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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스콧 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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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삶과 비정규 노동, 그리고 그 저항의 징후들
- 복지시설행 증가하는 2030? 젊은 부랑자들? 아니, 아예 복지시설을 점거하자! -



1. 무기력한 젊은 부랑자들?

한국일보(2007. 1. 26)에 실업…신용불량… 무기력 2030 "젊은 부랑자 는다"라는 기사가 났다. 기사 내용은 대개 사실(fact) 그 자체와 그 사실에 대한 해석으로 나눌 수 있다. 이 기사는 읽다보면 사실 그 자체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고 싶은 생각을 들게 한다.

기사에는 부제를 통해 "복지시설行 증가…퇴소해도 'U턴' 일쑤… 재활 전문 프로그램 시급"이라고 썻지만 나는 차라리 "2030 복지시설行 증가 … 일자리를 찾아도 'U턴' … 재활 전문 프로그램 무용(無用)" 이라고 쓰고 싶다.

처음 기사의 fact를 가지고 이 도시 속의 삶에 대한 자료를 남길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기사는 언론이 이 사회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 언론의 시각을 학자들이 어떻게 뒷받침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공모 속에서 fact가 우리들에게 어떻게 왜곡되어 전달되는지,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국가는 노동자들의 사회적 저항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등을 생각해보게 한다.

fact는 우리들이 이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 삶을 사회는 어떻게 파괴하고 고립시키며 무력화시키는지 확인해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그 무력함 속에서 나오는 노동에 대한 포기, 그것은 오히려 또 다른 형태의 사회적인 저항인 아닌가 싶다. 


2. 기사의 주요 내용
기사의 주요 내용은 아래 그림과 같이 한 부랑인(?) 시설에 2-30대 입소자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 한국일보, 2007. 1. 26]

그리고 20대 수용자는 정신적, 신체적으로 건강하다는 점이다. 가정 불화나 경제적 문제로 갈 곳을 잃은 경우가 많지만 실업이나 사회 부적응 등으로 복지시설을 찾는 이들도 적지 않다. 취업을 해도 시설을 떠날 생각이 없거나 퇴소한 뒤 금세 되돌아 올 정도로 사회성이 떨어지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젊은 부랑인들이 늘고 있는 것은 사회 적응에 실패하고 이탈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는 해석이다. 

3. 수용자들의 시각

1) 용어 사용-부랑인, 부적응자, 실패자, 이탈자
매스미디어는 이들을 어떻게 재단하고 있는지, 그 시각을 학자들과 전문가들이 어떻게 뒷받침하고 있는지는 기사에 사용된 용어 그 자체만 봐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기사에 사용된 용어들은 부랑인, 수용자, 부적응, 사회 적응, 실패, 이탈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것은 한마디로 수용자의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회 속에서 살아보려고 노력하다가 어쩔 수 없어 복지시설에 찾아갔더니 복지시설은 이들을 수용하며 부랑인, 부적응자, 실패자, 이탈자로 취급하고 있는거다.

2) 비정규노동에 대한 차별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싣고 있다.
# A씨는 한창 사회활동을 할 나이에 왜 이 곳에서 허송세월을 하는 걸까. 고졸 학력인 A씨는 스무 살 때 부모로부터 독립했지만 장기간 실업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음식점이나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 이외에는 이렇다 할 돈벌이에 나선 본 적이 없다. 점점 무기력증에 빠진 A씨는 지난해 7월 제 발로 이 곳을 찾게 됐다.

"음식점이나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 이외에는 이렇다 할 돈벌이에 나서 본 적이 없다"는 표현. 아르바이트라고 표현했지만 대부분 비정규 노동의 한 형태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형태는 이 사회 속에서 이렇다 할 돈 벌이가 아닌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을 은폐하면서 차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A의 조건에서 직업을 구하려고 구인란을 뒤져보면 A가 경험한 일 외에 단순 조립공, 술집 웨이터나 바텐더, 텔레마케팅(영업사원), 총무, 운전 등이 대부분이다. 도대체 어떤 일들이 이렇다할 돈벌이인지 모르겠다. 이 사회에서, 특히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A와 같은 조건의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일들의 대부분은 이런 일들인데, 그것이 현실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비정규직으로라도 어떻게던지 살아보려고 노력했는데 이렇다 할 돈벌이에 나서 본 적이 없다니... 그러다 결국 좌절하고 복지시설을 찾은 것인데 말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혼자만의 문제로 그치고 있지 않다. 이 사회는 가족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상태로까지 몰고 가고 있다. 이제 가족은 서로 버팀목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은 그 한계점에 다다라 오히려 서로에게 짐이 되고 있는 것이다. 기사에 난 아래의 사례를 보자.

#30대 초반의 B씨도 2005년 부랑인 복지시설을 찾았다. 대학을 졸업한 B씨는 대형 쇼핑몰에서 안전 요원으로 근무했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자였던 동생이 몰래 B씨의 신용카드를 사용해 졸지에 수천 만원의 빚을 졌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B씨는 일자리도 잃고 차압 등으로 갈 곳이 없게 되자 복지시설로 들어왔다.

재기를 모색하며 사회로 돌아갔지만 번번히 적응에 실패하고 입ㆍ퇴소를 3번이나 반복했다. 일자리가 생겨도 월급이 채권자에게 그대로 흘러가는 바람에 빈털터리가 됐다. 점점 사회생활에 적응하기가 힘들어졌고 일할 의욕도 상실했다.


3) 재활과 교육의 대상 - 정신적 재활 능력 부족자?
수용자들의 시각 속에서 나온 대책들은 사회 적응을 위한 재활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잇다. 뭐 요지는 정신적 재활 능력을 잃었으니 이를 찾아주고 이와 관련해 사회 적응 프로그램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 적응을 위한 재활 프로그램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20-30대는 교육 과정을 이제야 막 마치고 사회에 나오는 사람들이다. 더구나 이미 고등학교나 대학까지 나온 사람들에게 또 어떤 사회 적응 프로그램이 필요하단 말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배운 교육 프로그램들은 사회 적응에 부적합한 프로그램이었단 말인가? 그렇게까지 무용지물이 될 것을 정말 예측할 수 없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프로그램들은 사회 적응에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응 프로그램이 따로 있는 것인가? 사회가 너무 빨리 변해서 배울 때 시점과 지금 적응 시점의 차이가 있어서 적응이 어렵다는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

4. 기사의 재구성과 재해석
1) 소극적 사회 저항의 증가

나는 '몸과 마음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데도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하고 부랑인 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20,30대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는 기사를 나는 재해석하고 싶다. 기사는 젊은 나이에 사회 적응에 실패한 이들에 대한 재활 프로그램이 시급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젊은이들이 적응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적응할 수 없는 사회 구조 속에서 무기력을 통해 이 사회에 저항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저항은 적극적 저항과 소극적 저항을 생각해볼 수 있다. 적극적 저항은 어떤 대상의 불합리한 요구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음을 집단적 또는 개인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소극적 저항은 불합리한 요구에 대한 거부를 드러내지 않는 경우, 때로는 순응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실제 결과는 기대하지 않은 결과들을 가져오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만큼 교육열이 강한 나라는 드물다. 쉽게 말해 한국의 젊은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또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입시의 압박 속에서 하고 싶은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졸업하면 정규직 일 자리가 없어 취업준비를 하며 아르바이트라도 한다. 그래도 정규직이 되기 어려우면 비정규직으로라도 들어가 정규직의 절반밖에 안 되는 월급을 받으며 일을 한다. 그렇게 생활을 하다가 한계에 다다르고 포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능력 있는 자들은 그것을 실패와 포기로 보이겠지만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소극적 저항이다. 왜냐하면 모두 다 포기를 한다면 아무리 능력이 있더라도 그 능력 하나로 포기한 사람들을 다 감당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더이상 그 능력을 자만하며 과시할 대상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극적 저항의 한 형태로 드러내지 않는 경우는 생계형 범죄를 들 수도 있다. 생계형 범죄는 지배자의 입장에서 보면 범죄일 수 있지만 그 당사자는 범죄이기에 앞서 생존의 문제인 것이다. 그 생존을 위해 법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들키지 않는다면 법이 있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지배자들이야 법이 있어도 법을 어기는 자유를 누리는 판에, 굶어죽지 않기 위해 빵을 훔치는 것이 무슨 죄란 말인가? )

2) 사회적 통제장치의 작동
하지만  복지시설을 찾아오는 젊은이들은 범죄와 같은 식으로 저항하지 않는다. 이러한 형태는 사회적 통제 장치의 틀 내에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푸코의 표현을 빌린다면 사회적 감시장치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순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결과는 기대하지 않은 결과들을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의도하지 않은 수용 대상들이 들어와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복지시설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드러나지 않는 소극적 저항 형태들이 늘었을 것이다. 그리고 경찰 유치장이 더 필요했을 것이다. 성인이 아니라면 아마 소년원 같은 곳이 더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학교, (정신)병원 등... 그런데 지금은 그나마 복지시설이 있어 그 곳으로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유럽의 복지제도가 발달한 과정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만일 이러한 시설이 더이상 이들을 수용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기사의 내용과 같이 '사회의 정신적 재활 능력이 부족'해서 복지시설의 예산을 늘리고 전문 상담사를 배치해서 정신적 재활 능력을 심어주고 이들을 사회로 내보낸다고 해결이 될까? 정신적 재활 능력을 가지고 나와도 받아주거 갈 곳이 없는 현실, 그 앞에서 확인하는 것은 소위 말하는 정신적 재활 프로그램들이 허구라는 것이다.

3) 사회적 수용의 한계
이 지점에서 젊은이들이 복지시설에 오게 된 과정들을 되돌아보면 지금의 문제는 사회의 정신적 재활 능력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다. 기사에서도 '몸과 마음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이들이 찾아오고 있다'라고 쓰고 있다. 이는 결국 사회구조적 문제이고 젊은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수용 능력'이 구조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자리 나눔의 문제와 사회적 분배 구조의 문제와 연결되는 것이다. 이는 노동시장의 문제이고, 현재와 같은 비정규 노동시장 구조로는 더이상 이 사회를 지탱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한계가 복지시설을 통해 소극적 저항 형태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5. 소극적 저항의 확산과 변화의 징후
하지만 이러한 형태의 저항은 확산하려고 한다고 확산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 내재적으로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징후를 나타내다가 어느 시점 급격히 확산될 수 있다. 물론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확산이론에서 S자 곡선은 이러한 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수용자들의 시각 속에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소극적 사회 저항을 무능력자, 부랑자, 사회 적응 실패자라고 취급하고 있다.

확산을 막으려고 극단의 경우에는 유럽의 근대화 과정에서 구빈법이 부랑자법으로 바뀌었듯이 악으로 규정하고 범죄자로 몰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그 법들은 대부분 폐지됐다. 일시적으로는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계가 있는 것이다.

결국 나는 '무기력한 젊은 부랑자 증가'를 소극적 사회 저항의 증가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사회에서 수용할 수 없는 상태에 다다르면서 사회구조 자체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6. 사회적 재활프로그램의 대상들
그리고 나는 기사 내용과 같이 세상을 보는 시각들에 대해 화가 치민다. 젊은이들을 점점 무기력증에 빠지게 한 장본인들은 바로 그들이었다. IMF이후 지금과 같은 정치-경제-법 제도적 변화의 필요성을 부추키고 선전해댄 언론들, 이에 맞장구를 치며 사회를 재단하고 설계한 사람들이 만나는 과정들...  

일반 대중들은 그래도 이들을 믿고 열심히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 삶은 더이상 견딜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 사회를 재단하고 설계해 온 장본인들은 슬쩍 빠져나가며 그 책임을 다시 일반 대중에게 돌리고 있다. 특히 이들은 젊은이들을 무기력증에 빠진 사람들로 평가를 하고 재활 프로그램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재활 프로그램의 대상은 젊은이들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시각을 가진 자들이 아닌가 싶다.

1. ACORN 사례
지역주민운동과 관련해 ACORN 사례는 한국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조직원리를 가지고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ACORN으로 발전할 수 있었나 하는 지점들, 그리고 한국에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들일 것이다. 

2. 지역주민운동의 형성조건
그러나 그 가능성들은 이러한 지역주민운동이 미국에서 형성될 수 있었던 조건들은 무엇인가 하는 지점들을 먼저 짚어본 이후에 찾아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에게는 이러한 분석이 미흡한 실정이 아닌가 싶다. ACORN의 사례도 그러한 운동 자체가 어떤 조건에 의해 가능했나에 대한 분석은 아직 미흡하다. 다만 미국의 시민운동이 발전할 수 있었던 조건과 관련해 카즈넬슨(Ira Katznelson)의 19세기 영국과 미국의 노동계급 형성 조건과 국가 분석을 참고해볼 수 있을 것이다.
3. 지역주민운동의 한계와 노동운동
카즈넬슨의 분석틀은 우리의 조건들을 비교분석해보는 틀로도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카즈넬슨의 논의는 미국의 시민운동이 노동운동과 만나는 지점까지는 나가지는 못하고 있다. 분석대상의 시기적 한계일 수 있다. 이에 반해 ACORN 사례는 어떻게 지역주민운동이 노동운동, 특히 비정규노동운동과 만날 수 있는가 하는 시사점들을 던져주고 있다. 

구태여 노동운동과 지역주민운동이 만나야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례에서 "ACORN의 조직가는 단지 지역에만 관심을 기울이면 안되고 노동의 문제(특히 비정규 노동자), 광역적인 문제 등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이라는 한 사회의 변화를 위해 생산과 소비의 주체인 노동계급 없는 그리고 국가단위의 개입 없는 지역사회공동체 운동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운동이 지역사회공동체를 그만두고 떠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4. 융합적 사회운동 모델과 정치

구사회운동이 대상과 주체에 있어 국가와 노동중심이었다면 신사회운동은 그 대상과 주체의 다양성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래와 같은 ACORN의 조직화 모델은 신사회운동과 구사회운동이 결합해 만들어낸 또 다른 형태의 융합적 사회운동모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아쉬운 점은 정당과는 어떤 관계구조를 형성하고 있는가 하는 지점, 즉 정치와 어떻게 결합하고 있는가 하는 지점이다. 운동은 정치적 기회구조 속에서 동원되거나 이용될 수 있고 정치적 기회구조 그 자체를 바꿔낼 수도 있다. ACORN 사례도 이러한 정치적 기회구조로부터 자유스럽지는 않다. 그러나 문제는 민주주의 제도에서 정치적 기회구조의 중심에 정당이 놓여있다고 가정할 때, 미국에는 유럽과 같이 노동계급의 이익을 대표하는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ACORN 사례는 민주당으로 흡수되는 정치적 기회구조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에 대한 ACORN의 방안은 무엇일까?

5. 융합적 사회운동 모델의 형성조건과 그 한계
이러한 방안은 보다 근본적으로 융합적 사회운동 모델의 형성조건과 그 한계라는 주제 속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참고사이트>

[아카시아]Wade Rathke 초청 지역주민운동 공개강좌 후기

희망찬시민운동/아시아NGO센터 2006/11/26 18:43 리장


Wade Rathke 초청 지역주민운동 공개강좌 후기
창림

아시아NGO센터에서 주최한 Wade Rathke 초청 지역주민운동 공개강좌 내용 정리입니다.
청중들이 환경재단 레이첼 카슨룸을 가득 메운 것을 보니 요즘 시민운동에서 풀뿌리, 주민조직이 관심사이긴 하나 봅니다. 부족한 내용이 많겠지만, 못오신 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올립니다. Wade가 열심히 설명했으니 저는 이거라도 해야지요.  



ACORN 소개

ACORN(Association of Community Organization for Reform Now)은 미국에서 가장 큰 지역공동체 조직으로 사회적 정의와 연대감 강화를 목표로 활동해 오고 있다.ACORN은 1970년 설립 이래로 꾸준히 성장하여 현재는 250,000 회원(개인 및 가족회원)을 두고 있으며, 미국, 캐나다, 도미니카 공화국, 페루, 아르헨티나 등에서 103개 이상의 도시에 850개의 지부를 가지고 있다.

ACORN의 회원들은 회비를 납부하고(1개월에 10달러, 1년에 120달러) 지역의 회의에 참여하고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결합하며, 지역사회를 개선하기 위해 지도자들을 선발한다.

ACORN은 지역공동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을 끊임없이 변화발전시켜오고 있으며, ACORN의 자매단체로는 두 개의 라디오 방송국, 투표자등록네트워크, 주거연합체, 그리고 여러 출판사들이 있다.

ACORN은 올해로 창립 36년을 맞았는데, 중산층 및 저소득계층의 지역사회 공동체 조직 가운데 36년이라는 역사를 가진 그룹이 있다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이다. 단체의 수명, 규모, 범위 등에서 ACORN은 이미 유일한 단체로 꼽히지만, ACORN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 새 영역을 개척할 확고한 의지와 능력을 갖게 하여, 이들을 조직하는 헌신성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 ACORN을 더욱 가치있게 해 준다.

초창기때부터 백인과 흑인, 복지와 가난한 노동자 사이의 문제들을 함께 다루면서 ACORN은 다민족과 다양한 이슈를 조직하는 영역을 개척하였고, 혁신적인 주구 개발, 공동체 미디어, 노동자 조직하기 등 여러 방면으로 그 범위를 넓혔다.

1970년대 베트남 전쟁이후 피폐화된 산업과 늘어나는 실업자 문제를 다루었던 ACORN의 활동은 오늘의 한국 실업문제에 대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또한 1980년대에는 다양한 서비스 노동자들(맥도널드, 피자헛, 버거킹 등)을 지역에서 조직화하였으며 최근에는 가사도우미, 보육도우미 등을 지역에서 조직화하는데 성공하였다. 지역의 여성, 비정규 노동자 및 서비스노동자들을 조직화(Community Union)하는데 크게 기여했던 Wade는 오늘의 SEIU(서비스노동자연맹 180만명 조합원)을 조직화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을뿐만 아니라 공장에서 노동자를 조직했던 정통적인 조직화 방식에서 지역의 CO와 비정규 노동자들을 조직화하는데 성공함으로 오늘의 한국 시민사회 및 노동조합운동에 새로운 도전과 모델을 제시한다.

ACORN은 이슈의 크기에 관계없이 회원들의 삶과 관련된 것이라면 조그마한 지역의 신호등 문제에서부터 지역의 재투자를 대형은행으로부터 끌어내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루어왔다. 몇몇 단체들이 저소득계층에서 지역사회공동체를 조직하는 일을 그만두고 떠날 때 ACORN은 흔들리지 않고 길을 계속 걸어왔다. 그것은 미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대규모 조직들이 없다면 진보적인 변화가 있을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ACORN의 조직원리

1. Co-ordianted Autonomy : 각 지부 조직은 지역별 주요 사업에 대한 자율적인 결정권이 있다. 예를들어 동단위 모임에서는 동단위 사안만 다루고, 시단위 모임에서는 동단위 사안은 다루지 않고 시단위 사안만 다룬다. 전체 조직이 유기적이고 유연한것을 특징으로 한다.
2. Equal representation : 10명의 회원당 1명의 대의원이 있다. 개인회원의 의사는 대의원을 통해서 조직전체의 정책과 방향을 결정한다.
3. Constituency Based : 정형화된 조직 유형은 없다. 농촌에서는 농민회의 형태로, 공장에서는 노동조합의 형태로 조직한다.
4. Membership Dues : 회원은 회비를 내야 할 의무가 있다. 회비를 내지 않으면 회의에도 참석하지 못한다.(70년대에는 1달러/1월 ->90년대 5달러/1월 ->2000년대 10달러/1월)

조직을 어떻게 만드는가? 모델

1. Organizing Committee 조직위원회를 만든다.
조직위원회 멤버는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이고, 서로 균형을 이루기 위해 지역 전반에 고루 분포해야 한다.(철로 옆에 사는 사람만 조직위원회에 참석하면 그 조직은 철로문제만 다루게 될 것이고, 공장지역에 있는 사람들만 참여하면 공장문제만 다루게 될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 지역 안배가 필요) 초기에는 소수로 출발 할 수 밖에 없고 그래도 괜찮다.

2. Door Knocking 문을 두드린다. 가가호호 방문한다.
조직가는 지역인으로 구성된 조직위원회 멤버들과 가가호호 집을 방문한다. 4주동안 한집도 빠지지 않고 돌아야 한다.(Wade는 휘젓다‘Stiring’라는 표현을 썼다) 일반적인 Community의 범위를 1,500세대에서 3,000세대로 잡는데 30여년의 경험상 4주정도 휘젓고 나면 3천 세대 중 1,000세대 가량을 접촉할 수 있었다고 한다.

※ Door Knocking은 이렇게....
- 먼저 조직가의 조직에 대한 간단한 설명하고
- 지역사회 이슈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관심사를 묻는다. 관심없다는 대답을 들었을때는 다른 사람들의 답변을 예로 들어가면서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 이슈나 문제에 대한 해결을 위해서는 조직화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 우리는 민주적인 의사와 결정을 위한 회의 참석과 멤버쉽에 대해 설명한다.
- 마지막으로 첫 번째 모임에 대해서 안내해 준다.
-> 이 모든 과정은 10분 안에 마무리 할 수 있어야 하고,
-> 또, 전할 메시지는 잘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 또, 듣는 사람 입장에서 메시지가 전달되어야 한다.(이해하기 쉽게)

3. 4주후 첫 모임을 잡는다
4주 후 첫모임을 잡는 것은 첫 대면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너무 이르면 지역 전체를 다 돌 수 없고, 너무 늦게 잡으면 이슈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게 된다.
첫 모임에서는 “우리 동네(Community) 문제가 무엇인가?”에 집중해서 이야기한다. 각자 생각하는 이슈에 대해서 논의하고 집중할 이슈를 결정한다. 합의가 되지 않을 경우, 투표를 통해서 이슈를 결정한다.

※ 조직가는 잘 듣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잘 듣는다는 것은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무엇인지, 그 배경은 무엇인지 잘 파악해야 하고, 기억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훈련이 필요하다.



ACORN의 당면과제

지난 36년간 25만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활동해 온 ACORN은 앞으로 5년안에 250만으로 회원을 확장하는 것과 그 안에서 사람들을 더 성장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10년 안에 300만 회원을 조직(미국 인구의 1%)해서 미국을 변화시키는 목표가 있다.
그동안 지역에 기반한 회원(Community Membership)을 조직하는데 집중하였다면, 최근 라디오프로그램이나 웹사이트 등을 통한 회원 모집, 주거환경개선정책 활동을 통한 회원모집, 비정규노동자 조직, 최저임금인상캠페인 등을 통한 회원모집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활동할 계획이다. (Associate Membership, Provisional Membership)
새로운 역할이 생기면서 지역사회 조직가에게는 새로운 역량이 요구되어진다. ACORN 조직가 350명 정도가 25만명의 회원을 대상으로 조직의 원칙을 지키면서 조직을 지속 관리 시키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다. 관리한다는 것은 지속적으로 이슈를 발굴하고 해결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ACORN의 조직가는 단지 지역에만 관심을 기울이면 안되고 노동의 문제(특히 비정규 노동자), 광역적인 문제 등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2006 경제활동인구부가조사> 를 분석한다
비정규직의 규모와 차별의 고착화 국면
비정규직 2만명 증가로 841만4천명, 극심한 차별도 지속
I. 규모의 고착화

1. 전반적 규모 확대 국면의 지속: 비정규직 팽창국면의 고착화

- 2006년 8월 기준 전체 임금노동자 15,351천명 가운데 비정규직 841만 4천명(54.8%), 정규직 657만 4천명(45.2%)으로 비정규직 비율이 전년 동월 대비 1.3%p 감소한 것으로 나타남.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2만여 명이 늘어났음에 비해 정규직은 36만3천여 명이 늘어나서 비정규직 비율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남.

- 비중은 줄었다고 하지만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평가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비정규직 규모 확대의 심각성은 지속되고 있음.

- 경제상황과 노동시장 상황이 결코 좋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지속적인 저성장기조의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은 시기로 전체 고용이 증가했다는 점을 고려하고, 그 가운데서 적은 수라도 비정규직은 증가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의 비정규직 규모는 세계적으로 비슷한 경우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월등히 많다는 현실을 고려할 때, 약간의 비중 감소와 절대인원의 증가는 비정규직 규모 축소를 향한 반전의 기미라기보다는 ‘비정규직 팽창국면의 고착화’로 평가할 수 있음. <표1>


- 부가조사가 처음 실시된 2000년부터 비정규 규모 추세를 살펴보아도 감소국면이 아니라 고착화 국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음.<그림1>



2. 차별적 요소가 강한 ‘간접고용화 현상’에 주목해야

- 주목해보아야 할 것은 파견근로와 용역근로의 경우 매년 그 수가 증가하고 있는데, 올 해도 역시 전년 대비 각각 1만 3천명(전년대비 11.0%P 증가), 6만 8천명(15.8%P 증가)이 늘어났으며, 특히 용역근로를 제공하는 노동자의 수가 비정규 노동자 중 가장 많이 늘어났음. 따라서 전체 노동자 중 파견, 용역의 비중도 0.4%P 높아짐.

- 특히 용역근로가 전체 임금 노동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 부가조사 원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비책이 절실히 요구됨.<그림 6>


- 이렇게 간접고용 비중이 증가하는 간접고용화 현상은 직접고용 비정규직보다 노동조건이 열악하며 차별시정의 대상이 되기 어려운 요소를 안고 있어 ‘비정규직 차별 고착화의 지렛대’로 작용할 가능성이 큼.

- 간접고용화 추세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이와 관련된 위험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음. 간접고용 확대방지를 위해 하도급 관련 법률의 정비와 함께 비정규직 관련법에서 간접고용을 확대하는 장치를 제거해야 하며 불법적인 활용의 빌미가 되는 모호한 조항을 제대로 정비해야 하고, 차별시정의 대상으로서 간접고용을 포괄할 수 있도록 해야 함. <표2>  

3. 기간제 증가에서 다시 감소로

- 비정규직의 고용형태별 규모는 일반임시직이 335만 8천명(21.9%)으로 작년과 마찬가지로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년 대비 0.5%p 늘어난 것으로 나타남. 기간제고용은 233만 6천명(15.2%)으로 기간제 근로자의 수는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고 있음. 다음으로 임시파트 73만 3천명(5.0%), 특수고용 57만 6천명(3.8%), 호출근로 55만 3천명(3.6%) 순으로 나타나고 있음.

- 그런데 고용계약 기간이 분명하고 상대적으로 노동조건이 약간 좋은 기간제 고용 비중이 증가하다 다시 감소세로 돌아서고, 계약 종료가 불분명하고 노동조건도 더 열악한 일반임시직 비중은 다시 높아졌음. 변동성이 강한 추세이나 작년도 기간제 급증이 비정규입법에 대한 사회적 논란의 잠재적 효과로 볼 수 있다고 보았으나 그 결과는 알 수 없음.   

4. 시간제 노동자 증가

- 시간제 노동자도 6만3천여명(8.7%P 증가)이 늘어나고 있는데, 시간제가 가정-직장의 조화를 꾀하며 시간활용을 주체적으로 하면서 일정한 소득도 얻는 시간주권(time  sovereignty)의 장치라기보다 불가피한 선택의 비중이 높은 임시파트타임이 대부분을 차지하므로 바람직한 변화라고 보기는 어려움. 물론 불안정한 호출근로의 감소는 바람직하나 조금 더 나은 다른 비정규직으로 전환이나 자영업으로 또 가사로의 이동 등 다양한 이동경로가 존재하므로 확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움. <표3>

5. 비정규직의 여성중심화 지속

- 성별 정규직-비정규직의 비율을 살펴보면 남자의 경우 891만여 명의 임금노동자 중에서 정규직이 484만 9천여명(54.4%), 비정규직이 405만 9천여명(45.6%)으로 전년 동월 대비 비정규직 비율은 0.8%p 감소하였음. 여자의 경우 644만여 명의 임금노동자 중에서 정규직이 208만 7천여명(32.4%), 비정규직이 435만 5천여명(67.6%)으로 전년 동월 대비 비정규직 비율은 1.9%p 감소하였음. 여성 비정규직의 비율은 여전히 67.6%로 높게 나타나고 있지만 정규직 고용이 168천여명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남. 따라서 ‘비정규직의 여성중심화 경향도 지속’되는 국면임. <표6>

- 고용형태별 남녀 구성비를 살펴보면 차이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음. 임금노동자 중 남자와 여자의 비중은 58:42로 나타나고 있으나 정규직의 경우 70:30으로 남성이 압도적임. 그리고 일반임시직, 파트타임, 특수고용, 파견근로 등이 여성편중적이며 재택근로 형태의 비정규직인 경우 여성이 91.3%로 여성적 고용이라고 할 수 있음. 전체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42%)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는 고용형태는 정규직과 호출근로를 제외하고는 모든 고용형태로 여성의 경우 높은 비정규직 비율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음.

6. 금융, 공공행정 비정규직 증가

- 산업별 비정규직 비율 중에서는 공공행정, 금융부문의 비정규직 비중 증가가 두드러짐. <그림4>


- 공공, 금융부문의 이러한 비정규직 증가 현상은 올해만의 특징적인 모습이 아니라는데 더 큰 문제가 있음  금융부문의 경우 2004년 정규직 비율이 54.7% 였던 것이 2005년에 50.6%, 2006년에 45.6%로 2년 연속 그 비중이 큰 폭으로 떨어졌음. 공공 역시 마찬가지임.

- 공공, 금융 등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직업층에서 비정규직 증가는 이 부문의 고용의 양극화로 인해 전반적 고용 양극화를 촉발하는 부정적인 사회적 영향을 미치는 것임. 아울러 정부가 비정규직 증가와 차별 심화를 억제하는데 전혀 선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음. (물론 공공부문은 여러 산업분야에 분산되어 있기는 함) 

II. 차별의 고착화

1. 비정규직 임금차별의 지속 확대


매년 전체 노동자들의 월평균임금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으나 정규직의 월평균임금이 6만원정도 인상된 것에 반해 비정규직은 4만원이 인상되어 격차가 더욱 확대되고 있음. 2000년의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73만원 정도 였으나 6년이 지난 올 해 8월의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110만원으로 절대적인 금액에서 차이가 계속해서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남. ‘비정규직 임금차별의 지속적인 확대’ 현상임. <그림3>

- 2005년 8월 현재, 전체 임금 노동자들의 월평균임금은 166만원이며, 정규직 노동자들의 월평균 임금은 226만원,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116만원으로 상대적 임금격차는 변동성을 보이지만 장기 추세선으로 볼 때도 비정규직 임금 차별은 확대되고 있는 추세임. 앞으로 고용형태별 임금격차를 줄이거나 완화시킬 방안이 사회 제도적으로 준비되지 않는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계속 커질 것으로 추정됨. <그림5>
그림  년도별 (비정규직임금/정규직임금)*100과 추세선


2. 비정규직의 사회적 배제의 지속: 사회보험 적용 차별의 지속

- 전체적으로 정규직·비정규직 모두 사회보험 및 법정복지, 부가급여에 대한 적용 비율은 높아지고 있음. 하지만 여전히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적용률은 30% 내외로 정규직의 98%대와 비교했을 때 매우 낮은 수준임. 비정규직의 사회적 권리 배제 현상도 지속되고 있음. 

- 비정규직의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적용 비율은 각각 33.4%, 34.3%, 31.2%로 전년 동월 대비 각 사회보험 적용률은 각각 0.6%p, 0.9%p, 0.5%p 증가하였으나 이와 같은 비정규직의 증가수치는 여전히 매우 미미한 것으로 정부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4대보험의 가입을 유도하고 있기는 하지만 앞으로 획기적인 적용률 확대방안이 필요함.

3. 노동조합을 통한 권리 확보 방안 부재 지속

- 2006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서 전체 노동자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11.3%로 전년 동월 대비 0.5%p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음. 정규직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21.6%, 비정규직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2.8%로 전년 동월대비 정규직은 1.1%p, 비정규직은 0.4%p 각각 감소하였음. 이는 전체적으로 노조 가입한 노동자의 수가 줄어들고 있는 추세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됨.

- 전체 조합원수는 약 173만여명 정도로 추산되며, 이 중 정규직은 150만여명, 비정규직은 23만 4천여명으로 추산됨. <표7>


4. 고용형태별 자발성 여부 및 그 이유

- 정규직의 경우에는 현재 일하고 있는 이유가 자발적인 사유라고 응답한 경우가 92.9%였으며, 비정규직의 경우는 48%로 자발적으로 일하는 경우가 절반에 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남. 가장 불안정한 고용이라고 할 수 있는 호출근로의 경우 자발적인 경우는 단지 8.3%에 불과함. <표4>

-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으로 일하는 이유를 질문한 항목에서 정규직은 ‘근로조건에 만족하여’와 ‘안정적인 일자리이기 때문에’라는 응답이 각각 42%와 44.1%로 두 응답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음. 비정규직의 경우에는 ‘생활비 등 당장 수입이 필요해서’가 34.1%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이 ‘근로조건에 만족하여’가 21.1%로 나타났음.

5. 예견되었던 주5일제 적용의 양극화

- 소속 사업장의주 5일제 실시여부를 묻는 질문에 정규직의 경우 51.7%가 실시하고 있다고 응답한 반면, 비정규직의 경우 21.2%만이 그렇다고 대답하여 극명한 차이를 보여줌.<표5>

다시 요약하며

이번에는 예년과 달리 노동부가 아니라 통계청이 발표했는데 그 결과와 비교해보면, 통계청이 비정규직 규모 축소라고 얘기한 것은 노동계 단일안 통계(한국비정규노동센터 집계방식)에서 비중의 축소와 유사하긴 하나 절대적 수치에서는 계속 확대라는 상반된 수치로 나타났다.

비정규센터 통계에 비추어 볼 때, 정부는 1년 이상 고용 계약이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현행 법률체계에서 집계한 경제활동인구본조사 상의 1년 이상 고용계약자를 의미하는 상용직을 무조건적으로 정규직으로 보는 관점에 의거한 통계로 여전히 20%, 약 300만명의 축소 집계를 하고 있다. 현행 법률을 지키려면 1년 이상 고용계약이 난무하는 현실 관행을 바로 잡든지(입법적인 반영을 포함해서), 법률과 어긋나지만 현실에서 합법으로 통용되는 결과를 반영한 정부 통계를 고치든지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통계상으로 현행 법률을 따르면서 관행처럼 굳어진 불법적인 현실에 대해서는 침묵과 방치를 넘어 이를 묵인, 방조하는 통계를 계속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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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살펴보면, 2006년 8월 조사의 결과 비정규직 규모와 차별은 고착화되어 있어 새로운 계기를 필요로 하는 단계로 평가된다. 비정규직의 규모는 과잉팽창 수준에서 계속 머물러 있는 단계이며 이미 포화될 대로 포화되어 있는 비정규직 중심 고용관행이 그냥 고착화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되는 양상으로 평가된다. 임금차별의 정도는 악화 경향을 지속적으로 띠고 있는데, 문제는 이미 이 수준도 사회적으로 수용가능한 차별의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적 권리의 양극분해적인 차별화 양상도 고착화되고 있으면서 노동시간 측면에서 주5일제라는 새로운 사회적 경향에 있어서도 예견된 만큼의 양극화 현상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더욱이 비정규직의 간접고용화 현상은 이런 차별이 새로운 양상으로 버전업하면서 더 심각한 수준에서 재현, 악화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비정규직의 문제는 단지 심각하다는 진단만으로 부족할 정도로 중요한 현실적 과제이다. 어떤 새로운 계기도 만들어지지 못할뿐더러 현실의 흐름은 이를 더 악화시키는 방향으로만 작동하고 있다. 정부의 비정규입법안에 대한 무수한 논란이 있지만, 이런 흐름을 변화시키기에 역부족인 것만은 분명할 것이다. 단적으로 최근에 제출된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해 자영인으로서 보호하는 방안에 머무는 정부 대책으로 이런 상황의 반전은 불가능할 것이다. 비정규입법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사례이다. 정부의 비정규입법안이 비정규직 규모를 획기적으로(경향적으로가 아니라) 줄이는 방안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는 정부도 아마 인정할 것이다.

과연 정규직을 반도 안 쓰는 즉,  절반을 웃도는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기업들이 절반의 임금착취에 의존해서 생존하는 한국 기업의 모델은 과연 타당한가? 사회적인 악영향을 무시하는 것은 당분간 꿈도 꾸지 않는다고 치더라도, 착취적 자본주의 모델이라고 할 비정규직 활용방식을 기업이 먼저 재고해야 하고 정부는 이를 촉진할 새로운 사회제도를 설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비정규직 통계는 이 사회 주도세력에게 그냥 이대로 가도록 방치할 것인지 다시 묻고 있다.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2006-10-29 오후 4:18:02  입력 ⓒ매일노동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