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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스콧 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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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바라보는 시각. 도시 자체는 하나의 사회적 관계이며 그 자체가 스펙터클이기도 하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즉 도시는 스펙터클적 인간을 재생산하는 수단이기도하다. 이것은 도시가 항상 자본에 의해 건설되고 재구성된다는 측면과 연결시켜보면, 스펙터클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의 또 다른 용어이기도 하다. 그 속에서 파편화되고 개별화된 이미지로 살아가는 일상생활. 개별화된 노동으로 나누어지는 비정규직화도 도시적 특성의 하나일 수 있다.

그렇다고 벗어나거나 파괴할 수 없다. 그것은 또 다른 도피이고 러다이트일 뿐이다. 그래서 상황주의자들은 그것을 어떻게 재영토화할 것인가? 즉 전용할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연결되고, '사물의 재영토화'로 개념화 된다... -송용한 단상-]


4.
스펙타클은 이미지들의 집합이 아니라, 이미지들에 의해 매개된,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이다.

5.
스펙타클은 시각 세계의 남용이나, 이미지들의 대량유포 기술의 산물이라고 이해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그것은, 현실적인 것이 되고 물질적으로 번역된 세계관이다. 그것은 대상화된 세계관이다.

6.
스펙타클이란, 총체적으로 파악하자면, 현존하는 생산양식의 결과이자 또한 그 기획이다. 그것은 현실세계의 부록, 덧붙여진 장식물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사회의 비현실성의 심장이다. 스펙타클은 어떤 특정한 형태를 취하든지간에, 즉 그것이 정보든 선전이든 혹은 광고든 직접적인 오락이든 소비든지를 불문하고, 사회적으로 지배적인 삶의 현존하는 모델이다. 스펙타클은 생산과 그 당연한 결과인 소비에서 이미 이루어진 선택에 대한, 편재하는 긍정이다. 스펙타클의 형식과 내용은 모두 기존 체제의 조건과 목표를 총체적으로 정당화한다. 스펙타클은 또한 이러한 정당화의 영원한 현존이기도 한데,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현대적 생산의 외부에서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을 점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7.
분리는 그 자체가 세계의 통일성의 일부이자, 현실과 이미지로 분열되어 있는 전지구적인 사회적 실천의 일부이다. 자율적인 스펙타클이 대면하는 그 사회적 실천은 또한 스펙타클을 포함하고 있는 현실적 총체성이다. 그러나 이 총체성 내부의 분열은 스펙타클이 그것의 목표로 나타날 지경까지 사회적 실천을 불구화시킨다. 스펙타클의 언어는 지배적인 생산조직의 기호들로 구성되는데, 이 기호들은 동시에 이 생산조직의 최종목표이기도 하다.

8.
우리는 스펙타클을 실제의 사회활동과 추상적으로 대비시킬 수 없다. 그러한 분리 자체가 분리되어진 것이다. 현실을 전도시키는 스펙타클은 사실 생산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은 스펙타클의 관조에 의해 물질적으로 침범당하는 동시에 스펙타클의 질서를 흡수하여 이 질서에 긍정적인 응집성을 부여한다. 객관적 현실은 양 측면 모두에 현전해 있다. 이런 식으로 고정된 모든 관념은 바로 대립물로의 전화를 근거로 갖는다. 다시 말해, 현실은 스펙타클 내부에서 솟아나고, 그리하여 스펙타클은 현실적이 된다. 이러한 상호소외가 현존하는 사회의 본질이자 지주이다(pp.11-13)



* 기 드보르(1996), 스펙타클의 사회, 이경숙 옮김, 한영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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