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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스콧 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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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 주의자는 여전히 계급투쟁이라는 좁은 시야를 고수하고 있었다. 이것은 르페브르가 이야기한 "자본의 새로운 변용"뿐만 아니라, "생산의 사회화", 그리고 "특정한 자본주의적 관계의 새로운 내용"까지 간과하는 상당히 추상적이고 관념화된 맑스주의였다. 다시 말해서 몇 몇 맑스주의자들은 세계가 자신의 옆을 무심코 지나가도록 했고, 현대 일상생활의 세속적인 현실로부터 등을 돌린 채 그것들과의 대면을 회피했다는 것이다(p.182)

...그러므로 조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의 구조를 만들어내는 불확실성을 지닌 살아있는 생명체인 것이다. 르페브르는 인간이 자신의 구조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창조와 생산이라는 두 가지의 방식을 가지고 있기에 매우 독특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창조와 생산은 지금까지는 그다지 교차되지 못해 왔던 것들로, 자발적-유기적인 방식 또는 추상적인 방식을 일컫는다. 이제 나바렝스, 그리고 역사는 단지 "일단 자발적으로 생긴 것을 어떻게 다시 재생산할 수 있는지, 어떻게 추상으로부터 창조해낼 수 있는지"(125)에 대한 힌트뿐 아니라 어떤 딜레마도 만들어낸 것이다. 이에 더해, 무렝에서 자발성은 다시 부활할 수 있을까? 공동체는 창조되거나, 혹은 그 자체를 생산할 수 있는가? 무렝은 자유방임적 유기체설인가 아니면 예시되는 계획을 통한 인간의 적극적 개입인가? 도시는 "기술적 대상"인가 "미학적 대상"인가? 르페브르에 따르면 맑스주의적 도시주의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만 하고, 일상에서 자신만의 방식 또한 찾아야 한다(p.189).

......"이제 (전통적인 도시 같은) 거대하면서도 일정한 형태가 없는 덩어리로 돌아가는 것도, 산업화나 근대성으로부터 줄행랑을 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진단"을 내리고 있다. 대신, 혁명적 노력은 앞을 향해 그리고 "새로운 인본주의"와 "새로운 실천"을 향해, "실험적 이상향"을 지닌 "도시 사회 속의 또 다른 인간"을 향해 뻗어 나가야 한다. 즉, 급진적인 도시주의자는 "발명해야만 한다"(213), "도시에 대한 권리"는 "사이비 권리" 또는 그저 "주어지는 권리"가 아니다. 또 역사적으로 보존되고, 연속적으로 생산되며, 도심을 고급화하는 것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도시에 대한 권리는 그보다는 "함성과 요구 같은 것"이다. 이는 "변화되고 갱신된 도시 생활에 대한 권리"로 공식화되어야만 한다. 도시는 만나기 위한 공간, 사용가치를 우선시하는 공간, "모든 자원들 중에서 최상급의 자원이 된 공간의 비명(묘비명...)"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그리고 오직 노동계급만이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행위자, 사회적 촉진제 또는 이런 일들의 실현을 위한 지지가 될 수 있다(p.195-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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