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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스콧 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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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연구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비정규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접하게 되었다.

내게는 흥미로우면서 우려스럽기도하고 또 한편으로는 희망적이기도 하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그래서~? 그래도 노동자들은 희망이 있어요~잘 해보세요(고생하는 J형이 아니라~^^)라는 생각도 든다.

먼저 흥미롭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비정규노동조합과 파업 또는 분규와 연결망에 대한 지형도가 그려지고 있다. 그 그림을 잠깐 보면 한국 사회의 지역에 따른 산업 특색과 비정규직 문제(파업을 통해)가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파업은 중범위의 수준에서 어떤 단위들과 연결되고 있는지에 대한 그림이 대략 그려진다. 지배적 입장, 완곡한 표현으로 조정자의 입장에서 보면 소위 이 동네에서 단체간에 서로들 어떻게 놀고 있는지 그림이 그려지는 거다. 아마도 그 그림 속에서 대략의 지형도를 미리 예측하고 상상하고 있을거다. 그래서 서로 흥미롭다.

우려스럽다. 물론 연구를 하는 사람들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그 진정성과 달리 그 결과물에 대한 이용은 또 다른 수준의 문제라는 것이라는 것이다(물론 그 결과물을 나도 볼 수 있으니 서로 다른 수준에서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힘의 문제, 권력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 결과물에 따르면 각 지역마다, 그리고 사업마다 주요 포스트만 taget으로 잡으면 비정규노동운동 또는 파업의 물결을 잡을 수 있다(연구의 의도야 어떻든 그렇게 해석할 수 있고 이용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그 결과물을 역으로 이용할 수 있는 측면은 노동에게도 있다. 하지만 노동은 역으로 이용하기에는 원자료도 없고, 있다고 하더라고 조사 설계 자체가 역으로 이용하기 위한 설계 구조가 아니라는 한계도 있다). 그래서 나는 우려스럽기도 하다. 연구자는 어떤 문제의식에서 했던지간에 그것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은 연구자의 손을 떠날 수 있는 문제다. 즉 통제의 도구이자 수단인 것이다.

그래도 희망적이다. 결국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연구는 지금의 상황만을 말할 수 있는 정태인 양적 분석 방법이다. 이 분석의 한계들. 지금의 상황 이외에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삶의 과정이 어찌 그럴 수 있나? 어떤 조건에 의해 지금의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향후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해석하고 예상할 수 있다. 경로모델적으로 설명하면 대략의 향후 향방은 나올 수 있을 수 있는 문제다. 지배의 입장에서 파업에 대한 방지책 또는 억제책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쉽게는 각 연결망의 매듭고리들(nodes)를 끊으면 되는 문제다. 하지만 여기서 희망은 매듭고리들을 끊어도 삶의 과정 속에서는 항상 다른 매듭을 찾아나서고 서로 연결한다는 것이다(이런 생각에 대해 감옥 속에서의 연결망과 자유가 무슨 소용이냐라는 비판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이 비정규노동이 진보와 만날 뿐 아니라 극단의 상황에서 보수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나는 형성과 재구성을 말하고 싶은 거다. 하지만 그것이 무정형 구조는 아니라는 점이다. 항상 또 다른 탈출구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문제는 그 탈출구 또는 연결의 매듭이 무엇과 만나냐 하는 지점이다. 현실에서는 소위 진보와 만날 수도 있고 보수와 만날 수도 있다. 뭐 감옥으로 치면 간수와 만날 수 있고 죄수간에 만날 수 있는 문제다(그래도 감옥 안에서의 문제라고 하면 나도 할 말은 없다) 그런대 어떤 식으로 만나건 간에 그 만나는 것은 어떤 구조 속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냥 쉽게 왜 그런 식으로 만날까?

이 지점이 이 사회를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느냐 하는 지점과 만나는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해석학적 입장이 있을 수 있고 도구주의주의적 입장일 수 있고 실용주의적 입장이 있을 수 있다. 물론 해석학이나 도구주의나 실용주의나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실재론적 입장 속에서 구조조의적 입장을 취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은 여기서 세세히 논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 입장에 따른 형성과 재구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것은 주관적 해석을 객관적으로 증명하려는 실천, 또는 그 진위가 실천에 의해 밝혀질 수 있다는 실천의 우위, 또는 경험주의적 오류(엄밀하게는 실천의 우위와 실증적 경험주의는 서로 다른 기원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와 만나는 지점이 있기도 하다. 진보라는 것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이러한 입장을 벗어난 진보라 하더라도 이론적 실천을 생산하지 못하는 관념론적 또는 이데올로기적 구조주의에 빠질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결론은 지금 나타나는 현상에 대한 기술적(descriptic) 의미 이상의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즉 현상에 대한 기술(graphic)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실재론적 대상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수준을 낮춘다면 그러한 수준의 것이 지식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지점과 연결된다. 물론 나는 출발은 기술적 수준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 수준에서 머무는 방법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이론적, 실천적 의미는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유용성이 있다면 통제의 입장에서 조정할 수 있는 가정들이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방법론을 초기에는 취하지만 종국적으로는 폐기하고 가야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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