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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겨울철쭉의 독서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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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세계화와 도시의 위기>/사스키아 사센/푸른길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도시와 그 시민에게 미치는 영향"


가끔 좋은 책들이 묻혀있는 경우를 발견한다. 이 책도 그런 경우. 요즘에 유행하는 얄팍한 혹은 저널리즘적인 세계화 비판서들 보다 훨씬 알찬 내용을 보여준다.(나는 이 책을 다른 책의 각주를 통해서 알았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서는 아니다. 오히려 약간 '빗나간' 주제를 다룬다. 바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과정에서 '도시', 그리고 그곳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변하는가하는 문제이다.

생산이 탈지역화하고, 자본이 초민족화하면서 생산의 입지는 분산된다. 금융자본의 운동과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이 낳은 결과이다. 그럼 대도시는 쇠퇴하는가?

예상밖으로 저자는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다. 물론 금융중심지로 도약하지 못한 어떤 도시들은 쇠퇴한다.(혹은 이 과정에서 제3세계의 공업도시는 생산입지의 변경으로 인해 팽창할 수도 있다.중국과 동남아시아의 대도시들.) 그러나 초국적 거대도시들(뉴욕, 런던, 파리, 도쿄 등)은 오히려 더욱 팽창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이 도시 지역이 생산자본의 초국적화에 맞물리는 초민족적 자본의 금융화의 중심지이기 때문.(90년대 이후의 이른바 '신경제'에서 자본의 축적은 생산에서 금융부문으로 이동한다.) 금융거래를 중심으로 도시의 기능이 팽창하고, 또한 이러한 입지에는 금융거래의 인프라를 제공하는 정보통신 기업이 집중된다. 이에 따라 오히려 초국적 거대도시들은 팽창한다.

우리나라의 서울의 예도 그렇다. 금융기능이 우리 나라에서 유일하게 집중되며, 아무리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정보통신 산업에 투자한다, 무슨 '벨리'를 만든다고 해도 서울 강남에 정보통신 기업은 집중된다. 자본의 축적양식이 금융적인 것으로 변화하면서 이에 따라 기업의 입지 조건도 바뀌고 도시의 성장도 바뀌는 것이다. 한편으로 인천과 같은 공업도시들은 고유의 생산 기능을 상실해가고 서울의 위성도시화한다.(대우 자동차가 GM에 매각될 경우 부평공장의 폐쇄는 기정사실로 보이는데, 그 경우 이 과정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한편,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도시의 하부 구조에 저임금의 단순노동, 하인노동(피부관리사 등과 같은 것이나 파출부 등)을 양산한다. 어떤 첨단 빌딩도 청소부나 보일러 관리공 없이 운영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첨단의 도시와 주거지역도 편의점의 파트타임 저임금 노동력 없인 운영될 수 없다.

결국 도시의 계층분화는 더욱 진전되고, 대도시의 인구는 금융과 정보통신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귀족들과 하층 비정규직, 하인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들로 분할된다.(이러한 노동인구의 분할에 대해서 이 책은 도시공간의 분석을 통해 답하고 있지만, 이러한 도시 풍경의 변화는 금융세계화 과정과 떨으뜨려 사고할 수 없다. 이와 같이 노동인구를 분할하는 데 있어 금융세계화가 미치는 영향과 그 매커니즘에 대해서는 <신자유주의와 노동의 위기 : 불안정 노동 연구>(사회진보연데/문화과학사)를 참고할 수 있다.)

이러한 모습도 역시 서울과 같은 도시에 들어맞는다.(물론 서울보다는 뉴욕이나 런던, 도쿄에 잘 들어맞겠지만.) 이른바 '테헤란 벨리'와 여의도 증권가의 고임금 직종의 노동자들이 존재하는 한편에 열악한 조건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이들은 주거지역도 중산층 아파트와 좁은 다세대 주택, 이런 식으로 분할된다.

이 책은 이렇게 추상적인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과정에 대한 인식을 구체적으로 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자본의 축적 양태의 변화에 따른 효과가 우리의 삶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드러나는지를 보여준다.

그럼 이 책이 그리는 미래는 디스토피아일까? 글쎄, 저자는 명확히 답하고 있지 않지만, 이러한 모순된 상황, 즉 거대한 금융자본의 축적과, 한편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의 공존은 그대로 유지될 수 없다. 인간은 자신의 삶의 조건들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은 도시의 변화과정에서 도시공간을 '정치화'하면서 더욱 확산될 것이다.

또한 초국적 도시의 팽창과 더불어 쇠퇴할 수밖에 없는 '민족국가'의 통치성의 위기는 이 체제의 근본적 불안정성을 심화한다. 역사적으로 대중을 지배하는 체제로 효과적으로 정착한 '민족국가'는 내부로부터 초국적 대도시와 시골, 쇠퇴하는 도시로, 그리고 초국적 도시 내부의 분열로, 몇겹으로 분열돼 간다. (저자는 이에 따라 미래가 초국적 거대도시들의 네트워크가 지배하는 새로운 세계의 모습을 띨 수도 있다고 진단한다. 민족국가라는 자본주의 고유의 국가형태가 도시의 연합에 의한 초국제적인 지배로 변환된다는 예상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자본주의가 민족국가 형태를 취하는 것은 그것이 여러가지 대안 중 가장 효과적으로 대중을 지배할 수 있도록 했으며 자본축적에 유리한 조건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금융세계화는 스스로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묘굴인이 될 것인가?

미래는 여전히 구성중일 것이지만, 이 책이 진단하는 바는 거의 가시적으로 들어맞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시적인' 미래에 대해서 우리의 대응은 무엇이어야할 것인가?

등록일 : 2001-10-05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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