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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스콧 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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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노동'에 해당되는 글 8건
방송사 공개오디션 프로그램 러시 이유로 든 기사내용이 오히려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을 띄우기 위한 일종의 스포일러성 기사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기사는 대부분 이런 식이기도 하지만....아무튼 짧게나마 관련 단상을 남기다.

[관련기사]


공개오디션 프로그램이 뜨는 이유는 문화상품 생산과 문화노동의 특수성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문화상품은 문화상품을 생산하는 문화노동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비물질적이고 비정형적이다. 그리고 문화상품의 소비는 경험재 성격을 갖고,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측면이 있다. 이러한 특수성 속에서 문화상품을 생산하는 문화노동의 비결정성은 일반적인 상품생산의 노동과정에서 노동의 비결정성보다 높다.

자본주의적 상품생산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상품생산의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가 개입되게 된다. 그러나 문화상품을 생산하는 문화노동의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는 문화상품 특성과 문화노동의 비결정성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일반적인 상품생산 과정의 노동통제와 같은 방식의 적용에 제한이 따른다.

기본적으로 상품생산의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를 위해서는 생산수단에 기반해 이루어지지만 문화상품 생산에 대한 문화노동에 대한 통제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때로는 노래와 같이 특별한 생산수단 없이 문화상품 생산이 가능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문화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자 그 자체는 문화상품이 된다.  

따라서 문화상품 생산에 대한 통제는 생산수단에 기반한 통제가 불가능할 때는 유통에 대한 장악을 통해 문화상품 생산의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를 실현하게 된다. 아니면 노예계약과 같이 기획사가 문화노동자라는 사람 자체를 전적으로 통제하는 구조다.

방송사 공개오디션 프로그램의 등장은 방송사가 문화상품의 한 유형인 방송물의 송출장비, 즉 유통수단에 대한 독과점적 소유에 기반해 유통망을 장악하고 이를 이용해 문화노동을 통제하는 과정으로 전환되고 있는 전환의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기술발전과 제도변화 등에 대응해 이것저것 통제유형을 변화시키며 문화노동에 대한 통제를 유지하다 유통에 대한 통제를 통해 역으로 문화노동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또 다른 경계의 지점이 있다는 생각이다. 오디션 프로그램 과정에 시청자를 참여하게 하고., 시청자에 의해 오디션 참가자들을 선출하게 하는 거치게 함으로써, 시청자라는 기존의 문화상품 소비자를 문화상품 생산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문화상품 생산이 사회적으로 이루어지는 측면보다 시청자들의 개인적 취향, 이들의 선택에 의한 오디션 참여자들의 탈락과정 속에서 문화상품이 완성된다는 점이다.

이런 과정은 문화상품 생산에 참여하는 문화노동을 사회적 노동으로 인식하기 보다 서바이벌 게임으로 인식한다는 거다. 즉, 문화상품은 사회적으로 이루어진 공동의 노동의 결과라는 인식보다 서로 경쟁을 통해 살아남는 과정을 사회적으로 행하고 있는 것이다. 푸코식으로 보면 사회적으로 개인들은 권력을 행사하는 한편 종속되는 것이다. 그것도 경쟁의 논리 속에서...

이러한 개별적 선택 과정에 대한 참여는 승자독식 사회 논리를 무의식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문화상품을 생산하는 문화노동자는 개별화되고, 나아가 문화노동자뿐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은 개별화되고 고립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오디오 프로그램과 같은 문화상상품 또는 엔터테인먼트 상품을 통해 지금은 즐기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 과정에서 고립과 만인에 대한 투쟁 사회를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 열망이라는 이름으로... 최근 증가하고 있는 문화노동자의 죽음은 이러한 사회적 현상, 특히 사람들과의 관계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라이브카페 연주자의 쓸쓸한 죽음
연합뉴스 경제 2010.08.26

(광주=연합뉴스) 장덕종 기자 = 7080세대의 낭만이 남아있는 라이브 카페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던 30대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진찍기 좋은 곳'이라는 주제의 글들. 재미있고 생각해볼 문제다. 공간이 하나의 장소로 변하는 계기, 나와는 다른 공간일 수 있던 곳이 하나의 의미를 갖는 장소로 변하는 계기는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그 공간을 왜 장소로 만드는 것일가?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그 중의 하나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하지만 벗어날 수 없음에 대한 무의식이 반영되어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나의 밖에 있던 공간이 내게 들어와 그 의미를 부여하며 나는 그 장소에 동화되는 계기일 수 있다. 그것은 때로는 잘못된 인식 또는 허구 속의 장소일 수 있다. 공간과 장소에 대한 소외가 일차적으로 발생하고 다시 그것을 찾는 과정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공간과 장소에 대한 소외의 치유일까?

예컨대 '사진찍기 좋은 곳'과 같은 장소들, 아니면 내가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가끔 허영을 부려 찾아가는 여행의 장소들, 그곳은 내 일상의 공간이 아니다. 그렇게 '사진찍기 좋은 곳'이라는 장소는 내 일상에서 벗어난 장소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 속에는 우리 무의식을 반영하는 이미지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내 일상의 공간이 아닌 장소의 이미지는 그 속에 이미 내 허영을 반영하는 이미지들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그 이미지들이 갖는 속성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이미지들이 우리의 삶에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고 싶다. 결국 그런 장소들은 마치 명품에 대한 소비와 같이 동경 속에서 이루어지는 소비대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장소는 문화상품이라는 상품 대상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기사와 블로그들 속에 있는 내용들을 맞춰서 그림을 그려보면 결국 그 장소는 더이상 장소가 아니라 상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 비슷한 곳들...결국 '사진찍기 좋은 곳'이라는 장소는 소비의 결과일 수 있다. 때로는 도시를 벗어나서 그 장소를 찾아가지만 그 곳은 또 다른 형태의 소비와 생산이 이루어지는 노동의 장소일 수 있다. 

그렇게 문화상품에 대한 생산은 소비 속에서 이루지기도 한다. 하지만 생산과 소비가 동일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상품 소유와 상품 소비 간에는 비대칭이 존재한다.

* 또 다른 단상: 우리에게 카메라는 대상을 남기는 생산수단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카메라에 잡히는 대상을 소비할 수 있는 소비수단일 수 있다. 문화의 상품화는 그렇게 생산과 소비수단의 양면성 속에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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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김동유 전시회 가기

구술생애사 방법론과 관련해 요즘은 '구체적 일반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들이 생긴다. 구술생애사뿐 아니라 사회과학 방법론 전반에 걸친 논쟁이 있을 수 있다. 더 깊게 본다는 사회과학 방법론과 관련한 철학적 논쟁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최근 김동유 전시회가 생각의 깊이를 더하게 하고 있다. 마침 광화문 나가는 길에 잠깐 김동유 전시회를 들르다. 운 좋게 이주형 전시회도 함께 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주형의 그림은 내게 기괴함 속에서 거부감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이주형 전시회를 보면서 그 그로테스크함 속의 거부감이 많이 없어졌다.

막상 두 전시회를 함께 보니 오히려 재미있었다라고 할까? 두 작가의 그림을 연결해 사회과학적 방법론을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닌었나 싶다. 관련해 간단한 단상을 남기다. 김동유 전시회는 이미 많은 관련 기사와 동영상이 있다.

박정희+먼로, <환상적 더블 이미지, 김동유전> 노컷뉴스 생활/문화 2010.03.30
‘잘 팔리는 작가’ 소문에 가려진 ‘진가’ 찾기 경향신문 생활/문화 2010.04.07

나의 결론을 먼저 남긴다면, 김동유의 그림 속에서는 사회과학 분석에 있어 분석 대상과의 '거리'의 중요성을, 이주형의 그림 속에서는 분석 대상에 대한 '공리적 시각' 버리기의 필요성이 아닌가 싶다. 나만의 해석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해석이 틀릴 수 있다. 그래서 틀릴 가정은 항상 열어놔야 한다는 생각이다.


II. 김동유 그림 속의 '구체적 일반성'

구술생애사 연구가 추구하는 바는 "생애사를 통해 드러나는 특정사회의 '구체적 일반성'을 재구성하는 것이다"(이희영, 2006). 즉 구술생애사는 한 사람의 생애사를 통해 사회를 재구성는 방법론인 것이다. 여기서 구술생애사는 한 개인의 생애사라는 미시적 접근을 통해 특정 사회를 재구성하는 거시사적 접근을 시도하기도 한다. 즉, 미시를 통해 거시를 그리는 한편 미시와거시의 구분과 경계 긋기의 무의미함과 이의 통합을 시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김동유의 그림은 미시와 거시라는 보는 거리에 따른 그림의 차이가 명백하게 존재함을 보여준다. 다시말하면 미시와 거시의 구분과 경계가 명백히 존재함을 증명하는 그림이다. 물론 역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번 성곡미술관에서의 '지독한 그리기 figure 2 figure'라는 주제의 전시는 김동유가 한편으로는 그림 속의 그림, 또는 그림을 통한 그림을 그리는 시도를 함으로써 미시와 거시의 경계 구분의 의미를 무의미하게 하는 시도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경제는 보는 거리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 문제다. 즉, 구분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시각의 거리 속에서 구분이 명백해지고 구분이 존재하게 된다.

이건 구체적 일반성이라는 가정 속에서 구체와 일반성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나비-보살'이라는 작품, 자세히 보면 나비 그림이지만 멀리서 보면 부처의 모습이다. 그래서 부처를 보고 가까이 가면 손을 내밀면 날아갈 것 같은 몽환적인 나비들 뿐이다(개인적으로 그 그림 속의 나비는 너무 예뻤다. 딱 한 마리만 떼어다 흰 바탕의 책상 위에 얹어 놓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심리는 뭔지...)

물론 '박정희 & 마를린 먼로'(작은 마를린 먼로를 통해 커다란 박정희 그리기)의 그림과 같은 것을 통해서는 마를린 먼로를 통해 박정희라는, 즉 사람이라는 공통성을 찾을 수 있겠지만, '과일 & 마를린 먼로(작은 마를린 먼로를 통해 커다란 사과 그리기)'를 통해서는 그런 공통성을 찾을 수 없다. 여기서 '그림 속의 그림 figure 2 figure'는 다양하게 그려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1) '박정희& 마를린 먼로'와 같이 구체적 일반성을 통한 미시와 거시 구분 없애기를 시도할 수 있고, (2) '과일 & 마를린 먼로'와 같이 구체적 일반성 성립의 불가능성을 통한 미시와 거시의 구분의 필요성을 제시할 수도 있는 것이다.  (3) 그리고 '부처 & 정치인(많은 작은 정치인의 그림을 통해 커다란 부처 그리기)'과 같이 다양한 분석대상을 일정한 거리에서 총체적으로 바라봄으로써 평가하는 방법을 제시할 수도 있다.

또 하나는 미시와 거시라는 거리의 문제와 함께 어떤 측면에서 볼 것인가 하는 시각의 문제가 존재한다. 기존 김동유의 그림에서는 주로 거리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복합적 이미지(접히는 세로형 브라인드에 대나무숲과 호랑이를 그려 좌측에서 볼 때는 대나묵숲이 보이게 하고 우측에서는 호랑이가 보이게 한 그림)라는 작품은 시각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것은 결국 사회과학 방법론에 있어 가치 중립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가치중립 속에서 진실은 가려지고 어느 측면도 대변하지 못하고 아무 것도 볼 수 없게 한다. 진실을 가치중립 속에서 은폐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과학 방법론에서 어떤 입장에서 볼 것인가를 밝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학문과 학자의 가치중립'이 허구일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이미 많이 논의되어온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III. 이주형의 '공리적 시각' 버리기


이주형의 그림은 미술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에 도전한다. 즉, 조형의 기본 요소는 점, 선, 면으로 구성되어있다는 칸딘스키적 사고를 부정하고 면과 선 두 가지를 조형의 기본 요소로 보는 것이다. 이런 생각 자체가 어떻게 보면 기존의 공리(公理, axiom)를 버리고 새로운 공리를 세우는 작업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들은 머리카락 같은 선 속에서 뒤통수가 그려지고 포자가 그려지고 풍경이 그려지는 것이다.

이주형 또한 모호한 구별을 통해 사물을 구별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기본요소가 개인과 개인의 합이라는 사회 명목론적 공리, 개인이 있지만 개인과 개인의 합은 단순한 합 이상으로 존재한다는 사회 존재론적 공리, 그리고 이 두 개의 공리는 대립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이 두개의 공리를 어떻게 버리고 재구성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주형이 원론적 질문을 던지듯이 왜 사회과학에 공리가 필요한지, 그 공리가 옳은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과학은 이미 답을 정해놓고 풀어내는 과정일 수 있다. 물론 문제를 푼다는 것은 공리 속에서 정해진 룰을 논리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순수학문에서의 가정이지 사회과학에서는 고정된 공리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 항상 사회 속의 공리는 부유한다. 그것에 대해 의심하고 재점검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구술생애사 관련 자료] 현실 이해를 위한 모색(이희영)
생애사연구가 추구하는 바는 이처럼 생애사를 통해 드러나는 특정사회의 ‘구체적 일반성’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3. 체험과 이야기: 구술텍스트의 특성 생애체험에 대한...
프레시안 사회 2010.03.19 (금) 오전 8:31
마음 한 구석에 꿈꾸는 운명 같은 사랑이, 또 언젠가는... 자극적인 설정과 스토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막장 드라마'라 할지라도 시청률 잘 나오는 스타 작가를... 미니시리즈까지 진출하는 시스템에서 첫 단계가 사라진...
문화는 넓은 의미로 보면 정신을 포함한 일상의 삶 자체라고 할 수도 있다. 조금 범위를 좁히면 넓은 의미의 문화가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구현된 대상들이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문화를 상품화하는 과정을 문화노동이라 할 수 있고, 이러한 일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문화노동자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문화노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즉 문화상품을 생산하는 문화노동을 생산적 노동으로 볼 것인가 비생산적 노동으로 볼 것인가? 어떤 문화노동인가에 따라 잉여가치의 생산과 분배, 그리고 노동 사회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노동은 구상과 실행의 분화 속에서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의 경계에 서 있다. 여기서 생산적 노동은 잉여가치의 형성에 기여하지만, 비생산적 노동은 노동은 잉여가치의 분배에 참여하게 된다(물론 비생산적 노동에서 잉여가치의 분배에 참여하는 문화노동자는 잉여가치 분배 과정 그 자체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임금 노동자 형태로 존재한다.)

잉여가치 창조에 참여하는 전자의 예가 산업의 문화화, 예컨대 산업디자인이나 산업 생산물에 문화적 요소가 가미하는 노동과정이 될 것이다. 후자의 예가 문화의 산업화, 예컨대 예술작품의 상품화, 공연의 상품화, 축제의 상품화 등이라 할 수 있다(축제는 어떻게 보면 잉여가치를 구성원들이 향유하며 집단적으로 분배하던 과정이기도 하다)

잉여가치의 생산이 멈춘 상태, 또는 더이상 잉여가치 형성이 일어나지 않는 산업부문이나 국가의 문화노동은 비생산적 노동에 종사하게 된다. 이들은 잉여가치의 형성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생산적 노동에 의해 창출된 잉여가치가 필요하다. 이는 문화상품을 통해 산업 간 또는 국가 간 잉여가치의 이전과정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문화노동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잉여가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세계체제론적 틀에서 보면 선진 산업사회에서 문화산업이 활성되는 것은 세계체제의 틀 속에서 저개발국가나 개발도상국을 통해 창출된 잉여가치가 선진국으로 이전되어 분배되는 과정이라는 가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저개발국가나 개발도상국가는 일정한 단계에 도달하면, 즉 선진국과 같이 독점자본의 형태에 도달하면 자체 문화상품을 개발한다. 여기서 선진국의 문화산업은 잉여가치 이전 기반이 없으면 붕괴된다. 즉, 선진국의 경우 일정한 기간동안만 세계체제의 틀 속에서 문화산업의 활성화를 통해 문화상품을 팔고 잉여가치의 분배에 참여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선진국이라 해도 잉여가치 창출, 즉 제조업을 등한시하고 문화산업만을 활성화시킬 경우 필연적으로 사회적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는 가정이 가능하다. 향후 영국과 미국이 이러한 예가 될 수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한류와 디자인 도시 서울 , 관광 한국 등을 부르짖지만 제조업 기반의 산업생산이 쇠퇴하고 경쟁력을 잃을 경우 문화산업의 쇠퇴는 급격하게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문화산업의 축은 자본의 이동과 같이 중국과 인도로 갈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문화산업의 활성화는 선진 자본주의 쇠퇴의 초기 단계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문화노동이 생산적 노동이라는 가정을 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이나 '권력이동', '부의 미래',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이나 '소유의 종말' 등을 보면 지식노동과 문화노동은 부의 원천이다. 그리고 세상이 이렇게 변하는구나 하는 문화충격을 받을 수다. 하지만 관점에 따라 이러한 논의는 사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I. 변종적 문화공간: 플레툰 쿤스트할레

당분간 도시공간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기로 했는데 자꾸 공간이 걸린다. 문화노동의 공간적 존재형태에 대해 생각을 하다 '플레툰 쿤스트할레'라는 곳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곳의 원래 모토는 '비판적 메시지를 반영하고,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나가는서브 컬처의 문화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플래툰 쿤스트할레(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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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도 좋지만, '문화노동자'에게도 관심을!
오마이뉴스 연예 2008.06.10 (화) 오후 6:46
큰 피해자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그 슬픔을 위로하며 함께 어울리려는 '문화노동자'의 이야기는 오히려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6일 개봉한 태준식 감독의 <필승 ver2.0 연영석>이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