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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스콧 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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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업'에 해당되는 글 8건
문화산업을 다루며 문화를 잘 모른다는 선배의 지적에 요즘은 적극적으로 문화상품의 흔적들을 따라다니려는 노력. 이번에는 앤디워홀전(2009.12.12 ~ 2010.04.04)이 끝나기 전에 가서 본다는 게 결국 보지 못했다. 끝나기 이틀전에 미술관을 들렀지만 끝나기 전이라 그런지 미술관 입구부터 긴 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얼핏 과학박람회에 동원되어 전시부스 하나 들어가려고 긴 줄을 서서 기다리던 중학교 때 생각이 났다. 내가 뭐하는 짓인지...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할 판이다. 구태여 그 긴 줄을 서서 기다려 볼만큼 내게 중요한 전시회인가 싶기도 하다. 사실 앤디워홀 그림이나 앤디워홀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다. 내 관심은 오히려 앤디워홀을 높이 평가하고 그의 작품을 보러 오는 사람들의 생각과 전시회에 모이는 방식들을 유추해보는 거다. 긴줄은 그 유추를 확인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그렇게 길게 늘어선 줄이 내게는 전시회에 걸린 엔디워홀의 작품들보다 더 큰 의미를 주지 않나 싶다. 일종의 '돈 내고 줄 서서 봐야 하는 동원된 전시회'에 대한 확인이랄까... 5분쯤 기다리다 바로 돌아섰다.  

그렇게 긴 줄로 서서 문화상품을 보고자 하는 수요가 아직 존재하는 한 몇 년 후에 앤디워홀전은 다시 열릴거다(사실 앤디워홀전은 이미 2007년에 리움미술관에서 열리기도 했었다). 그리고 꼭 한국이 아니더라도 계속해서 어디선가 앤디워홀전은 열릴거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앤디워홀전은 문화상품이 자본에 의한 기획상품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산업, 그리고 문화상품은 상품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문화상품은 소비를 위한 매체일 뿐이라는 점이다.

전시회 소개글에는 앤디워홀의 평이 극과 극의 속에 있는 것과 같이 소개를 하고 있다. "시대를 앞서 간 위대한 미술가 vs 대중의 기호에 재빠르게 영합한 상업미술가"라는 서로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이 평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동일한 평가라는 생각이다. 즉, 대중의 기호에 재빠르게 영합한 상업미술가가 시대를 앞서가는 위대한 미술가인 것이다. 여기서 대중의 기호는 기획된 상징 소비 추구의 욕망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

일종의 소비사회...그래서 앤디워홀은 다시 돌아올거다. 그리고 앤디워홀과 같은 유형의 스타 미술가를 동원한 또 다른 앤디워홀류의 전시회가 곧 기획될 거다. 


축제 정보 썸네일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

기간: 2009.12.12 ~ 2010.04.04
장소: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관련정보: 행사정보, 참여정보, 가는방법
주최: 서울시립미술관, 동아일보 등

소개: 앤디 워홀은 상업 디자이너로 출발하여 60년대 팝아트로 미술계 정상에 올라 미술, 영화, 저널 등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누구보다... 더보기


요즘은 시간이 날 때마다 서울에 있는 미술관이나 아트센터 등의 지도를 그리고 있다.
언제, 어디에, 누가, 왜 설립했으며 현재 소유(기업)자는 누구인지, 주로 무엇을 전시하고 있는지, 건축양식은 어떤지 등... 시간이 허락되면 가끔 찾아가 들러보기도 하지만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작업이다. 그냥 시간날 때 조금씩 그리는 재미!  

그림을 그리다보니 의외로 재미있는 경향들이 보인다. 대부분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해 비교적 최근에야 설립되었다는 점, 주요 그룹들은 기본적으로 미술관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 미술관 명이 설립자의 호나 이름 등과 관련이 깊다는 점, 위치가 서울 알짜배기 땅에 위치한 경우가 많다는 점...등. 이러한 경향들이 서로 맺는 관계도를 그려보고 그 의미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처음에는 문화와 문화산업의 자율성에 대한 주장을 지지했다. 하지만 요즘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산업의 확장과 문화의 상품화 과정 속에서, 과연 문화의 자율성을 얘기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든다. 이는 문화산업의 확산 초기 프랑크프르트 학파가 비판한 시각이기도 하다. 이러한 프랑크프르트학파에 대한 비판과 연구 과정에서 나온 것이 문화의 자율성 논의이기도 하다. 나는 발전되는 논의 속에서 생각하기보다 오히려 초기 논의로 거꾸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초기 문화산업에 대한 프랑크프르트학파의 비판적 시각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야 물론 결과때문이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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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넓은 의미로 보면 정신을 포함한 일상의 삶 자체라고 할 수도 있다. 조금 범위를 좁히면 넓은 의미의 문화가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구현된 대상들이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문화를 상품화하는 과정을 문화노동이라 할 수 있고, 이러한 일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문화노동자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문화노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즉 문화상품을 생산하는 문화노동을 생산적 노동으로 볼 것인가 비생산적 노동으로 볼 것인가? 어떤 문화노동인가에 따라 잉여가치의 생산과 분배, 그리고 노동 사회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노동은 구상과 실행의 분화 속에서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의 경계에 서 있다. 여기서 생산적 노동은 잉여가치의 형성에 기여하지만, 비생산적 노동은 노동은 잉여가치의 분배에 참여하게 된다(물론 비생산적 노동에서 잉여가치의 분배에 참여하는 문화노동자는 잉여가치 분배 과정 그 자체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임금 노동자 형태로 존재한다.)

잉여가치 창조에 참여하는 전자의 예가 산업의 문화화, 예컨대 산업디자인이나 산업 생산물에 문화적 요소가 가미하는 노동과정이 될 것이다. 후자의 예가 문화의 산업화, 예컨대 예술작품의 상품화, 공연의 상품화, 축제의 상품화 등이라 할 수 있다(축제는 어떻게 보면 잉여가치를 구성원들이 향유하며 집단적으로 분배하던 과정이기도 하다)

잉여가치의 생산이 멈춘 상태, 또는 더이상 잉여가치 형성이 일어나지 않는 산업부문이나 국가의 문화노동은 비생산적 노동에 종사하게 된다. 이들은 잉여가치의 형성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생산적 노동에 의해 창출된 잉여가치가 필요하다. 이는 문화상품을 통해 산업 간 또는 국가 간 잉여가치의 이전과정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문화노동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잉여가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세계체제론적 틀에서 보면 선진 산업사회에서 문화산업이 활성되는 것은 세계체제의 틀 속에서 저개발국가나 개발도상국을 통해 창출된 잉여가치가 선진국으로 이전되어 분배되는 과정이라는 가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저개발국가나 개발도상국가는 일정한 단계에 도달하면, 즉 선진국과 같이 독점자본의 형태에 도달하면 자체 문화상품을 개발한다. 여기서 선진국의 문화산업은 잉여가치 이전 기반이 없으면 붕괴된다. 즉, 선진국의 경우 일정한 기간동안만 세계체제의 틀 속에서 문화산업의 활성화를 통해 문화상품을 팔고 잉여가치의 분배에 참여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선진국이라 해도 잉여가치 창출, 즉 제조업을 등한시하고 문화산업만을 활성화시킬 경우 필연적으로 사회적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는 가정이 가능하다. 향후 영국과 미국이 이러한 예가 될 수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한류와 디자인 도시 서울 , 관광 한국 등을 부르짖지만 제조업 기반의 산업생산이 쇠퇴하고 경쟁력을 잃을 경우 문화산업의 쇠퇴는 급격하게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문화산업의 축은 자본의 이동과 같이 중국과 인도로 갈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문화산업의 활성화는 선진 자본주의 쇠퇴의 초기 단계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문화노동이 생산적 노동이라는 가정을 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이나 '권력이동', '부의 미래',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이나 '소유의 종말' 등을 보면 지식노동과 문화노동은 부의 원천이다. 그리고 세상이 이렇게 변하는구나 하는 문화충격을 받을 수다. 하지만 관점에 따라 이러한 논의는 사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화산업의 허와 실...
약 1년 전 기사, 향후 한국 산업구조 재편 관련 1년 전 기사. 제조업의 중요성과 제조업 구조변화보다 문화산업 구조로의 재편을 고려하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영미권 문화산업의 하락 구조를 보면 한국 사회의 20년 후 산업 구조 쇠락의 경로가 보인다.

[‘한국號’ 새로운 5년] 문화산업 규모 총20조..14년간 6배 신장  - 파이낸셜뉴스(2008-01-27)


[영미권 문화산업과 신자유주의 관련 글]

2008.09.29
디자인플럭스 저널 01


디지털문화 소비자의 소비수단: 아이폰과 스마트폰이 갖는 함의



[단상: 핸드폰을 바꾼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아이폰 열기가 불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인기가 있다고 신문에 떠들어 대는 것도 홍보의 한 형태일 수 있다. 하지만 대충 기능을 살펴보니 아이폰 같은 스마트폰이 몇 년 안에 확산되면 문화산업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식으로 지각변동이 일어날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이와 관련해 짧은 단상을 남기다.]  


I. 디지털문화 확산과 소비
0. 선진 자본주의 사회의 문화산업 확산

-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포디즘적 생산에 기반한 물질적 생산의 포화와 소비 한계
- 이에 따른 자본의 위기 국면 전황의 필요성과 이를 위해 소비 욕구 전환 과정 필요. 이에 따라 문화 상품 생산과 문화산업의 확대.
- 문화의 산업화와 산업의 문화화라는 문화경제로 선진 자본주의 사회 변화(문화소비사회)
=>탈포디즘,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등 논의
-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산업 확대에 따른 문화 소비자 증가의 한계와 가능성

0. 아이폰 출시와 문화상품 유통 변화
- 문화상품의 디지털화에 따른 디지털 문화상품 소비 확산의 기술적 한계
- 기술변화와 디지털 문화상품 소비수단의 창출: 아이폰과 스마트폰
- 디지털 문화소비 소비수단 확산에 따른 문화산업 자본의 변화와 노동시장 변화는?

II.문화상품 생산과 노동
0. 비물질적(문화상품) 생산과 물질적 생산의 순환적 관계

- 문화의 산업화와 산업의 문화화 => 문화경제 => 문화상품 생산과 문화소비자 증가
- 문화상품과 물질적 생산의 1차적 순환: 산업의 문화상품화(산업제품의 디자인화 등)
- 문화상품과 물질적 생산의 2차적 순환: 문화소비자를 위한 문화 소비수단 상품의 생산 증가(물질적 생산은 비물적 생산의 소비를 추동하는 소비수단 생산 중심으로 제조업 재구성 등)

0. 문화상품 생산의 특수성과 자본의 생산과정 통제 한계
- 문화상품 노동과정 통제의 한계: 문화라는 노동대상의 공공재성, 기술발전에 따라 노동수단에 대한 노동자의 소유 가능성, 생산수단 없이 노동자의 문화자본에 의한 문화상품의 생산 가능성 등
- 자본의 생산수단 소유에 기반한 노동과정 통제 한계. 유통수단 소유에 기반한 유통과정 통제로 통제 방식 변화
=> 문화상품 생산방식 변화와 노동시장의 재구성에 따른 노동시장의 불안정성 확대

0. 신선대제적 통제와 노동의 불안
- 자본의 '신선대제적 통제': 유통과정으로 상품 진입 전 상품기획과 최종 상품평가를 위한 전문가 집단(자본의 사회적 관리집단) 역할 확대(지식사회 또는 지식권력 사회)
- 문화상품 기획평가 집단과 문화상품 생산 집단의 분화 => 문화생산의 외부화에 따른 노동의 불안정성 가속화

III. 디지털 문화상품화와 문화산업 자본의 지위 변화
0. 문화상품의 디지털화와 유통자본의 지위 변화

- 기술발전에 따라 문화상품의 디지털화 - 유통수단과 유통자본의 지위 변화.
- 유통자본의 지위 변화 - 방송사, 출판사, 영화배급사 등의 유통자본이 통신사라는 디지털망 유통자본으로 수렴
- 문화상품의 디지털화에 따른 통신사의 문화상품 수렴 후 문화상품 유통 진출: 영화, 출판물, TV, 신문 등의 디지털 유통 등.
KT, 디지털출판물 온라인마켓사업 진출
아이폰’으로 59개 매체 기사를 한눈에
애플, 아이폰으로 TV 방송한다…CBS·디즈니와 제휴 추진


- 기존 문화상품 유통자본의 지위 변화: 유통자본에서 콘텐츠 거래와 평가자(문화상품 거간 자본)

IV. 노동시장의 불안정화와 이중착취 확대
- 문화상품 생산의 특수성으로 인한 문화산업 노동시장 자체의 불안정성
- 문화상품의 디지털화로 인한 문화산업 노동시장의 변화 가능성
=> 문화상품 생산 노동자에 대한 자본의 이중착취 가능성: 통신사와 기존 문화상품 유통자본(거간자본)에 의한 이중착취 가능성
- 사회적 제도 지체와 분배 문제: 문화상품 생산 노동자의 분배 문제의 한계 - 예컨대 지적재산권을 거간자본과 통신자본이 독식하는 구조의 문제 등  


[관련자료 클리핑 - 흐름과 변화]

카카오톡 아이폰서 쫓겨나나?
한국경제 IT/과학 2011.06.29 (수) 오후 3:39
무료 모바일 메시지 서비스인 카카오톡을 쓰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앱을 삭제하겠다는 방침이다. 카카오톡의 경우 KT와 손잡고 '선물하기'라는 결제시스템을 쓰고 있다. 카카오톡 내에서 '선물함'에 들어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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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스미스,『문화 이론: 사회학적 접근』, 한국문화사회학회 역, 이학사

서론: 문화란 무엇인가? 문화 이론이란 무엇인가?
1장 고전 사회 이론에서의 문화
2장 탈코트 파슨스: 문화 그리고 사회 통합
3장 서구 맑스주의: 이데올로기로서의 문화
4장 상징적 상호작용론, 현상학, 민속방법론: 행위로서의 문화
5장 뒤르케임주의자들: 의례, 분류 체계 그리고 성스러운 것
6장 구조주의와 기호학적 문화 분석
7장 포스트구조주의적 전환
8장 문화, 구조 그리고 행위 수행: 통합을 위한 세 가지 시도
9장 영국 문화 연구
10장 문화의 생산과 수용
11장 텍스트로서의 문화: 서사와 해석학
12장 문화와 자아에 대한 정신분석적 접근
13장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티에 대한 문화 분석
14장 포스트모던과 포스트구조주의 비판 이론


2009년 10월 29일자로 헌재의 미디어법 결정이 내려졌다. 폭력적으로 통과된 미디어법 개정 결과가 헌재 결정을 통해 반쪽의 합리화를 얻어내는 과정이라는 생각이다. 아무튼 미디어법 관련 공방의 2막이 내려졌다. 관련 자료들을 남기다.

[관련자료]
http://news.naver.com/main/hotissue/sectionList.nhn?mid=hot&sid1=100&cid=254880


미디어법 개념은 엄밀한 개념은 아니고 방송법, 신문법, IPTV법, 언론중재법, 정보통신망법, 디지털 전환법, 저작권법 등 7개 법안을 통칭해 쓰는 용어다.  관련 법안의 개정은 헌재 결정과 함께 향후 미디어 시장 재편을 급격하게 진행하게 할 것이다. 크게 본다면 저작권법과 함께 문화산업 전반 재편이 나타날 수도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자본의 미디어 진출 규제가 풀리며 자본의 이윤확대를 위해 문화의 상품화 과정이 가속화되는 지점은 아닌가 싶다. 구태여 좋게 해석하면 시장이 확대된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산업적 측면에서 본다면 오히려 바람직한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여론시장의 집중화와 독점 또는 자본 옹호적인 측면이 강화될 것이다. 미디어법 개정에 대한 찬반 의견에서 가장 대립적인 입장이기도 하다.

여론의 다양화냐 여론의 독점화냐 하는 문제. 대자본 진입은 이미 발생할 수 있는 힘의 문제가 기울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여론시장을 다양화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집중화시킬 수 있고 여론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단순한 시장 참여 다양화에 대한 논리에서는 힘에 따라 시장이 독점화되는 측면을 은폐하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국가에서 규제를 풀어준다는 것은 이러한 시장 병폐를 제어하는 국가 또는 사회적 규제가 철회된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며 소비하던 문화재들, 그것들은 상품화 과정을 거치며 우리 일상 속에서 향유하던 것들이 하나하나 우리로부터 자립하는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 좋은 말로 자립이지 역으로 우리로부터 떠난다는, 즉 소외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말하는 엣지있는 모습들로 다가오겠지만 그것은 돈을 주고 소비해야만 내 것이 되는, 더이상 공공재처럼 소비될 수 없는 타자화된 상품이 될 것이다. 세상은 화려해지겠지만 더 초라해지는 현실 속을 부정하고 그 속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해서 더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할 거다. 하지만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벌이는 죽음의 게임과 그 결과물들은 결국 스타시스템이라는 사회로 만들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문화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의 노동과정도 재구성될 것이다. 물론 노자간 힘의관계에 의해 재구성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조건에서 조직된 노동의 힘은 수동적으로조차도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어떤 조건에 놓여 있는지조차도 모르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조직되지 않은 노동은 또 다른 형태로 사회적으로 배제된 영역 속에서 확대되는 과정을 겪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과 같은 조건 속에서든 조직된 노동도 마찬가지다. 이 배제 속에서 살아 남는 방법, 그것은 남조다 열심히 해서 스타로 성공하면 된다는 생각 속에 자리잡는다. 철없는 생각이라고 폄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철없는 생각들과 이러한 생각들을 먹고 사는 사기적 행각들이 만날 때 환상은 현실이 된다. 그리고 나는 매일 그러한 모습들을 신문에서 읽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I. 청계산 산책길

아직은 이것저것 개념적으로 정리가 되지 않는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 때는 혼자 걸으며 발로 생각해보라던 지인의 말이 생각난다. 그렇게 생각도 정리할 겸 청계산을 들렀다. 서울대공원에서 산을 오르는 입구, 산을 오르기 전 혼자 벤치에 앉아 한참동안 그 풍경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청명한 가을 햇살을 받으며 또 다른 계절로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는 풍경들이 내겐 너무 생경한 모습들이다.

가끔 그런 생경한 풍경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가 이방인처럼 느껴지곤 한다. 낯선 설레임의 여행길에서 느끼던 감정들 같기도 하고, 그 속에서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살아가는 게 그렇게 꿈 같다는 생각도 든다. 시간이 지나고 돌아서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그 무엇들...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기보다는 그냥 청명한 가을 햇살을 맞으며 불어오는 바람을 즐기기로 했다. 떨어진 밤들을 줍기도 하고, 멀리 보이는 도시 풍경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약수에 들러 물 한모금을 추기기도 하고, 그러다 가끔 정신없이 나무를 오르내리는 청솔모 녀석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렇게 솔솔한 가을 바람을 만나다 산행 초입 길 중간에 내려왔다. 사실 나는 힘을 들여 산을 오르는 거는 별로 소질이 없다. 다만 풍경을 바라보며 그저 산책하며 거닐 수 있는 작은 길이면 족하다. 내려오는 길에 국립현대미술관을 들렀다. 
[국립현대미술관 관련 사이트]
국립현대미술관 :: 나누는 문화, 아름다운 세상
국립현대미술관 웹진
국립현대미술관 _ 네이버 블로그


II. 백남준 - <다다익선>과 디지털 사이니지 [ Digital Signage ]

국립현대미술관 램프코어 공간에는 백남준의 <다다익선>과 강익중의 <삼라만상>이 전시되어 있다. 백남준의 <다다익선>은 1,003개의 TV 모니터를 쌓아 놓고 영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백남준이 <다다익선>이라고 한 것은 많은 영상 메세지 중 하나라도 우리에게 의미를 전달해줄 수 있고 소통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도에서 작품명을 정했다는 후기다. 강익중의 <삼라만상>도 <다다익선> 만큼이나 많은 것을 보여주며, 나선형 벽면을 둘러 6만여 점의 오브제, 영상, 음향들이 3인치 연작 속에 박제되어 놓여 있다.

백남준의 작품이 끊임없이 변하는 영상 속에서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면, 강익중의 작품은 그 많은 영상 메세지들을 3인치 타일 속에 하나하나 문자처럼 새겨 놓은 느낌이랄까? 그런 강익중의 작품을 읽으며 벽을 따라 오르다 보면 마지막 꼭대기에서 떡하니 길을 막고 있는 백남준의 로봇 같은 모니터 작품을 다시 만난다.

<전시내용 및 설명 : 멀티플/다이얼로그 ∞>

전시장면 이미지  [사진출처: 국립현대미술관]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보다가 드는 생각, 어쩌면 백남준의 작품은 이제 더이상 예술작품으로 이 전시 공간에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 정류장에 설치된 평면 TV 속의 광고들, 집앞 LG25시 편의점 앞에 붙어있는 평면 TV의 광고들...그렇게 수없이 늘어나는 디지털 사이지 모습들...

백남준의 작품을 그의 의도와 같이 우리에게 유의미한 메세지를 전달하고 소통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까? 나는 그보다는 그의 작품과 같이 우리 일상생활 속에 있는 많은 미디어들이 의미와 메세지를 강요하고 상품을 선전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싶다. 백남준의 작품을 구태여 평가한다면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지금 나타나는 현실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그리고 백남준의 작품이 이미 디지털 사이니지가 되어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소비되고 있다는 생각 속에서 중요한 것은 그의 예술 작품이 문화상품이라는 틀 속에서 물질성을 가진 제품 광고와 연결되는 지점이라는 생각이다.  

[관련기사]
고객만족 넘어 고객에 감동 전해
이데일리 사회 | 2009.10.01 (목)
서울시 중구 무교동 청계광장점에 업계 최초로 디지털 사이니지(Digital Signage) 형태의 새로운 브랜드 홍보관인 ‘미스터피자 디지털 갤러리’를 오픈, 브랜드 체험과 엔터테인먼트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옥외광고시장, '소비자의 눈길을 잡아라' 아츠뉴스 IT/과학 | 2009.04.08 (수)
새로운 옥외광고가 나타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광고는 종합 쇼핑몰, 멀티플렉스 영화관, ktx역사 등을 중심으로 디지털사이니지(digital signage.전자간판)광고물이 확대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소비자의 시선을 쉽게 잡을수도 있으며, 정보의...


III. 문화상품과 사회적 노동


요즘은 문화상품에 대해 어떻게 개념규정을 해줘야할지 고민이다. 규정할 수 없는 문화라는 개념이 상품이라는 개념과 만난다는 것은 역으로 상품이라는 개념에 문화라는 접두어가 붙으며 규정할 수 없는 문화를 개별적 상품으로 규정해 들어가는 과정은 아닌가 싶다. 이 과정에서 문화상품은 소비 그 자체가 상품생산 과정으로, 즉 상품생산과정이 소비과정까지 연장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상품의 사회적 생산과 소비, 그리고 사회적 노동이라는 개념과 만나는 지점이다. 흔히 말하는 프로슈머 (prosumer) 개념이 확대되고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정의 이면에서는 예술이라는 영역이 자리잡고 있다. 이를 매개하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역할의 일부는 화가가 아닌 국립현대미술관이나 그림 경매장과 같은 옥션시장일 수 있다. 영화 배우나 감독 또는 제작사가 아닌 이 영상물들을 배급하는 배급사일 수 있다. 작가나 출판사가 아닌 서점일 수 있다. 일종의 유통자본 또는 소비자본의 역할과 기능이 강화되고 있다.   

한편으로 근 자율주의자들은 사회적 노동, 그 속에서 자율노동에 의한 노동의 해방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들의 논리 속에서 노동이 공장 밖으로 나와 사회적 노동으로 개념을 확장된다는 측면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사회적 노동과정을 통해 상품이 비로서 완성되고 유통자본이 이를 지배하고 재분배 한다는 측면을 다시 생각해보면 자율주의적 논리는 이론적으로 허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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