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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스콧 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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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이라는 중매쟁이와 도시공간에 대한 단상



송용한

I. 도시공간?

요즘은 내가 사는 동네라는 이 도시공간에 대한 생각들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를 않고 있다. 언제부터 내가 이 도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20대까지만 해도 나는 이 도시를 떠나고 싶어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 도시에 남아 있다. 그렇다고 훌쩍 이 도시를 떠나는 생각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때론 아무 계획없이 그렇게 이 도시를 떠났다 돌아오곤 한다. 그러나 이제 그 떠남은 더이상 떠남이 아이다. 기껏해야 며칠 아무 생각없이 여행을 다녀와 내 방에 놓여 있는 초상화를 보는 것, 그 이상이 되지 못한다.

20대까지 나는 이 도시가 나의 삶에 주는 의미를 몰랐던 걸까? 아마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이 도시를 떠난다는 것이 의미하는 게 삶의 조건들을 바꿔야 한다는 것임을 안다. 그 삶의 조건들은 사람에 따라서는 선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그 삶의 조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선택이 아닌 받아들여야 하는 하나의 주어진 조건으로 좁혀진다. 나도 마찬가지다. 비록 이 도시 속에서 주변적으로 머문다 할지라도 말이다.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역설적인 건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삶의 조건에 대한 선택 가능성은 줄어듦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선택의 조건을 만들어 간다는 희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II. 일상생활이라는 중매쟁이

하루하루의 일상생활은 기호화되지 않고 식별할 수 없거나 상징화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보편적으로 되어버린 역설적인 상태, 그런 '대중 주변성'이라는 상태 속에서 일상생활이 구성된다. 하지만 그 일상 속에서 우리들이 만들어낸 사회구조는 조금만 떨어져서 바라보면 너무나 명확하게 기호화되고 식별할 수 있는 상징구조들로 드러나곤 한다. 

아마도 내 머리 속에서 맴도는 건 일상생활 속에서 보이지 않던 그 공간들이 다른 형식으로 드러나는 과정 속에서 오는 혼란스러움은 아닌가 싶다. 그것들에 대한 식별은 때로는 명확히 드러나기도 하고 때로는 희미하게 흔적만 남기도 했다. 그것들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 희미한 겹침과 간섭이 일상생활을 통해 중매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일상생활에 의한 보임과 보이지 않음의 중매라고나 할까?

거칠게나마 그 중매쟁이 역할을 하는 일상생활들을 구분하고, 그동안 내 머리 속에 남아 맴도는 공간에 대한 기억들을 잠깐 내려놓고 싶다. 언젠 다시 보게 될지는 모르지만....

구 분

보이는 일상생활 구조(제도)

경제제도

정치제도

사법제도

교육제도

사회제도

보이지않는일상생활
구조

물  적  구  조

사회관계구조

시 공 간 구 조

의미 행위구조



III. 도시공간에 대한 기억들 : 공간의 사회성

1. 화장실 낙서(미시->거시)
대학다닐 때는 한 때 화장실 낙서에 빠진 적이 있었다. 처음 낙서를 접한 건 전철역 공중화장실이었던 것 같다. 이런저런 낙서들... 물론 화장실 낙서에는 음란물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그 화장실이 어느 공간에 있냐에 따라 낙서의 내용들이 다르다는 점이다. 이후 나는 어디를 가더라도 기회가 되면 화장실을 들러 화장실 벽에 있는 낙서들을 보곤 한다. 물론 식당 벽이나 그냥 거리에 있는 낙서들도 습관적으로 보곤 한다. 아직도 그 버릇은 남아 있다. 고상한 사람은 나를 변태로 볼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기억을 남겨보면, 90년대만 해도 대학에 있는 화장실 낙서들을 보면 각 대학의 이슈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 대학 화장실에는 낙서가 없다. 웃기는 건 가끔 총학에서는 화장실에 낙서판을 설치하곤 한다.

전철역과 같은 공중화장실의 낙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공중 화장실의 낙서가 모두 음란물로 가득찼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나는 공중화장실이야말로 그 사회 속에서 억제되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을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대부분 음란물로 채워졌더라도 말이다(요즘은 그런 낙서마저도 없다). 재미있는 건 요즘 그 공중화장실의 낙서에 장기기증 안내문(?)과 동성애자 연락처가 간혹 눈에 보인다는 점이다. 언제부터인가 이 사회는 장기를 공공연하게 사고 파는 사회가 된 것이다. 어쩌면 최악의 상태가 아닌가 싶다.

아무튼, 개인적으로 화장실 벽에 낙서들이 많으면 그 공간은 살아 움직이는 공간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 화장실의 낙서들이 깨끗하게 없어졌다. 시민의식이 성숙해지고 화장실 깨끗히 쓰기 운동을 통해서라고 하지만 그거 다 웃기는 소리다. 익명을 통해 감춰진 생각의 자유로운 배설물들은 그런 식으로 막을 수는 없다. 어떤 식으로든 어디선가 배설되고 있다. 요즘은 그게 인터넷으로 옮겨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이 글도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하나의 낙서에 불과하다).

예전의 화장실 낙서가 사라진 요즘, 그 화장실 낙서의 사회성은 특정인 또는 특정 장소를 통해 재구성된다. 그리고 그렇게 재구성된 낙서는 더이상 익명성과 개별성으로 머물지 않고 보이는 권력구조 또는 경제구조 속으로 흡수된다.   

예컨대 대학의 총학생회가 화장실에 설치한 낙서판과 같이, 또는 최근 없어진 정동 세실레스토랑의 낙서처럼 말이다. 정동 세실레스토랑은 그 곳이 민주화의 산파 장소라고 하지만 정작 벽에 걸려진 낙서들을 보면 가관이다. 한때 민주주의를 억압하던 권력의 장본인들이 보기 좋게 싸인들을 남기고 갔다. 그 권력의 상징들이 정동 세실레스토랑이라는 장소와 만나 벽에 낙서 아닌 낙서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때로는 단 페르조브스키의 낙서와 같이 좋은 말로 예술상품이 되기도 한다.


2. 컴퓨터 메인보드와 도시공간(거시->미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장소, google map을 통해 클리핑해 놓았던 2007년 우리동네 사진이다. 요즘 내 머리 속에 남아 도시공간에 대한 생각들을 맴돌게 하는 모습들 중의 하나다. 중앙을 중심으로 좌측은 공원, 시청, 도서관 같은 공공기관이 들어서고 우측으로 오며 병원, 상가들이 들어서 있다. 그리고 중앙 우측으로는 단독주택과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있다. 소위말하는 주택단지다. 그리고 그 주택단지의 우측 끝자락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운동장이 보인다. 그 공간들은 길을 통해 나눠지고 연결되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내는 이 일상생활의 공간, 이 곳에서 접하는 공간은 흡사 컴퓨터의 메인보드와 같이 하나하나 구획과 기능이 나누어져 있다. 길까지 어떻게 이렇게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나는 이 컴퓨터 메인보드 같은 도시공간 속에 놓여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게는 그냥 일상의 공간이고 거리이고 길은 그저 길이거나 산책로일뿐이다. 그 속에서 컴퓨터 메인보드와 흡사한 공간을 만들고 있는 나, 아니 우리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정치지리학을 하는 사람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자본에 의해 공간이 축조된 결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자본의 힘이다. 하지만 꼭 자본주의 사회 속의 도시 모습만은 아니다. 공산주의 사회 속의 도시공간이 보여주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도시행정학을 하는 사람들은 도시공간에 대한 합리적 이용 과정 속에서, 즉 합리성에 의해 축조된 결과라고 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합리성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도대체 이런식의 축조형태가 삶의 합리성 추구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3. 숨은 도시공간
며칠전 여의도에 있는 국회도서관에 갔을 때다. 입법조사관으로 있는 분의 안내로 국회도서관에 있는 카페에 들르게 되었다. 그 곳에 그런 카페가 있으리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전망 좋은(?) 조용한 카페가 국회도서관 내에 위치하고 있었던 거다. 값도 저렴하고 일반 카페보다도 넓은 공간이 마땅히 쉴 곳이 없는 여의도 공간의 국회도서관 안에 자리잡고 있는거다. 그 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들던 생각은 아는 놈 아니면 이 곳은 찾아올 수 없는 공간이라는 생각이었다.

종로, 음식점마다 항상 붐비고 서비스도 좋지 않다. 지난달 토론회를 마치고 저녁을 하기위해 사람들과 들렀던 르미에르 종로타운, 피마골을 헐고 들어선 그 건물의 번잡함을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앞선다. 그러다 맥주라도 한잔 하고 가자는 사람들의 만류에 들른 파이낸스 빌딩 지하 아케이드 공간. 바로 한 블럭 차이인데 그 공간은 너무나 한산하고 조용했다.

가끔 보면 이런 식으로 도시공간은 숨는다. 어쩌면 그 숨고 드러남을 통해 공간이 재구성되고 컴퓨터 메인보드를 구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 결의 차이는 무엇일까?  

IV. 일상생활의 시점
언젠가 공간에 대한 생각에서 공간을 보는 시점이 여럿 존재함을 남겼듯이, 일상생활에도 그 여러 시점들이 개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여러 시점들(示占, 視占, 始占, 時占, 是占)에 따라 일상생활이 중매하는 드러남과 드러나지 않음의 구조는 상대적으로 바뀌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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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ksjso2 2009/09/06 19:03Delete / ModifyReply
잘 지내지? 논문 쓰느라고 네가 고생이 많다. 언제 온수역 앞에서 갈매기살 한 번 뜯자. 내가 쏘마. 한가한 시간에 연락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