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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스콧 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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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 Fry] The Experience Imperative: A manifesto for industrial designers

글. 켄 프라이(Ken Fry)

디자인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거의 줄곧 인터랙션 디자인 작업을 해왔지만, 내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세계 양자에 다리를 걸치고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산업 디자인 분야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 산업 디자인 업계가 쇠락의 길로 빠져드는 가운데, 반대로 인터랙션 디자인은 번영을 구가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러한 시점에서 나는 산업 디자인 작업에 대한 도전이 필요하다고 본다. 산업 디자인 분야의 회복을 위해 새로운 행동에 나설 필요가 있다.

[원문]
The Experience Imperative: A Manifesto for Industrial Designers ...
The Experience Imperative: A Manifesto for Industrial Designers, by Ken Fry ... The time has come for industrial designers to redefine their profession. Here are ten ways to make that happen ...

[번역]
[켄 프라이] 물건을 넘어 경험... - designflux < article : [Ken Fry ...
2010년 2월 23일 ... [Ken Fry] The Experience Imperative: A manifesto for industrial designers ... 켄 프라이(Ken Fry). 디자인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거의 줄곧 인터랙션 디자인 작업을 해왔지만, ...
짐멜, 메트로폴리스와 정신적 삶


짐멜의 '메트로폴리스와 정신적 삶'(Georg Simmel, "The Metropolis and Mental Life")을 만났다.  왜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삶의 모습이 계산적이고 까칠할 수밖에 없나를 맑스나 베버와 같은 고전사회학자들보다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도시적 삶의 자유와 노동의 분화,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보여지는 삶의 태도들. 어쩌면 이 도시에서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서로를 그저 '일반화된 타자'로 여기고 살아야 하는 이유는 일종의 자기방어적 삶의 모습이다. 짐멜은 이러한 우리들의 삶의 모습들을 구태여 미워하거나 서운해하지 말자는 거다.

사회학에서는 맑스, 뒤르켐, 베버의 저작을 고전으로 삼기도 한다. 여기에 짐멜의 저작도 사회학적 고전의 반열에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짐멜의 저작은 맑스, 뒤르켐, 베버의 저작과 같이 체계적인 분석 속에서 이루어진 저작이 아니다. 짐멜의 저작은 대부분 article형태로 전체적인 사유체계는 글 속에서 유추해야 한다. 읽다보면 맑스, 베버, 뒤르켐의 사유들을 넘나들게 하며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게 짐멜이 갖는 힘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쉬움도 남는다. 하지만 체계적인 분석을 했다면 어땠을까? 오히려 지금보다도 뒤안길에 머물고 있을지도 모른다.

짐멜의 저작은 맑스의 사고와 유사하면서도 맑스가 분석하지 않은 지점을 건드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맑스는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의 생산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짐멜은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의 소비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지점은 맑스의 '자본론'에서 상품과 화폐분석이 짐멜의 '돈의 철학'과 만나게 한다. 맑스는 물질적 생산 속에서 소외를 도출하고 이를 정신적 소외와 연결시킨다. 하지만 짐멜은 물질적 소비 속에서 소외(돈의 철학)을 도출하고 정신적 소외와 연결시키고 있다.

물질적-정신적 생산과 소비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서로 동떨어질 수 없는 구조다. 헤겔과 맑스의 변증법은 이러한 물질적-정신적 생산과 소비가 서로 순환하며 재생산하는 관계 구조에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헤겔은 정신에, 맑스는 물질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맑스는 물질적 생산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문화를 '(임금노동, 상품형태와 같은) 관습적이고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을 자연적이고 불가피한 것으로 보이게끔 하는 것'으로, 실재에 대한 잘못되고 왜곡된 관점을 만들어내는 '허위의식'으로 보고 있다. 즉, 이데올로기적 지배를 위한 수단일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맑스의 분석은 기존 부르주아적 문화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을 뿐 노동자문화에 대한 분석은 하지 않고 있다. 적어도 맑스의 이론틀에서 보면 더 상세한 분석이 필요하다. 생산을 사회적 생산이라는 틀 속에서 분석하는 맑스의 틀에 의하면 문화도 사회적 생산과정에 의해 이미 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사회적 관계에서 소외되었건 아니면 지배자에 의해 전유되었건 문화 생산은 이미 사회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질적 생산과 정신적 생산, 그리고 그 소비를 통해 재생산되는 물질적 생산과 정신적 생산의 관계에 대한 분석의 결여는 베버의 계층구조에 의해 재구성되고 유형화되며 대체되었다. 하지만 베버의 저작에서는 물질적 생산과 정신적 생산, 양자의 규정관계를 모호하게 분리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는 파슨스의 이론으로 연결된다. 이에 반한 글들로 E.P Thompson의 '영국노동계급의 형성'이나 P.Bourdieu의 글들이 있지만 일반이론적 시도로 연결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이론적 공백 속에서 서비스사회로의 사회구조 변화와 문화산업 확대는 향후 베버와 파슨스의  이론에 기반한 사회학 이론들이 지금보다 힘을 얻고 득세할 수 있다.  

짐멜의 글도 베버나 맑스와 같이 사회구조를 도출하거나 거시 사회이론적 구축을 시도는 하지 않는다. 또한 물질적 생산과 정신적 생산의 규정관계를 도식적으로 구분하거나 유형화하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그 글들 속에 있는 단편적인 분석들은 오히려 거시 사회학 이론이나 사회학일반이론 차원으로 끌어올려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다. 이와 함께 예전에 남겼던 내 생각의 단편들(2006/11/03 자유의 재구성과 도시의 탈정치적 지배 )과도 연결해 봐야 할 것 같다. 




소통할 수 없는, 공간의 미시적 분화
도시의 공간, 그 공간은 보이지 않는 벽으로 나누어진다. 마치 꼴라쥬처럼 덕지덕지 벽 속에 갇혀 하나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물리적 공간의 벽이 아닌 관계적 공간의 벽, 서로 인식하고 소통할 수 없는 벽을 통한 차단. 서로 다른 계급관계들이 동시에 이 좁은 공간에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것도 안전하게...그 속에서 사람들은 위안을 느끼며 살아간다.


[관련연구]
조은진(2007), 상류층 주거지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배제양식 - 강남 타워팰리스 주거 공간 및 공간 경험 분석, <경제와사회> 통권 제76호, 2007. 12., pp.122~163.

이 연구는 최근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고 있는 서울시의 고급 주상복합단지를 특정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분’과 ‘배제’, 그리고 공간의 ‘열림’과 ‘닫힘’이라는 이중적 특성의 맥락에서 분석하고 있다. 특히 2002년 시공 완료 전후로 강한 반향을 일으키며 고급 주상복합 거주지의 대표격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강남의 타워팰리스 단지를 대상으로 이러한 공간 분석을 시도했다. 공간 분석의 과정은 우선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기존 주거 공간과의 구별된 공간적 특성을 끌어내고, 이 공간이 지니는 공간적 상징성, 혹은 상징적 알레고리를 독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의 독해와 함께 그 안에서 실제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에 대한 미시적인 연구를 함께 하여 공간과 공간을 경험하는 사람들, 이 둘 간의 상호적 관련성을 읽어낸다. 전통적인 부자 동네인 평창동, 성북동 단독주택은 높은 돌담을 통해 타 계층에 대한 강한 구분과 배제의 기제를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에 반해 최근 새로운 부촌으로 각광받고 있는 타워팰리스 공간은 아케이드 구조와 주상복합 구조를 기본으로 하여 외관상 ‘열린 공간’이지만, 또한 명확하게 구분되는 ‘그들만의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중정(中庭) 형태의 공간 배치와 주상복합이라는 기본 주제를 바탕으로 주거 공간, 소비 공간, 여가 공간, 자연 공간을 결합시킨 공간 통합의 모습은 과거보다 더 영리하고 효율적으로 다른 이들과 자신들을 구분 짓는 배제의 원리를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열려 있되 닫힌 공간’, ‘보이지 않는 벽’을 통해 그들만의 공간을 견고하게 확보해내려는 시도는 주민 정체성 구현의 방식에서도 외부와 자신을 구분 짓는 외향적 배제의 방식이 나타나는 동시에 특별함, 구분됨의 이미지를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는 방식은 커뮤니티나 사조직, 개인 스스로에 대한 인식 면에서 내향적 배제의 방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연구 과정을 통해 특정 주거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계층 배제 방식의 변화와 그 구체적인 특성을 밝히고 나아가 공간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양식과 공간 인식의 방식을 통해 좀 더 구체적인 수준에서의 공간과 사람 연구를 시도했다. 이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계층 양극화가 드러나는 한 부분으로서의 주거 공간 문제를 공간 분석의 수준에서 검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댄 퍼잡스키(Dan Perjovschi)의 작품과 도시의 낙서들

끌리는 날...
가장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10월이다. 당장 마감 기한들이 다가온다. 기한을 맞추기 위해서라면 하루를 분을 재가며 작업을 해도 모자란다. 잠도 줄이고... 하지만 이럴 때만 되면 잘 나가던 진도가 더이상 나가지 않는다. 그리고 걱정만 앞선다. 일은 하지 않고... 그러다 그동안 관심도 없던 책이나 글들이 괜시리 눈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어쩌면 오늘이 그런 날이 아닌가 싶다.

자료를 찾아 여기저기 떠돌다가 댄 퍼잡스키(Dan Perjovschi/루마니아)라는 작가의 그림을 보게 되었다. 뭐랄까... 도시 벽에 그려진 어린 아이들 낙서 같다. 그렇게 그림은 가볍지만 한편으로는 깔끔하고 자꾸 다시 보게 한다. 이런 걸 끌린다고 하나보다.

예술작품들에 대한 나의 열등감


기존의 예술작품들이라는 것들이 보여주는 고고함. 그것은 예술에 문외한인 나로 하여금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선을 긋고 항상 나를 움추려들게 만들었다. 자유(free)롭고 싶지만 내가 그것들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받아야하고 비싼 돈을 주고 전시장을 가야 하고...항상 이런 식으로 대가를 치뤄야했다(fee).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나.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각인된 열등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댄 퍼잡스키 작품은 그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aura)를 깨고 있다. 그리고 일상의 콘텍스트를 가지고, 내 스스로 다시 자유롭게 하나의 그림을 그려보게 한다. 이렇게 글로 말이다. 이게 그의 그림들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도시의 낙서들
그림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참 도시적 삶에 어울릴만한 그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깨끗해보이지만 낙서같이 난삽해보이기도 하다. 질서가 없어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난삽하고 무질서함이 오히려 자본주의적 사회의 질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도시적 삶, 아니면 도시성이랄까...

벽면의 가장 꼭대기에는 자본(capital)과 그것에 대한 신봉(ism)이라는 낙서가 있고 그 아래에서는 조정자(director)를 중시으로 서로 후원적(sponsor)으로 얽힌 사람들의 관계(relation)가 있다. 그 속에서 나(me)는 너(you)를 밟고 존재해햐 하는 사회다. 그리고 서로 전쟁 같은 삶은 파괴로 뒤섞여 있다. 잘 나가는 사람들은 I class 속에서 낭만적으로 살겠지만, 나의 삶은 낭만적(exotic)이지도 않고 지쳐만(exhausted) 가고 있다...  

아우라를 깨고?
하지만 이런 식으로만 해석을 해야할까? 그럼 희망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걸까? 기존의 아우라를 깨고 내 스스로 하나의 텍스트를 그리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관련 사이트]  
개인 홈페이지: http://blog.naver.com/yupspd/10023331328
작가 공식 홈페이지: Dan Perjovschi | Official Website

Projects 85: Dan Perjovschi – at MoMA

Projects 85: Dan Perjovschi, What happened to us?
The Museum of Modern Art in New York will present, staring with May 2, an exhibition of the Romanian artist Dan Perjovschi. For his first solo museum exhibition in the United States, the artist will draw witty and incisive political images, in response to current events, on one wall of The Donald B. and Catherine C.Marron Atrium. Two weeks before the official opening, Perjovschi will begin drawing on the wall during public hours, allowing visitors to observe the creation of the work. The project is also accompanied by a pamphlet created by the artist.

April 26 – May 2 (through August 27)

Video (Part 1)


Video (Part 2)

출처: http://www.lse.ac.uk/collections/geographyAndEnvironment/research/Mommaas%20Urban%20Studies.pdf


Urban Studies, Vol. 41, No. 3, 507–532, March 2004


Cultural Clusters and the Post-industrial City:
Towards the Remapping of Urban Cultural Policy


H.MommaasDepartment of leisure StudiesTilburg University5000 LE TilburgPO Box 90153The Netherlands31 13 466 2003j.t,mommaas@uvt.nl

Hans Mommaas

Summary.
This paper explores and discusses the fairly recent phenomenon of cultural clustering strategies in the Netherlands. Amongst other things based on ideologies of ‘enterprise culture’, the quest for urban imagery and positioning strategies, the changing spatial fabric of cities and a search for economic and cultural revitalisation, for the past 5–10 years, the formation of cultural clusters has turned into something of an urban cultural development hype. However, what at first glance appears as a common model, often accompanied by boldly expressed slogans concerning the new role of culture and creativity in the physical and economic revitalisation of cities, in more detail unfolds as an ambivalent and conflict-ridden mixture of cultural, economic, social and spatial interests and sentiments. From a short-term perspective, such an eclectic blending of interests and sentiments might be considered as a good opportunity for urban cultural developments within a ‘post-modern’ urban development regime. However, from a long-term perspective, there is the danger that the divergent sentiments and interests start to undermine and constrain each other, in the end resulting in adverse effects, mutual distrust and a standstill of developments. Following a detailed investigation of five cultural clustering projects in the Netherlands, and based on Zukin’s account of the exchange of cultural and economic values in the contemporary city, the paper argues that, in order to get out of this potentially self-defeating situation, and to enable a more sensitive but also strategic involvement of the cultural sector in the governance of cultural cluster projects, it is necessary to develop a more sophisticated understanding of the complex dynamics involved. Central to this is a locally specific appreciation of the changing interaction between culture (place) and commerce (market) in today’s mixed economy of leisure, culture and creativity. This implies both a critique and advancement of existing theories concerning the role of culture in urban development and the development of a more detailed comparative perspective on urban cultural policy projects, thus moving beyond overgeneralised perceptions of the developments concerned.



가을, 요즘은 단풍철이다. 하지만 올해는 날이 더워 아직까지 단풍이 제대로 들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가을 단풍을 보기위해 산으로 향한다.  

한국에서 산이라는 장소, 일상생활속에 자리잡고 있는 참 친숙한 공간이 아닌가 싶다. 특히 한국의 산은 도심 주변에 위치하고 있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소다. 그곳에 가면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계곡도 있고, 준비해온 음식을 모여 앉아 먹을 수 있는 너른 바위도 있다. 때로는 절에 들러 풍경소리를 들으며 명상에 잠길 수도 있다. 그렇게 사람과 산이 함께 하고 있다.

         [도봉산 우이암, 그리고 멀리 보이는 도시의 아파트촌 ⓒ 진욱. 2006.10.28]

어느 외국인은 한국의 산행 열풍이 유럽의 축구 열풍과도 같다는 말을 했다. 즉 한국의 산은 모든 사람들에게 빼 놓을 수 없는 또 다른 휴식공간이기도 하고 문화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특히 도시와 같이 소비만이 강요되는 공간에서 도시 노동자들에게 산은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산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이지 않고 산을 오르며 서로의 살아가는 정감을 나눌 수 있기도 하고 함께 삶을 기획할 수 있기도 하다.

이런 산이 산업화 과정, 그리고 그 이후 우리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왔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한다. 거칠지만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들은 모임의 계기가 되었다는 점과, 시대를 거치며 조금씩 변형되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화시기, 회사(공장)나 (사회-노동)운동단체나 산행 모임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있다. 하지만 당시 회사는 동원을 위한 단합의 수단으로, 운동단체 자체가 부정되던 당시 운동 조직은 합법적 모임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지금도 사람들이 모인다는 측면, 특히 자원동원의 측면에서 본다면 둘 다 동일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과 동일하지 않은 차이점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차이점은 무엇일까?

이 곳에는 간단하게 현재 모습의 스케치만 남긴다. 우선 외형상으로 차림이 동일해졌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소위말해 좀 있는 사람들이 아니면 등산복을 입지 않고 그저 가벼운 옷차림들이었다. 예컨대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 정도일 거다. 심지어 직장갈 때 차림 그대로 구두에 정장을 입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산에 가보면 거의 대부분 등산복에 등산화 그리고 등산용 가방을 메고 오른다. 등산복 색깔은 남자나 여자나 검은색이 주를 이루고 등산화는 남자는 밤색이나 회색, 여자는 붉은색이 주를 이룬다. 나도 최근에 그 등산복을 샀다.

산에 오르기. 전에는 산에 오르는 초입에 자리를 잡고 노래를 부르며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요새는 그 노래 소리가 많이 없어졌다. 다만 산을 오른 후 내려와 함께 산을 올랐던 사람들과 간단히 식사를 하고 헤어지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이건 나만이 바뀐 습관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변화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뭏든 다음 산행에서는 이것저것 더 생각해볼 일이다.

생태공원 행사의 글을 읽고 도시에서 공원이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왜 도시에 공원이라는 공간이 생기게 되었는지, 어떤 과정 속에서 만들어졌는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그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등.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그 공원이라는 공간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주말에 가족과 함께 공원에 나와 거니는 모습.
실직일 수도 있고 휴일일 수도 있고 외근 중일 수도 있고...자의건 타의건 생산현장 밖으로 나왔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들른 공원.
야근하고 돌아온 남편이 잠을 잘 동안 아이가 울어 남편이 깰까봐 집밖으로 나와 아이를 데리고 공원을 산책해야하는 아내의 모습.
부모님이 모두 일하러 간 동안 친구들과 공원에 모여 농구를 하던 내 어린시절.
아침이면 조기 운동회 사람들이 모여 에어로빅을 하기도 하고 배드민턴을 치기도 하는 모습.
귀에 이어폰을 끼고 혼자 달리는 모습.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들이 혼자 앉아 있는 모습. 
밤에 친구와 이얘기저얘기하며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

누가 어떤 식으로 어떻게 이용하고 유지하느냐의 문제. 지금까지는 나와 별개의 공간처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닐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한 번 도시 속의 공원에 대해 짧게라도 정리를 해보고 싶네요. 사회운동이 공유하는 또 하나의 장소-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