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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스콧 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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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에 해당되는 글 3건


1.
지방선거가 끝났다. 언론에서는 선거결과를 민주당 압승, 한나라당 패배로 MB정권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는 식으로 정리하고 있다. 곧 학계에서도 선거결과에 대한 평가 토론회들도 봇물처럼 나올 것이다. 일종의 정치적 의례행사들이지만 어떤 식으로 평가할지 두고 볼 일이다. 언론과 같이 MB정권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고 민주당 압승이라는 식의 평가는 아니었으면 싶다. 이와 관련해 단상을 남기다.  

2.
가장 큰 의문은 MB의 지지도가 50%가 넘는 현 상황에서, 이번 선거가 MB정권에 대한 국민의 평가로 볼 수 있는가는 하는 점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노동자 계급이 형해화된 한국사회에서 경제적 이익을 따르는 국민의 실리적 선택이 현실화되어 나타난 결과라는 생각이다. 이것을 MB정권에 대한 심판으로 볼 수는 없다. 물론 4대강 문제, 세종시 이전문제, 북풍이 선거과정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단기적인 정치 이슈에 지나지 않는다.

3.
이번 결과는 심하게 말하면 국민의 기회주의적 선택일 수 있고, 좋은 말로 하면 MB정권에 대한 견제로 국민은 지방선거를 통해 일종의 정치적 보험을 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죽은 김대중과 노무현이 산 이명박을 이겼다거나, 야당의 압승이라는 식의 평가는 착각일 수 있다. 향후 선거도 경제적 실리를 따르는 국민적 선택과정에서 야당에 대한 지지는 언제라도 돌아설 수 있다. 지금은 대안이 없기 때문에 나온 선택이다.

4.
이러한 선택은 대선결과와 의회구성이 서로 상반된 형태로 구성되어 굴러갈 수 없는 일종의 이중적(TWO TIRE) 정치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 노조로 치면 노조위원장과 지도부는 보수적인 노선을 찍어주고, 대의원들은 진보적인 성향의 대의원을 선출해 놓은 꼴이다. 이와 같은 결과는 노무현 정권때 노무현이 좌측 신호등 켜고 우회전을 하게 했듯이, 이명박 정권도 우측 신호등을 켜고 있지만 무턱대고 우측으로 갈 수 없게 만들 것이다. 다음 대선 결과와 정권도 향후 유사한 경로를 밟을 수 있다.

5.
장기적으로 보면 진보건 보수건 죽도밥도 되지 않는 차선의 선택들만을 가져가게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보 내부, 보수 내부에서의 분열은 필연적으로 일어나고 합종연횡하며 정치적 연합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밟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단기적이고 실리적 이익을 선택한 국민은 장기적으로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심화된 갈등 속에서 편가르기의 스트레스만 안고 갈 수 있다.   

[관련기사]
대선 '밑천' 몽땅 뺏기는 진보, 재벌개혁 '알박기'에도 속수무책? 미디어오늘 2011.08.19(금)
한나라, 거의 만장일치로 MB노믹스 뒤집다 조선일보 정치 2011.07.11 (월) 오전 9:25
"경제가 문제였다"...때늦은 반성문 노컷뉴스 정치 2011.05.02 (월)
3040세대는 왜 분노했나 내일신문 정치 2010.06.08 (화)
야권연대 ‘암울하다’ vs ‘반MB연합 힘 과시’ 참세상 사회 2010.06.07 (월)
'야당의 재구성', 격동이 시작됐다 프레시안 정치 2010.06.04 (금)
'죽은 김대중-노무현'이 '산 이명박'을 이겼다 오마이뉴스 정치 2010.06.03 (목)
경실련, 6.2지방선거 평가·개산방안 토론회 뉴시스 사회 2010.06.02 (수)







최근 조희연-강준만 교수의 진보논쟁이 올초 조희연-최장집의 논쟁에 이어 다시 재현되고 있다. 서울신문 10월 23일자에 나온 강준만 교수의 주요 논지는 다음과 같다.

지난 5월 발표한 글에서 강 교수는 조 교수의 전략을 ‘동원정치’라고 불렀다. 강 교수는 단적으로 물었다.“지금 분노·위협의 동원정치가 가능한가?” ‘민중의 분노’로 대별되는 대중의 급진화 전략이 현 시기에 타당하냐는 것이다.

강 교수는 “1987년 이후 해온 게 그거 아니었나? 아직도 모자라서 또다시 그걸 해야 하는가?”라며 동원정치가 시대착오적임을 역설했다.

강 교수는 다시 묻는다.“도박은 노무현만으로 족하지 않나?” 강 교수에게 동원정치는 노무현 정부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는 “사실 분노·위협의 동원정치는 노 정권 내부에서 과잉이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노무현 스스로 그 선두에 서서 ‘시민혁명’을 선동하기도 했다.”면서 “노 정권을 ‘자폐정권’으로 만든 것 이외에 무슨 성과가 있었냐.”고 지적한다.

강 교수는 조 교수의 또 다른 해법인 ‘헤게모니 전략’과 ‘동원정치 전략’의 방법론적 충돌도 날카롭게 꼬집는다. 전자가 대중의 분노에 기반한 급진적 전략이라면 후자는 구체적인 정책을 토대로 한 차분한 접근이란 것이다. 양립할 수 없다는 게 강 교수 판단이다. 그는 “나는 조희연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아비투스(습속)에 의해 자꾸 큰 그림(거대담론)만 그리려 드는 게 안타깝다.”면서 “구체적 실천을 하나 멋지게 성공해 놓고 그 성과의 토양에서 출발하는 거대담론을 생산하면 안 되는 걸까?”하고 물었다....

서울신문 / 기사일자 : 2007-10-23    24 면

이에 대해 조희연 교수가 [인물과 사상] 11월호에 반론의 글을 쓴 것이다. 그리고 언론은 이를 받아 다시 '진보논쟁(?)'에 불을 지피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이런 식의 논쟁에 아쉬움이 있다. 좀 따져보고 싶지만...일단 드는 생각만 정리를 해본다.

먼저 강준만 교수는 [인물과 사상]에 '강준만의 세상 이야기'란에 글을 썼다. 아쉬움이라면 강준만 교수가 그의 방식으로 가볍게 '세상 사는 이야기'에 쓴 글을 조희연이 장문의 반박글을 쓰고, 언론이 이를 받아 이슈화시키는 것이다. 물론 아예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것, 즉 이슈로 만들지 않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좀 더 서로 지면을 할애해 내용이 깊어졌으면 하는 점과, 이런 식으로 언론을 통해 논쟁이 이슈적으로 처리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생각이다.

사실 강준만식의 글쓰기에는 매력이 있다. 글을 읽다보면 그의 글은 가볍게 읽히지만 한편으로는 다시 생각하게 하고 그의 논리에 수긍을 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 그만큼 대중의 생각을 읽고 대중의 용어를 통해 그의 생각을 풀어내고 설득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대중의 생각과 용어를 이론적으로 또는 개념적으로 따져보고 분석해봐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나는 느낀 그대로, 있는 그대로 글을 쓰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학자라면 그 느낌과 생각을 분석해보고 성찰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느낌과 생각을 설명해줘야 한다. 한마디로 상식적인 생각과 용어 속에 은폐되어 측면들을 밝혀내고, 우리들이 이해할 수 없거나 모순적인 측면들을 밝혀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강준만의 글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공감을 하게 하고 생각을 해보게 하지만, 문제는 그 수준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때로는) 지배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중의 상식적 수준의 생각을 반복하고, 그 수준에서 대중적 담론을 재생산하며, 대중을 빌어 대중의 생각을 그 수준에 머물게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를 잘못된 상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지식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언론(미디어)의 지배권력적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역으로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고 유사한 논리를 펴고 있더라도, 강준만의 용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조희연의 용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다. 또한 내가 강준만 보다 조희연의 언어에 익숙하고 그 개념 속에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가지는 생각일 수도 있다. 

아무튼, 뭔가를 따져봐야겠는데 그것이 무엇일까?


'헤게모니'와 '동원정치'의 매트릭스
나는 먼저 강준만이 지적한 '헤게모니'개념과 '동원정치'라는 것을 따져 보고 싶다. 우선 '헤게모니' 개념은 일종의 '지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내용적으로 '강제와 동의'라는 측면을 가지고 있다. 행사 주체의 측면에서 보면 '지배계급의 헤게모니'가 있고  '피지배계급의 헤게모니'가 존재할 수 있다. 여기서 피지배계급의 헤게모니를 '대항 헤게모니'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헤게모니의 창출 방법으로는 '민주주의적 헤게모니'가 있고 '권위주의적 헤게모니'가 있다.  

'동원정치'라는 용어에서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동원정치'란 어떤 목적 달성을 위해 어떤 대상을 동원하는 것인데, 여기서 어떤 '목적'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이를 위한 그 어떤 동원 '대상'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 문제다.

목적에 있어, 이를 정치에 한정해서 보면, 기득권자들과 그로부터 배제된 또는 다른 정치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이때 기득권자들은 기존의 정치적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일 수 있지만 그로부터 배제된 또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들도 있다. 즉, 이들에게는 기존의 것을 깨고 또 다른 정치적 열망을 실현하는 것이 목적이다. 여기서 그 다른 정치적 열망이란 어떤 것이며 어떻게 그 내용을 알 수 있는가 하는 측면이 있다. 조희연 교수가 말하는 민중의 '분노'라는 것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기득권(지배층)이 아닌 '민중'의 '분노'를 통해 표출되어야 하고 이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대상의 측면을 보면, 그 대상을 유형-무형 또는 인적-물적 대상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를 어떤 측면에서 보면 동원자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동원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지배자에 의한 동원, 즉 위로부터의 동원이 존재할 수 있다. 또한 피지배자에 의한 동원, 즉 아래로부터의 동원이 존재할 수 있다. 

다양한 개념의 매트릭스적 조합들
이러한 개념적인 메트릭스들을 조합해보면 다양한 유형이 도출될 수 있다. 여기서부터 세부적으로 다시 따져들어가야 할 것이다. 다만 여기서 드는 조희연 교수의 논지는 정치적 목적 또는 열망이 민중의 분노를 통해, 즉 아래로부터 나오고 동원되어야 하며, 이는 '민주주의적 헤게모니' 창출과정과 맞물려 실현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닌가 싶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동원정치'와 '헤게모니 정치'는 충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강준만 교수는 이러한 측면들의 복합적 관계를 무시하고 한 측면만을 비판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참고자료]
1. 관련논문:
2. 신문자료
이번엔 ‘강남-강북 계급의식’ 놓고 격돌 - [한겨레] 2007-10-29
진보논쟁’ 2라운드 시작될까[서울신문] 2007/10/23 (화)

3. 용어 - 헤게모니
...역사적 전통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한국사회은 해방 직후의 짧은 기간에 다양한 민주주의 이념의 세례를 받았다. 부르주아민주주의, 프롤레타리아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신민주주의, 진보적 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 등에서 보듯이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신생국가'의 국민들은 바야흐로 다양한 내용과 지향을 가진 민주주의 공세에 접하게 됐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한국사회 내부에서 자생한 것이라기보다는 외부로부터 이입된 것으로 기층 민중의 일상생활을 통해 뿌리내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정치적 동원을 위한 이데올로기의 의미를 가질 수는 있었겠지만, 정치세력의 부침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져 버리는 그러한 것 이상의 의미는 가질 수 없었다(김경일, 2003: 168).




김경일(2003), 한국의 근대와 근대성, 백산서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