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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스콧 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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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에서 기획연재로 '노동OTL'을 싣고 있다. 아마도 기획연재가 끝난 다음에 단행본  형태로 책을 내지 않을까 싶다. 책의 형식과 내용은 영국의 폴리 토인비가 쓴 [거세된 희망]나 미국의 바바라  에렌라이히가 쓴 [빈곤의 경제]와 같은 형식이 아닐까 싶다.

현장 르뽀건 현장 다큐건 어떤 형식으로든 현재 상태를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쓰여질 수 없는 또는 흔적을 남길 수 없는 사람들의 상태를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은 내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 비록 지금은 현재 상태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시간이 지난 후 지금의 자료가 남아 또 다른 분석이 이루어지고 그 속에서 또 다른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일종의 사료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사회의 보이지 않는 구조에 대한 탐색 자료랄까? 아무튼 지금의 기록은 또 다른 그림을 위한 스케치 작업이기에 내겐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또 하나, 그 기록이 누구에 의해 무엇이 남겨지고 있느냐 하는 점도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감정이나 편집의 개입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사실의 기록을 중시하는 르뽀나 다큐 형식의 기록이 중요하다. <한겨레 21>의 기획연재도 그런 의미에서 자료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적어도 내가 경험했던 것들을 왜곡하며 남기지는 않고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요즘은 현장 자료들을 남기며 드는 몇 가지 생각이 있다. 하나는 이런 르뽀 형식의 자료들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점이다. 아마도 <한겨레21>은 '노동OTL'을 통해 이 사회 속에 있는 노동실태를 고발하고 노동의 문제, 나아가 사회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보자는 취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과연 얼마나 분노하고 사회에 대해 고민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나는 이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기획연재에 실렸듯이 어떻게 해서라도 장시간 여행할 수 있는 고속버스 티켓을 구하려 노력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르뽀를 읽는 많은 수의 독자들은 우리 뒤안길에 놓여 있던 모습들을 보고 공감하기도 하고 이 사회에 대해 분노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다수는 이 현실을 보고 어떻게 해서라도 이런 현실과 만나지 말아야지 하고,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게 일반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이 아닌가 싶다. 그 속에서 현실은 오히려 타자화된다. 모두가 분노하고 이 사회에 대해 고민하리리라고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들의 착각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요즘은 미디어를 통해 이렇게 르뽀로 남겨지는 것. 그것은 어쩌면 사회 고발로 볼 수도 있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을 타자화하고 현실을 재생산하는 미디어의 이중역할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좀 아이러니 하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실을 이렇게라도 남기는 작업이 무의미하고 필요없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르뽀의 다음 단계, 즉 현실이 말해주는 징후와 그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보이지 않는 이 사회의 구조들을 끄집어 내야 하는 작업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으면 길 가다 보기 싫은 현실을 보게 된 거고 피해야 하는, 일종의 남의 일로 남게 되는 거다. 물론 그게 르뽀나 다큐의 한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구조들을 끄집어 내고 보여준다고 르뽀나 다큐가 하는 역할과 큰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쉽게 말하면, "자본주의 사회 그런 거 누구나 다 알어~ 그래서 어쩔건데?"하는 반문과 만나는 거다. 그거에 답할 수 없으면 어줍잖게 떠들지 말고 그냥 세상을 살아야하는 거다. 누구나 한번쯤 '알어~ 하지만...'하며 날개를 꺽는 경험 속에서 살아가는 게 이 사회의 미덕이 아닌가 싶다. 마치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라는 영화가 주는 삶에 대한 답답함이랄까? (양익준 감독의 영화가 흥행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게 아닌가 싶다. 더럽고 답답한 사회지만 그걸 가슴에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이 현실의 씁쓸함 때문...)  

아무튼, 자유롭기 위해서는 르뽀에서 보여주는 현실들, 그 속의 보이지 않는 구조들을 끄집어 내는 작업을 넘어서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 구조를 넘나들 수 있는 길을 찾아내야 하는 작업이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니면 최소한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와 같이 이 사회 구조를 비웃어주는 수작이라도 부려야 할거다.


빈곤의 보도, 보도의 빈곤 한겨레21 사회 | 2009.10.02 (금)

기획연재 - 노동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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