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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스콧 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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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의 위기와 그 변화의 징후 - 도시 노숙인
                                         - 왜 도시에는 노숙인이 존재하나?  -


                                                                                                                 
I. 들어가며

신문에 서울시에서 9일 노숙인들의 동사와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오는 15일부터 이듬해 3월15일까지 노숙인 보호대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신문에 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기습추위가 시작된 가운데 서울시가 노숙인을 위한 동절기 보호대책을 마련했다.
서울시는 9일 노숙인들의 동사와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오는 15일부터 이듬해 3월15일까지 노숙인 보호대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시는 철도공사, 시민·종교단체, 자원봉사자 등의 협조를 받아 1대1 밀착상담 시스템을 가동키로 했다. 이를 위해 노숙인 상담반을 11개조 62명으로 대폭 늘렸다. 상담반원들은 서울역, 영등포역, 용산역, 청량리역 등 노숙자 밀집지역을 24시간 누비며 보호시설 입소를 적극 유도할 계획이다. 또 손전등과 담요, 보온통 등도 준비해 필요할 때 제공한다.
노숙인을 위한 무료진료소도 서울역 앞에 설치된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30분까지 공중보건의,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무료 진료를 펼칠 예정이다. 이뿐만 아니라 거리의료상담반도 운영, 노숙 밀집지역을 돌며 의료상담 서비스도 지원한다. 시는 특히 일자리 제공 등 자활프로그램을 확대하기로 했다.
올해부터 시작한 일자리 제공 사업과 특별자활사업을 늘려 모두 2840명에게 근로기회를 제공한다. [서울신문 2006-11-10 09:03]
서울시가 가만히 손놓고 있는 것보다야 잘한 일이지만 사실 씁쓸한 기사다. 이 기사는 우리가 우리 사회 자체를 보는 시각과 그 속에서 나오는 현재의 복지정책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기사다. 나라마다 처지가 다르고 그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 있는거라고 말하면 더 할말은 없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스스로의 무능함과 한계에 대한 합리화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것을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 무능함과 한계에 대한 합리화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사실 여기에는 첨예한 시각대립이 존재하고 있다. 그 하나는 대중들에게 그 책임을 돌리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정책입안자들과 같은 지배자들과 그 지배연합에 책임을 돌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사회운동이 존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논의는 이 글의 범위를 넘는다.

간단히 말하면, 예컨대 집을 몇 채씩 소유한 사람들의 집을 제한하고, 도시에 빈 집들에 노숙인들이 들어가서 살 수 있게 하고, 사회적으로 노동시간을 대폭 줄여 일자리를 나누자는 운동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어려운 것은 국가가 이를 시행하려고 해도 개인(사유재산)의 자유를 국가가 제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국민들이 이를 원하지도 않는다는 견해다. 그리고 대중들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져 있기에 경쟁을 통해 또 다른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지배자들이 한편으로는 대중의 눈을 멀게하고, 이를 이용하면서 지배를 지속시키는 술수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있다.

나는 운동의 입장에서 지배자들과 지배연합의 논리가 허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프랑스나 북유럽 사민주의 국가를 설명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미국과 같은 영미식 국가가 왜 양극화가 심화되는지 설명할 수도 없다. 여기서는 다만 도시 노숙인에 대해 생각해 볼 문제점들에 대해 정리를 해보고 싶다.

II. 도시 변화의 징후-노숙인 문제
1. 현재
어느 도시에나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노숙인들이 존재하고 있다. 왜 도시에 노숙인들이 존재할까? 그것이 가능한 조건은 무엇인가? 단순히 주거공간이 없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주거 공간이 생긴다면 노숙인이 없어질까? 오히려 먹고사는 문제를 도시의 거리에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거리에서의 구걸행위, 소매치기, 시민에 대한 위협, 그리고 구호센터의 지원...하지만 일자리 제공과 자활프로그램? 근본적인 해결책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노숙인의 문제는 그 일자리로부터 사회적으로 배제되는 과정에서 나온 문제이다. 그런데 어떻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자활프로그램을 실시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사회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한 것은 아닌가?  

그런데 도시마다 노숙인들의 존재 양태가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시마다 사회적 부의 분배 정도가 다르기 때문일까? 즉 거리로 나앉지 않을 정도로 도시민들 모두 먹고 살 정도가 되기 때문일까? 아니면 푸코의 말처럼 시민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시설(보호시설, 자활시설, 감옥, 병원 등)에 감금을 당한 것일까? 그보다는 오히려 다양한 존재양태가 자본의 확대재생산 과정에서 야기되는 위기국면과 이것에 대한 징후, 그리고 그 조절양식의 상이함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사회적 관계의 해체를 통한 자본주의적 생산구조에 대한 결과가 오히려 사회적 책임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닌가?

2. 과거
역사 속에서 노숙인은 사회적으로 어떤 식으로 존재해왔으며 어떻게 다루어졌을까? 노숙인은 자본주의 시대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자본주의 이전에 노숙인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마찬가지로 그 조건은 무엇인가? 존재했다면 노예제, 봉건제 사회에서 노숙인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3. 미래
자본의 시대가 끝나고 나면 노숙인은 없어지는 것일까? 자발적 노숙인조차도 없는 사회가 가능할까? 자발적 노숙인이 존재한다면 그 조건과 의미는 무엇일까? 역으로 불가능 하다면 그 조건과 의미는 무엇일까? 또 다른 형태의 사회적 감금을 의미하는 것일까?


4. 노숙인의 문제는 역사 속에 존재하는 지배적 생산양식과 그에 따른 사회적 지배, 그리고 그 변화의 징후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다시말해 노숙인 문제는 지금 이 시대, 자본의 위기를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것은 사회적 연대(운동)와 지배의 문제로 다시 연결되는 것은 아닌가?

III. 최근 선행연구 결과

노숙인 인권침해 실태는 각 영역에서 다차원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동시에 각각의 요소가 상호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리 생활에서 불규칙한 식사와 영양 및 수면부족이 건강권을 위협하고 또한 이러한 문제들은 적절한 주거생활이 보장되지 못함과 연결되어 있었다. 주거 생활은 취업 및 노동권과 연결되어 있고, 안정적 노동을 통한 소득의 획득이 이루어지지 아니함으로써 주거 불안정과 연관되어 있었다(정원오 외, 2005:13).

노숙인의 주거권 문제는 가장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노숙인은 곧 주거권이 보장되지 못한 집단이며, 그 원인이 경제적 문제이든, 실업의 문제이든, 혹은 정신질환의 문제이든, 노숙상태로 떨어지는 근본적인 원인은 다양하지만, 노숙생활의 직접적인 이유는 주거 곤간이 없다는 점이다(정원오 외, 2005: 15).
정원오 외, '2005년 인권상황실태조사 연구용역보고서 - 노숙인 인권상황 실태조사', 국가인권위원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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