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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스콧 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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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들어가며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분명 봉건제나 신분제 사회보다, 또한 레닌주의적 사회들보다 자유로운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롭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러나 보이지 않는 창살없는 감옥과 같은 답답함과 부자유스러움들. 진정으로 자유롭다고는 느낄 수 없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사회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나의 자유를 제약하는 자들과의 관계를 떠난 완전한 자유를 상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 속에서 자유의 제약이 오히려 지배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며 지배를 보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따라서 자유에 대해 생각할 때 자유란 1) 타자가 나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는 측면과, 2) 사회 속에서의 자유는 일정한 조건들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II. 자연에 대립하는 자유 - 자연적 자유 및 사회적 자유

1. [실천이성비판]의 칸트(Kant)에게서 자유의 개념- 초월적 자유와 도덕법칙

칸트는 실천이성 비판에서 '자연법칙'에 종속되는 것은 '부자유'이라라고 한다. 즉 자연법칙은 필연적인 것이며 인과관계에 의해 결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법칙 하에서 모든 것은 인과성에 의해 결정된 것이고 자유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칸트는 결정된 것을 자유와 대립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칸트는 도덕법칙은 자연법칙에 종속되지 않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자연법칙에 종속하지 않는 도적법칙의 존재로부터 '자유'를 설정하고 있다. 칸트에 따를 때 자유란 경험 세계 속에서 직접적으로 '인식'될 수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칸트에게 있어 자유는 자연세계의 필연성에 속하지 않는 진정하게 주체적인 것(자기원인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자연법칙에서 전적으로 독립된 것을 '자유'라고 할 수 있다.

0. 도덕법칙과 양심의 가책
결국 칸트에게 있어 자유는 자연적 인과성, 즉 필연성으로부터 이탈한 '초월적 자유'를 말하고 이러한 초월적 자유로 인해 도덕적 법칙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을  추론할 수 있는 도덕법칙이 실재하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러한 물음에 대해 칸트는 양심의 가책이 도덕법칙의 현존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양심의 가책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즉 도덕법칙도 시간 속에서 형성된 자연법칙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도덕 법칙은 각 사회의 역사성이 그 사회의 도덕적 질서의 특수성을 규정하는 것에서도 찾아볼 수 잇다.

2. 스피노자의 자유개념 - 자연법칙(필연성)의 인식
스피노자는 [윤리학]에서 자연법칙에의 예속을 '부자유'로 간주한다. 그러나 그는 자유를 칸드와 같이 자연법칙을 벗어난 초월적 자유를 상정하지 않고, 자연법칙에 대한 인식을 통해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결국 스피노자는 어떤 원인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는 것은 자유롭지 못한 상태이며, 그처럼 결정되어 있는 것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자유의 환상'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자신의 정서를 그처럼 지배하는 자연법칙을 인식하지 못하고 정서를 통제하지 못하는 가운데 나오는 무지인 것이다.

여기서 스피노자는 이러한 정서의 예속에서 벗어나 자유에 이르는 길은 이성에 따르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자연법칙에 대한 인식을 통해 그 법칙의 지배로부터 일정하게 벗어나 그 법칙을 이용할 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자연적 법칙, 즉 필연성을 인식함으로써 자연필연성으로부터 벗어나 자유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다.

0. 필연성 인식이라는 자유의 한계
그러나 필연성을 인식했다고 해서 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필연성을 인식하는 것과 그것을 대상화하여 그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즉 필연성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을 수 있는가? 그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필연성에 대한 읺식에 따른 자유라는 개념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유구되는 자유 또는 일상 생활 속에서 느껴지는 자유의 필요와 연관이 없다는 것이다. 즉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유의의 필요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0. 자연적 자유와 사회적 자유
스피노자는 자연법에 따를 때 그 누구도 타자의 성향에 따라 살 수 없다. 각자는 자기 고유의 자유의 수호자이기 때문이다라고 한 뒤 자유를 "자신의 고유한 성향에 따라 사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자유는 내적 자연이 요청하는 바에 따라 사는 '자연적 자유'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적 자유는 자의를 포괄하는 것으로 타자의 자유를 파괴할 수 있다.

이를 반영해 스피노자는 민주주의에서 이러한 자연적 자유가 사회적 자유로 이행한다고 설정한다. 여기서 스피노자는 민주주의를 "자신의 권력하에 놓인 모든 것에 대한 집합적 주권적 권리를 갖는 하나의 전체로 인간들이 결합하는 것"(정치학.신학논설; 266)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기초와 목적은 "인간들 욕구와 부조리한 지배로부터 구출해서 가능한 한 이성의 한계 속에 머무르게 함으러써, 협력과 평화 속에 살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즉 시피노자는 "[진정한] 자유는 자신의 완전한 동의에 따라 이성의 지휘에 따라서만 사는 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때 이성은 필연성에 대한 인식이라고만 할 수 없다. 이때 이성은 다만 사회성의 가능성에 대한 반성능력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스피노자의 자유 개념은 자의의 규제를 통해 서로의 자유를 보호하는 '사회적 자유'로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3. 헤겔(Hegel)의 자유 개념 - 즉자대자적 의지와 정신
헤겔도 기본적으로 스피노자나 칸트처럼 자연적 자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헤겔은 필연성에 대한 인식으로서의 개념을 자유와 동일시한다. 즉 필연성에 대한 인식을 통해 필연성의 지배를 벗어난 후 필연성에 대해 반작용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유를 그 근보적 규정성으로 하는 의지는 어떤 '자연적 의지'가 아니라 주객합일적 의식에 의해 매개된 '즉자대자적 의지'라는 것이다. 즉 스피노자의 이성적 의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헤겔에게 있어 자연적 의지는 동물적 의지와 같으며 이는 자유라 할 수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반성없는 의지는 자의적인 것이며 자유일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헤겔적 개념에 따를 때 진정한 자유는 "스스로의 목적을 주관성에 따른 규정으로부터 객관적인 규정으로 옮겨 놓는 가운데 바로 이 객관성 속에서 자신을 고수하려는 의지의 활동"을 진정한 자유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는 자연을 억압하는 자유이고 이러한 자유의 진정한 형태가 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는 개인적 주체성과 사회성을 통일시키고 있는 진정한 자유의 주체로 설정되는 것이다.

0. 억압적 자유의 한계
이러한 헤겔의 자유는 결국 국가의 법과 도덕이 진정한 자유라는 입장으로 입법과정의 계급적.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무시한 억압적 입장을 고수하는 자유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이상 칸트, 스피노자, 헤겔의 자유는 자연적 자유를 부정하고 초월적 자유 또는 이성적 자유를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사회적 자유를 말하기 위해 자연적 자유를 부정하고 자의를 규제하지만 그것이 한편으로 자유의 억압이라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4. 사르트르(Sartre)의 자유 개념-'자연적 자유의 공존'으로서 사회적 자유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자유개념을 기본적으로 즉자존재와 대자존재의 구별에 입각한다.

1) 즉자존재
즉자존재란 그 자체로 있는 것으로 수동성도 능동성도 아니다. 그것은 "있는 바" 그대로의 것으로 내면이 부재하는 사물적 존재이다.

2) 대자존재 = 인간  / 자유=인간의 존재=인간존재의 무
대자존재란 즉자존재와는 반대로 그것이 "있지 않은 바"의 것으로 정의되는 것이다. 따라서 대자존재란 결코 포착되지 않는 존재이며 어떤 '본질'로서 파악될 수 없는 존재이다. 여기서 인간이 자유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자기를 대면하여 바라보고 자기를 벗어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자유란 결코 포착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무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는 필연성으로서의 자유로 일종의 자연적 자유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또한 Hegel에게서와는 달리 필연과 자유의 결합을 의미한다. 즉 자유가 인간 자체의 자연으로서, 필연이라는 것이다. 이는 인간에게 있어 자유=자연=필연이라는 도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이러한 사르트르의 자유 개념에 따를 때, 인간의 자유로 인해 우리는 결코 타자를 포착할 수 없다. 즉 타자는 '자기'로 있지 않고 언제나 자기 자신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결국 타자의 내면은 언제나 도망치고고 그리하여 포착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주인-노예의 변증법적 딜레마를 이룬다.

3) 자연적 자유의 두 가지 측면
주인-노예의 변증법적 딜레마에서 자연적 자유는 (1) 행위적 자유와 (2) 내면적(초월적) 자유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여기서 행위적 자유는 주인이 장악할 수 있는 자유인 반면 내면적 자유는 그 누구도 장악할 수 없는 자유이다. 여기서 행위적 자유의 억압은 고통을 초래하므로 내면적 자유의 증오를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도출되는 것이 행위적 자유의 사회적 인정의 필요성이며, 여기서 행위적 자유의 사회적 보호에 따라 자연적 자유는 사회적 자유로 이행하는 것이다.

5. Levi-Strauss의 자유개념 - 이론적 자유의 부정과 관습대로 살아 갈 자유
Levi-Strauss는 자유에 대한 모든 합리주의적 정의에 반대한다. 즉 자유에 대한 정의가 이론적으로 한정되면 한정된 자유가 자연적 상태에서 생동하는 자유 그 자체를 억압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자유에 대한 하나의 규정성을 자유 자체인 것처럼 부과하여 자유의 다른 측면들을 억압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자유의 한계에 대한 대안으로 Levi-Strauss는 영국인의 지혜를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실질적 자유란 오랜 관습의 자유와 기호의 자유, 한마디로 말해 관습대로 살아갈 자유"라는 것이다.

0. 지혜와 관습의 무관성과 관습의 억압성
그러나 문제는 '관습대로 살아갈 자유'와 영국인의 지혜가 별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즉 영국인의 지혜는 타자의 타자성을 존중하고 역사적 조건의 성숙을 기다리는 것인 반면, "관습대로 살아가는 자유"는 그 관습이 타자에 대해 억압적인 경우 결코 타자를 보호하고 존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Levi-Strauss의 '관습대로 살아갈 자유'가 의미하는 것은 목가주의적 시각이자 우민주의적 시각으로 억압.유린의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집단적 수준에서 자유를 말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6. 하이에크의 자유개념 - 관습 속에 축적된 수많은 지성
하이에크는 관습 속에 축적된 지성, 즉 집합적 지성 속에 자생적 질서가 형성되어 있다고 본다. 이러한 하이에크의 자생적 질서는 계획적 이성보다 우월한 것으로 집단적 관습의 자유를 말하는 Levi-Strauss와 같은 우를 범하고 있다.

이러한 집합적 지성은 관습속에 내포된 지배관계를 보지 않으며, 또 자본주의 성립과정에서 국가적.법적 개입의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집합적 지성은 다만 자생적 질서라는 지배관계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7. 중간 개념 정리

1) 내면적 자유: 개인의 고유한 내면이 '자유'의 형태를 취하게 되는 것은 (1) 그 내면과 대립되는 '외부의 구속'이 부과될 때, (2) 그리고 그 개인이 외부의 구속에 종속됨에 따라 그의 외적 행위가 내면과 분리될 때이다. 이는 인간의 내면은 언제나 고유한 것이나 이 고유성이 언제나 '자유'의 형태를 취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즉 개인적 고유성은 언제나 존재하지만, 그가 두려움과 절망에 의해 외부에의 종속을 완전히 받아들인다면 그의 내면적 자유는  부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2) 자연적 자유: 자연적 자유에서 문제는 (1) 육체적 필요에 따른 행위가 자유인가 부자유인가 하는 문제, (2) 자연적 자유와 '자의' 사이의 겹치는 문제가 있다.

(1)과 관련해서는 부자유 1(타자의 구속-부모, 상사, 형제...), 부자유 2(자신의 물리적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선택들=소외된 노동), 부자유 3(육체적 필요의 해소=육체적 구소), 부자유 4(사회적 금지들=도덕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 등이 있다.

(2)와 관련해서는 '자의'는 한글의 의미로는 '자기 마음대로 하는 생각'을 뜻할 수 있다. 그러나 불어적 의미의 '자의'(arbitraire)는 자기 멋대로 판단하고 행동하여 타자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을 전제하고, 독단적 권력행사와 관계된다. 즉 자의는 사회적 관계를 전제하는 것이고, 자유를 빙자한 제멋대로의 행위가 타자에게 피해를 미치는 상황을 지칭한다.

어떻든 자연적 자유는 타자를 염두해 두지 않고 행해지는 것이고 사회의 규제를 받지 않는 것이므로, 타자의 삶을 침해하는 '자의'의 성격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자유의 '자의'적 측면에 대해 Levinas는 "자유의 본질이란 한 마디로 동일자의 제국이다"라고 한다. 즉 자기를 타자에게 부과하는 것이 자유라는 것이다.

3) 사회적 자유:
우리는 현존하는 사회적 자유의 형태들을 (1) 법적 자유, (2) 상호적 자유(시민적.합의적.연합적 자유)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여기서 (1) 법적 자유는 i)기본적으로 국가권력의 자기제한적 자유로 언론, 사상, 집회 등의 이른바 negative한 자유와 ii) 사적 소유의 자유와 같이 지배계급의 활동 근거를 위한 자유들을 상정할 수 있다.

어쨋거나 중요한 것은 '사회적 자유'가 정치체제와 연관된다는 것이다. 즉 특정한 정치체제는 특정한 사회적 자유들만 보장한다는 것이다.

4) 자연적 자유와 사회적 자유의 관계
자연적 자유는 자의의 규제와 자유의 상호보장을 위해 사회적 자유로 이행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유가 어디까지나 개인적 수준에서 위치하는 개인적 향유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자유의 확립과정에는 특정 계급 또는 집단의 이해관계가 관철된다는 점이다.

III. 사회적 자유의 부르지아적 형태들
1. 권력의 접합구조와 부르주아 사회에서 사회적 자유의 의미
부르주아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 (1) 국가권력, (2) 자본의 권력, (3) 지배계급의 권력, (4) 아버지들의 권력의 접합구조를 성찰해야 한다. 여기서 사회적 자유는 (1) 자본의 활동에 대한 국가의 절대주의적 제한을 제거하는 것, (2) 그리고 자본의 활동을 국가적으로 보장받는 것, (3) 또한 자본의 활동에 따른 지배계급의 수혜를 보호받는 것, (4) 그리고 부르주아 계급의 권력의 한 토대로서 아버지들의 권력을 보호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네 가지 권력의 접합구조에 따라 부르주아 사회에서 사회적 자유의 형태들은 다음과 같이 드러난다.
1) 부정적(negative) 자유들-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보편적 자유(언론의 자유 등)
2) 부르주아 계급의 자기 근거를 이루는 자유들 - 소유의 자유(사적 소유의 자유의 조건과 자유의 물질적 조건의 파괴), 정치적 규정, 경제적 자유 등
3) 사랑의 자유들과 유년의 자유들의 제한 - 아버지의 권력과 부르주아 계급의 권력 수호
4) 집합적 행동의 자유들에 대한 제한

이러한 부르주아적 자유는 국민군, 의회, 학교를 통해 존재하고 작동한다. 즉 국민군은 부르주아적 자유의 물질적 토대를 이루며, 이회는 이의 조직작, 학교는 부르주아적 자유를 위한 교육을 담당하는 것이다.

V. 자유의 재구성
자유가 지배 또는 타자의 구속에 대립하는 것이라고 할 때, 진정으로 자유롭다는 것은 자신이 진짜로 원한느 방식대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그러한 삶은 타자들의 존재, 노동의 필요에 의해 기본적으로 제약된다.

따라서 자유의 조건이 우리가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조건이라면, 그것은 1) 권력의 공정한 분배, 2) 노동 소외의 제거, 3) 물질적 기초의 확보, 4) 유년시절부터 개인적 자율성의 보장 등일 것이다.

그리하여 사회적 자유의 새로운 형태들에 대한 모색은 이처럼 자유의 조건들을 사고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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