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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스콧 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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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에 해당되는 글 8건
2010년 1월 실업률이 5%대로 10년래 최대이라는 기사다. 통계청과 정부에서는 단기적인 현상이라는 해석이다. 하지만 이게 좀 뻥이라는 생각이다. 오히려 불안정한 고용창출 정책과 단기간의 경기부양정책의 한계 속에서 장기적인 실업이 시작되는 전초전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관련기사]
실업자 120만명 넘었다 한겨레 사회 2010.02.10
1월 실업률 5%대로 껑충…청년실업률은 9.3% 매일경제 경제 2010.02.10

특히 올해부터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된다. 미리 노후 준비를 한 은퇴 베이비붐 세대 중 일부는 당분간은 그동안 챙겨 놓은 돈방석에서 살 수 있을 거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노후준비를 할 수 없었던 대부분의 베이비붐 세대는 은퇴후에도 계속해서 일자리를 찾아야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향후 실업이 증가할 것은 불보듯 뻔하다. 한국사회에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증가는 두 축에서 실업을 동시에 증가시킬 수 있다. 그것은 베이비붐 세대를 축으로 하는 장고령층의 실업의 증가와 청년층 중심의 실업 증가라는 예상이다.

[관련기사]
<베이비붐세대-①>공룡세대 올해부터 은퇴 '러시' 뉴시스 사회 2010.02.07
<베이비붐세대-②>준비 안 된 노후 '막막' 뉴시스 사회 2010.02.08
베이비붐 쇼크 현실로...지난달 실업급여신청 최대 아시아경제 사회 2010.02.08
‘대량 은퇴’ 쇼크 시대 노후 돈방석을 챙겨라 시사저널 칼럼 2010.02.10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니까 그만큼 빈 자리가 생기고 그만큼 청년층의 일자리가 생길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 과정에서 베이비붐 세대가 빠져나간 일자리는 사람으로 채우기보다 기계가 채울 것이다. 소위말하는 고용없는 성장이 진행되면서 실업은 증가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실업과 비정규직은 더욱 양산될 것이다.  

[관련기사]
자본의 유기적 구성 [ Organic Composition of Capital, 資本─有機的構成 ] 네이버 백과사전
"실업률 낮추려면? 여자에게 물어봐라" 오마이뉴스 경제 2009.03.31

현재 청년층의 실업률은 8~9%대로 다른 층의 실업보다는 높다. 하지만 아직까지 청년층의 실업률은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라는 생각이다. 고학력화에 따라 청년층은 학생 신분이 많다. 이 경우 부모들의 경제력에 의존하며 지낸다. 즉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다. 졸업을 했더라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층은 부모의 경제력에 의존해 살 수 있었다. 일종의 캥거루족의 출현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캥거루족이나 키퍼스(kippers)족으로 생활하기는 힘들다.

[관련기사]
취업준비 50만명, 체감실업률 11.3% 내일신문 경제 2010.01.29
캥거루족 자녀·사커맘·알파맘?… ‘헬리콥터 부모’ 관련 신조어 국민일보 사회 2009.11.05
[대한민국 50대,2006년의 초상]<5>캥거루족 자녀 허리휜다 동아일보 사회 2006.11.21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함께 구직활동을 하지 않던 청년층은 이제 어떤 식으로든 구직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향후 청년층의 실업률은 더 높아질 수 있다. 거기다 대부분 아르바이트와 같은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청년층들은 그마저도 찾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다. 즉,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와 비정규직 일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될 거다. 아이러니다. 베이비붐 세대가 만들어준 '88만원 세대'의 노동시장에 이제는 다시 베이비붐 세대가 들어가야 한다.

이러한 상황은 향후 가족의 경제구조와 함께 사회적으로 노동시장 구조를 바꾸게 될 것이다. 그동안 가족 경제구조는 가장을 중심으로 한 주수입원이 존재하는 구조였지만 향후 가족 경제구조는 모든 가족 구성원이 가족 경제에 동원되는 '동원형' 가족 경제구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사회구조는 젊은 사람이건 나이든 사람이건 모두다 열심히 일을 하지만 모두 어렵게 사는 일종의 워킹푸어(working poor) 사회가 확대되는 구조다.

[관련기사]
현대경제연구원 “워킹푸어 대책 시급” 매경이코노미 경제 2010.02.03
"올해 워킹푸어 증가 불가피" - 현대경제硏 뉴스핌 경제 2010.01.13

 

지난 7월 영화진흥위원회에서 그동안 지원해오던 ‘인디포럼’, ‘서울국제노동영화제’, ‘인권영화제’ 등 대표적인 다양성 영화제들을 탈락시켰다. 정권이 바뀌며 실감하는 변화중 하나고 이해할 수 없다. 준비해오던 관계자들은 국제적인 망신살이라며 지원이 끊겨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십시일반하더니 인디포럼은 개최하는 모양이다.

[인디포럼]에서 9월 월례비행으로 여성 비정규 노동과 관련한 영화 '외박 - 엄마가 뿔났다'와 관련한 대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간단히 비정규 노동 관련 영화 소개와 자료 스크랩...



시놉시스
2007년 6월 30일 밤, 대형마트 홈에버에서 일하던 500여명의 여성노동자들은 상암 월드컵 홈에버 매장 계산대를 점거했다. 2007년 7월1일은 기간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비정규직 보호법안이 시행되는 첫날이었다. 이 법안을 회피하기 위한 사측의 무자비한 계약해지와 비인간적인 차별에 대한 그녀들의 분노. 하지만 예정된 1박2일의 매장점거는 510일간의 긴 파업으로 이어졌다.

감독의 변
나이가 들어갈수록 여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족 내에서는 엄마나 아내로 최선을 다하고, 또한 가족을 위해서 가족과 좀 더 잘 살아보기 위해서 돈 벌러 다니는 아줌마들. 주부이며 어머니라는 이유로 희생이 미덕으로 여겨지며, 비정규직과 저임금이 당연한 듯 저질러 지고 있다.  그 돈으로 살림과 아이들 학비에 보탠다는 훌륭한 어머니들. 이것이 우리가 기대하고 있거나 그렇다고 알고 있는 그녀들의 이미지이다. 과연 그럴까.. 이 사회가 그녀들에게 부여하고 기대하는 대로 그녀들은 살고 잇는 것일까. 나는 그녀들의 파업과정 속에서 생존에 대한 그녀들의 전략과 한계를 찾아보고 싶다.

프로그램 기획의도
비정규직 850만 시대다. 2007년,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비정규직법은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량해고로 몰았다. 법 시행 만 2년이 지난 올해 7월, 공공기관들이 앞장서서 계약만료된 비정규직들을 대량으로 해고하고 있다. 국회에서는 비정규직법 개정을 두고 여야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고, 누구나 비정규직을 걱정하는 목소리를 내며 비정규직을 위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비정규직에게 있어 해고는 너무나 '일상적'이다. 전체 비정규직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 비정규직, 그 중에서도 '아줌마'인 여성 비정규직은 가장 최저의 임금을 받고 가장 먼저 잘린다. 함께 투쟁을 하면서도 남자 동지로부터 '동지' 대신 '아줌마'라는 호칭을 듣는다.  



인디 스페이스 오시는 길
http://www.indiespace.kr/intro/intro_03.htm


[대형마트 여성비정규노동 관련논문]

김순영(2005), 파트타임 노동자의 기간노동력화와 기업의 젠더 정치 - 일본의 슈퍼마켓 산업을 중심으로, <경제와사회> 통권 제66호, 2005. 6., pp. 256~286, 366~367 (33 pages)



이 논문은 저임금 노동자인 파트타이머의 기업 내 정착과 숙련이 상승하는 일본 파트타임 노동시장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젠더분석의 시각에서 기업의 행위전략을 분석했다. 이 논문의 발견사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파트타임 노동자의 저임금을 유지하면서 숙련을 상승시키기 위해 기업이 사용하는 전략은 크게 ‘제한적 내부화’와 ‘구별 짓기’로 나뉜다. 즉 기업은 노동시간과 숙련을 기준으로 파트타이머를 몇 개 집단으로 위계화시켜 구분하고 그 중 상층부만을 ‘선별적으로 내부화’한다. 그러나 파트타이머에게 적용되는 내부화 규칙은 정사원의 내부화 규칙의 모양만을 흉내 낸 ‘의사 내부화’다. 이와 같은 ‘제한적 내부화’ 장치들은 숙련이 상승하고 근속이 증가할수록 파트타이머들을 납득시키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기업은 파트타이머의 동의획득을 위해 배치전환제한 및 교대근무제한을 핵심적 내용으로 하는 ‘구별 짓기’ 전략을 다시 사용한다.
이러한 제한적 내부화와 구별 짓기 전략은 주부협정에 입각한 것이다. 주부협정이란 파트타임 노동시장 행위자의 기본 행위규칙을 이루는 것으로, 파트타임 노동자는 피부양 주부이므로 가정일을 직장일보다 우선할 수 있게 하는 대신 생계비 임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주내용으로 한다. 이와 같은 사실은 일본 기업들의 이윤생산구조가 기혼여성을 가족책임에 묶어두는 사회적 제도 및 문화에 기초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비정규노동에 대한 우리들의 상황논리와 사회적 태도 -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

한국사회에서 비정규노동은 자본에 대한 사회적 복종의 한 유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에서와 같이 우리가 사회적으로 자본의 논리에 복종하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음에도 우리는 자본에 복종을 '타자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생존이라는 문제, 내가 살기위해 어쩔 수 없는 행동이라는 논리...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한편으로 약간의 긴장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이 속에는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지만.... 어쨌거나 당신들이 결정을 한 것 아니냐. 이제와 무슨 소리냐 하는 식의 논리. 파시즘의 책임을 강제적 상황에 의한 것으로 귀결시키는 것 같지만 실상은 일정정도 그러한 강제에 대한 복종으로부터 동의, 즉 강압적 동의를 얻었고, 이를 통해 불합리한 명령을 내린 권위자들은 파시즘의 정당성을 찾고 그 책임의 일부를 대중으로 돌리는 논리도 이 속에 함께 들어있다.

물론 그 역의 논리도 가능하다. 대중들은 복종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복종하게 된 결정이었다라는 식의 논리. 결국 모두 가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서로에게 돌리고 책임을 회피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스탠리 밀그램은 이러한 상황에 저항할 수 있는 단 한가지 방법은  '불합리한 명령을 내리는 권위자와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현실에서 그것이 불가능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그 관계를 단절하고 보면 불가능하게 보이던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이었음을 알게되고 정상을 되찾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것은 상호 신뢰를 조건으로 하는 쌍방 결정이 아니라 자기의 입장에서 스스로 내리는 자기결정 문제가 아닌가 싶다.

마침 누군가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을 정리한 글이 있어 아래 클리핑을 해본다.

p.s
우석훈은 지금과 같은 비정규 노동을 '죄수의 딜레마'에 비유하기도 한다. 서로 의사소통할 수 없고 신뢰할 수 없기에 대승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죄수의 딜레마... 하지만 현 상황은 적어도 서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동일 공간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상호 신뢰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배신하지 않으면 비정규직이라는, 일종의 사회적 낙인과 같은 벌을 받아야 하는 조건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때로는 타자들의 고통을 지켜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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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blog.naver.com/son1328/40042926960

<실험 전>
예일대 학생 500여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실시.
- 질문 :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인간이 비도덕적인 행동을 상대에게 가할 수 있을까?
  결과(분포) : '가할 수 없다' - 92%
                '그럴 수도 있다' - 5.4%
- 정리 : 단 0.1%만이 전기충격을 할 것이다.

<실험>
준비를 위해 40명의 피실험자 모집
- 지시문 : (40명의 행동요령) 칸막이가 쳐져있는 방안에 건너편에는 문제를 외워야하는 학생이, 피실험자가 있는 칸에는 피실험자와 실험자 학생이 문제를 외우지 못할 경우, 15v~400v까지의 전기충격기에서 15v에서 시작하여 충격 가함. 총 30 문제.

(실험 진행 중, 피실험자가 거부할 경우 실험자는 완강히 실험 주도를 요청함)

<결과>
실험대상자 40명 - 65%가 400v까지 충격 가함, 35%는 300v에서 모두 실험거부.
65%의 실험자 "내가 왜 이 실험을 해야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시켜서 한 것 뿐이다" 등

그러나........... 이 실험 뒤에는 한 가지 비밀실험이 또 하나 있었으니

<실험 전>
실험 준비를 위해 원숭이 2마리 교육.

<실험>
-지시문 : 버튼을 누르면 먹이가 나온다
         버튼을 누르면 다른 동물(원숭이)에게 전기충격이 간다
         버튼을 누르거나, 그렇지 않거나의 선택 둘 중 하나
(원숭이가 선택하지 않아도 이를 막는 사람을 두지 않았음)

<결과>
원숭이는 15일간 먹이를 먹지 못했고
상대방 원숭이 또한 15일간 안전했다

실험주도자 : 예일대 교수 스탠리 밀그램

"나는 평범한 사람이 대량학살을 하고 보통의 사람이 어떻게 맹목적으로 비도덕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피실험자가 있는 칸 반대편에는 미리 발을 치고 소리 지르는 것을 녹음했으며, 실제로 외상을 당한 사람은 없었다. (생략)"

실험제목 : 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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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삶과 비정규 노동, 그리고 그 저항의 징후들
- 복지시설행 증가하는 2030? 젊은 부랑자들? 아니, 아예 복지시설을 점거하자! -



1. 무기력한 젊은 부랑자들?

한국일보(2007. 1. 26)에 실업…신용불량… 무기력 2030 "젊은 부랑자 는다"라는 기사가 났다. 기사 내용은 대개 사실(fact) 그 자체와 그 사실에 대한 해석으로 나눌 수 있다. 이 기사는 읽다보면 사실 그 자체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고 싶은 생각을 들게 한다.

기사에는 부제를 통해 "복지시설行 증가…퇴소해도 'U턴' 일쑤… 재활 전문 프로그램 시급"이라고 썻지만 나는 차라리 "2030 복지시설行 증가 … 일자리를 찾아도 'U턴' … 재활 전문 프로그램 무용(無用)" 이라고 쓰고 싶다.

처음 기사의 fact를 가지고 이 도시 속의 삶에 대한 자료를 남길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기사는 언론이 이 사회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 언론의 시각을 학자들이 어떻게 뒷받침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공모 속에서 fact가 우리들에게 어떻게 왜곡되어 전달되는지,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국가는 노동자들의 사회적 저항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등을 생각해보게 한다.

fact는 우리들이 이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 삶을 사회는 어떻게 파괴하고 고립시키며 무력화시키는지 확인해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그 무력함 속에서 나오는 노동에 대한 포기, 그것은 오히려 또 다른 형태의 사회적인 저항인 아닌가 싶다. 


2. 기사의 주요 내용
기사의 주요 내용은 아래 그림과 같이 한 부랑인(?) 시설에 2-30대 입소자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 한국일보, 2007. 1. 26]

그리고 20대 수용자는 정신적, 신체적으로 건강하다는 점이다. 가정 불화나 경제적 문제로 갈 곳을 잃은 경우가 많지만 실업이나 사회 부적응 등으로 복지시설을 찾는 이들도 적지 않다. 취업을 해도 시설을 떠날 생각이 없거나 퇴소한 뒤 금세 되돌아 올 정도로 사회성이 떨어지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젊은 부랑인들이 늘고 있는 것은 사회 적응에 실패하고 이탈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는 해석이다. 

3. 수용자들의 시각

1) 용어 사용-부랑인, 부적응자, 실패자, 이탈자
매스미디어는 이들을 어떻게 재단하고 있는지, 그 시각을 학자들과 전문가들이 어떻게 뒷받침하고 있는지는 기사에 사용된 용어 그 자체만 봐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기사에 사용된 용어들은 부랑인, 수용자, 부적응, 사회 적응, 실패, 이탈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것은 한마디로 수용자의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회 속에서 살아보려고 노력하다가 어쩔 수 없어 복지시설에 찾아갔더니 복지시설은 이들을 수용하며 부랑인, 부적응자, 실패자, 이탈자로 취급하고 있는거다.

2) 비정규노동에 대한 차별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싣고 있다.
# A씨는 한창 사회활동을 할 나이에 왜 이 곳에서 허송세월을 하는 걸까. 고졸 학력인 A씨는 스무 살 때 부모로부터 독립했지만 장기간 실업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음식점이나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 이외에는 이렇다 할 돈벌이에 나선 본 적이 없다. 점점 무기력증에 빠진 A씨는 지난해 7월 제 발로 이 곳을 찾게 됐다.

"음식점이나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 이외에는 이렇다 할 돈벌이에 나서 본 적이 없다"는 표현. 아르바이트라고 표현했지만 대부분 비정규 노동의 한 형태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형태는 이 사회 속에서 이렇다 할 돈 벌이가 아닌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을 은폐하면서 차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A의 조건에서 직업을 구하려고 구인란을 뒤져보면 A가 경험한 일 외에 단순 조립공, 술집 웨이터나 바텐더, 텔레마케팅(영업사원), 총무, 운전 등이 대부분이다. 도대체 어떤 일들이 이렇다할 돈벌이인지 모르겠다. 이 사회에서, 특히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A와 같은 조건의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일들의 대부분은 이런 일들인데, 그것이 현실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비정규직으로라도 어떻게던지 살아보려고 노력했는데 이렇다 할 돈벌이에 나서 본 적이 없다니... 그러다 결국 좌절하고 복지시설을 찾은 것인데 말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혼자만의 문제로 그치고 있지 않다. 이 사회는 가족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상태로까지 몰고 가고 있다. 이제 가족은 서로 버팀목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은 그 한계점에 다다라 오히려 서로에게 짐이 되고 있는 것이다. 기사에 난 아래의 사례를 보자.

#30대 초반의 B씨도 2005년 부랑인 복지시설을 찾았다. 대학을 졸업한 B씨는 대형 쇼핑몰에서 안전 요원으로 근무했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자였던 동생이 몰래 B씨의 신용카드를 사용해 졸지에 수천 만원의 빚을 졌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B씨는 일자리도 잃고 차압 등으로 갈 곳이 없게 되자 복지시설로 들어왔다.

재기를 모색하며 사회로 돌아갔지만 번번히 적응에 실패하고 입ㆍ퇴소를 3번이나 반복했다. 일자리가 생겨도 월급이 채권자에게 그대로 흘러가는 바람에 빈털터리가 됐다. 점점 사회생활에 적응하기가 힘들어졌고 일할 의욕도 상실했다.


3) 재활과 교육의 대상 - 정신적 재활 능력 부족자?
수용자들의 시각 속에서 나온 대책들은 사회 적응을 위한 재활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잇다. 뭐 요지는 정신적 재활 능력을 잃었으니 이를 찾아주고 이와 관련해 사회 적응 프로그램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 적응을 위한 재활 프로그램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20-30대는 교육 과정을 이제야 막 마치고 사회에 나오는 사람들이다. 더구나 이미 고등학교나 대학까지 나온 사람들에게 또 어떤 사회 적응 프로그램이 필요하단 말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배운 교육 프로그램들은 사회 적응에 부적합한 프로그램이었단 말인가? 그렇게까지 무용지물이 될 것을 정말 예측할 수 없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프로그램들은 사회 적응에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응 프로그램이 따로 있는 것인가? 사회가 너무 빨리 변해서 배울 때 시점과 지금 적응 시점의 차이가 있어서 적응이 어렵다는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

4. 기사의 재구성과 재해석
1) 소극적 사회 저항의 증가

나는 '몸과 마음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데도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하고 부랑인 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20,30대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는 기사를 나는 재해석하고 싶다. 기사는 젊은 나이에 사회 적응에 실패한 이들에 대한 재활 프로그램이 시급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젊은이들이 적응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적응할 수 없는 사회 구조 속에서 무기력을 통해 이 사회에 저항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저항은 적극적 저항과 소극적 저항을 생각해볼 수 있다. 적극적 저항은 어떤 대상의 불합리한 요구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음을 집단적 또는 개인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소극적 저항은 불합리한 요구에 대한 거부를 드러내지 않는 경우, 때로는 순응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실제 결과는 기대하지 않은 결과들을 가져오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만큼 교육열이 강한 나라는 드물다. 쉽게 말해 한국의 젊은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또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입시의 압박 속에서 하고 싶은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졸업하면 정규직 일 자리가 없어 취업준비를 하며 아르바이트라도 한다. 그래도 정규직이 되기 어려우면 비정규직으로라도 들어가 정규직의 절반밖에 안 되는 월급을 받으며 일을 한다. 그렇게 생활을 하다가 한계에 다다르고 포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능력 있는 자들은 그것을 실패와 포기로 보이겠지만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소극적 저항이다. 왜냐하면 모두 다 포기를 한다면 아무리 능력이 있더라도 그 능력 하나로 포기한 사람들을 다 감당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더이상 그 능력을 자만하며 과시할 대상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극적 저항의 한 형태로 드러내지 않는 경우는 생계형 범죄를 들 수도 있다. 생계형 범죄는 지배자의 입장에서 보면 범죄일 수 있지만 그 당사자는 범죄이기에 앞서 생존의 문제인 것이다. 그 생존을 위해 법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들키지 않는다면 법이 있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지배자들이야 법이 있어도 법을 어기는 자유를 누리는 판에, 굶어죽지 않기 위해 빵을 훔치는 것이 무슨 죄란 말인가? )

2) 사회적 통제장치의 작동
하지만  복지시설을 찾아오는 젊은이들은 범죄와 같은 식으로 저항하지 않는다. 이러한 형태는 사회적 통제 장치의 틀 내에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푸코의 표현을 빌린다면 사회적 감시장치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순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결과는 기대하지 않은 결과들을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의도하지 않은 수용 대상들이 들어와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복지시설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드러나지 않는 소극적 저항 형태들이 늘었을 것이다. 그리고 경찰 유치장이 더 필요했을 것이다. 성인이 아니라면 아마 소년원 같은 곳이 더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학교, (정신)병원 등... 그런데 지금은 그나마 복지시설이 있어 그 곳으로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유럽의 복지제도가 발달한 과정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만일 이러한 시설이 더이상 이들을 수용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기사의 내용과 같이 '사회의 정신적 재활 능력이 부족'해서 복지시설의 예산을 늘리고 전문 상담사를 배치해서 정신적 재활 능력을 심어주고 이들을 사회로 내보낸다고 해결이 될까? 정신적 재활 능력을 가지고 나와도 받아주거 갈 곳이 없는 현실, 그 앞에서 확인하는 것은 소위 말하는 정신적 재활 프로그램들이 허구라는 것이다.

3) 사회적 수용의 한계
이 지점에서 젊은이들이 복지시설에 오게 된 과정들을 되돌아보면 지금의 문제는 사회의 정신적 재활 능력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다. 기사에서도 '몸과 마음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이들이 찾아오고 있다'라고 쓰고 있다. 이는 결국 사회구조적 문제이고 젊은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수용 능력'이 구조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자리 나눔의 문제와 사회적 분배 구조의 문제와 연결되는 것이다. 이는 노동시장의 문제이고, 현재와 같은 비정규 노동시장 구조로는 더이상 이 사회를 지탱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한계가 복지시설을 통해 소극적 저항 형태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5. 소극적 저항의 확산과 변화의 징후
하지만 이러한 형태의 저항은 확산하려고 한다고 확산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 내재적으로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징후를 나타내다가 어느 시점 급격히 확산될 수 있다. 물론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확산이론에서 S자 곡선은 이러한 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수용자들의 시각 속에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소극적 사회 저항을 무능력자, 부랑자, 사회 적응 실패자라고 취급하고 있다.

확산을 막으려고 극단의 경우에는 유럽의 근대화 과정에서 구빈법이 부랑자법으로 바뀌었듯이 악으로 규정하고 범죄자로 몰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그 법들은 대부분 폐지됐다. 일시적으로는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계가 있는 것이다.

결국 나는 '무기력한 젊은 부랑자 증가'를 소극적 사회 저항의 증가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사회에서 수용할 수 없는 상태에 다다르면서 사회구조 자체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6. 사회적 재활프로그램의 대상들
그리고 나는 기사 내용과 같이 세상을 보는 시각들에 대해 화가 치민다. 젊은이들을 점점 무기력증에 빠지게 한 장본인들은 바로 그들이었다. IMF이후 지금과 같은 정치-경제-법 제도적 변화의 필요성을 부추키고 선전해댄 언론들, 이에 맞장구를 치며 사회를 재단하고 설계한 사람들이 만나는 과정들...  

일반 대중들은 그래도 이들을 믿고 열심히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 삶은 더이상 견딜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 사회를 재단하고 설계해 온 장본인들은 슬쩍 빠져나가며 그 책임을 다시 일반 대중에게 돌리고 있다. 특히 이들은 젊은이들을 무기력증에 빠진 사람들로 평가를 하고 재활 프로그램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재활 프로그램의 대상은 젊은이들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시각을 가진 자들이 아닌가 싶다.

비정규 노동자의 삶에 관한 책들
- 내용에 대한 접근 방법과 글의 구성을 중심으로-


[생각해볼 문제]
○ 제목: 어떤 제목을 통해 전체 내용을 전달하는가?
- 부서진 미래(삶창), 빈곤의 경제(에렌라이히), 거세된 희망(토인비), 영국노동자계급의 상태(엥겔스)....
○ 글의 내용 - 무엇을 중심 내용으로 하는가?
- 비정규노동자들의 삶의 조건(현장, 일상생활), 삶의 조건을 규정하는 요소들(자본주의 사회의 기제들?), 사회적 종속 심화 및 확대?
○ 방법론적 문제 - 글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어떤 방법론을 취하는가?
- 현장 경험, 면접 조사, 문헌조사를 글 속에서 어떻게 결합시키고 있는가.
○ 글의 구성 -  글의 내용을 어떤 식으로 구성해 풀어가고 있는가?



[부서진 미래]

글쓴이  : 김순천 외           ISBN  : 89-90492-23-8 
구분  : 르뽀                     판형  : 223X152(mm) 
책제목  : (세계화 시대 비정규직 사람들 이야기) 부서진 미래  면수  : 416 면 
출판일  : 2006년 2월 6일  책값  : 13,000 원 
출판사  : 삶이 보이는 창 
=>[부서진 미래] 소개문 및 목차

삶이보이는창(이하 삶창) 르뽀문학모임에서 펴낸 도서다. 르뽀모임은 1년여 과정을 통해 비정규노동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이들과의 대화를 엮어낸 책이다. 구성은 여는글과 15명ㅇ에 대한 인터뷰 글로 짜여져 있다. 인터뷰는 각기 다른 직업을 대상으로 이루어졌으며, 인터뷰 내용이 시작되기 전에 2-3장 분량의 프롤로그 형식이 있다. 이를 통해 인터뷰나 인터뷰 대상자의 상황, 느낀점 등을 정리하고 있다.

이 글은 인터뷰를 가공하지 않고 그래도 보여주고 있다는 측면에서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가장 큰 장점이라면 집필자들이 프롤로그를 제외하고 인터뷰 내용에 대해 해석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현장 사람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하는 한편, 독자로 하여금 그 내용을 해석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즉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것이다. 가치로 따진다면 이는 향후에 하나의 원자료로서 충실한 기능을 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그런 자료마저도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단점은 인터뷰가 면접형식으로 이루어지면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면접 인터뷰 방식을 통해 전체적으로 사회구조적 측면을 드러내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 면접자의 의도가 개입되는 과정이다. 인터뷰에 대한 면접자의 해석이 개입되지는 않았지만 면접 내용 그 자체에 구조적 가설들이 개입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면접 방식은 면접자가 물어보고 싶은 내용만을 취함으로써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킨다. 독자와 면접대상자로 하여금 면접 내용 이외의 삶의 과정들을 들여다 볼 수 없게하고 있다. 물론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조합해 한 사람의 인터뷰 내용에서 빠진 부분을 조합해낼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내용들을 조합하는 것은 한 개인이 처한 조건에 따라 그 내용들이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단점. 그것은 필자들에게 면접 내용이 간접 경험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공장 라인을 타는 노동자의 노동과정 속에서 오는 느낌을 인터뷰 대상자를 통해 전해들을 수 있지만 그것이 필자가 느낀 경험은 아니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그럭저럭 견딜만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실제로 경험해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경험일 수 있다.    

요약하면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거기서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면접 방식을 취한 르뽀 문학의 한계이다. 

<삶창>에서 나온 또 하나의 삶의 르뽀가 있다. 그것은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이다.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

글쓴이  : 박성훈                              ISBN  : 89-90492-08-4 08310 
구분  : 르뽀                                    판형  : 210x148(mm) 
책제목  :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   면수  : 183 면 
출판일  : 2003년 8월 20일                  책값  : 8,000 원 
출판사  : 삶이 보이는 창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 소개문 및 목차

이 책은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파업을 기록한 일종의 기록물이다. 그러나 기존의 기록물들과 같은 사건중심의 기록물이 아니다. 파업 과정에서 글쓴이가 겪은 일들 그리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사람관계와 고민들을 기록한 글이다.

한마디로 파업 과정에서 한 노동자가 파업을 경험하며 주변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해 느낀 점을 기록한 글이다.

이 글은 제3자가 아닌 당사자가 직접 경험한 내용을 글로 풀어가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일상의 삶이 빠져있다. 물론 일상의 영역을 일과 휴식이라는 것으로 나누어 볼 때 일의 영역이라는 일상은 파업 기간 동안의 일상으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파업기간 이외의 일의 영역과, 일을 떠난 일상 삶에 대한 기록은 빠져있다.

그리고 화자의 경헙과 입장을 화자가 직접 전하는 이러한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화자의 해석을 그대로 따를 것을 강요하는 한편 그것을 그대로 객관화시킬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이는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그러한 상황을 알 수 없다는, 일종의 경험주의적 견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상 스스로가 대상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오는 경험주의적 오류를 말하려는 것이다. 즉 대상의 경험 속에서 느낀 것 외에 독자로 하여금 해석의 여지를 남기지 않고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는 압박(?)을 느끼는 것이다.  

이에 반해, 현장 경험을 통해 비정규 노동자들과 생활하며 그들의 목소리와 삶의 내용을 담아낸 책으로 [빈곤의 경제]와 [거세된 희망]을 들춰 볼 수 있다. 


[빈곤의 경제-Nickel and Dimed - On(Not) Getting By in America]

글쓴이 : 바바라 에렌라이히, 홍윤주 옮김   ISBN : 8935204730
구분   : 르뽀               판형: 반양장본 | 264쪽 | 223*152mm (A5신)
책제목 : 빈곤의 경제 - 빈민의 유리지갑에 비친 경제 이야기! | 원제 Nickel and Dimed - On(Not) Getting By in America
출판일 : 2002-04-10       | 출판사 : 청림출판사
=>[빈곤의 경제] 소개문 및 목차(알라딘)


이 책은 미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이며 작가인 바바라 에렌라이히가 실제로 저임금 노동자가 되어 보고, 느끼고, 분석한 결과를 엮은 일종의 현장 리포트이다. 책 소개에도 나와 있듯이 이 글은 단순히 가난에 대한 체험을 기록한 글은 아니다. 이러한 체험에 노동조건의 전반적인 문제점, 이에 대한 노동자들의 심리적 변화과정과 적응 방법, 정책적 개선점 등을 검토하고 있다.

현장 경험과 면접(사람들과의 대화)을 통해 자료를 모으는 한편, 여기서 취득할 수 없는 전반적인 자료를 취합해 현장의 모습을 재구성해내는 글이다. 즉, [부서진 미래]와 같이 면접 대상자 중심의 글도 아니고,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와 같이 당사자에 의한 사건 기록물도 아니다.

현장 경험과 면접 내용 중심이라면 폴리 토인비의 [거세된 희망]과 비교될 수 있다. 그리고 현장 경험과 면접 내용이 없는 상태에서, 글의 분석 내용에 그 깊이를 더한다면 엥겔스의 [영국노동자 계급의 상태]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엥겔스의 글과 비교하기에는 글의 구성적 측면에서 다른 점이 있다. 엥겔스의 경우 전반부에 노동자 상태를 대도시라는 공간 조명을 통해 기술하고, 후반부에는 이러한 조건이 만들어진 원인과 결과, 이것이 노동자들에게 강제되고 강화되는 측면을 서술을 하고 있다. 즉 구체적인 사례들에서 일반성을 도출하고 다시 구체로 돌아간다. 그러나 에렌라이히는 전자에 중심을 두고, 이 양자를 각각의 주제 내에서 간략히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책 소개에서는 정책적 개선점 등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이끌어내는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주체의 호명(?)이 불분명하다. 읽다보면 비정규노동자를 얘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비정규노동자들이 현재적 삶을 이미 받아들이고 있다는, 즉 내면화 하고 있다는 표현을 보면 비정규노동자들이 변화의 주체가 아니라는 말을 던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좋은 말로 하면 변화의 주체는 노동자, 정부, 사용자 모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파야하는 게 현실인데, 그냥 서로 도와 우물파자라는 식으로 끝나는 것은 아닌가...


[거세된 희망] 원제:Hard Work (2003)

글쓴이 : 폴리 토인비, 이창신 옮김   ISBN : 8957690077
구분   : 르뽀               판형: 반양장본 | 234쪽 | 225*148mm
책제목 : 거세된 희망   원제: Hard Work(2003)
출판일 : 2004-01-08       | 출판사 : 개마고원

=>[거세된 희망] 소개문 및 목차(알라딘)

제목은 '거세된 희망'이지만 원제는 Hard Work이다. 저작가 현장 체험을 하며 겪은 일, 그 경험은 그 곳에서 벗어나 안도의 숨을 쉴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고 그런 일에서 벗어나려해도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 '거세된 희망'으로 번역을 했을 수 있다.

이 책도 '빈곤의 경제' 와 같이 저널리스트인 폴리 토인비가 청소원, 병원 잡역부, 텔레마케터, 간병인 등을 경험하며 그 속에서의 생활을 써 내려간 책이다. 책의 소재를 발굴하기 위한 방법이나 글의 구성방법은 '빈곤의 경제'와 유사하다. 다양한 비정규직의 직업을 체험하고 이를 각 업종별로 정리하고 있다. 글의 첫 장은 현장으로 향하는 여정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현장에 들어가 겪은 내용을 각 업종별로 정리하고 있다.

'빈곤의 경제'와 다른 점이라면 분석이 좀 더 세밀하다는 점이다. 각종 통계자료나 관련 문헌 자료를 분석에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독자를 변화의 주체로 불러들이는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빈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국가의 책임성을 제기한다. 즉 저자는 우리에게 물음을 던지고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국가에 요구해야 할 사항들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세밀하고 구체적인 분석과정이 좀 지루하게 한다. 그리고 경제나 사회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운 내용들이 다소 있다. 쉽게 말해 어느 정도 식자층이 아니라면 쉽게 읽히지는 않는 글이다.

한 가지 좋은 점은 한국의 실태를 각주나 보충 글을 통해 간간이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영국의 사례와 한국의 사례를 비교해 볼 수가 있기도 하고 한국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확인해볼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 원제:The Condition of the working class in England (1845)

글쓴이 : 프리드리히 엥겔스, 박준식 외 옮김   ISBN : .....
구분    :                                    판형: 355쪽 | 225*148mm
책제목 :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   원제:  The condition of the working class in England(1845)
출판일 : 1988-09-05       | 출판사 : 두리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 소개문(개인)

엥겔스는 노동자 계급의 상태는 모든 사회운동의 진정한 토대이자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 대부분은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를 비교적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에 많은 할애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대문이다.

방법론적으로 현장 관찰과 간접 경험, 문헌자료들을 이용해 글을 썼다. 글의 구성은 책 소개와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즉 1840년대 초 영국 노동자 계급의 실태에 대한 묘사, 이러한 실태에 영향을 미친 요소들에 대한 분석,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의 미래에 대한 전망이다.

앞에서 살펴본 책들이 개별적인 노동자를 중심적으로 살펴보고 있다면, 이 책은 개별적인 사례를 통해 전체 노동자계급을 조망하고 있다는 점이 또 다른 특징이다. 그리고 이를 자본주의 사회 일반성과 연결시키는데, 중요한 것은 조건을 따져 다시 구체적인 것들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노동자들이 술과 문란한 성생활에 빠지는 것. 그것은 당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처한 조건에 의해 나올 수밖에 없는 삶의 모습인 것이다. 엥겔스에게는 그러한 삶에 대해 도덕적으로 옳으니 그르니에 하는 것이 오히려 위선적인 태도로 보이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도시연구에 있어서도 하나의 모범으로 참고할 수 있는 책이다. 시기적으로는 160년 전이고 영국이라는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 일반에 나타는 구체적 삶의 모습들은 동일한 형태를 띨 수 있다. 특히 도시에서 과잉인구가 되어버린 또 다른 계급들이 도시에서 살아남는 방법들. 예컨대 청소부, 소매업 종사, 노점상, 막노동....그것도 어려우면 도둑, 약탈, 방화범이 되거나 자살을 해야 하는 현실. 반지하실, 옥탑방, 원룸, 고시원 같은 공간들...

1. ACORN 사례
지역주민운동과 관련해 ACORN 사례는 한국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조직원리를 가지고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ACORN으로 발전할 수 있었나 하는 지점들, 그리고 한국에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들일 것이다. 

2. 지역주민운동의 형성조건
그러나 그 가능성들은 이러한 지역주민운동이 미국에서 형성될 수 있었던 조건들은 무엇인가 하는 지점들을 먼저 짚어본 이후에 찾아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에게는 이러한 분석이 미흡한 실정이 아닌가 싶다. ACORN의 사례도 그러한 운동 자체가 어떤 조건에 의해 가능했나에 대한 분석은 아직 미흡하다. 다만 미국의 시민운동이 발전할 수 있었던 조건과 관련해 카즈넬슨(Ira Katznelson)의 19세기 영국과 미국의 노동계급 형성 조건과 국가 분석을 참고해볼 수 있을 것이다.
3. 지역주민운동의 한계와 노동운동
카즈넬슨의 분석틀은 우리의 조건들을 비교분석해보는 틀로도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카즈넬슨의 논의는 미국의 시민운동이 노동운동과 만나는 지점까지는 나가지는 못하고 있다. 분석대상의 시기적 한계일 수 있다. 이에 반해 ACORN 사례는 어떻게 지역주민운동이 노동운동, 특히 비정규노동운동과 만날 수 있는가 하는 시사점들을 던져주고 있다. 

구태여 노동운동과 지역주민운동이 만나야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례에서 "ACORN의 조직가는 단지 지역에만 관심을 기울이면 안되고 노동의 문제(특히 비정규 노동자), 광역적인 문제 등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이라는 한 사회의 변화를 위해 생산과 소비의 주체인 노동계급 없는 그리고 국가단위의 개입 없는 지역사회공동체 운동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운동이 지역사회공동체를 그만두고 떠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4. 융합적 사회운동 모델과 정치

구사회운동이 대상과 주체에 있어 국가와 노동중심이었다면 신사회운동은 그 대상과 주체의 다양성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래와 같은 ACORN의 조직화 모델은 신사회운동과 구사회운동이 결합해 만들어낸 또 다른 형태의 융합적 사회운동모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아쉬운 점은 정당과는 어떤 관계구조를 형성하고 있는가 하는 지점, 즉 정치와 어떻게 결합하고 있는가 하는 지점이다. 운동은 정치적 기회구조 속에서 동원되거나 이용될 수 있고 정치적 기회구조 그 자체를 바꿔낼 수도 있다. ACORN 사례도 이러한 정치적 기회구조로부터 자유스럽지는 않다. 그러나 문제는 민주주의 제도에서 정치적 기회구조의 중심에 정당이 놓여있다고 가정할 때, 미국에는 유럽과 같이 노동계급의 이익을 대표하는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ACORN 사례는 민주당으로 흡수되는 정치적 기회구조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에 대한 ACORN의 방안은 무엇일까?

5. 융합적 사회운동 모델의 형성조건과 그 한계
이러한 방안은 보다 근본적으로 융합적 사회운동 모델의 형성조건과 그 한계라는 주제 속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참고사이트>

[아카시아]Wade Rathke 초청 지역주민운동 공개강좌 후기

희망찬시민운동/아시아NGO센터 2006/11/26 18:43 리장


Wade Rathke 초청 지역주민운동 공개강좌 후기
창림

아시아NGO센터에서 주최한 Wade Rathke 초청 지역주민운동 공개강좌 내용 정리입니다.
청중들이 환경재단 레이첼 카슨룸을 가득 메운 것을 보니 요즘 시민운동에서 풀뿌리, 주민조직이 관심사이긴 하나 봅니다. 부족한 내용이 많겠지만, 못오신 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올립니다. Wade가 열심히 설명했으니 저는 이거라도 해야지요.  



ACORN 소개

ACORN(Association of Community Organization for Reform Now)은 미국에서 가장 큰 지역공동체 조직으로 사회적 정의와 연대감 강화를 목표로 활동해 오고 있다.ACORN은 1970년 설립 이래로 꾸준히 성장하여 현재는 250,000 회원(개인 및 가족회원)을 두고 있으며, 미국, 캐나다, 도미니카 공화국, 페루, 아르헨티나 등에서 103개 이상의 도시에 850개의 지부를 가지고 있다.

ACORN의 회원들은 회비를 납부하고(1개월에 10달러, 1년에 120달러) 지역의 회의에 참여하고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결합하며, 지역사회를 개선하기 위해 지도자들을 선발한다.

ACORN은 지역공동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을 끊임없이 변화발전시켜오고 있으며, ACORN의 자매단체로는 두 개의 라디오 방송국, 투표자등록네트워크, 주거연합체, 그리고 여러 출판사들이 있다.

ACORN은 올해로 창립 36년을 맞았는데, 중산층 및 저소득계층의 지역사회 공동체 조직 가운데 36년이라는 역사를 가진 그룹이 있다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이다. 단체의 수명, 규모, 범위 등에서 ACORN은 이미 유일한 단체로 꼽히지만, ACORN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 새 영역을 개척할 확고한 의지와 능력을 갖게 하여, 이들을 조직하는 헌신성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 ACORN을 더욱 가치있게 해 준다.

초창기때부터 백인과 흑인, 복지와 가난한 노동자 사이의 문제들을 함께 다루면서 ACORN은 다민족과 다양한 이슈를 조직하는 영역을 개척하였고, 혁신적인 주구 개발, 공동체 미디어, 노동자 조직하기 등 여러 방면으로 그 범위를 넓혔다.

1970년대 베트남 전쟁이후 피폐화된 산업과 늘어나는 실업자 문제를 다루었던 ACORN의 활동은 오늘의 한국 실업문제에 대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또한 1980년대에는 다양한 서비스 노동자들(맥도널드, 피자헛, 버거킹 등)을 지역에서 조직화하였으며 최근에는 가사도우미, 보육도우미 등을 지역에서 조직화하는데 성공하였다. 지역의 여성, 비정규 노동자 및 서비스노동자들을 조직화(Community Union)하는데 크게 기여했던 Wade는 오늘의 SEIU(서비스노동자연맹 180만명 조합원)을 조직화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을뿐만 아니라 공장에서 노동자를 조직했던 정통적인 조직화 방식에서 지역의 CO와 비정규 노동자들을 조직화하는데 성공함으로 오늘의 한국 시민사회 및 노동조합운동에 새로운 도전과 모델을 제시한다.

ACORN은 이슈의 크기에 관계없이 회원들의 삶과 관련된 것이라면 조그마한 지역의 신호등 문제에서부터 지역의 재투자를 대형은행으로부터 끌어내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루어왔다. 몇몇 단체들이 저소득계층에서 지역사회공동체를 조직하는 일을 그만두고 떠날 때 ACORN은 흔들리지 않고 길을 계속 걸어왔다. 그것은 미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대규모 조직들이 없다면 진보적인 변화가 있을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ACORN의 조직원리

1. Co-ordianted Autonomy : 각 지부 조직은 지역별 주요 사업에 대한 자율적인 결정권이 있다. 예를들어 동단위 모임에서는 동단위 사안만 다루고, 시단위 모임에서는 동단위 사안은 다루지 않고 시단위 사안만 다룬다. 전체 조직이 유기적이고 유연한것을 특징으로 한다.
2. Equal representation : 10명의 회원당 1명의 대의원이 있다. 개인회원의 의사는 대의원을 통해서 조직전체의 정책과 방향을 결정한다.
3. Constituency Based : 정형화된 조직 유형은 없다. 농촌에서는 농민회의 형태로, 공장에서는 노동조합의 형태로 조직한다.
4. Membership Dues : 회원은 회비를 내야 할 의무가 있다. 회비를 내지 않으면 회의에도 참석하지 못한다.(70년대에는 1달러/1월 ->90년대 5달러/1월 ->2000년대 10달러/1월)

조직을 어떻게 만드는가? 모델

1. Organizing Committee 조직위원회를 만든다.
조직위원회 멤버는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이고, 서로 균형을 이루기 위해 지역 전반에 고루 분포해야 한다.(철로 옆에 사는 사람만 조직위원회에 참석하면 그 조직은 철로문제만 다루게 될 것이고, 공장지역에 있는 사람들만 참여하면 공장문제만 다루게 될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 지역 안배가 필요) 초기에는 소수로 출발 할 수 밖에 없고 그래도 괜찮다.

2. Door Knocking 문을 두드린다. 가가호호 방문한다.
조직가는 지역인으로 구성된 조직위원회 멤버들과 가가호호 집을 방문한다. 4주동안 한집도 빠지지 않고 돌아야 한다.(Wade는 휘젓다‘Stiring’라는 표현을 썼다) 일반적인 Community의 범위를 1,500세대에서 3,000세대로 잡는데 30여년의 경험상 4주정도 휘젓고 나면 3천 세대 중 1,000세대 가량을 접촉할 수 있었다고 한다.

※ Door Knocking은 이렇게....
- 먼저 조직가의 조직에 대한 간단한 설명하고
- 지역사회 이슈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관심사를 묻는다. 관심없다는 대답을 들었을때는 다른 사람들의 답변을 예로 들어가면서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 이슈나 문제에 대한 해결을 위해서는 조직화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 우리는 민주적인 의사와 결정을 위한 회의 참석과 멤버쉽에 대해 설명한다.
- 마지막으로 첫 번째 모임에 대해서 안내해 준다.
-> 이 모든 과정은 10분 안에 마무리 할 수 있어야 하고,
-> 또, 전할 메시지는 잘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 또, 듣는 사람 입장에서 메시지가 전달되어야 한다.(이해하기 쉽게)

3. 4주후 첫 모임을 잡는다
4주 후 첫모임을 잡는 것은 첫 대면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너무 이르면 지역 전체를 다 돌 수 없고, 너무 늦게 잡으면 이슈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게 된다.
첫 모임에서는 “우리 동네(Community) 문제가 무엇인가?”에 집중해서 이야기한다. 각자 생각하는 이슈에 대해서 논의하고 집중할 이슈를 결정한다. 합의가 되지 않을 경우, 투표를 통해서 이슈를 결정한다.

※ 조직가는 잘 듣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잘 듣는다는 것은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무엇인지, 그 배경은 무엇인지 잘 파악해야 하고, 기억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훈련이 필요하다.



ACORN의 당면과제

지난 36년간 25만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활동해 온 ACORN은 앞으로 5년안에 250만으로 회원을 확장하는 것과 그 안에서 사람들을 더 성장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10년 안에 300만 회원을 조직(미국 인구의 1%)해서 미국을 변화시키는 목표가 있다.
그동안 지역에 기반한 회원(Community Membership)을 조직하는데 집중하였다면, 최근 라디오프로그램이나 웹사이트 등을 통한 회원 모집, 주거환경개선정책 활동을 통한 회원모집, 비정규노동자 조직, 최저임금인상캠페인 등을 통한 회원모집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활동할 계획이다. (Associate Membership, Provisional Membership)
새로운 역할이 생기면서 지역사회 조직가에게는 새로운 역량이 요구되어진다. ACORN 조직가 350명 정도가 25만명의 회원을 대상으로 조직의 원칙을 지키면서 조직을 지속 관리 시키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다. 관리한다는 것은 지속적으로 이슈를 발굴하고 해결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ACORN의 조직가는 단지 지역에만 관심을 기울이면 안되고 노동의 문제(특히 비정규 노동자), 광역적인 문제 등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2006 경제활동인구부가조사> 를 분석한다
비정규직의 규모와 차별의 고착화 국면
비정규직 2만명 증가로 841만4천명, 극심한 차별도 지속
I. 규모의 고착화

1. 전반적 규모 확대 국면의 지속: 비정규직 팽창국면의 고착화

- 2006년 8월 기준 전체 임금노동자 15,351천명 가운데 비정규직 841만 4천명(54.8%), 정규직 657만 4천명(45.2%)으로 비정규직 비율이 전년 동월 대비 1.3%p 감소한 것으로 나타남.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2만여 명이 늘어났음에 비해 정규직은 36만3천여 명이 늘어나서 비정규직 비율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남.

- 비중은 줄었다고 하지만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평가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비정규직 규모 확대의 심각성은 지속되고 있음.

- 경제상황과 노동시장 상황이 결코 좋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지속적인 저성장기조의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은 시기로 전체 고용이 증가했다는 점을 고려하고, 그 가운데서 적은 수라도 비정규직은 증가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의 비정규직 규모는 세계적으로 비슷한 경우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월등히 많다는 현실을 고려할 때, 약간의 비중 감소와 절대인원의 증가는 비정규직 규모 축소를 향한 반전의 기미라기보다는 ‘비정규직 팽창국면의 고착화’로 평가할 수 있음. <표1>


- 부가조사가 처음 실시된 2000년부터 비정규 규모 추세를 살펴보아도 감소국면이 아니라 고착화 국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음.<그림1>



2. 차별적 요소가 강한 ‘간접고용화 현상’에 주목해야

- 주목해보아야 할 것은 파견근로와 용역근로의 경우 매년 그 수가 증가하고 있는데, 올 해도 역시 전년 대비 각각 1만 3천명(전년대비 11.0%P 증가), 6만 8천명(15.8%P 증가)이 늘어났으며, 특히 용역근로를 제공하는 노동자의 수가 비정규 노동자 중 가장 많이 늘어났음. 따라서 전체 노동자 중 파견, 용역의 비중도 0.4%P 높아짐.

- 특히 용역근로가 전체 임금 노동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 부가조사 원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비책이 절실히 요구됨.<그림 6>


- 이렇게 간접고용 비중이 증가하는 간접고용화 현상은 직접고용 비정규직보다 노동조건이 열악하며 차별시정의 대상이 되기 어려운 요소를 안고 있어 ‘비정규직 차별 고착화의 지렛대’로 작용할 가능성이 큼.

- 간접고용화 추세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이와 관련된 위험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음. 간접고용 확대방지를 위해 하도급 관련 법률의 정비와 함께 비정규직 관련법에서 간접고용을 확대하는 장치를 제거해야 하며 불법적인 활용의 빌미가 되는 모호한 조항을 제대로 정비해야 하고, 차별시정의 대상으로서 간접고용을 포괄할 수 있도록 해야 함. <표2>  

3. 기간제 증가에서 다시 감소로

- 비정규직의 고용형태별 규모는 일반임시직이 335만 8천명(21.9%)으로 작년과 마찬가지로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년 대비 0.5%p 늘어난 것으로 나타남. 기간제고용은 233만 6천명(15.2%)으로 기간제 근로자의 수는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고 있음. 다음으로 임시파트 73만 3천명(5.0%), 특수고용 57만 6천명(3.8%), 호출근로 55만 3천명(3.6%) 순으로 나타나고 있음.

- 그런데 고용계약 기간이 분명하고 상대적으로 노동조건이 약간 좋은 기간제 고용 비중이 증가하다 다시 감소세로 돌아서고, 계약 종료가 불분명하고 노동조건도 더 열악한 일반임시직 비중은 다시 높아졌음. 변동성이 강한 추세이나 작년도 기간제 급증이 비정규입법에 대한 사회적 논란의 잠재적 효과로 볼 수 있다고 보았으나 그 결과는 알 수 없음.   

4. 시간제 노동자 증가

- 시간제 노동자도 6만3천여명(8.7%P 증가)이 늘어나고 있는데, 시간제가 가정-직장의 조화를 꾀하며 시간활용을 주체적으로 하면서 일정한 소득도 얻는 시간주권(time  sovereignty)의 장치라기보다 불가피한 선택의 비중이 높은 임시파트타임이 대부분을 차지하므로 바람직한 변화라고 보기는 어려움. 물론 불안정한 호출근로의 감소는 바람직하나 조금 더 나은 다른 비정규직으로 전환이나 자영업으로 또 가사로의 이동 등 다양한 이동경로가 존재하므로 확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움. <표3>

5. 비정규직의 여성중심화 지속

- 성별 정규직-비정규직의 비율을 살펴보면 남자의 경우 891만여 명의 임금노동자 중에서 정규직이 484만 9천여명(54.4%), 비정규직이 405만 9천여명(45.6%)으로 전년 동월 대비 비정규직 비율은 0.8%p 감소하였음. 여자의 경우 644만여 명의 임금노동자 중에서 정규직이 208만 7천여명(32.4%), 비정규직이 435만 5천여명(67.6%)으로 전년 동월 대비 비정규직 비율은 1.9%p 감소하였음. 여성 비정규직의 비율은 여전히 67.6%로 높게 나타나고 있지만 정규직 고용이 168천여명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남. 따라서 ‘비정규직의 여성중심화 경향도 지속’되는 국면임. <표6>

- 고용형태별 남녀 구성비를 살펴보면 차이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음. 임금노동자 중 남자와 여자의 비중은 58:42로 나타나고 있으나 정규직의 경우 70:30으로 남성이 압도적임. 그리고 일반임시직, 파트타임, 특수고용, 파견근로 등이 여성편중적이며 재택근로 형태의 비정규직인 경우 여성이 91.3%로 여성적 고용이라고 할 수 있음. 전체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42%)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는 고용형태는 정규직과 호출근로를 제외하고는 모든 고용형태로 여성의 경우 높은 비정규직 비율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음.

6. 금융, 공공행정 비정규직 증가

- 산업별 비정규직 비율 중에서는 공공행정, 금융부문의 비정규직 비중 증가가 두드러짐. <그림4>


- 공공, 금융부문의 이러한 비정규직 증가 현상은 올해만의 특징적인 모습이 아니라는데 더 큰 문제가 있음  금융부문의 경우 2004년 정규직 비율이 54.7% 였던 것이 2005년에 50.6%, 2006년에 45.6%로 2년 연속 그 비중이 큰 폭으로 떨어졌음. 공공 역시 마찬가지임.

- 공공, 금융 등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직업층에서 비정규직 증가는 이 부문의 고용의 양극화로 인해 전반적 고용 양극화를 촉발하는 부정적인 사회적 영향을 미치는 것임. 아울러 정부가 비정규직 증가와 차별 심화를 억제하는데 전혀 선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음. (물론 공공부문은 여러 산업분야에 분산되어 있기는 함) 

II. 차별의 고착화

1. 비정규직 임금차별의 지속 확대


매년 전체 노동자들의 월평균임금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으나 정규직의 월평균임금이 6만원정도 인상된 것에 반해 비정규직은 4만원이 인상되어 격차가 더욱 확대되고 있음. 2000년의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73만원 정도 였으나 6년이 지난 올 해 8월의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110만원으로 절대적인 금액에서 차이가 계속해서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남. ‘비정규직 임금차별의 지속적인 확대’ 현상임. <그림3>

- 2005년 8월 현재, 전체 임금 노동자들의 월평균임금은 166만원이며, 정규직 노동자들의 월평균 임금은 226만원,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116만원으로 상대적 임금격차는 변동성을 보이지만 장기 추세선으로 볼 때도 비정규직 임금 차별은 확대되고 있는 추세임. 앞으로 고용형태별 임금격차를 줄이거나 완화시킬 방안이 사회 제도적으로 준비되지 않는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계속 커질 것으로 추정됨. <그림5>
그림  년도별 (비정규직임금/정규직임금)*100과 추세선


2. 비정규직의 사회적 배제의 지속: 사회보험 적용 차별의 지속

- 전체적으로 정규직·비정규직 모두 사회보험 및 법정복지, 부가급여에 대한 적용 비율은 높아지고 있음. 하지만 여전히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적용률은 30% 내외로 정규직의 98%대와 비교했을 때 매우 낮은 수준임. 비정규직의 사회적 권리 배제 현상도 지속되고 있음. 

- 비정규직의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적용 비율은 각각 33.4%, 34.3%, 31.2%로 전년 동월 대비 각 사회보험 적용률은 각각 0.6%p, 0.9%p, 0.5%p 증가하였으나 이와 같은 비정규직의 증가수치는 여전히 매우 미미한 것으로 정부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4대보험의 가입을 유도하고 있기는 하지만 앞으로 획기적인 적용률 확대방안이 필요함.

3. 노동조합을 통한 권리 확보 방안 부재 지속

- 2006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서 전체 노동자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11.3%로 전년 동월 대비 0.5%p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음. 정규직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21.6%, 비정규직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2.8%로 전년 동월대비 정규직은 1.1%p, 비정규직은 0.4%p 각각 감소하였음. 이는 전체적으로 노조 가입한 노동자의 수가 줄어들고 있는 추세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됨.

- 전체 조합원수는 약 173만여명 정도로 추산되며, 이 중 정규직은 150만여명, 비정규직은 23만 4천여명으로 추산됨. <표7>


4. 고용형태별 자발성 여부 및 그 이유

- 정규직의 경우에는 현재 일하고 있는 이유가 자발적인 사유라고 응답한 경우가 92.9%였으며, 비정규직의 경우는 48%로 자발적으로 일하는 경우가 절반에 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남. 가장 불안정한 고용이라고 할 수 있는 호출근로의 경우 자발적인 경우는 단지 8.3%에 불과함. <표4>

-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으로 일하는 이유를 질문한 항목에서 정규직은 ‘근로조건에 만족하여’와 ‘안정적인 일자리이기 때문에’라는 응답이 각각 42%와 44.1%로 두 응답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음. 비정규직의 경우에는 ‘생활비 등 당장 수입이 필요해서’가 34.1%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이 ‘근로조건에 만족하여’가 21.1%로 나타났음.

5. 예견되었던 주5일제 적용의 양극화

- 소속 사업장의주 5일제 실시여부를 묻는 질문에 정규직의 경우 51.7%가 실시하고 있다고 응답한 반면, 비정규직의 경우 21.2%만이 그렇다고 대답하여 극명한 차이를 보여줌.<표5>

다시 요약하며

이번에는 예년과 달리 노동부가 아니라 통계청이 발표했는데 그 결과와 비교해보면, 통계청이 비정규직 규모 축소라고 얘기한 것은 노동계 단일안 통계(한국비정규노동센터 집계방식)에서 비중의 축소와 유사하긴 하나 절대적 수치에서는 계속 확대라는 상반된 수치로 나타났다.

비정규센터 통계에 비추어 볼 때, 정부는 1년 이상 고용 계약이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현행 법률체계에서 집계한 경제활동인구본조사 상의 1년 이상 고용계약자를 의미하는 상용직을 무조건적으로 정규직으로 보는 관점에 의거한 통계로 여전히 20%, 약 300만명의 축소 집계를 하고 있다. 현행 법률을 지키려면 1년 이상 고용계약이 난무하는 현실 관행을 바로 잡든지(입법적인 반영을 포함해서), 법률과 어긋나지만 현실에서 합법으로 통용되는 결과를 반영한 정부 통계를 고치든지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통계상으로 현행 법률을 따르면서 관행처럼 굳어진 불법적인 현실에 대해서는 침묵과 방치를 넘어 이를 묵인, 방조하는 통계를 계속 내고 있다.

ⓒ 매일노동뉴스

결론적으로 살펴보면, 2006년 8월 조사의 결과 비정규직 규모와 차별은 고착화되어 있어 새로운 계기를 필요로 하는 단계로 평가된다. 비정규직의 규모는 과잉팽창 수준에서 계속 머물러 있는 단계이며 이미 포화될 대로 포화되어 있는 비정규직 중심 고용관행이 그냥 고착화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되는 양상으로 평가된다. 임금차별의 정도는 악화 경향을 지속적으로 띠고 있는데, 문제는 이미 이 수준도 사회적으로 수용가능한 차별의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적 권리의 양극분해적인 차별화 양상도 고착화되고 있으면서 노동시간 측면에서 주5일제라는 새로운 사회적 경향에 있어서도 예견된 만큼의 양극화 현상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더욱이 비정규직의 간접고용화 현상은 이런 차별이 새로운 양상으로 버전업하면서 더 심각한 수준에서 재현, 악화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비정규직의 문제는 단지 심각하다는 진단만으로 부족할 정도로 중요한 현실적 과제이다. 어떤 새로운 계기도 만들어지지 못할뿐더러 현실의 흐름은 이를 더 악화시키는 방향으로만 작동하고 있다. 정부의 비정규입법안에 대한 무수한 논란이 있지만, 이런 흐름을 변화시키기에 역부족인 것만은 분명할 것이다. 단적으로 최근에 제출된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해 자영인으로서 보호하는 방안에 머무는 정부 대책으로 이런 상황의 반전은 불가능할 것이다. 비정규입법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사례이다. 정부의 비정규입법안이 비정규직 규모를 획기적으로(경향적으로가 아니라) 줄이는 방안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는 정부도 아마 인정할 것이다.

과연 정규직을 반도 안 쓰는 즉,  절반을 웃도는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기업들이 절반의 임금착취에 의존해서 생존하는 한국 기업의 모델은 과연 타당한가? 사회적인 악영향을 무시하는 것은 당분간 꿈도 꾸지 않는다고 치더라도, 착취적 자본주의 모델이라고 할 비정규직 활용방식을 기업이 먼저 재고해야 하고 정부는 이를 촉진할 새로운 사회제도를 설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비정규직 통계는 이 사회 주도세력에게 그냥 이대로 가도록 방치할 것인지 다시 묻고 있다.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2006-10-29 오후 4:18:02  입력 ⓒ매일노동뉴스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비정규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접하게 되었다.

내게는 흥미로우면서 우려스럽기도하고 또 한편으로는 희망적이기도 하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그래서~? 그래도 노동자들은 희망이 있어요~잘 해보세요(고생하는 J형이 아니라~^^)라는 생각도 든다.

먼저 흥미롭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비정규노동조합과 파업 또는 분규와 연결망에 대한 지형도가 그려지고 있다. 그 그림을 잠깐 보면 한국 사회의 지역에 따른 산업 특색과 비정규직 문제(파업을 통해)가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파업은 중범위의 수준에서 어떤 단위들과 연결되고 있는지에 대한 그림이 대략 그려진다. 지배적 입장, 완곡한 표현으로 조정자의 입장에서 보면 소위 이 동네에서 단체간에 서로들 어떻게 놀고 있는지 그림이 그려지는 거다. 아마도 그 그림 속에서 대략의 지형도를 미리 예측하고 상상하고 있을거다. 그래서 서로 흥미롭다.

우려스럽다. 물론 연구를 하는 사람들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그 진정성과 달리 그 결과물에 대한 이용은 또 다른 수준의 문제라는 것이라는 것이다(물론 그 결과물을 나도 볼 수 있으니 서로 다른 수준에서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힘의 문제, 권력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 결과물에 따르면 각 지역마다, 그리고 사업마다 주요 포스트만 taget으로 잡으면 비정규노동운동 또는 파업의 물결을 잡을 수 있다(연구의 의도야 어떻든 그렇게 해석할 수 있고 이용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그 결과물을 역으로 이용할 수 있는 측면은 노동에게도 있다. 하지만 노동은 역으로 이용하기에는 원자료도 없고, 있다고 하더라고 조사 설계 자체가 역으로 이용하기 위한 설계 구조가 아니라는 한계도 있다). 그래서 나는 우려스럽기도 하다. 연구자는 어떤 문제의식에서 했던지간에 그것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은 연구자의 손을 떠날 수 있는 문제다. 즉 통제의 도구이자 수단인 것이다.

그래도 희망적이다. 결국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연구는 지금의 상황만을 말할 수 있는 정태인 양적 분석 방법이다. 이 분석의 한계들. 지금의 상황 이외에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삶의 과정이 어찌 그럴 수 있나? 어떤 조건에 의해 지금의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향후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해석하고 예상할 수 있다. 경로모델적으로 설명하면 대략의 향후 향방은 나올 수 있을 수 있는 문제다. 지배의 입장에서 파업에 대한 방지책 또는 억제책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쉽게는 각 연결망의 매듭고리들(nodes)를 끊으면 되는 문제다. 하지만 여기서 희망은 매듭고리들을 끊어도 삶의 과정 속에서는 항상 다른 매듭을 찾아나서고 서로 연결한다는 것이다(이런 생각에 대해 감옥 속에서의 연결망과 자유가 무슨 소용이냐라는 비판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이 비정규노동이 진보와 만날 뿐 아니라 극단의 상황에서 보수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나는 형성과 재구성을 말하고 싶은 거다. 하지만 그것이 무정형 구조는 아니라는 점이다. 항상 또 다른 탈출구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문제는 그 탈출구 또는 연결의 매듭이 무엇과 만나냐 하는 지점이다. 현실에서는 소위 진보와 만날 수도 있고 보수와 만날 수도 있다. 뭐 감옥으로 치면 간수와 만날 수 있고 죄수간에 만날 수 있는 문제다(그래도 감옥 안에서의 문제라고 하면 나도 할 말은 없다) 그런대 어떤 식으로 만나건 간에 그 만나는 것은 어떤 구조 속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냥 쉽게 왜 그런 식으로 만날까?

이 지점이 이 사회를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느냐 하는 지점과 만나는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해석학적 입장이 있을 수 있고 도구주의주의적 입장일 수 있고 실용주의적 입장이 있을 수 있다. 물론 해석학이나 도구주의나 실용주의나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실재론적 입장 속에서 구조조의적 입장을 취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은 여기서 세세히 논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 입장에 따른 형성과 재구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것은 주관적 해석을 객관적으로 증명하려는 실천, 또는 그 진위가 실천에 의해 밝혀질 수 있다는 실천의 우위, 또는 경험주의적 오류(엄밀하게는 실천의 우위와 실증적 경험주의는 서로 다른 기원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와 만나는 지점이 있기도 하다. 진보라는 것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이러한 입장을 벗어난 진보라 하더라도 이론적 실천을 생산하지 못하는 관념론적 또는 이데올로기적 구조주의에 빠질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결론은 지금 나타나는 현상에 대한 기술적(descriptic) 의미 이상의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즉 현상에 대한 기술(graphic)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실재론적 대상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수준을 낮춘다면 그러한 수준의 것이 지식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지점과 연결된다. 물론 나는 출발은 기술적 수준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 수준에서 머무는 방법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이론적, 실천적 의미는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유용성이 있다면 통제의 입장에서 조정할 수 있는 가정들이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방법론을 초기에는 취하지만 종국적으로는 폐기하고 가야한다는 결론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