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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스콧 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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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아비투스>

- 완벽한 소외는 소외의 의식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
부르디외의 <자본주의의 아비투스>를 읽다 본문 내용들을 남긴다. 요즘 내가 맞닥뜨리는 삶의 현장에서의 모순들. 이해할 수 없는...과연 우리에게 희망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제한된 사고의 폭과 깊이 속에서, 그저 내 자신의 입장에서 이해하려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자본주의 아비투스 속에서 살아가며 소유하게 되는 또 다른 형태의 완벽한 소외...

[본문 내용]
직장을 바꿈에 따른 선택한 불안정성은, 자격조건 때문에 일자리를 쉽사리 재발견하는 것이 보장된 사람들에게 국한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강요된 불안정성과 해고의 공포만이 남아 있고, 이것들에 직면하여 모두는 양보하고, 모든 것은 소멸된다. 가장 가난한 사람은 기아와 경멸의 갈림길에 자주 서게 된다. 그래서 자존심의 요구는 모든 대가를 치르는 노동의 지상명령 앞에 양보할 수밖에 없다. 자존심의 요구는 소부르주아, 하급.중급 공무원 같이 내일의 공포에서 해방된 소수의 특권층에게만 진정한 의미의 중요성을 띠게 되는 것이다(p.62).

아주 조그만 상점은 개업에 필요한 자본도, 직업적 자격도, 특정한 적성도, 교육도, 돈도, 장소도, <보호>도 필요치 않는 유일한 일거리이다. 이런 점에서 그것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고, 고된 직업과 모두가 하대하는 직업을 포함해서 모든 직업이 금지된 사람에게 유일한 의존수단이다(p.63).

자존심의 배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도시의 하층 프롤레타리아에게는 직업의 겉모양은 부모나 이웃의 부담으로 사는, 즉 다른 사람에 의해 밥을 먹는 사람이라는 극단적 신용의 실추에 대항하는 마지막 의존수단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한 활동은 진실로 자존심의 수호라는 목적 이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다(p.64).

경제적 필연성의 압력은 주어진 현실을 참을 수 없는, 반항해야 할 것으로 파악하기 고사하고, 그것은 현실에 대한 자각을 금지하기까지 하는데, 그 자각은 일종의 혁명적 사유와는 전혀 다른 것을 전제한다. 그들의 상황이 한 측면을 구성하는데 그 체계를 현실 그대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하층 프롤레타리아는 그들의 생활조건의 개선을 체계의 근본적인 변화에 결부시킬 수 없다(p.90)....요컨대 완벽한 소외는 소외의 의식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정규적 일자리가 없어서 생활에 결여되는 것은, 확실한 수입만이 아니라 시간의 일관성 있는 조직과 구체적 기대의 체계를 규정하는 일군의 제약조건들이다. 정감적 균형과 마찬가지로, 샐활이 영위되는 시간과 공간의 틀의 체계는 정규적 노동이 제공하는 준거점이 없이는 구성될 수 없다. 생활의 전체가 혼란 속에 맡겨진다(p.99).


* 피에르 부르디외, 2002, [자본주의의 아비투스], 최종철 옮김, 동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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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dreamer 2008/06/26 16:54Delete / ModifyReply
이게 얼마만이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