 생각일 수도 있다. 

    아무튼, 뭔가를 따져봐야겠는데 그것이 무엇일까?


    '헤게모니'와 '동원정치'의 매트릭스
    나는 먼저 강준만이 지적한 '헤게모니'개념과 '동원정치'라는 것을 따져 보고 싶다. 우선 '헤게모니' 개념은 일종의 '지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내용적으로 '강제와 동의'라는 측면을 가지고 있다. 행사 주체의 측면에서 보면 '지배계급의 헤게모니'가 있고  '피지배계급의 헤게모니'가 존재할 수 있다. 여기서 피지배계급의 헤게모니를 '대항 헤게모니'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헤게모니의 창출 방법으로는 '민주주의적 헤게모니'가 있고 '권위주의적 헤게모니'가 있다.  

    '동원정치'라는 용어에서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동원정치'란 어떤 목적 달성을 위해 어떤 대상을 동원하는 것인데, 여기서 어떤 '목적'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이를 위한 그 어떤 동원 '대상'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 문제다.

    목적에 있어, 이를 정치에 한정해서 보면, 기득권자들과 그로부터 배제된 또는 다른 정치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이때 기득권자들은 기존의 정치적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일 수 있지만 그로부터 배제된 또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들도 있다. 즉, 이들에게는 기존의 것을 깨고 또 다른 정치적 열망을 실현하는 것이 목적이다. 여기서 그 다른 정치적 열망이란 어떤 것이며 어떻게 그 내용을 알 수 있는가 하는 측면이 있다. 조희연 교수가 말하는 민중의 '분노'라는 것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기득권(지배층)이 아닌 '민중'의 '분노'를 통해 표출되어야 하고 이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대상의 측면을 보면, 그 대상을 유형-무형 또는 인적-물적 대상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를 어떤 측면에서 보면 동원자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동원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지배자에 의한 동원, 즉 위로부터의 동원이 존재할 수 있다. 또한 피지배자에 의한 동원, 즉 아래로부터의 동원이 존재할 수 있다. 

    다양한 개념의 매트릭스적 조합들
    이러한 개념적인 메트릭스들을 조합해보면 다양한 유형이 도출될 수 있다. 여기서부터 세부적으로 다시 따져들어가야 할 것이다. 다만 여기서 드는 조희연 교수의 논지는 정치적 목적 또는 열망이 민중의 분노를 통해, 즉 아래로부터 나오고 동원되어야 하며, 이는 '민주주의적 헤게모니' 창출과정과 맞물려 실현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닌가 싶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동원정치'와 '헤게모니 정치'는 충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강준만 교수는 이러한 측면들의 복합적 관계를 무시하고 한 측면만을 비판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참고자료]
    1. 관련논문:
    2. 신문자료
    이번엔 ‘강남-강북 계급의식’ 놓고 격돌 - [한겨레] 2007-10-29
    진보논쟁’ 2라운드 시작될까[서울신문] 2007/10/23 (화)

    3. 용어 - 헤게모니
    [제1부] 정치위기 진단

    최장집, [1987년 그뒤, 20년] 민주개혁세력 어디로 ① 최장집, 한겨레, 2007-01-21
    조희연, '지적'의 올바름과 '진단'의 오류  레디앙 / 2007.01.15
    조희연, 제도정치 중심주의 vs 사회 중심주의 레디앙 | 2007.01.15
    손호철, ‘두려움의 동원정치’를 넘어서자  레디앙 | 2007.01.31
    안병욱, “참여정부 실패는 구조적인 성장통”   한겨레 | 2007.02.02
    조희연, 신보수, 진보세력에 좋은 조건인가?  레디앙 | 2007.02.05
    손호철, '
    반 수구’보다 ‘반 신자유주의’가 핵심     한겨레 | '문화' | 2007.02.09
    이병천, 신보수 시대 앞둔 진보 대 진보  레디앙 | 2007.02.09
    조희연, '정치 개혁’ 넘어 ‘사회경제적 개혁’ ..     한겨레 | '문화' | 2007.02.12
    손호철, 몇 가지 오해와 몇 가지 반론  레디앙 | 2007.02.12
    조희연, 반수구, 반신보수, 반신자유주의  레디앙 | 2007.02.13

    [제2부] 한국사회 진보논쟁
    노무현,
    [노 대통령 기고] 대한민국 진보, 달라져야 합니다  국정브리핑 | 2007.02.17
    한겨레, 진보진영의 백화제방을 기다린다     한겨레 | '정치' | 2007.02.19
    김창호,
    진보의 위기는 자기혁신 부재 때문” 국정브리핑, 2007.2.20


    백낙청,
    “최근 진보논쟁서 정치·민생과 직..     한겨레 | '정치' | 2007.03.06
    최장집,
    진보진영 ‘운동성 복원’ 주장은 대안 아..     한겨레 | '문화' | 2007.02.26



    [정리기사]
    11:22
    진보진영 ‘운동성 복원’ 주장은 대안 아..     한겨레 | '문화' | 2007.02.26 18:42
    시민사회 발전의 이중적 과제

    이수훈 (경남대 교수, 사회학)
    1999년 8월 30일


    한국의 발전을 어떤 측면에서 보더라도 그 진전이 답답할 정도로 지지부진하다. 잘 되어가던 경제마저 1997-98 공황을 겪으면서 그 취약성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정치는 재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답보상태다. 사회는 개개인들의 높은 역량에도 불구하고 그 수준이 매우 낮다. 특히 예의 경제공황 타개를 위한 신자유주의적 정책 실시이후 사회가 큰 손상을 입은 결과 사회적 균열이 전에 없이 뚜렷하다.
    경제적 측면이건 정치적 측면이건 한국이 한 단계 높게 도약하기 위해서는 공공영역으로서의 시민사회 발전이 필수불가결하다. 모든 분야의 탄탄한 기초로서 시민사회의 건강성과 활성화는 필수적이며, 이의 부재하에 이루어지는 정치발전이나 경제발전은 언제라도 후퇴할 수 있다. 개인들의 시민권이 더욱 배양되어야 함은 말할 것 없고, 시민들의 공공정신 발양과 체계적 참여야말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정의로운 경제 발전을 구가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차원에서 한국의 시민사회 발전은 화급한 과제라고 하겠다.
    이 글은 특히 한국 사회가 다음 세기 그리고 새 천년을 준비함에 있어 "사회발전" (social development)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되, 시민사회의 활성화와 공공화가 그 핵심적 과제라고 판단하고, 시민사회의 발전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는 특히 비효율적이고 반개혁적인 국가부문과 재벌이 지배하는 사경제부문의 한계를 고려할 때, 시민사회 영역에 장래에 대한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한국적 상황이 강제하는 일대 요구이기도 하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그 발전에 있어 현재는 말할 것도 없고 특히 다음 시대를 고려할 때, 이중적 과제를 안고 있다고 본다. 첫째 과제는 한국내 시민사회를 더욱 확대, 활성화, 공고화해야 할 과제이며, 두 번째 과제는 그런 일국적 차원의 발전과 더불어 혹은/그리고 그 발전을 토대로 해서 전지구적 시민사회의 구축에 기여해야 할 과제를 안는다는 것이다. 두 과제가 분리

    된 사안들이 아니라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상호작용하는 성격을 가진다는 점을 염두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목적과 문제의식을 갖고, 이 글은 1) 미숙한 시민사회의 역사적 배경, 2) 급변하는 국내외적 지형, 3) 시민사회 구축: 시민운동 활성화와 시민문화의 형성, 4) 지구적 시민사회 구축으로의 기여 등의 쟁점등을 논의한 끝에 결론적으로 5) 시민사회 발전에 따른 사회적 조정력 증대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그 한계를 점검하는 순서로 씌어질 것이다.

    1. 미숙한 시민사회의 역사적 배경

    시민사회는 서구 계몽시대의 사회계약론 이래 주류와 비주류를 막론하고 서구 사회과학에서 줄곧 사용되어왔던 개념적 범주다. 따라서 시민사회는 서구의 역사적 특수성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서구의 자유주의와 개인주의, 그리고 다원주의의 전통아래 시민사회가 발전해왔다. 그런 만큼 한국을 포함한 유교문화권의 사회에서는 근본적으로 이 범주가 다소 생경하고 뿌리가 취약한 편에 속한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자본주의적 발전에 성공하고, 이에 부수적으로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어 시민사회가 확대되고 발전할 수 있는 기본 토양이 갖추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들에서 시민사회의 미숙함은 여전하다.
    이에는 아무래도 동아시아 특유의 역사적 배경이나 전통이 강고해서 시민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필자는 유교적 가치의 지속적인 영향력, 강력한 국가주의 전통, 일제 지배, 한국전쟁과 냉전체제(반공이데올로기) 효과 등을 열거할 수 있다고 본다.

    1). 유교적 가치의 지속적인 영향력

    유교적 가치는 관계론적.공동체적 인식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에 비해 서구적 가치는 존재론적 인식에 기초를 두고 있다. 유교적 가치에 따르면 부자, 상하, 남녀간 계서적 구분은 뚜렷해야 하되 그 구분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인식인 것이다. 그리고 개인보다는 집단, 집단보다는 국가 등 보다 상위의 공동체를 위해 하위 단위는 희생되어도 괜찮다는 관념에 기초하고 있다. 유교적 세계관은 상하차별이 분명한 가부장적 질서체계이다. 이 질서체계 안에서 도덕적/지적으로 우수한 지식인들이 보다 높고 고귀한 위치에서 다수의 무식한 일반대중을 지도 감독하며, 이들 대중은 낮은 위치에서 이들을 존경하며 이들의 보호와 지도를 받아야 하는 상하가 분명한 불평등한 인간관계의 틀이 전제되어 있다 (송영배, 1997, 107).
    유교적 가치는 가족주의와 권위주의의 형태로 한국 사회의 제반 영역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가족주의와 권위주의는 시민사회와는 거리가 큰 요소들이고, 근대적 시민문화의 형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대비해 서구적 가치는 인간의 이성에 입각한 존재론적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인간의 이성은 항상 불완전했으나 과학기술의 발달에 의한 도구적 이성의 힘이 커짐에 따라 서구적 근대는 개인주의와 공리주의를 표상하게 되었다. 즉, 서구적 가치는 개인주의와 공리주의로 환원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서구적 가치의 중심에는 개인의 권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책임이 동반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한국의 경우, 이른 바 "돌진적 근대화" (한상진, 1995) 시기에 사회전반에 걸쳐 대세로 나타났던 서구적 근대의 복사 열기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주목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서구사회처럼 신장되지는 않았다. 국가와 사회 전반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관계론적 인식에 입각한 행동은 청산되지 않았다. 물론 일상생활 방식이 크게 변화함에 따라 전통적 인간관계의 표출양상이 바뀌기는 했다. 정

    치영역과 경제영역에서 인간관계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는데, "정경유착"이니 "정실"이니 하는 부정적 함축을 담은 현상들이 오늘날까지 한국 사회의 강력한 비공식적 제도로서 엄연히 존재하고, 그 역할과 의미 또한 크다. 그러나 이들이 한국 시민사회의 성숙이라는 차원에서는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점이 문제다.

    2). 강력한 국가주의 전통

    한반도에는 장구한 세월에 걸쳐 중앙집권적 정치권력의 역사가 있었다. 조선조에서도 중앙집권적 권력구도가 성행했지만, 결정적으로는 일제 식민지 지배하에서 국가주의의 굳건한 전통이 정착되었다. 과대성장국가는 이때부터 그 발전의 기초를 닦았다고 할 수 있다. 해방후 일시 (정치)시민사회의 폭발적인 분출이 있었으나, 다시 외세의 개입에 의해 그 분출이 진정되었고, 자유민주주의의 구호아래 내용상 국가주의는 깊어져 갔다.
    60년대 군부통치아래 진행된 경제발전 전략 역시 국가주도였는데, 그 내용은 대체로 자원배분자로서의 국가와 사적 부문에 대한 국가의 효과적 개입을 요체로 했다. 이 전략은 또한 강력한 국가의 개입에 의한 수출지향형이었는 데 한국은 오늘날도 세계시장 의존형 경제틀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에서 국가의 사적 부문에 대한 개입을 가능하게 하고 또 그것을 효과적일 수 있게 만든 기제는 미국 헤게모니체제, 특히 냉전체제하 한국이 가졌던 동아시아내 지정학적 위상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국내산업자본의 형성이 미미했던 단계에서 미국이 제공하거나 주선한 원조와 차관은 당연히 국가가 그 배분을 담당할 수밖에 없었는 데, 이는 한국 국가로 하여금 각종 산업육성정책의 수립과 실행에 있어 개입을 가능하게 해주었고 중앙은행을 통한 자원배분 과정에서 시장 개입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국가주도 발전전략은 이후 한국 경제발전모델의 주요 특징이 되는 바, 자유시장경제원칙이라는 끈질긴 요구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어 왔고 시장경제원칙을 실천한다고 명명백백하게 강조하고 있는 김대중정부에 와서도 청산되지 않는 형편이다. 기업과 금융부문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국가가 퇴출기업 선정에 일일이 개입하고 퇴출은행 선정에 간여하는 것이 극명한 사례다. 기실 한국에서 기업이건 금융기관이건 국가가 강제하지 않는다면 구조조정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아무리 정책기조를 시장경제라고 해도 그 시장경제에 일일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식민지국가, 과대성장국가, (반)주변국가 등의 개념은 말할 것 없고, 발전국가라는 개념마저 국가의 시민사회에 대한 비대칭적 권력관계를 시사하고 있는 바, 한국에서 국가주의 전통은 시민사회의 발전을 막는 가장 강력한 역사적이고도 구조적인 장애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3) 일제 지배

    시민사회를 근대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한국에서 시민사회는 19세기말 한반도가 외세와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우리의 사유체계속으로 진입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봉건적인 사회제도, 의식구조, 생활양식 등이 내적 충동에 의해 변화할 가능성이 없지 않았지만, 근대화는 실제로 결국 일본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왜곡된 형태로 진전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사정이 이랬기 때문에 국가는 국가대로 왜곡이 심해 예외적 형태로 변화하였고, 시민사회는 그 발전의 여건이 최악이었다.
    일제는 조선의 수탈을 위한 근대화를 지향했기 때문에, 또한 조선인들의 일제 지배에 대한 저항이 드세었기 때문에 국가내 억압과 강제의 기제들이 과대발전했다. 1945년 해방후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의 거대한 분출이 있었지만 미군정에 의해 진압되고 일제 잔재 세력이 남한을 그대로 통치하게 되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런 과정에서 국가주의의 전통이 뿌리를 내려갔다.
    시민사회는 각성한 시민, 즉 개인의 창의성과 자발성이 그 존립의 전제다. 일제는 이런 점에서 시민사회 발전에 엄청난 역효과를 장기적으로 남기게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일제는 군국주의와 집체주의로 개인을 짓밟았다. 시민권도 철저히 억압하고, 대신 황민의식을 주입하고자 했다. 조선인들이 아무리 저항했더라도 일제의 이같은 식민지배 프로젝트는 조선인들의 의식에 무의식적으로 각인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4) 한국전쟁과 냉전체제, 그리고 반공이데올로기

    한국전쟁은 여러 가지 차원에서 남북한을 가리지 않고 시민사회의 미숙에 상당한 흔적을 남겼다.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한국이 대규모 동원에 의한 경제성장에 성공을 거두었고, 그 핵심에 "발전국가"를 위치시키는 사람들이 흔하다. 하지만 발전국가마저도 시민사회의 성장이라는 차원에서는 중장기적으로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데, 이 발전국가가 한국전쟁과 깊은 연관이 있다.
    한국전쟁은 비록 내전의 성격이 강했지만 미국의 동아시아 헤게모니 전략이 아니었다면 발발할 수 없었을 세계적 의미를 띠는 전쟁이었다. 동서간 냉전체제는 이미 유럽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었지만, 그 공고화의 계기가 한국전쟁이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세계전략의 일환으로, 보다 좁게는 동아시아 전략의 일환으로 한국을 지원했다. 한국전쟁을 통해 막강한 강제력을 갖춘 한국 국가로서는 이후 각종 해외 투입요소의 배분 창구로서 은행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게 되었고, 산업자본에 대한 우위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자원배분의 열쇠를 장악한 국가가 기업을 만들기도 하고, 죽이기도 했다는 사실은 산업화 초기 해외 투입요소의 처분권 소유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었다. 발전국가의 동인은 바로 이런 데서 비롯되었다.
    한국전쟁은 세계적 냉전체제의 공고화에도 기여했지만 해당지역인 한반도위에 냉전체제를 수립했다. 한반도상의 냉전체제가 남북간의 적대와 갈등을 내장했던 것은 당연한 일에 속한다고 보겠지만, 남한과 북한내부에 각각 반공이데올로기와 반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창출.공고화했다. 남한은 이론상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반공이데올로기에 따라 시민적 권리가 정치적, 사회경제적 상황에 따라 무제한 유보될 수 있었다. 시민사회의 공공적 의견 표현마저도 용공이나 친북으로 예단될 수 있는 상황아래 시민사회가 진전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사회주의권이 붕괴된 결과 세계적으로 이데올로기의 종말이 말해지고, '레드 콤플렉스'의 최대 피해자인 김대중

    씨가 대통령이 된 지금까지도 남한내 '레드 콤플렉스'는 약화되었을 망정 엄존하고 있으며, 시민사회의 성장을 지체시키는 한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한반도에 냉전체제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한, 레드 콤플렉스가 우리의 심성에 자리잡고 있는 한, 자유로운 개인의 참여와 개입을 전제로 삼는 시민사회로서는 그것이 부정적인 요인일 수밖에 없다.

    2. 국내외적 지형 변화

    1) 자본주의적 발전: 도시화, 프로화, 중산층화

    지난 반세기에 걸친 자본주의적 발전의 결과 한국은 전형적인 전통적 농촌.농업 사회에서 근대적 도시.산업사회로 탈바꿈했다. 도시화 및 산업화와 더불어 교육이 혁명적으로 팽창했고, 근대적 관료제가 다소 과대한 기구를 갖고 성립되었다. 사회구조도 농민층이 급속히 와해되고, 산업노동자층이 급증했는가 하면, 뒤이어 화이트칼라 계층이 급성장했고, 이에 따라 중산층도 빠르게 늘어났다 (홍두승, 1992).
    급속한 도시화, 산업구조의 심화, 교육수준의 향상, 직업구성의 다변화, 숙련 노동자의 증가, 중산층의 성장, 정보화의 급속한 진전, 세계의식의 확산 등은 1960년대 중반이후 추진된 근대화의 인상적 결과라고 하겠다. 이같이 인상적인 결과를 남긴 근대화는 과격한 사회변동을 초래했고, 이 변동은 시민사회와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긍정적 함축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발전에 따른 여러 부수적 사회변동은 시민사회의 구축과 성장에 분명 긍정적인 지형을 제공해주었다. 이같은 인상적인 사회변동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시민사회가 지지부진했던 까닭은 무엇인가? 앞 절에서 논의했던 유교적 가치의 지속, 국가주의 전통의 효력발휘, 안보와 반공을 앞세운 개발독재체제 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자본주의적 발전과 서구적 근대화 진전은 시민사회의 등장을 위한 형식적 필요조건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2) 1987년 6월 시민항쟁: 시민사회 본격적 등장의 계기

    아무리 국가에 의한 시민사회적 에너지가 통제되고 억압되더라도 자본주의적 발전과 그에 따른 도시화.프로화.중산층화 등의 흐름은 국가와 시민사회간의 힘 관계에 변화를 추동하는 효과를 가질 수밖에 없다. 1960년대 이후 국가-시민사회 관계는 국가가 시민사회 위에 군림하는 관계였으면서도 시민사회를 철저하게 근절시키지는 못했으며, 국가가 자신의 권력정당화의 일환으로 추진시켰던 경제성장정책을 통해 프로화와 중산층화가 가속화되었다.
    70년대 들어 산업노동자들은 생존권적 기본권운동을 펼치려 했고, 중산층은 자유권적 기본권운동을 전개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국가의 대응은 일반적으로 탄압 일변도였으며, 그런 만큼 국가권력은 더욱 권위주의적으로 강화되어 정당성의 위기를 내연.심화시켜 나갔다. 시민사회는 잠재적으로 또는 비공식적으로 강고해지고 있었던 셈이다 (한완상, 1992: 18).
    1979년 여름 'YH무역' 여성근로자사태로부터 시작되고 그해 가을 부마항쟁으로 이어진 일련의 산업노동자계급과 중간 제계층의 생존권적.자유권적 운동은 개발독재에 대한 민주화운동이었지만, 국가-시민사회간 비대칭적 관계에 대한 시민사회의 본격적 문제제기라고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이 문제제기는 박정희시대를 마감하는 엄청난 정치적 파급을 불러왔지만, 기대했던 민주화시대를 열지 못하고 신군부세력의 등장과 집권으로 일단 소강상태로 빠지는 비운을 맞았다. 기존의 한국 시민사회 논의에는 1979년의 문제제기가 다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이는 심각한 오류라고 본다. 한국에서 국가-시민사회 관계를 논할 때, 1979년 부마항쟁의 의미는 실로 중차대하며, 1987년의 해석에 있어서도 하나의 역사적 흐름을 형성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많은 시민사회론자들이 주목하듯이, 1987년 6월 시민항쟁은 시민사회 본격적 등장의 계기로 그 역사적 의미가 심대하다. 또한 한국의 정치 민주화에 있어서도 87년 6월 시민항쟁은 이정표를 이루는 사건으로 해석되고 있다 (성경륭, 1993). 권위주의하에서 정치적 이해관계의 대립이 정치사회내 정당간의 경쟁으로 제도화되지 못할 경우 정치갈등의 양상은 억압적 국가기구에 대항하는 시민사회의 갈등으로 전면화하는 데, 한국의 경우 그 갈등은 87년 6월 항쟁에서 절정에 달했다 (김호기, 1995: 19-320).
    87년 6월 시민항쟁은 대학생, 교수, 신부, 변호사, 대학원생, 의사, 약사 등 광범위한 지식인 계층과 사무직 노동자, 중소상인이 초계급적.계층적인 시민운동연합을 이루는 계기를 마련했다. 6월 항쟁이후 시민사회의 형성과 연대는 다시 분리되거나 파편화했지만, 시민사회 활성화의 지표인 자유화와 민주화는 사회 각 영역과 부문에 시민권, 정치권, 사회경제권을 확장해 갔다 (이수훈.여현덕, 1993: 40).
    과거 민주화운동이 시민사회 활성화와 사회운동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87년 6월 항쟁이후 과거 민의 한계를 조직된 시민사회운동이 메우려고 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후 시민사회의 성장을 보여주는 증후들이 한국 사회의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각 분야에 걸쳐 많은 단체들이 조직되었고, 이들의 활동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90년대 들어 기초와 광역 지방의회 선거, 그리고 총선.대선을 치르면서 민간단체들이 공명선거 감시운동을 펼쳐 정치과정에 개입했다. 낙동강 페놀오염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두산그룹' 상품 불매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런 징후들을 시민사회의 일대 약진으로 해석하기에 족할 만큼 시민사회의 움직임이 활발했다 (Lee, 1993). 80년대 말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반공해.환경운동은 90년대 들어 폭발적으로 활성화되었다. 여러 종류의 공익 활동도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소비자들의 권익 보호 운동, 여성단체들의 여권신장.남녀평등 실현을 위한 움직임, 경제정의 실현을 위한 시민들의 요구를 결집하는 움직임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이러한 움직임들에 대한 시민들의 반향과 전에 없는 참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의 시민사회가 줄곧 안정희구와 무임승차로 일관해온 데서 반지배연합을 형성하는 (백종국, 1993: 152-153) 방향으로 바뀌는 전환점이 이 시기라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시기를 계기로 등장한 대표적인 시민운동 단체로 '경제정의실천시민운동연합', '환경운동연합'을 위시하여 여성운동, 인권운동, 종교단체와 접목된 운동단체들이 있다. 그리고 87년 여름 노동자대투쟁의 여파로 노조의 민주화와 노동법 개정운동이 강하게 전개되었다.
    87년에 이어진 정치적 "개방"과 6공의 자유화정책도 비록 민주화 차원에서는 형식적.제한적 수준에 머물고 말았지만 시민사회의 성장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5공의 터전위에 정권을 이어받은 노태우정권은 부단한 정당성 위기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노태우정권은 5공청산에 기초한 민주화를 기조로 내걸었다. 그 결과 형식적인 의미의 정치적 "개방"과 자유화가 이루어졌던 것이고, 이런 개방의 부산물로 창출된 정치적 공간에 시민사회가 활약을 펼치게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한국에서 시민사회가 외형상 가장 약진한 시기가 바로 노태우정권 시기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 당시 시민단체들의 활동을 부각시킨 데는 언론의 친시민운동단체 기조가 결정적이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언론이 시민사회의 여론을 국가와 일반국민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매체라는 점에서 당연시할 수도 있지만, '제 4의 권부'로 불릴 정도의 권력과 선택적 전달 속성을 가진 한국 언론이 시민사회운동에 보인 호응은 예외적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주요 권력집단이자 대사회적 발언권이 절대적이었던 언론이 보여준 호의적 태도와 행동은 시민사회운동을 부각시키는 데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중산층 도덕성 운동을 표방했던 '경실련'의 일거수 일투족이 언론에 의해 다루어짐으로써 '경실련'은 분에 넘치는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경실련' 참여 지식인들이 김대중정부에 대거 발탁된 데는 이런 배경이 작용했을 것이다.
    시민운동에 대한 언론의 호의적 취급은 시민운동의 대중성 확보와 홍보에는 결정적이었지만, 시민운동 자체의 내실화라는 차원에서는 부정적 효과를 발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오늘날 한국의 시민운동이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는 자책 (손혁재, 1999)을 받고 있고, 그 주요 단체인 '경실련'은 집행부 퇴진 "운동"으로 인해 뜻밖의 내홍을 겪고 있는 바 언론플레이에 치중한 저간의 운동 경향의 귀결이 아닌가 싶다. 지금 '참여연대'도 유사한 길 (운동-언론-정부당국 3자간 폐쇄회로적 소통구도)을 가고 있는 듯한 데, '경실련'의 체험을 교훈삼을 만하다.

    3) 1989년 지구적 시민사회 태동과 국가의 퇴조

    1989년을 기점으로 하고, 1990년대초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대변혁과 대전환을 논했다. 대변혁과 대전환에 대한 논의는 말할 것도 없이 예고되지 않은 사회주의권의 붕괴에 의해 일어났다. 그리고 이후 지구화라는 대세와 함께 세계는 단일 시장으로 급속하게 통합되었다. 구사회주의권 국가들은 자본주의로의 전환 노력에 열을 올리면서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는 가운데 단일 시장 논리와 그를 대표하는 세력들에 의해 단단히 길들여져왔으며, 그런 과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90년대 들어 지구화는 신자유주의 기조하에 세계질서를 잡아나가고 있다. 세계경제의 (반)주변부 지역들을 개방.개혁시켜 신자유주의적 질서로 통합하겠다는 의도가 관철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아시아의 위기"를 비롯해 아시아 지역에서 확산된 세계 도처의 공황이 발생했다. 개별 국가들은 무력감을 보이면서 신자유주의 기구들에 무릎을 꿇었고, 신자유주의적 리스트럭쳐링이 부과하는 사회적 위기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이런 과정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현상이 바로 지구적 시민사회의 출현 (Lipschutz, 1992)이다. 이에는 일단 구사회주의권 국가들에서 억압적 국가권력에 의해 억압되어 있던 시민사회의 분출이 중요한 요소로 작동했다. 더불어 신자유주의적 지구화가 창출하는 사회적 약자층 역시 지구적 시민사회의 등장에 한 몫을 했다. 1970년대 들어 자본주의 역사상 국가가 처음으로 하강세를 보인 것(월러스틴, 1996)은 자본주의의 작동에도 심대한 사건이지만, 지구적 시민사회론의 관점에서도 중요한 함축을 띤다. 국가가 하강세로 접어든 데는 물론 지구화라는 경향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국가가 퇴조하게 된 보다 중요한 이유는 국가 정당성의 훼손이라고 해야 보다 적실하다. 제 1세계의 복지국가, 제 2세계의 사회주의 국가, 제 3세계의 민족주의국가 모두가 민이 요구하고 기대했던 복지와 안보를 가져다 주지 못했던 엄연한 현실적 이유가 국가 정당성 훼손의 원인이었다. 게다가 국가

    는 거대한 관료조직이어서 위력적으로 보이지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취약성을 지니고 있다. 사회가 요구하는 양과 질이 전에 없이 높고 다른 데 국가는 한결같다.
    따라서 개별 국가가 사회적 약자층이 필요로 하는 사회경제적 혹은 정치적 복지나 안전을 보장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은 하나의 대응책으로서 국가를 넘어서는 연대를 모색하게 되었던 것이다. 연대 그 자체로 중요한 가치가 실현되는 것이며, 구체적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인 셈이 된다. 지구적 시민사회의 출현과 국가의 퇴조는 상호인과적 관계를 맺고 있다고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국가체제의 틀밖에 실재하는 다양한 유형의 초국가적 조직들 혹은 '연결망'을 주목하는 것 (Hall, 1991)은 자연스런 일에 속한다. 이를 주목하는 학자들은 국경을 넘어서서 존재하는 행위와 지식의 연줄망, 경제.사회.문화적 관계의 연줄망을 주목하는 것이다 (Lipschutz, 1992). ?슈츠는 예컨대, 환경정치의 연줄망, 인권운동 연줄망, 원주민집단들의 연줄망 등을 대표적 사례로 꼽고 있다.
    전환의 시기에 우리가 모색해야 할 가치는 역시 1789년 혁명을 통해 보편화된 자유, 평등, 그리고 박애/연대라고 하겠다. 사실 이들은 구사회운동을 포함하여 사회변혁을 원하는 모든 운동세력의 요구였다. 현재 세계적 경향은 고전적 혁명운동(사회주의운동과 민족해방운동)이 이들 세 가치를 실현하는데 필수적이고 충분한 전략이 아니라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면서, 대신 대중적 자유.평등.연대 요구를 표출시켜주는 새로운 사회운동이 중요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은 굳이 신사회운동론자가 아닌 사람 (Frank, 1989)에 의해서도 강조된 바 있다.
    이들 보편적 가치뿐만 아니라 문화적 관심, 개체로서의 관심, 성차별에 대한 관심, 생태계보존에 대한 관심 등이 사람의 생활영역에서 독자적으로 중요한 가치로 부상하는 한편, 이들을 표출하고 실현시키는 데 있어

    제도권 정치영역--대표적으로 정당과 국가--이 아닌 혹은 그 바깥에서 추구되는 전략이 대중적 기반을 획득하고 있다. 구사회운동이 성공하였고 또 실패하였던 정당/국가장악 전략에 대한 회의가 강력하게 제기되는 한편, 비정당/비국가적 움직임과 조직이 주목을 받고 있다. 필자는 후자를 일단 '시민사회내부의 참여운동群'으로 규정한다.
    프랭크도 지적하였듯이 혁명운동에서 새 사회운동으로의 이행 그 자체가 "사회적 전환" (Frank, 1989: 34)이다. 왜냐하면 새 사회운동을 통해 자유.평등.연대 요구를 실행하는 바로 그 사회적 행위가 시민사회내의 시민민주주의를 행사한다는 의미에서 하나의 사회적 전환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범세계적으로 새 사회운동이 포착한 운동의 동력은 국가의 상대적 약화와 시민사회의 성장이었다. 이 현상은 지구촌의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고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시대적 흐름이다.
    이 흐름에 부응하는 운동은 기존의 국가정향적 정치가 아니라 국가를 가능한 약화시키거나 심지어 국가를 '외면하고', 지역공동체에 기반한 시민사회내 풀뿌리 참여를 극대화하고 효율화시켜 내부 권력을 창출.신장시키는 정치에 입각하고 있다. 현재의 세계적 흐름으로 보아 제 3세계의 일부지역을 제하고 혁명을 통해 국가권력을 장악한다는 전략은 현실성이 없다. 뿐만 아니라 공동체에 기반을 둔 중소규모의 새 운동群의 대다수는 국가권력을 결코 장악할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이 취하고 있는 철학 자체가 정당이나 국가와 같은 권력집중이 아니라 풀뿌리 수준의 자율성과 그 수준의 목표 달성에 있기도 하다.
    새 사회운동과 국가권력의 불화합성은 이제 더 이상의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문제는 새 사회운동의 전략에 관한 것이다. 위의 논의에서 이미 여러가지 시사점이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보다 분명한 정리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첫째, 기존의 국가정향적 운동전략은 현실성도 없고, 새 사회운동의 기본 철학적 전제들과도 배치되기 때문에 지양해야

    한다. 둘째, 시민사회내부의 대중적.자발적 참여에 의한 '사회권력' 창출과 신장 전략이다. 풀뿌리 수준의 직접 참여, 공동체 차원의 가치와 목표 설정 및 이의 실현을 통해 사회권력은 창출되고 확대된다. 셋째, 이같은 운동을 실천해나가면서 '게임의 규칙'을 새롭게 마련하는 과제이다. 즉, 제도권 정치에 의존하는 기존의 운동 게임 규칙, 국가권력 지상주의의 게임규칙을 대체하는 새로운 운동의 규칙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새로운 '게임의 규칙'은 시민사회내부의 시민권력 혹은 사회권력에 운동의 당면한 초점을 두는 것이다 (Frank, 1990).
    새 사회운동群은 아직 범세계에 걸쳐 주도적 운동으로 착근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상당히 진척된 지역이 있는가 하면, 전혀 적실성이 없는 지역도 있으며, 구운동과 새 운동이 긴장관계를 이루고 있는 지역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새 사회운동群은 아직 명확한 '프로그램'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차원의 토대가 새 사회운동군에 대해 우호적이지 만도 않다. 국가가 퇴조했다면 자본의 위력이 이를 대신해 전에 없이 강고해졌다. 그럴수록 반자본적 비영리부문의 가능성이 강조되어야 하고 (월러스틴, 1999), 제 3부문의 가능성 (?킨, 1996)도 꾸준하게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지배' (social governance)라는 발본적 프로젝트도 구상하고 실천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이상 자유.평등.연대를 주 내용으로 하는 지구적 민주화의 추진은 새롭다고 규정되는 각종 사회운동들을 통해 추구될 수밖에 없다.
    필자는 한국의 경우 1992년 여름 리우 환경회의가 한국 시민운동으로 하여금 지구적 시민사회에 눈뜨고 또한 본격적 참여의 중요성을 인지한 중요한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Lee, 1999). 이는 비단 환경생태운동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시민사회 일반이 이 지구적 사건을 통해 국제적 연대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우리만이 시민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구

    모든 사회들이 유사한 활동을 하고 있음을 체험했다. 필자는 지구적 시민사회를 한국시민사회가 본격적으로 인식하고 또한 참여하기 시작한 분기점을 92년 리우 환경회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3. 시민사회 구축: 시민운동 활성화와 시민문화의 형성

    87년 6월 시민사회의 '폭발'이후 한국의 시민사회는 내실 여부를 따지기 전에 일정 수준 본격적 구축을 시작했다. 그리고 시민사회의 구축은 실제 시민운동의 전개에 따라 그 정도가 좌우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시민사회의 구축을 논하는 한 방법으로 시민운동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시민사회의 구축과 공고화는 시민운동의 성공과 활성화에 직결되어 있다. 시민사회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신의 존재를 천명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시민운동이 가장 주요한 방법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시민사회가 구축되고 공고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그 토양의 배양이 또한 중요한 데, 그런 측면에서 시민문화의 형성 문제를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 시민사회가 취약한 데는 시민문화라는 터전이 미숙하거나 아예 부재하다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그래서 일부 논자들은 한국같은 동양사회에서는 아예 시민사회를 적용할 수 없다는 극단적 견해까지 내놓는 형편이다. 필자는 시민사회가 자본주의와 깊은 내적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이런 극단적 견해에는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유교에 근간을 둔 전통적 가치체계가 강한 동아시아 사회에서 시민사회의 구축은 분명 버거운 일이며, 그것은 시민문화의 부재와 일정 부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1) 시민운동의 비시민성

    1980년대 말을 한국 시민운동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기점으로 잡을 때 한국 시민운동은 겨우 10년을 넘긴 정도의 일천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이런 짧은 역사를 갖는 운동을 놓고 성패의 평가를 내리는 데는 문제가 없지 않다. 그러나 이 시기에 나타난 시민운동의 폭발성을 고려할 때, 그리고 시민운동의 활성화와 숙성을 위해, 이런 저런 점검이 필요하기도 하다.
    지난 10년간의 시민운동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특히 분별없는 비판을 쏟아 내어 그렇지 않아도 힘이 부치는 운동가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은 금해야 할 것이다. 1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한국의 시민운동은 양적 확대, 영역의 다양화, 시민의 관심과 지지 유도, 대정부.대사회 영향력 등의 측면에서 그 성취가 두드러질 만큼 빨랐다. 한국에서 초고속 경제성장이 여러 폐해를 수반하였다면, 한국의 시민운동 역시 초고속 성장에서 배태되고 야기된 문제들이 없지 않다. 이런 점에서 빨리 성장한다고 반드시 좋은 일은 아니며, 한국의 시민운동은 지금이라도 속도를 접고 꾸준함과 내실 다지기로 방향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사회운동은 초창기에 급성장 커브를 그리다가 '천장'에 닿고 나면 그때부터 지지부진해지는 속성이 있다. 이것은 어떤 사회운동이건 거의 보편적인 속성에 해당된다. 한국의 시민운동도 이런 속성을 나타내는 측면이 없지 않다. 80년대 말 90년대 초중반까지 폭발적인 팽창과 현재 나타나는 정체 (slow-down)는 사회운동의 속성에 해당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공적인 사회운동은 바로 이 정체기에 그 성격을 어떻게 잡아나가는가에 따라 명암이 갈린다는 점에서 한국 시민운동은 지금이 일종의 고비다.
    다양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시민운동단체들이 한국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주요 집단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으며, 특정 사안에 대한 여론형성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김호기, 1999). 금융실명제 실시, 토지공개념 도입, 낙동

    강 페놀방출 사건, 동강댐 건설 반대 등의 예에서 보듯이 사회의 공공선을 추구하는 개혁적이고 점진주의적인 운동을 통해 사회에 큰 파장을 남겼다. '경실련', '환경련', '참여연대' 등 대표적인 시민운동 단체들은 90년대를 한결같이 한국 사회의 제반 공공적 이슈들을 공론화하여 여론을 조성하고 정부에 압력을 가하며, 사경제부문에 변화를 촉구하는 데 있어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시민운동은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는 처절한 비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시민이 없는 데 시민운동이란 성립조차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영향력에 비해 시민운동의 실력과 논리가 아직 미흡한 면이 많은 점도 현실이다. 시민운동이 시민사회에 깊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주소다. 정황이 이렇게 발전된 데는 1997년의 경제위기에 따른 시민사회의 위축이 적잖은 기여를 했다 (손혁재, 1999: 348). 그러나 90년대 후반들어 고개를 들기 시작한 예의 비판은 역시 한국 시민운동의 역사 일천성, 저간의 엘리트주의적.백화점식 운동방법, 일부 운동지도자들의 정치지향성, 언론과 매스미디어에 의존한 담론적 운동 (김호기, 1999: 8-9) 등등의 근본적인 데서 비롯되었다.

    2) 시민운동의 원천

    한 시민운동가의 말처럼, 만약 도덕성과 자기헌신성이 시민운동의 생명 (손혁재, 1999)이자 원천이라고 한다면, 한국의 시민운동은 항상 위태로운 경계선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제도정치권의 힘이 너무나 강한 지형속에서의 정치지향성은 도덕성이나 자기헌신성과 배치될 개연성을 높이는 것이다. 비록 시민운동권이 제도정치인력의 충원 채널로 발전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고 하더라도, 시민운동이 제도정치권 진입의 발판이 되는 것은 시민운동의 에너지를 소진시키고 활동가들을 무기력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할 일이다. '경실련' 사무총장이 2대 (유재현, 유종성)에 걸쳐서 도덕성과 관련하여 퇴진했다는 점은 시민운동이 정치권과 너무 가까이 간 데 그 기본 원인이 있다. 이러고서 시민운동의 독립성이 유지될 수 없고, 그럴 경우 시민운동은 그 정체성을 잃게 된다.
    드디어 한국에서 시민사회의 미숙과 시민운동의 저발전이 악순환의 인과관계를 그리는 정황이 도래한 듯하다.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민주화가 진일보한 상황에서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이 이런 악순환을 보이는 것은 아무리 경제위기 때문에 시민사회가 위축되고 시민운동의 여건이 악화되었다고 하더라도 안타까운 일이다.
    시민운동의 활성화는 뭐니뭐니해도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시민있는 시민운동"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를 실현하기 위해서 시민들이 참여하는 운동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방법상의 큰 과제다. 기존의 방법, 즉 엘리트주의적, 백화점식 방법, 언론 의존형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영역별 전문성에 따른 분업을 중시하고 사안에 따라 연대하며, 외양이 아니라 실력을 쌓는 일이 요구된다. 가령 환경문제같은 사안은 '환경운동연합'을 위시해 다수의 환경운동단체들에 일임해두는 것이 합당한 데, '경실련'을 비롯해 다른 이슈를 전문으로 표방한 시민운동 단체들이 환경문제에 경쟁적으로 개입해왔다. 이런 점은 시정되어야 마땅하다.
    한국에서 시민운동의 대

    중성 확보 문제는 한결같은 숙제였다. 여태까지는 그것을 주로 회원 수 늘리는 차원에서 풀려고 했다. 대중성이 꼭 대형화와 동일한 문제는 아니다. 필자는 대중성도 실력의 문제로 사고해야 한다고 본다. 실력이라는 말속에는 활동가들의 전문성, 운동조직의 효율성, 문제제기의 유효성 등등 내부적 역량과 그에 기초한 대중적 지지 가능성을 포함한다.
    활동가들과 관련된 문제들도 산적해있다. 운동은 억지로 해서 안된다. 하면서 재미있고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하며 배울 것도 있어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도 생계를 꾸려갈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대다수 한국 시민운동단체들은 이런 점에서 모두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시민운동 내에서 새로운 일상생활문화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을 해봄직하다는 제안 (정현백, 1999: 358)이 일리는 있지만, 생계 등 기본적인 사항들에 대한 해결이 이루어지고 난 뒤에나 생각해볼 과제다.
    시민운동은 공공재의 실현과 증대를 목표로 삼기 때문에 시민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무임승차자'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모든 시민들이 '관심있는 시민' (concerned citizen)이 될 뿐만 아니라, 시민운동에 비록 소극적 형태라고 하더라도 참여할 때 비로소 시민운동의 활발한 토양이 갖추어진다. 시민 참여와 관련하여 한국에서도 '제 3부문'의 가능성을 모색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왕에 비영리활동이나 자선 차원에서의 참여가 일정 부분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삶의 의미를 봉사와 이타적 행위에서 찾는 일반적 분위기가 강조되고 있는 세계적 흐름을 참조할 때 한국사회도 그런 시민사회의 구축을 중대한 과제로 삼아야 한다.

    3) 시민문화의 형성

    지난 30여년 동안 자본주의적 발전의 길을 걸으면서 한국은 실로 과격하고도 거대한 사회변동을 겪었다. 1960년대부터 초고속 경제성장이 진행된 결과 한국사회는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농촌사회에서 도시사회로 탈바꿈하였다. 탈농업화.탈농촌화와 더불어 전통사회가 급속히 해체되었고, 근대사회의 여러 면모가 형성되었다. 많은 논자들이 지적하듯이, 서구에서 수백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된 산업화.도시화.근대화가 한국에서는 불과 30여년에 불과한 기간에 진행되어 외양적 성장을 가져다 주었지만, 내적으로는 큰 혼돈을 초래했다.
    전통적인 가치체계가 근대적 가치체계에 의해 도전을 받고, 후자가 근대화 과정에서 사회내에 형식적으로 도입되기는 했으나 실제적인 생활양식과 내면의식은 전통적 가치체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복잡한 형국으로 진전되었다. 한국의 시민문화에는 전통적 가치체계와 근대적 가치체계가 혼잡스럽게 공존하고 있으며, 양자가 자신의 도덕적 우위를 선택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또한 전통적 가치와 근대적 가치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주장과 지지방법도 달라 시민사회내 혼선이 예사롭지 않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탈농업화와 탈농촌화를 초래하는 한편, 한국 사회를 "이사 사회" (송복, 1994)라고 부를 정도의 불안정하고 유동적인 사회로 만들었다. 탈농업화는 노동집약형 수출경제에 필수적이었고, 탈농촌화는 전통적 가치였던 공동체 문화를 파괴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공동체 파괴는 비록 농촌에만 국한되지 않고 도시에서도 나타났다. 대부분의 도시인들은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에 대해서 충성심이나, 유대감, 동일시감정을 갖지 못하고 있다. 초고속 산업화 시기의 부산물인 개인주의는 공동체 문화 파괴와 직결되는 문제로서, 오늘날 그 복원이 여러 형태와 목소리로 요청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다. 이기주의와 집단이기주의가 공동체정신을 좀먹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사 사회"적 특징은 도시에서 이웃간의 유대 형성에 결정적 장애물로 작동하고 있으며

    , 여러 유형의 공동체 복원 운동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심한 이동성은 그 자체로서 불안정으로 연결되고, 이는 다시 도시 거주민들로 하여금 일차적 연줄망에 집착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미국의 경우에서 보듯이, 끊임없이 유동적인 사회는 공식적 제도화가 진전되었거나 자발적 문화 토양이 있는 곳에서는 역동성을 담보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제도화가 부응해주지 못한 채, 유동성이 심하기 때문에 고도의 도시산업사회에 살면서도 구성원들이 여전히 일차적 연줄망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를 "연고주의"라고도 일컫는데, 한국사회의 연고주의는 단순히 정서적 차원을 넘어 족벌주의, 학벌주의, 지역주의 등 사회 전반의 작동에 능력주의와 합리주의 원칙을 훼손하면서 부정적 결과들을 초래하고 있음은 여러 분석가들에 의해 지적되고 있다.
    군사권위주의 통치체제아래 공고화된 획일적 문화와 종적 문화는 수평적.횡적 가치와 문화를 파괴했다. 그 결과 한국의 전통적 가치랄 수 있는 관계론적.공동체적 가치와 문화전통이 크게 훼손되었다. 사회의 모든 조직들이 하나같이 "칸막이구조"를 장착하여 소통과 교류의 소지를 차단하였다. 한국의 도시를 특징지어주는 아파트라는 공간은 이런 "칸막이구조"의 극단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옆집에서 사람이 죽어 몸이 썩어나가도 이웃이 모르는 단절과 차단, 의사불통의 문화가 형성되었다.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정서적으로 가장 멀리 있는 기이한 공간이 바로 아파트이며, 이는 원자화된 개인들을 상징하고 있다. 이같은 "칸막이구조"는 국가관료제는 말할 것도 없고, 기업, 병원, 대학 등 거의 모든 사회조직에 침투하여 훗날 고비용.저효율의 조직적.제도적 원인이 되었다. 부서간에 하는 일을 서로가 모르기 때문에 똑같은 일을 여러 부서가 낭비적으로 추진하는 사례같은 것을 보기로 들 수 있다.
    한국사회는 지난 시기 산업화.도시화를 통해 시민문화가 정착될 수 있는 외적.형식적 조건을 갖추었지만 한국사

    회의 고유한 특수주의적--가족주의, 권위주의, 연고주의--장애물들을 극복하지 못해 시민사회 토대로서의 시민문화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으며, 시민운동에 있어 시민문화의 함양이 또 하나의 과제가 되고 있다.

    4. 지구적 시민사회 구축으로의 기여

    1989년 대변혁의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겠는데, 지구적 시민사회론의 시발로서 의미를 새길 수 있다. 이는 21세기의 전주곡으로서 전세계적으로 국가의 일반적 약화와 시민사회의 활성화를 예고하는 계기가 되었다. 앞서도 개괄적으로 논의한 대로, 국가의 퇴각은 경직된 당/관료제에 입각한 국가체제의 정당성 위기를 근간으로 하고, 또한 세계체제의 지리문화 변화에 기인한 지구화의 진행 결과 이루어졌다. 지구화의 결과 국가 통제력이 현저하게 약화되었는데, 국가통제력의 약화는 일단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이전 국면들에서 형성된 정치와 경제의 시공간적 통일이 무너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장과 사회간의 관계를 중재하였던 국가의 역량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사경제에 대한 국가의 각종 간섭과 조정 역할 역시 지구화 경향때문에 축소되었다. 선진 산업자본주의 국가들은 시장의 실패 가능성 또는 불완전성에 대비한 국가.사회적 안전판을 설치해두었다. 복지국가와 규제국가가 이에 속한다. 그러나 지구화 추세는 국가로 하여금 경제행위에 대해 탈규제.민영화.시장화 압박을 가하여 국가의 이같은 안전판에 중대한 위협을 가해왔고, 그 결과 서구 복지국가에 중대한 변화가 초래되었던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지구화와 더불어 지역화 (EU, APEC, WTO 등등), 국지화 추세도 종래 국민국가의 위상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하였다. 국제정치경제의 절대적 행위자로 간주해 왔던 전통적 의미의 국민국가 위상이 지구화, 지역화, 국지화 경향들에 의해 조밀화된 다양한 유형의 초국가적 관계가 부각됨에 따라 크게 변화했다. 국가바깥의 다양한 조직과 네트웍이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이들은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 민주화, 개혁, 개방이 시대의 대세로 세계를 출렁이게 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망과 기대가 욕구로 변해서 표출하고 있다. 지역에 기반을 둔 경제블록들이 생겨나는 일방, 국민국가의 경계를 허물고 지역마저도 뛰어넘는 지구화가 이

    율배반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결과 국민국가가 국내경제와 국내 지역들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진정한 의미의 '주권자' 혹은 주된 행위자라는 전제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앞서 언급한 바대로 '지구적 시민사회'라는 개념을 동원하여 국가의 절대성과 국민국가 주권성을 부정하는 사람도 있다. 유사한 맥락에서 국가간체제의 틀밖에 실재하는 다양한 유형의 초국가적 조직들 혹은 '연결망'을 주목하는 학자들이 국제정치학계에도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국경을 넘어서서 존재하는 행위와 지식의 연줄망, 경제.사회.문화적 관계의 연줄망을 주목하는 것이다. 예컨대, 환경정치의 연줄망, 인권운동 연줄망, 원주민집단들의 연줄망 등을 대표적 사례로 꼽고 있다. 이들을 총괄하여 '지구적 시민사회'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특히 발전과 산업화를 목표로 질주해왔던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초래한 생태위기는 중심과 주변을 막론하고 전세계적 관심사로 부각되었다. 이런 흐름에 따라 인류의 보편적 장래, 평화, 생태계로서의 지구촌 환경보존과 재생문제 등에 관한 관심과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세계적 움직임도 이전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이제 국가주의 극복에 대한 요구가 세계 도처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협소한 국가주의적 관점을 뛰어 넘어 인류보편적 관점에서 지구적 시민사회 구축에 어떤 사회건 적극적인 역할과 기여를 해야 한다. 국가 역량의 실질적 하강, 즉 점증하는 통제 불능성, 무력성, 불임성을 인지하고 사회의 자발성에서 비롯되는 에너지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지난 개발연대에 한국은 자신만의 경제성장에 주력한 나머지 남에 대한 의식이나 배려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생태계 파괴에 따른 환경문제가 일국적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 문제이자 지구적 문제라는 인식이 높아가면서 한국 시민사회는 국제적 연대의 중요성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지속가능성' 혹은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고조되고 있었고, 그런 가운데 열린 1992년 6월의 '리우회의'는 한국 시민사회에 일대 전환점을 마련해주었다. 리우회의는 환경운동가들이 대거 참여하여 한국의 현실을 세계에 알리는 일방 기왕에 '우물안 개구리'식 활동을 벌여왔던 환경운동가들로 하여금 국제적 연대의 가치를 일깨우는 계기로도 작용했다는 점에서 한국 시민운동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국지적으로 행동하라" (Think globally, Act locally)는 강령에서 크게 고무되어, 이후 한국의 환경운동은 국제적 연대에 전에 없는 비중을 두게 되었다. 1996-97년 겨울 대만전력공사의 핵폐기물 북한 판매와 그에 따른 이전에 신속하게 반대 투쟁을 벌였던 한국의 환경운동단체들은 국제적 연대를 구체화시켜 결실을 거두게 되었다. 환경운동단체들은 대표적인 초국적 환경운동단체인 '그린 피스'와 더불어 핵폐기물 운반 저지투쟁을 벌인다던가, 한국외 지역의 활동에 한국 활동가를 파견함으로써 국제적 연대 구축을 활성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적같은 경제성장에 제동이 걸린 1997-98년 IMF사태 역시 한국의 시민사회로 하여금 경제정의의 국제적 성격에 대해 성찰할 계기를 부여했다. 중심부 투기성 금융자본의 공세와 국제금융체계의 불안정이라는 외적 요인들이 '환란'에 적지 않은 원인제공자로서 작동했던 점을 감안할 때, 국제적 연대에 의한 빈국 외채 탕감운동이나 투기자본 제한 운동에 관심을 두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며, 한국의 시민사회가 이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구적 시민사회의 일원이 된다는 의미가 있다. 예컨대, 초국적 경제정의 네트웍이라고 할 수 있는 'Jubilee 2000'의 정신에 공감하면서도 한국 경제 역사의 특수한 체험에 바탕을 둔 '대구라운드'는 민간부문에서 나온 의미있는 움직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지구적 시민사회의 구축은 일국적 성격을 넘어선 다수의 쟁점들과 문제들을 다루는 데 있어 필수적이다. 생태문제, 마약, 범죄, 인권 등의 문제들이 이들에 해당된다. 이들 문제들은 한 국가나 시민사회가 해결할 수 없고, 강력한 초국적 연대와 운동을 구축할 때 가능하다. 한국 시민사회가 지구적 시민사회의 구축과 활성화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일과 한국 시민사회 자체의 성숙은 둘이면서 하나이자, 하나면서 둘인 그런 관계를 맺는 사업들이다.


    5. 시민사회 발전과 사회적 조정력 증대

    1997년 IMF사태를 통해 우리는 한국경제의 취약성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하지만 IMF사태의 보다 중요한 의미는 한국 사회가 얼마나 건강하지 못하고 허약했는가를 드러내주었다는데 있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충격이 왔을 때 그것을 수용하고 소화해내는 사회적 능력이 크게 약했다는 것이 여실히 입증된 사건이 IMF사태라는 생각이다. 사회적 건강성이 약했기 때문에 외적 충격이 왔을 때 겪는 동요가 심각했던 것이다.
    김대중정부의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사회는 이전보다 훨씬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중요한 제도들이 훼손된 점도 간과할 수 없는 경제위기 극복의 파장이다. 철저한 시장 규율이 강조된 결과 사회는 위축되거나 정책 우선 순위에서 밀려났다. 시장 규율이 강조되면서도 실제로는 국가 지배가 유의미하게 축소되지도 않았다. 시장세력들은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자율을 주장하지만, 자신들의 과오로 인해서 빚어진 결과들에 대한 뒷치닥거리는 국가에게 미루어왔으며, 이 점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국가에게 이런 부담을 지우기 때문에 국가는 계속해서 시장 규율의 확립에 장애가 되는 개입과 간섭을 반복하고 있다. 한국은 시장 규율과 국가 지배의 어정쩡한 복합을 겪고 있으며, 이 복합이 조화가 아니라 혼선과 비효율의 원천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개혁이 크게 강조되었지만 주요 행위주체들은 쇄신과 거리가 먼 구태를 재현하고 있다. 지대추구 행위가 여전히 횡행하고, 그래서 부정부패와 비리가 이어지고 있다.
    국가의 무기력성과 불임성, 그리고 시장 규율의 미숙성에 더해 이 양자의 혼탁한 결합이 주조를 이루는 현재의 한국적 상황을 미루어볼 때 다가오는 세기에 대한 전망이 밝지 못하다. 한국은 여전히 경제와 성장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며, 그런 패러다임에 충실한 정도의 쇄신이 필요한 영역들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선진국이나 일류국가의 꿈이 꿈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특히 21세 첫 해에 총선을 치러야 하는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다음 세기의 출발부터 다시 한번 크게 흔들릴 가능성을 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성의 증대와 실질적 합리성의 확산 및 심화가 어느 때보다 화급한 과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경제성장을 경시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에 더해 이제 시민사회의 성숙을 향한 패러다임을 생각하고 실행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한국에서 시민사회는 전통적.문화적으로 친화력이 약하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발전에 따른 산업화와 도시화의 결과 시민사회의 구축 토대가 존재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경제위기로 인해 중산층이 약화되고 사회적 양극화가 진전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시민사회의 토대를 훼손하는 중대한 의미를 갖는 사안으로서 정부는 시급히 사회적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는 정책을 강도높게 실시함으로써 분열된 한국 사회를 통합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현재로서는 국가와 시장 모두를 청산하고, 사회권력을 논하기에 여러 정황이 너무나 불리하다. 그러나 특히 IMF사태이후 급속한 개방화에 따라 한국경제의 대외적 충격 민감도 (vulnerability)는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국가는 정책 능력과 수단을 크게 잃었고, 사부문도 경제를 자율적으로 꾸려갈 규율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공공성과 합리성에 기반한 시민사회의 구축에 따른 사회적 조정력을 높이는 과제가 하나의 대안으로서 신중하게 검토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근래 주목을 받고 있는 가치 논쟁에 있어 아시아적 가치론에 강한 의구심을 갖는 편이다. 지금 한국의 상층을 지배하는 가부장적 가치관과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연고주의는 한국의 성숙을 가로막는 결정적 장애물들이다. 이들은 지구 시대가 요구하는 개인의 실력 쌓기와 발휘를 저해하거나 좌절시킨다는 점에서 시대 정신과도 배치된다. 이런 사회적 요소들이 지배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한 한국에서 시민사회 역시 별 가망이 없다. 그래서 시민사회를 구축하는 일은 이런 요소들을 청산하는 일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국가주의에 입각한 사회적 동원의 시대는 효력을 마감했다. 대규모 기업집단에 의존한 경제성장지상주의 역시 한국 사회의 운명을 책임질 수 없다. 한국은 이들을 넘어서서 앞으로 나아가야 비로소 사회적 활력이 발휘되고 선진화될 수 있다. 사회적 활력은 단순한 경제성장이 아니라 도덕과 문화를 중시하는 공동체 정신의 발양, 봉사와 참여에 의해 내적 만족을 추구하는 비영리 부문의 확산으로부터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회적 활력의 창발에 따른 사회적 조정력의 증대는 공공성과 실질적 합리성이 바탕이 될 때 그 전망이 열린다는 점에서 지금은 한국 사회의 제 영역에 작동하고 있는 병폐들을 쇄신하는 일이 급선무다. 실질적 합리성은 말할 것 없고 형식적 합리성을 구축.심화시키는 근대적 기획이 미완에 그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또 하나 한국 사회의 큰 문제는 지구화와 지구 시대가 크게 강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국적 사유를 벗어나고자 하는 진지한 반성과 실제적 노력이 미흡하다는 데 있다. 이 문제 역시 경제 영역에서는 국제적 경쟁 때문에, 그리고 정치 영역에서는 강한 국가론 때문에 돌파구를 찾기 어렵다. 대신 한국의 시민사회가 지구적 시민사회에 참여하고 그 활성화에 이바지함으로써 해소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한국이 지구촌으로부터 찬사와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길은 국민소득을 몇 만불로 끌어올리는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식견과 안목을 갖춘 시민들이 역동적인 시민사회를 구축하고 동시에 그 시민사회가 국제 사회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낼 때 한국의 모범성과 일류성이 모색될 수 있다.


    참고문헌

    김경동, 1964, "가치척도에 의한 유교가치관의 측정," [한국사회학] 제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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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lenge, March/April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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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베르트 미헬스가 '정당사회학'에서 지적했듯이 조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권력화되고 비민주적으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 흔히 말하는 조직에는 과두제라는 철칙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87년 이후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포스트 87체제'라고도 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운동은 끊임 없는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와 투쟁 속에서 민주주의 이행기의 문을 밀어왔고 이제는 민주주의의 공고화 단계까지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니 '민주주의의 위기'니 하는 '위기'담론들이 논의되고 있다. 왜일까? 대선을 앞두고 정치 평가와 함께 위기에 대한 다양한 진단과 대안적 담론들도 오가고 있다. 그러나 위기 담론과 대안들은 항상 국가나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정치, 사회, 경제라는 거시적 차원 속에 머물고 있다.

    민주화가 되었지만 우리 일상은 바뀌지 않은 생활들. 운동사회는 그 바뀌지 않은 일상과 함께 조직의 과두제 속에 매몰된 것은 아닌가 싶다. 민주주의의 위기, 시민사회의 위기, 사회운동의 위기는 민주화 이후 긴 세월이 지나는 동안 운동사회 내부에서 일부 비롯된 것일 수 있다.

    그 속에서 자리잡은 비민주적 요소들. 현재 젊은 활동가들이 운동단체에 들어가 힘들어하다가 결국은 지쳐 튕겨져 나오는 이유중 하나이기도 하다. 활동가가 재생산 되지 않는 요인은 외부적 요인도 있지만 이 시점에서 분명 내부적 요인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절차도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 말도 많고 갈등도 많은 제도이다. 하지만 함께 공존한다는 의미에서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사회운동은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절대적인 민주주의를 추동하는 힘이다.

    그런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커져만 가는 우리 안의 비민주적 요소들을 찾아볼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일상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족과 조직 속에서 말이다. 그리고 그런 요소들이 있으면 당당히 드러내고 문제를 제기해 바꿔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아래 글은 많은 공감과 생각을 해보게 하는 글이다. 신영복 선생님께서 가끔 하시는 '처음처럼'이라는 말. 쉬운 말 같으면서도 참 어려운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다가도 항상 처음을 생각해봐야 하고, 끝났나 싶었는데 처음을 돌아보고 처음 처럼 시작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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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문화가 바뀌어야 할 때 - 목적보다 일상과 인간이 중심이 되는 운동문화 되어야


    운동사회가 더 훌륭한 곳이라는 생각 버리자

    타고 서울여성의전화 회원 


    <시민의신문> 전 사장 이형모씨의 성추행 사건을 계기로, 운동사회의 성폭력이 해결되기는커녕 음모설, 배후설, 명분설 등이 빈번하게 나타나는 문제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시민의신문>을 운동단체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이견은 있지만, 2000년 ‘여성100인위’가 운동사회의 성폭력을 고발한 뒤 운동사회 내에서 노력해 왔던 반성폭력 운동을 바탕으로 한 가지 고민을 얘기하고자 한다.

    우리가 운동사회의 성폭력 사건을 특별히 주목하는 이유는 다른 일반 직장과 구별되는 두 가지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성폭력 사건이 일어난 조직은 해당 사건을 해결하는 것을 넘어 사건이 일어나는 구조, 배경을 지속적으로 척결하고자 한다. 이 욕망에 힘입어 구조적 해결의 일환으로 각 조직마다 일반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사건해결의 원칙이나 내규를 발전시켜 왔다.

    다른 하나는, 운동사회가 더 평등하고, 더 민주적이기 때문에 법에 호소하기보다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대책위나 공대위 또는 진상조사위 등을 꾸려서 내부적 심판기구를 만들거나, 아예 상설기구를 두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논란에 휩싸이는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운동사회의 독자적인 움직임은 성과도 있지만 한계도 뚜렷하다. 반성폭력 운동 덕분에 내규를 만들거나, 기구를 두어 성폭력 사건이 더 이상 과거처럼 ‘사건화’도 되지 않는 시절은 지났다. 하지만, 내규와 기구가 있다고 사건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헌법과 법관이 있다고 사건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언제부턴가 운동사회도 사건을 인간의 삶의 문제로 다루기보다 사법부처럼 하나의 사건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일상은 변하지 않고 사건만 처리된다.

    이제는 무엇보다 운동사회가 더 훌륭한 곳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운동사회가 성폭력 사건을 잘 해결할 것이라는 생각은 근거가 없다. 이런 믿음 뒤에는 운동조직이 더 평등하고, 더 민주적이며 그래서 더 진보적이라는 생각이 있다. 물론 조직이 표방하는 목표와 한국 사회의 현실을 비교할 때는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데 조직 안에서는 오히려 반대다. 일상에서는 사회적 명분을 갖는 운동을 한다는 생각 때문에 개인을 희생하는 문화가 여전히 정당하게 인식된다. 그래서 사건이 일어나면 무엇보다 명분의 훼손이나 조직의 앞날을 걱정한다. 이런 관성과 문화 속에서는 운동을 하면 할수록 개인의 주체성은 점점 더 사라진다. 활동을 하면 할수록 ‘나’를 찾아가는 게 아니라 조직에 길들여진 ‘나’만 남는다. 어느 순간 개인의 정체성도 사라진다.

    일상의 변화, 운동사회 문화의 변혁이 동반되지 않는 한 제자리 걸음일 수밖에 없다. 모든 사회운동은 인간을 인간답게 살도록 만드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하지만 그 운동을 실천하면서 정작 자신은 상실되어 간다면 앙상한 목적만 남고 조직은 더 이상 삶이 숨쉬는 공간이 아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이 그렇게 되어 버리진 않았는지부터 일상에서 돌아보는 게 필요하다.

    켄 로치 감독의 2006년 작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이런 고민을 한번쯤 해본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다. 시대와 운동이 만들어낸 숨막히게 잔인한 선택의 순간들을 슬프고도 가슴 아프게 그리고 있다. 목적보다 일상과 과정과 인간이 중심이 되는 운동문화가 만들어져야 비로소 반복되는 파행적 결말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 이 글은 서울여성의전화 소식지 <여성, 그 당당한 이름으로> 83호(12,1월호)에 실린 타고 서울여성의전화 회원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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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그리의 '제국'에 대한 단상
    - 세계체제론과 국가의 자율성과의 관계-

    네그리의 '제국'을 읽기도 전에 서문에서 부딪힌다. 아마도 내 사고의 경직성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폴라니, 플란차스, 그람시, 아리기, 제솝, 월러스타인, 카스텔 등의 논의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를 분별해내도 성공한 글 읽기 작업이라는 생각을 한다.  

    제국주의가 아닌 제국과 같은 세계체제(?)하에서 국가와 도시의 성격, 그리고 그 속에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 변화, 운동의 주체 등에 대해 많은 상상력을 제공할 수 있는 글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평을 들어보면 그 상상력 속에서 오히려 구체적인 상을 잡지 못하다 지치게 하는 측면이 있다고 한다. 사실 나도 오래전 '정치적 전복'을 읽은 후 네그리의 글들을 다시 잡지 않았었다.  

    정리와 요약들...
    국민 국가의 주권 쇠퇴가 주권 그 자체가 쇠퇴해 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대적인 변형을 겪으면서, 정치적 통제, 국가기능, 그리고 규제 메커니즘은 경제적.사회적 생산 및 교환의 영역을 계속 지배해왔다(p.16)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국가의 성격이 상대적인 자율성을 지닌 것으로 이행함을 의미한다.그러나 그러한 자율성은 국가 자체에서 형성된 것은 아니다. 네그리적 표현을 빌린다면 제국적 질서하에 가능하게 된 것이다. 세계체제론적 질서(나)

    제국으로의 이행은 근대적 주권의 황혼기에 나타난다. 제국주의와는 달리 제국은 결코 영토적인 권력 중심을 만들지 않고, 고정된 경계나 장벽들에 의지하지도 않는다. 제국은 개방적이고 팽창하는 자신의 경게 안에 지구적 영역 전체를 점차 통합하는, 탈중심화되고 탈영토화하는 지배장치이다(p. 17)

    이러한 네그리의 표현은 세계체제론과 일면 같은 맥락을 형성한다. 이를 네그리의 글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전지구적인 근대 제국주의적 지리의 변형과 세계 시장의 실현은 자본주의 생산 양식 안에서의 하나의 이행을 나타낸다.

    제국의 시대를 가능하게 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지배와 피지배의 문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네그리는 이 관계을 이중적인 공존(?)의 관계로서 아래와 같이 파악하고 있다.

    제국을 떠 받치는 대중(multitude)의 창조적 힘은 또한 대항 제국을, 즉 전지구적인 흐름과 교환에 대한 대안적인 정치 조직을 자율적으로 구축할 수 있다(p.20)

    이러한 견해는 카스텔의 네트워크 이론과 같은 맥락 속에 있다. 그리고 그람시의 헤게모니와 진지전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미 제국적 지배에서 대안 정치 조직을 어떻게 자율적으로 구축할 수 있단 말인가. 저항할 수 없는 조건이 제국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조건에서 저항이 나타나 대항적인 제국의 건설이 가능하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오히려 제국적 기제를 지배주체의 전복을 통해 이용한다면 모를까. 이러한 견해에 대해 네그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따라서 현실적인 대안을 구축하기 위한 투쟁들뿐만 아니라 제국에 항의하고 제국을 전복하는 투쟁들이 제국적 지형 자체 위에서 발생할 것이다. - 사실상 그러한 새로운 투쟁들이 이미 시작되었다. 이러한 투쟁들과 이와 유사한 더 많은 투쟁들을 통해 대중은 새로운 민주적 형태들과, 언젠가는 우리로 하여금 제국을 관통하고 제국을 넘어서도록 할 새로운 구성권력(constituent power)을 발명해야 할 것이다(p.20).

    하지만 제국을 전복하는 투쟁들이 제국적 지형 자체 위에서 발생할 것이라는 생각이 관념적인 것은 아닌가? 오히려 흡수되는 조건들에 놓인 것은 아닌가? 그 조건이 작동하는 기제를 밝히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닌가?

    *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