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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스콧 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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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06
프란츠 파농 지음, 남경태 옮김 / 그린비 / 2004년 8월

I.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언제부터인가 책을 사회과학 서적위주로 읽게 되었다. 사회과학 서적은 내게 이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줘서 재미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되지도 않는 짧은 지적유희 속에서 이 사회를 가슴으로 이해하기보다 그냥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말이 사회과학이지 때로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미각을 잃게 한다. 내 스스로가 그런 삶의 미각을 잃고 건조하게 세상을 보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읽은 책에 의해 나는 마취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파농의 표현을 빌린다면 나는 또 다른 형태의 ‘검은 얼굴, 하얀 가면’을 쓰고 있는 거다.

그래서 요즘은 일부러 사회과학 책이 아닌 다른 책들을 읽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때론 영화도 보고... 하지만 요즘은 물리적 시간에 대한 결핍, 그 시간을 아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 사로잡혀 있다. 어떤 이들은 책 읽는 것이 취미라고 얘기 하지만 내겐 그 책읽기가 일종의 직업이 되고 말았다. 취미가 직업이 될 때 고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 속에서 나는 오히려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조만간 직업을 바꿔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요즘은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소설책이나 다른 책들을 읽으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책 읽기에 대한 압박과 초조함은 항상 내게서 소설책들을 놓게 만든다.

그 갈등... 읽던 소설책을 내려놓고 파농의 책을 들었다. 전에 읽다가 말고 남겨 놓은 페이지들에 대한 미련이랄까? 그 미련과 함께 짧게라도 읽은 책에 대한 느낌과 기억들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그렇게 집어든 책을 보면, 밑줄을 그으며 읽었던 책인데도 그 흔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없었다. 점점 내 기억들이 사라지기 시작한 거다. 언제부터인가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가 작동하는 거를 알게 된 거다. 예전에는 이런 나의 변화를 두려워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누구에게나 살아가며 그 시간들이 찾아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 내 기억들을, 그리고 내 생각들을 남기고 정리하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좀 슬픈 일이긴 하지만 다른 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는 생각도 든다. 남들은 이런 나를 측은하게 볼지도 모를 일이다.

II. 지배와 피지배의 재생산과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은 식민지에서 지배와 피지배자 간의 관계가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유지되고, 그 속에서 원주민들은 어떤 심리적 변화를 겪고 저항을 꾸려나가는가에 대한 글이다. 일종의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 지배의 재생산과 저항, 그리고 그 속에서의 사회적 병리현상에 대한 보고랄까? 글을 다 읽고 드는 생각은 파농이 살던 시대의 그 식민지의 모습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삶의 모습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 프랑스와 알제리의 식민관계를 우리 사회의 현실로 돌려보면 구태여 은유적으로 볼 일도 아니다. 일종의 우리 안의 내부 식민지라는 도식이 가능하다. 그리고 파농이 지적한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이 당시의 식민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사회에 현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주민이 원주민의 땅을 점유하고 지배한다는 현상의 이면, 그 식민지 이면에 대한 성찰, 그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지배문화와 사회적 관계들. 슬픈 일이지만 때로는 그 속에서 피지배자들 간에 죽고 죽이는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유지되고 재생산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며 지배의 재생산 과정은 지배문화에 물들고 이를 통해 먹고 사는 지식인들을 배출하기도 하고, 식민지 지배자(이주민)들을 몰아내고 그 지배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민족주의적 정당과 지도자, 정부, 노동조합 등을 구조적으로 배출하게 된다. 식민지로부터 해방되더라도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는 청산되기보다 보이지 않는 식민잔재로 남아 재생산되는 것이다.  

III. 우리 안의 내부 식민지와 ‘존재의 탈식민지’
한 사회에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 우리 사회 속에는 정규-비정규라는 우리 안의 식민지를 보게 된다. ‘노동자는 하나다’라고 얘기하지만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식민지 지배자(이주민)들을 몰아내고 그 지배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민족주의적 정당과 그 지도자들, 정부, 노동조합 등과 하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나로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파농은 그 시대를 비판하며 해방의 정치와 교육을 얘기하고 자각을 얘기했지만 그 대안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를 아무도 하지 않을 때, 그 얘기를 처음 했기에 힘을 지닌다면 나로서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식의 대단한, 하지만 너무도 먼 얘기가 싫다.

파농이 얘기했듯이 피지배자들은 구태여 그들의 삶을 얘기하거나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삶 그 자체가 이미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지금의 우리에게 이 책이 던지는 의미는 지배와 피지배의 문제 속에서 일종의 ‘존재의 탈식민지’에 대한 고민쯤으로 정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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