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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스콧 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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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Harvey의 spatio-temporal fix라는 개념을 접하게 되었다. Harvey의 지리학적 용어이지만 사회학적 용어라고도 할 수 있다. 과잉생산과 축적의 모순을 타개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안정된 고정투자 속에서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고 한편으로는 공간적 확장을 모색하는 과정...공간과 시간, 그리고 사회적 관계성을 내포한 개념이다. Andrew Herod는 이러한 개념을 확장해 인문지리학에서  노동에 중점을 두고 노동지리학(Labor Geographies)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나 또한 도시 속에서 노동의 관점에서 시간과 공간의 변화와 운동에 대한 고민을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자 한다. 하지만 아직은 이러한 생각을 개념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용어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당분간 이러한 고민에 대한 생각을 노동지리학이라는 용어로 대체해 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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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I

마르크스의 분석은 생산영역이 1차적 분석의 대상이었다. 생산영역에서 어떻게 노동자 계급이 형성되는지에 대한 언급은 있지만, 생산영역과 소비영역과의 관계에 대한 분석은 미약하다.

그러나 당시의 분석 대상은 소비의 영역, 또는 사적 영역이라는 것이 생산의 영역과 통합된 삶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예컨대 공장 밖의 소비영역 중 하나인 주거 공간은 집단적인 형태를 띠고 있었으며, 집은 잠자는 시간 외의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주로 공장에서 생활하고 공장 밖으로 나와서 공장 사람들과 생활을 하는 조건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즉 생산영역과 소비영역은 통합된 형태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 도시에서의 삶의 모습은 어떤가? 교통통신의 발달은 생산영역과 소비영역의 분할을 가속화하고 있을 뿐 아니라, 소비영역을 다시 세분화하고 있다. 즉 소비영역에서 계급 형성을 위한 동질적 조건이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저녁에는 직장과 한 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는 집에 들어와 피곤에 지쳐 잠자기에 바쁘다. 옆집에는 누가 사는지도 알 수 없다. 주말에는 하루 종일 집에서 잠을 자거나 혼자 TV를 보는 게 고작이다.

이러한 현실은 어디서부터 기인하고 어떤 과정을 통해 일상 속에 자리를 잡는 것일까? 기존 연구는 주로 공장 안의 생활을 중심, 즉 생산영역에서 노동과정을 중심으로 분석을 해왔다. 하지만 공장이나 회사라는 생산영역에서 역학관계를 바뀐다고 소비영역이라는 일상생활 속의 삶의 양식들이 바뀔까? 결국 가정도 결론도 생산의 영역만 한정된 외눈박이 연구만 진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왜 소비영역이라는 일상 생활과 생산영역이라는 노동과정을 연결시키지 않고 있는 것일까? 사회적 생산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분명 생산영역과 소비영역은 통합되어 있음에도 왜 이부분에 대한 관심이 그렇게 적은 것일까?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의 일상생활은 어떻게 고착화되어 있는지 아직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생산영역에서 우리는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고 있는가? 생산영역에서의 투쟁은 승리보다 많은 패배의 경험 속에서 끝을 맺어오고 있다. 이것은 또 다른 투쟁을 막는 형태로 재생산된다. 그것을 매개하는 공간이 어쩌면 소비영역이라는 일상의 삶일 수 있다. 설사 투쟁이 승리로 끝난다 해도 또다시 일상생활은 생산영역을 이전의 과정으로 돌리는 관성적 작용을 하고 있기도 하다. 사회운동가들, 특히 노동운동가들은 노동자들이 공장(회사)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말은 하지만 분석도 실천도 항상 공장 안에 머물러 있는 현실이다. 공장 밖으로 나와서는 공장 안에서의 논의는 확산되지 않는다. 그리고 공장 밖에서는 말 그대로 열심히 놀고 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 카피. 아마도 현실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한 광고 카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일종의 환각제와도 같은 효과들. 또 다른 형태의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기묘한 도시에서의 삶에 대한 분석을 어디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아마도 기본은 도시라는 공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 관계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물론 생산영역과 소비영역의 통합 속에서 말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떤 사람들이 섞여 살아가고 있으며 관계는 어떻게 형성하고 있으며 어떤 의사소통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심도 생각해보면 너무 방대한 범위 속에 묻혀 그냥 공상에 머물 수 있다. 구체적인 나의 생활, 현실과 대화하고 그 속에서 출발하는 것이 순서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주변 사람들과 이러한 삶의 모습을 바꾸려고 해도 어렵기만하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고 실천을 시도해보지만, 관계를 만드는 것 자체가 힘들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러다 결국에는 벽에 부딪혀 좌절하고 마는 현실이다. 그나마 좌절하지 않는 경우는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단체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도시 속의 또 다른 게토로 머무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왜 말이 안 통하는 것일까? 이것은 이미 나와 다른 사고와 언어체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사회에서 내가 비정상인거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회는 어떤 식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내가 사는 동네. 나와 동일한 공간에 살지만 그 의미는 다른 세계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떤 과정을 통해 그 세계가 형성되었으며 공고화되어 있을까? 그만큼 나는 소외의 공간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런 식인지도 모른다. 이런 현실 속에서 풀뿌리 운동이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현실은 모르고 풀뿌리만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오히려 그 풀뿌리가 진보의 싹을 죽일 수도 있다. 이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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