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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스콧 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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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넓은 의미로 보면 정신을 포함한 일상의 삶 자체라고 할 수도 있다. 조금 범위를 좁히면 넓은 의미의 문화가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구현된 대상들이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문화를 상품화하는 과정을 문화노동이라 할 수 있고, 이러한 일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문화노동자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문화노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즉 문화상품을 생산하는 문화노동을 생산적 노동으로 볼 것인가 비생산적 노동으로 볼 것인가? 어떤 문화노동인가에 따라 잉여가치의 생산과 분배, 그리고 노동 사회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노동은 구상과 실행의 분화 속에서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의 경계에 서 있다. 여기서 생산적 노동은 잉여가치의 형성에 기여하지만, 비생산적 노동은 노동은 잉여가치의 분배에 참여하게 된다(물론 비생산적 노동에서 잉여가치의 분배에 참여하는 문화노동자는 잉여가치 분배 과정 그 자체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임금 노동자 형태로 존재한다.)

잉여가치 창조에 참여하는 전자의 예가 산업의 문화화, 예컨대 산업디자인이나 산업 생산물에 문화적 요소가 가미하는 노동과정이 될 것이다. 후자의 예가 문화의 산업화, 예컨대 예술작품의 상품화, 공연의 상품화, 축제의 상품화 등이라 할 수 있다(축제는 어떻게 보면 잉여가치를 구성원들이 향유하며 집단적으로 분배하던 과정이기도 하다)

잉여가치의 생산이 멈춘 상태, 또는 더이상 잉여가치 형성이 일어나지 않는 산업부문이나 국가의 문화노동은 비생산적 노동에 종사하게 된다. 이들은 잉여가치의 형성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생산적 노동에 의해 창출된 잉여가치가 필요하다. 이는 문화상품을 통해 산업 간 또는 국가 간 잉여가치의 이전과정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문화노동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잉여가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세계체제론적 틀에서 보면 선진 산업사회에서 문화산업이 활성되는 것은 세계체제의 틀 속에서 저개발국가나 개발도상국을 통해 창출된 잉여가치가 선진국으로 이전되어 분배되는 과정이라는 가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저개발국가나 개발도상국가는 일정한 단계에 도달하면, 즉 선진국과 같이 독점자본의 형태에 도달하면 자체 문화상품을 개발한다. 여기서 선진국의 문화산업은 잉여가치 이전 기반이 없으면 붕괴된다. 즉, 선진국의 경우 일정한 기간동안만 세계체제의 틀 속에서 문화산업의 활성화를 통해 문화상품을 팔고 잉여가치의 분배에 참여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선진국이라 해도 잉여가치 창출, 즉 제조업을 등한시하고 문화산업만을 활성화시킬 경우 필연적으로 사회적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는 가정이 가능하다. 향후 영국과 미국이 이러한 예가 될 수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한류와 디자인 도시 서울 , 관광 한국 등을 부르짖지만 제조업 기반의 산업생산이 쇠퇴하고 경쟁력을 잃을 경우 문화산업의 쇠퇴는 급격하게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문화산업의 축은 자본의 이동과 같이 중국과 인도로 갈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문화산업의 활성화는 선진 자본주의 쇠퇴의 초기 단계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문화노동이 생산적 노동이라는 가정을 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이나 '권력이동', '부의 미래',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이나 '소유의 종말' 등을 보면 지식노동과 문화노동은 부의 원천이다. 그리고 세상이 이렇게 변하는구나 하는 문화충격을 받을 수다. 하지만 관점에 따라 이러한 논의는 사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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