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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스콧 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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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상품'에 해당되는 글 7건
'사진찍기 좋은 곳'이라는 주제의 글들. 재미있고 생각해볼 문제다. 공간이 하나의 장소로 변하는 계기, 나와는 다른 공간일 수 있던 곳이 하나의 의미를 갖는 장소로 변하는 계기는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그 공간을 왜 장소로 만드는 것일가?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그 중의 하나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하지만 벗어날 수 없음에 대한 무의식이 반영되어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나의 밖에 있던 공간이 내게 들어와 그 의미를 부여하며 나는 그 장소에 동화되는 계기일 수 있다. 그것은 때로는 잘못된 인식 또는 허구 속의 장소일 수 있다. 공간과 장소에 대한 소외가 일차적으로 발생하고 다시 그것을 찾는 과정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공간과 장소에 대한 소외의 치유일까?

예컨대 '사진찍기 좋은 곳'과 같은 장소들, 아니면 내가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가끔 허영을 부려 찾아가는 여행의 장소들, 그곳은 내 일상의 공간이 아니다. 그렇게 '사진찍기 좋은 곳'이라는 장소는 내 일상에서 벗어난 장소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 속에는 우리 무의식을 반영하는 이미지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내 일상의 공간이 아닌 장소의 이미지는 그 속에 이미 내 허영을 반영하는 이미지들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그 이미지들이 갖는 속성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이미지들이 우리의 삶에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고 싶다. 결국 그런 장소들은 마치 명품에 대한 소비와 같이 동경 속에서 이루어지는 소비대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장소는 문화상품이라는 상품 대상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기사와 블로그들 속에 있는 내용들을 맞춰서 그림을 그려보면 결국 그 장소는 더이상 장소가 아니라 상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 비슷한 곳들...결국 '사진찍기 좋은 곳'이라는 장소는 소비의 결과일 수 있다. 때로는 도시를 벗어나서 그 장소를 찾아가지만 그 곳은 또 다른 형태의 소비와 생산이 이루어지는 노동의 장소일 수 있다. 

그렇게 문화상품에 대한 생산은 소비 속에서 이루지기도 한다. 하지만 생산과 소비가 동일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상품 소유와 상품 소비 간에는 비대칭이 존재한다.

* 또 다른 단상: 우리에게 카메라는 대상을 남기는 생산수단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카메라에 잡히는 대상을 소비할 수 있는 소비수단일 수 있다. 문화의 상품화는 그렇게 생산과 소비수단의 양면성 속에서 이루어진다.  

[관련 블로그 및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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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요즘 뜨는 노래

며칠전 이효리와 비가 새 앨범을 발표했다. 이효리는 '치티치티 뱅뱅'으로, 비는 '널 붙잡을 노래'로 요란법석을 떨며 컴백했다. 방송가에서는 1위를 달리고 있다는데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어차피 기획상품이라 또 다른 기획상품이 나오면 곧 사라질거다. 새로운 상품을 팔기 위해 또 다른 유행을 만들고 기존 상품을 죽이는 게 이 동네 생리다. 이 판에서 비와 이효리는 퍼포먼스로 승부를 하고 있어 노래가 얼마나 오랫동안 남을지는 모르겠다.

[관련기사]
- -효리, 화려한 퍼포먼스 ‘양날의 검’ 되나 서울신문 연예 2010.04.16

이에 반해 16일 발표한 윤도현의 '김제동송-오쿄쿄쿄'는 제대로 뜰 것 같은 노래다. 비나 이효리 처럼 발표전부터 대대적인 광고를 하고, 음원유출이니 뭐니 하는 가십거리의 광고성 기사를 만들고, 섹시한 몸매를 과시하며 화려한 퍼포먼스를 하지 않아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뜰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친구들끼리 노래방 가면 한 번 쯤은 꼭 부르게 되는 단골 곡이 되지 않을까 싶다. 김제동 이름대신 내 친구들의 이름을 넣어서...그렇게 조용히 떠서 오래 남을 것 같다. 왜일까? 세 곡의 제작과정과 가사 내용을 들어보면 같은 음악상품이지만 결이 다름을 느끼게 된다.

[관련노래]
- 김제동송~오쿄쿄쿄~~
- 비(Rain) - 널 붙잡을 노래(Love Song) ...
- [HQ] Full MV Lee Hyori - Chitty Chitty Bang ...


II. 같지만 다름

특히 '김제동송-오쿄쿄쿄'송은 다른 곡들과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는 생각이다. 거칠게나마 단상으로 남겨본다. 시간이 지난 후 지금의 글을 읽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이 노래가 몇 년 후에도 사랑받고 있는 노래가 되어있을지 그 결과를 확인해보는 재미...

첫째, 김제동송은 노래를 기획하는 과정 자체가 상품 기획과정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건 윤도현이 김제동에게 우정의 선물을 생각하는 과정에서 나온 곡이다(이 과정 자체를 상품기획 과정으로 볼 수 있지만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즉, 팔기위한 상품이 아니라 주기위한 선물의 가치를 위해 만든 곡이다. 그리고 그 노래에 대한 현장 반응이 좋아 앨범, 즉 음악상품으로 전환되었다. 이는 팔기위해 만들어진 상품과는 다른 가치와 용도를 가지고 만들어졌음을 의미한다. 즉, 이 노래의 쓰임새가 비나 이효리의 노래와는 다르다.

둘째, 가사 내용이 재미있다. 그냥 단순히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나름 삶의 애환(?)이있다. 예컨대 정권이 바뀌면서 방송계에서 퇴출당한 김제동, 그래도 밝고 따뜻한 모습으로 열심히 사는 모습의 김제동을 친구들이 서로 토닥여주는 내용이다. 하지만 윤도현도 남 걱정할 형편은 아니다. 현실의 힘들고 고단한 삶을 보여주고, 서로 힘이 되어주는 가사 정도로 생각하면 될 거다.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레이먼드 윌리암스(Raymond Willams)가 말한 일종의 '시대적 감정구조'를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힘이 있다. 헤어진 사랑의 슬픔을 쥐어짜내 상품으로 만든 가사와는 다른 진가를 발휘하는 거다.

셋째, 곡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한 노동이 무상 노동이다. 일종의 네트워크 속에서의 품앗이 노동이라는 표현이 좋을 것 같다. 윤도현이 작사/작곡하고 MC몽이 편곡해서 김제동 토크쇼에 선물한 것이다. 비물질적이고 무상의 노동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게 무상은 아니다. 서로의 관계 속에서 서로의 유명세를 빌려주고 이 속에서 윤도현, MC몽, 김제동이라는 자기 이름, 즉 자기 유명세를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서로 무상노동을 주고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 문화노동자는 자기 상품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 동네의 돈 버는 방식은 이런 관계를 유지하고 그 속의 자원을 공유하는 것이 돈 버는 방식이다. 그리고 노래가 뜨면 윤도현, MC몽, 김제동은 같이 돈 버는 거다.  

넷째, 수익의 분배구조가 기존 상품과 다르다. 곡을 만든 의도가 상품이 아닌 선물을 위한 것이고, 무상노동의 협업구조 속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니 곡의 주인을 누구라고 하기 힘들다. 비록 윤도현이 만들었지만 김제동에게 선물로 줬는데...그 곡을 윤도현이 앨범으로 만들어 수익을 챙긴다는 게 보기에 좋은 구조는 아니다. 뭐 윤도현이 마음먹고 챙긴다면 챙길 수 있는 구조긴 하다. 하지만 윤도현은 앨범을 발표하고, 그 수익금을 김제동의 꿈인 대안학교의 설립을 위해 김재동에게 기부하기로 했다. 일종의 수익을 공유하고, 대안학교를 통해 그 수익을 사회적으로 분배하게 되는 구조다.
 
다섯째, 상품형태와 상품 유통과정이 기존 앨범형태의 음악상품과 다르다. 사실 기획된 음악 상품은 상품을 만들기 위해 막대한 돈이 투입된다. 기획에서부터 음악상품을 만드는 과정에 투입되는 노동, 그리고 광고에 드는 비용은 한두 푼이 아니다. 하지만 기획된 음악 상품의 성공여부는 뚜껑을 따기 전에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한다. 실패하면 거기에 투자된 돈을 회수할 길이 없다. 까닥하면 망하는 거다. 그래서 보통은 음악 앨범에 여러 곡을 수록해 판다. 여러 곡 중 하나라도 성공하면 다른 곡에 들어간 비용도 가 보상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투자된 비용을 뽑기 위해 조금이라도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절대 한 곡만 팔지는 않는다(물론 최근에는 디지털화되면서 이러한 번들형으로 앨범을 제작하더라도 판매는 한 곡씩 이루어지는 형태다. 그래도 앨범은 번들형으로, 즉 한번 곡을 반표할 한 곡만 발표하지 않고 여러곡을 발표한다. 이번에 컴백한 이효리나 비도 이런 식으로 앨범을 발표했다).

하지만 김제동송은 디지털 싱글(Digital Single)앨범으로 발표되었다. 특이한 유형의 음악상품형태다. 이는 김제동송이 선물을 할 목적으로 작사.작곡되었고, 만들어지는 과정에 돈도 별로 들지 않았기 때문이 가능한 것이다. 기존 CD형태의 앨범이라면 앨범제작에 따르는 제반 관련 비용이 들겠지만 디지털로 만들면 녹음비만 있으면 된다. 쉽게 생각하면 특별히 투자된 것도 없고 매몰된 비용도 없고, 꼭 돈을 벌려고 만든 것도 아니다. 이게 바로 '디지털 싱글'이라는 형태로 발표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러나 꼭 이와 같은 조건이 아니더라도 디지털 기술 발달에 따라 향후 이런 식의 디지털 싱글 앨범 형태는 확대될 것이다.


III. 다름에 대한 평가

문화상품은 그 상품 자체를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것을 비평하는 과정에서 먹고사는사람들이 있다. 문화상품의 생산자와 이에 대한 평가는 일종의 공생관계 속에 있다. 향후 이와 관련해 언론의 기사와 평가자들의 평가의 변화도 볼 필요가 있다.


[관련기사]
- 윤도현 ‘김제동송-오쿄쿄쿄’ 디지털싱글 공개 ‘재치만점!’ 뉴스엔 연예 2010.04.16
- 윤도현이 만든 `김제동송` 디지털 싱글로 발표 매일경제 연예 2010.04.16
- 윤도현, 김제동을 위한 찬가 '오쿄쿄쿄' 디지털 싱글로 재탄생 한국경제 연예 2010.04.16
- 윤도현, '김제동송' 선물 우정 과시..수익금은 대안학교에 아시아경제 연예 2010.04.16
- 윤도현, 김제동에 자작곡 ‘오쿄쿄쿄’ 선물…MC몽 ‘편곡’ TV리포트 연예 2010.04.16
- 작은 눈+못생긴 얼굴… ‘김제동 ’, 디지털 싱글 발표 티브이데일리 연예 2010.04.16
- "라면부스러기 같은 얼굴…" 배꼽 쥐는 김제동 한국일보 연예 2010.04.16
- 김제동에게 선물한 윤도현 노래 ‘오쿄쿄쿄 오마이뉴스 블로그 | 2010.04.16



[김제동송 가사]

김제동 송-오쿄쿄쿄 (윤도현 작사/ 곡, MC몽 편곡)

그 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게
너무 신기해 너무 신기해
소주 한 잔만 마셔도 행복해 하는 너를 보면
너무 불쌍해 너무 불쌍해

라면 부스러기 같은 못생긴 얼굴
아직도 고래를 잡지 못한 중년 아저씨

오쿄쿄쿄 쿄쿄쿄 니 웃음 소리에
소박한 사람들은 행복을 찾는다네
뜨거운 너의 가슴 몰라준다 하여도
속상해 하지마라 이승엽이 있잖아

그런데 그럼 난 뭐야
마이크 하나로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는게
너무 놀라워 너무 놀라워
아무리 운동을 해도 변하지 않는 너의 몸이
너무 처량해 너무 처량해

유재석 강호동 보단 웃기지 않아
아무리 좋은 옷을 입어도 넌 자세 안나와

오쿄쿄쿄 쿄쿄쿄 니 웃음 소리에
소박한 사람들은 행복을 찾는다네
뜨거운 너의 가슴 몰라준다 하여도
속상해 하지마라 이승엽이 있잖아
속상해 하지마라 가족들이 있잖아
속상해 하지마라 윤도현이 있잖아
난 너의 영원한 형
여기 내가 있잖아
그런데 난 니 걱정할 때 아니야

I. 김동유 전시회 가기

구술생애사 방법론과 관련해 요즘은 '구체적 일반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들이 생긴다. 구술생애사뿐 아니라 사회과학 방법론 전반에 걸친 논쟁이 있을 수 있다. 더 깊게 본다는 사회과학 방법론과 관련한 철학적 논쟁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최근 김동유 전시회가 생각의 깊이를 더하게 하고 있다. 마침 광화문 나가는 길에 잠깐 김동유 전시회를 들르다. 운 좋게 이주형 전시회도 함께 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주형의 그림은 내게 기괴함 속에서 거부감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이주형 전시회를 보면서 그 그로테스크함 속의 거부감이 많이 없어졌다.

막상 두 전시회를 함께 보니 오히려 재미있었다라고 할까? 두 작가의 그림을 연결해 사회과학적 방법론을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닌었나 싶다. 관련해 간단한 단상을 남기다. 김동유 전시회는 이미 많은 관련 기사와 동영상이 있다.

박정희+먼로, <환상적 더블 이미지, 김동유전> 노컷뉴스 생활/문화 2010.03.30
‘잘 팔리는 작가’ 소문에 가려진 ‘진가’ 찾기 경향신문 생활/문화 2010.04.07

나의 결론을 먼저 남긴다면, 김동유의 그림 속에서는 사회과학 분석에 있어 분석 대상과의 '거리'의 중요성을, 이주형의 그림 속에서는 분석 대상에 대한 '공리적 시각' 버리기의 필요성이 아닌가 싶다. 나만의 해석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해석이 틀릴 수 있다. 그래서 틀릴 가정은 항상 열어놔야 한다는 생각이다.


II. 김동유 그림 속의 '구체적 일반성'

구술생애사 연구가 추구하는 바는 "생애사를 통해 드러나는 특정사회의 '구체적 일반성'을 재구성하는 것이다"(이희영, 2006). 즉 구술생애사는 한 사람의 생애사를 통해 사회를 재구성는 방법론인 것이다. 여기서 구술생애사는 한 개인의 생애사라는 미시적 접근을 통해 특정 사회를 재구성하는 거시사적 접근을 시도하기도 한다. 즉, 미시를 통해 거시를 그리는 한편 미시와거시의 구분과 경계 긋기의 무의미함과 이의 통합을 시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김동유의 그림은 미시와 거시라는 보는 거리에 따른 그림의 차이가 명백하게 존재함을 보여준다. 다시말하면 미시와 거시의 구분과 경계가 명백히 존재함을 증명하는 그림이다. 물론 역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번 성곡미술관에서의 '지독한 그리기 figure 2 figure'라는 주제의 전시는 김동유가 한편으로는 그림 속의 그림, 또는 그림을 통한 그림을 그리는 시도를 함으로써 미시와 거시의 경계 구분의 의미를 무의미하게 하는 시도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경제는 보는 거리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 문제다. 즉, 구분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시각의 거리 속에서 구분이 명백해지고 구분이 존재하게 된다.

이건 구체적 일반성이라는 가정 속에서 구체와 일반성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나비-보살'이라는 작품, 자세히 보면 나비 그림이지만 멀리서 보면 부처의 모습이다. 그래서 부처를 보고 가까이 가면 손을 내밀면 날아갈 것 같은 몽환적인 나비들 뿐이다(개인적으로 그 그림 속의 나비는 너무 예뻤다. 딱 한 마리만 떼어다 흰 바탕의 책상 위에 얹어 놓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심리는 뭔지...)

물론 '박정희 & 마를린 먼로'(작은 마를린 먼로를 통해 커다란 박정희 그리기)의 그림과 같은 것을 통해서는 마를린 먼로를 통해 박정희라는, 즉 사람이라는 공통성을 찾을 수 있겠지만, '과일 & 마를린 먼로(작은 마를린 먼로를 통해 커다란 사과 그리기)'를 통해서는 그런 공통성을 찾을 수 없다. 여기서 '그림 속의 그림 figure 2 figure'는 다양하게 그려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1) '박정희& 마를린 먼로'와 같이 구체적 일반성을 통한 미시와 거시 구분 없애기를 시도할 수 있고, (2) '과일 & 마를린 먼로'와 같이 구체적 일반성 성립의 불가능성을 통한 미시와 거시의 구분의 필요성을 제시할 수도 있는 것이다.  (3) 그리고 '부처 & 정치인(많은 작은 정치인의 그림을 통해 커다란 부처 그리기)'과 같이 다양한 분석대상을 일정한 거리에서 총체적으로 바라봄으로써 평가하는 방법을 제시할 수도 있다.

또 하나는 미시와 거시라는 거리의 문제와 함께 어떤 측면에서 볼 것인가 하는 시각의 문제가 존재한다. 기존 김동유의 그림에서는 주로 거리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복합적 이미지(접히는 세로형 브라인드에 대나무숲과 호랑이를 그려 좌측에서 볼 때는 대나묵숲이 보이게 하고 우측에서는 호랑이가 보이게 한 그림)라는 작품은 시각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것은 결국 사회과학 방법론에 있어 가치 중립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가치중립 속에서 진실은 가려지고 어느 측면도 대변하지 못하고 아무 것도 볼 수 없게 한다. 진실을 가치중립 속에서 은폐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과학 방법론에서 어떤 입장에서 볼 것인가를 밝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학문과 학자의 가치중립'이 허구일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이미 많이 논의되어온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III. 이주형의 '공리적 시각' 버리기


이주형의 그림은 미술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에 도전한다. 즉, 조형의 기본 요소는 점, 선, 면으로 구성되어있다는 칸딘스키적 사고를 부정하고 면과 선 두 가지를 조형의 기본 요소로 보는 것이다. 이런 생각 자체가 어떻게 보면 기존의 공리(公理, axiom)를 버리고 새로운 공리를 세우는 작업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들은 머리카락 같은 선 속에서 뒤통수가 그려지고 포자가 그려지고 풍경이 그려지는 것이다.

이주형 또한 모호한 구별을 통해 사물을 구별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기본요소가 개인과 개인의 합이라는 사회 명목론적 공리, 개인이 있지만 개인과 개인의 합은 단순한 합 이상으로 존재한다는 사회 존재론적 공리, 그리고 이 두 개의 공리는 대립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이 두개의 공리를 어떻게 버리고 재구성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주형이 원론적 질문을 던지듯이 왜 사회과학에 공리가 필요한지, 그 공리가 옳은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과학은 이미 답을 정해놓고 풀어내는 과정일 수 있다. 물론 문제를 푼다는 것은 공리 속에서 정해진 룰을 논리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순수학문에서의 가정이지 사회과학에서는 고정된 공리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 항상 사회 속의 공리는 부유한다. 그것에 대해 의심하고 재점검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구술생애사 관련 자료] 현실 이해를 위한 모색(이희영)
생애사연구가 추구하는 바는 이처럼 생애사를 통해 드러나는 특정사회의 ‘구체적 일반성’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3. 체험과 이야기: 구술텍스트의 특성 생애체험에 대한...
문화산업을 다루며 문화를 잘 모른다는 선배의 지적에 요즘은 적극적으로 문화상품의 흔적들을 따라다니려는 노력. 이번에는 앤디워홀전(2009.12.12 ~ 2010.04.04)이 끝나기 전에 가서 본다는 게 결국 보지 못했다. 끝나기 이틀전에 미술관을 들렀지만 끝나기 전이라 그런지 미술관 입구부터 긴 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얼핏 과학박람회에 동원되어 전시부스 하나 들어가려고 긴 줄을 서서 기다리던 중학교 때 생각이 났다. 내가 뭐하는 짓인지...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할 판이다. 구태여 그 긴 줄을 서서 기다려 볼만큼 내게 중요한 전시회인가 싶기도 하다. 사실 앤디워홀 그림이나 앤디워홀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다. 내 관심은 오히려 앤디워홀을 높이 평가하고 그의 작품을 보러 오는 사람들의 생각과 전시회에 모이는 방식들을 유추해보는 거다. 긴줄은 그 유추를 확인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그렇게 길게 늘어선 줄이 내게는 전시회에 걸린 엔디워홀의 작품들보다 더 큰 의미를 주지 않나 싶다. 일종의 '돈 내고 줄 서서 봐야 하는 동원된 전시회'에 대한 확인이랄까... 5분쯤 기다리다 바로 돌아섰다.  

그렇게 긴 줄로 서서 문화상품을 보고자 하는 수요가 아직 존재하는 한 몇 년 후에 앤디워홀전은 다시 열릴거다(사실 앤디워홀전은 이미 2007년에 리움미술관에서 열리기도 했었다). 그리고 꼭 한국이 아니더라도 계속해서 어디선가 앤디워홀전은 열릴거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앤디워홀전은 문화상품이 자본에 의한 기획상품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산업, 그리고 문화상품은 상품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문화상품은 소비를 위한 매체일 뿐이라는 점이다.

전시회 소개글에는 앤디워홀의 평이 극과 극의 속에 있는 것과 같이 소개를 하고 있다. "시대를 앞서 간 위대한 미술가 vs 대중의 기호에 재빠르게 영합한 상업미술가"라는 서로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이 평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동일한 평가라는 생각이다. 즉, 대중의 기호에 재빠르게 영합한 상업미술가가 시대를 앞서가는 위대한 미술가인 것이다. 여기서 대중의 기호는 기획된 상징 소비 추구의 욕망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

일종의 소비사회...그래서 앤디워홀은 다시 돌아올거다. 그리고 앤디워홀과 같은 유형의 스타 미술가를 동원한 또 다른 앤디워홀류의 전시회가 곧 기획될 거다. 


축제 정보 썸네일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

기간: 2009.12.12 ~ 2010.04.04
장소: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관련정보: 행사정보, 참여정보, 가는방법
주최: 서울시립미술관, 동아일보 등

소개: 앤디 워홀은 상업 디자이너로 출발하여 60년대 팝아트로 미술계 정상에 올라 미술, 영화, 저널 등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누구보다... 더보기


요즘은 시간이 날 때마다 서울에 있는 미술관이나 아트센터 등의 지도를 그리고 있다.
언제, 어디에, 누가, 왜 설립했으며 현재 소유(기업)자는 누구인지, 주로 무엇을 전시하고 있는지, 건축양식은 어떤지 등... 시간이 허락되면 가끔 찾아가 들러보기도 하지만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작업이다. 그냥 시간날 때 조금씩 그리는 재미!  

그림을 그리다보니 의외로 재미있는 경향들이 보인다. 대부분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해 비교적 최근에야 설립되었다는 점, 주요 그룹들은 기본적으로 미술관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 미술관 명이 설립자의 호나 이름 등과 관련이 깊다는 점, 위치가 서울 알짜배기 땅에 위치한 경우가 많다는 점...등. 이러한 경향들이 서로 맺는 관계도를 그려보고 그 의미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처음에는 문화와 문화산업의 자율성에 대한 주장을 지지했다. 하지만 요즘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산업의 확장과 문화의 상품화 과정 속에서, 과연 문화의 자율성을 얘기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든다. 이는 문화산업의 확산 초기 프랑크프르트 학파가 비판한 시각이기도 하다. 이러한 프랑크프르트학파에 대한 비판과 연구 과정에서 나온 것이 문화의 자율성 논의이기도 하다. 나는 발전되는 논의 속에서 생각하기보다 오히려 초기 논의로 거꾸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초기 문화산업에 대한 프랑크프르트학파의 비판적 시각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야 물론 결과때문이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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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문화 소비자의 소비수단: 아이폰과 스마트폰이 갖는 함의



[단상: 핸드폰을 바꾼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아이폰 열기가 불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인기가 있다고 신문에 떠들어 대는 것도 홍보의 한 형태일 수 있다. 하지만 대충 기능을 살펴보니 아이폰 같은 스마트폰이 몇 년 안에 확산되면 문화산업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식으로 지각변동이 일어날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이와 관련해 짧은 단상을 남기다.]  


I. 디지털문화 확산과 소비
0. 선진 자본주의 사회의 문화산업 확산

-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포디즘적 생산에 기반한 물질적 생산의 포화와 소비 한계
- 이에 따른 자본의 위기 국면 전황의 필요성과 이를 위해 소비 욕구 전환 과정 필요. 이에 따라 문화 상품 생산과 문화산업의 확대.
- 문화의 산업화와 산업의 문화화라는 문화경제로 선진 자본주의 사회 변화(문화소비사회)
=>탈포디즘,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등 논의
-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산업 확대에 따른 문화 소비자 증가의 한계와 가능성

0. 아이폰 출시와 문화상품 유통 변화
- 문화상품의 디지털화에 따른 디지털 문화상품 소비 확산의 기술적 한계
- 기술변화와 디지털 문화상품 소비수단의 창출: 아이폰과 스마트폰
- 디지털 문화소비 소비수단 확산에 따른 문화산업 자본의 변화와 노동시장 변화는?

II.문화상품 생산과 노동
0. 비물질적(문화상품) 생산과 물질적 생산의 순환적 관계

- 문화의 산업화와 산업의 문화화 => 문화경제 => 문화상품 생산과 문화소비자 증가
- 문화상품과 물질적 생산의 1차적 순환: 산업의 문화상품화(산업제품의 디자인화 등)
- 문화상품과 물질적 생산의 2차적 순환: 문화소비자를 위한 문화 소비수단 상품의 생산 증가(물질적 생산은 비물적 생산의 소비를 추동하는 소비수단 생산 중심으로 제조업 재구성 등)

0. 문화상품 생산의 특수성과 자본의 생산과정 통제 한계
- 문화상품 노동과정 통제의 한계: 문화라는 노동대상의 공공재성, 기술발전에 따라 노동수단에 대한 노동자의 소유 가능성, 생산수단 없이 노동자의 문화자본에 의한 문화상품의 생산 가능성 등
- 자본의 생산수단 소유에 기반한 노동과정 통제 한계. 유통수단 소유에 기반한 유통과정 통제로 통제 방식 변화
=> 문화상품 생산방식 변화와 노동시장의 재구성에 따른 노동시장의 불안정성 확대

0. 신선대제적 통제와 노동의 불안
- 자본의 '신선대제적 통제': 유통과정으로 상품 진입 전 상품기획과 최종 상품평가를 위한 전문가 집단(자본의 사회적 관리집단) 역할 확대(지식사회 또는 지식권력 사회)
- 문화상품 기획평가 집단과 문화상품 생산 집단의 분화 => 문화생산의 외부화에 따른 노동의 불안정성 가속화

III. 디지털 문화상품화와 문화산업 자본의 지위 변화
0. 문화상품의 디지털화와 유통자본의 지위 변화

- 기술발전에 따라 문화상품의 디지털화 - 유통수단과 유통자본의 지위 변화.
- 유통자본의 지위 변화 - 방송사, 출판사, 영화배급사 등의 유통자본이 통신사라는 디지털망 유통자본으로 수렴
- 문화상품의 디지털화에 따른 통신사의 문화상품 수렴 후 문화상품 유통 진출: 영화, 출판물, TV, 신문 등의 디지털 유통 등.
KT, 디지털출판물 온라인마켓사업 진출
아이폰’으로 59개 매체 기사를 한눈에
애플, 아이폰으로 TV 방송한다…CBS·디즈니와 제휴 추진


- 기존 문화상품 유통자본의 지위 변화: 유통자본에서 콘텐츠 거래와 평가자(문화상품 거간 자본)

IV. 노동시장의 불안정화와 이중착취 확대
- 문화상품 생산의 특수성으로 인한 문화산업 노동시장 자체의 불안정성
- 문화상품의 디지털화로 인한 문화산업 노동시장의 변화 가능성
=> 문화상품 생산 노동자에 대한 자본의 이중착취 가능성: 통신사와 기존 문화상품 유통자본(거간자본)에 의한 이중착취 가능성
- 사회적 제도 지체와 분배 문제: 문화상품 생산 노동자의 분배 문제의 한계 - 예컨대 지적재산권을 거간자본과 통신자본이 독식하는 구조의 문제 등  


[관련자료 클리핑 - 흐름과 변화]

카카오톡 아이폰서 쫓겨나나?
한국경제 IT/과학 2011.06.29 (수) 오후 3:39
무료 모바일 메시지 서비스인 카카오톡을 쓰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앱을 삭제하겠다는 방침이다. 카카오톡의 경우 KT와 손잡고 '선물하기'라는 결제시스템을 쓰고 있다. 카카오톡 내에서 '선물함'에 들어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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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청계산 산책길

아직은 이것저것 개념적으로 정리가 되지 않는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 때는 혼자 걸으며 발로 생각해보라던 지인의 말이 생각난다. 그렇게 생각도 정리할 겸 청계산을 들렀다. 서울대공원에서 산을 오르는 입구, 산을 오르기 전 혼자 벤치에 앉아 한참동안 그 풍경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청명한 가을 햇살을 받으며 또 다른 계절로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는 풍경들이 내겐 너무 생경한 모습들이다.

가끔 그런 생경한 풍경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가 이방인처럼 느껴지곤 한다. 낯선 설레임의 여행길에서 느끼던 감정들 같기도 하고, 그 속에서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살아가는 게 그렇게 꿈 같다는 생각도 든다. 시간이 지나고 돌아서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그 무엇들...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기보다는 그냥 청명한 가을 햇살을 맞으며 불어오는 바람을 즐기기로 했다. 떨어진 밤들을 줍기도 하고, 멀리 보이는 도시 풍경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약수에 들러 물 한모금을 추기기도 하고, 그러다 가끔 정신없이 나무를 오르내리는 청솔모 녀석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렇게 솔솔한 가을 바람을 만나다 산행 초입 길 중간에 내려왔다. 사실 나는 힘을 들여 산을 오르는 거는 별로 소질이 없다. 다만 풍경을 바라보며 그저 산책하며 거닐 수 있는 작은 길이면 족하다. 내려오는 길에 국립현대미술관을 들렀다. 
[국립현대미술관 관련 사이트]
국립현대미술관 :: 나누는 문화, 아름다운 세상
국립현대미술관 웹진
국립현대미술관 _ 네이버 블로그


II. 백남준 - <다다익선>과 디지털 사이니지 [ Digital Signage ]

국립현대미술관 램프코어 공간에는 백남준의 <다다익선>과 강익중의 <삼라만상>이 전시되어 있다. 백남준의 <다다익선>은 1,003개의 TV 모니터를 쌓아 놓고 영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백남준이 <다다익선>이라고 한 것은 많은 영상 메세지 중 하나라도 우리에게 의미를 전달해줄 수 있고 소통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도에서 작품명을 정했다는 후기다. 강익중의 <삼라만상>도 <다다익선> 만큼이나 많은 것을 보여주며, 나선형 벽면을 둘러 6만여 점의 오브제, 영상, 음향들이 3인치 연작 속에 박제되어 놓여 있다.

백남준의 작품이 끊임없이 변하는 영상 속에서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면, 강익중의 작품은 그 많은 영상 메세지들을 3인치 타일 속에 하나하나 문자처럼 새겨 놓은 느낌이랄까? 그런 강익중의 작품을 읽으며 벽을 따라 오르다 보면 마지막 꼭대기에서 떡하니 길을 막고 있는 백남준의 로봇 같은 모니터 작품을 다시 만난다.

<전시내용 및 설명 : 멀티플/다이얼로그 ∞>

전시장면 이미지  [사진출처: 국립현대미술관]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보다가 드는 생각, 어쩌면 백남준의 작품은 이제 더이상 예술작품으로 이 전시 공간에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 정류장에 설치된 평면 TV 속의 광고들, 집앞 LG25시 편의점 앞에 붙어있는 평면 TV의 광고들...그렇게 수없이 늘어나는 디지털 사이지 모습들...

백남준의 작품을 그의 의도와 같이 우리에게 유의미한 메세지를 전달하고 소통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까? 나는 그보다는 그의 작품과 같이 우리 일상생활 속에 있는 많은 미디어들이 의미와 메세지를 강요하고 상품을 선전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싶다. 백남준의 작품을 구태여 평가한다면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지금 나타나는 현실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그리고 백남준의 작품이 이미 디지털 사이니지가 되어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소비되고 있다는 생각 속에서 중요한 것은 그의 예술 작품이 문화상품이라는 틀 속에서 물질성을 가진 제품 광고와 연결되는 지점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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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만족 넘어 고객에 감동 전해
이데일리 사회 | 2009.10.01 (목)
서울시 중구 무교동 청계광장점에 업계 최초로 디지털 사이니지(Digital Signage) 형태의 새로운 브랜드 홍보관인 ‘미스터피자 디지털 갤러리’를 오픈, 브랜드 체험과 엔터테인먼트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옥외광고시장, '소비자의 눈길을 잡아라' 아츠뉴스 IT/과학 | 2009.04.08 (수)
새로운 옥외광고가 나타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광고는 종합 쇼핑몰, 멀티플렉스 영화관, ktx역사 등을 중심으로 디지털사이니지(digital signage.전자간판)광고물이 확대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소비자의 시선을 쉽게 잡을수도 있으며, 정보의...


III. 문화상품과 사회적 노동


요즘은 문화상품에 대해 어떻게 개념규정을 해줘야할지 고민이다. 규정할 수 없는 문화라는 개념이 상품이라는 개념과 만난다는 것은 역으로 상품이라는 개념에 문화라는 접두어가 붙으며 규정할 수 없는 문화를 개별적 상품으로 규정해 들어가는 과정은 아닌가 싶다. 이 과정에서 문화상품은 소비 그 자체가 상품생산 과정으로, 즉 상품생산과정이 소비과정까지 연장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상품의 사회적 생산과 소비, 그리고 사회적 노동이라는 개념과 만나는 지점이다. 흔히 말하는 프로슈머 (prosumer) 개념이 확대되고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정의 이면에서는 예술이라는 영역이 자리잡고 있다. 이를 매개하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역할의 일부는 화가가 아닌 국립현대미술관이나 그림 경매장과 같은 옥션시장일 수 있다. 영화 배우나 감독 또는 제작사가 아닌 이 영상물들을 배급하는 배급사일 수 있다. 작가나 출판사가 아닌 서점일 수 있다. 일종의 유통자본 또는 소비자본의 역할과 기능이 강화되고 있다.   

한편으로 근 자율주의자들은 사회적 노동, 그 속에서 자율노동에 의한 노동의 해방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들의 논리 속에서 노동이 공장 밖으로 나와 사회적 노동으로 개념을 확장된다는 측면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사회적 노동과정을 통해 상품이 비로서 완성되고 유통자본이 이를 지배하고 재분배 한다는 측면을 다시 생각해보면 자율주의적 논리는 이론적으로 허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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