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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스콧 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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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자의반 타의반 ‘한국 민주주의 회고와 전망’ 심포지엄 토론회에 들르다. '열광과 좌절의 싸이클을 넘어-민주주의 위기와 제2의 민주화 모색'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내겐 최근 참가했던 토론회 중 가장 많은 아이디어를 던져주는 토론회가 아니었나 싶다. 관련 기사와 핵심주제들, 그리고 내게 남는 단상들을 남기다.

[관련기사]
- 관련 자료집 [열광과 좌절의 싸이클을 넘어] 다운로드
- [알림] ‘한국 민주주의 회고와 전망’ 심포지엄 한겨레 생활/문화 2010.04.12
- “한국 참여민주주의 심각한 위기” 한겨레 사회 2010.04.14 (수)
- 최장집, “민족 중심의 민주/반민주구도 퇴영적이고 과거지향적” 폴리뉴스 정치 2010.04.14
- [제2의 민주화 모색 토론회]박태균, “4.19혁명, 미국 헤게모니 역할이 중요” 폴리뉴스 사회 2010.04.14
- [제2의 민주화 모색 토론회]김진호, “촛불, 불온한 시민종교의 탄생” 폴리뉴스 사회 2010.04.14
- [제2의 민주화 모색토론회]고정갑희, “적녹보라적인 운동으로 전환해야” 폴리뉴스 사회 2010.04.14
- [제2의 민주화 모색 토론회]홍종학, “해밀턴 전략 통한 성장 필요” 폴리뉴스 사회 2010.04.14
- [제2의 민주화 모색 토론회]고병권, “스스로의 근거를 문제 삼을 수 있는 체제가 민주주의” 폴리뉴스 사회 2010.04.14
- [제2의 민주화 모색 토론회]김종엽 “민주적 법치와 복지국가 선순환 안돼 MB정부 등장” 폴리뉴스 사회 2010.04.14
- [제2의 민주화 모색 토론회]김정훈, “진보와 보수의 갈등은 합리와 비합리의 갈등” 폴리뉴스 사회 2010.04.14
- [제2의 민주화 모색 토론회]최갑수, “노무현 정권도 ‘기업 프렌들리’였다” 폴리뉴스 사회 2010.04.14
- "참여정부, 재벌과 관료들에게 포획돼 있었다" 노컷뉴스 정치 2010.04.15

II. 내부화된 외부 주체와 잃어버린 주체


최장집은 기조연설을 통해 한국사회 민주화의 장애로 국가의 부활과 시민의 정치 참여 위기, 허약한 정당체제를 지적하고 있다. 이는 한국사회가 겪은 압축적 근대화의 결과이다.

이러한 압축근대화 속에서 한국사회는 "민주화 세력이 한 번도 헤게모니를 잡은 적이 없다. 비록 정권을 잡은 적은 있지만 진보이념이 사회자체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헤게모니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험을 해왔다"(박태균). 그러나 정일준은 이 과정에서 "미국은 '내부화된 외부 또는 구성된 외부'로 단순히 외부로 볼 수 없는 한계가 있으며, 한국사회는 '압축적 미국화'를 경험했다"고 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압축근대화 속에서 한국과 미국은 동일한 주체로 결합되는 '구조적 접합의 장' 속에 놓여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정일준은 주체보다 주체의 접합이 이루어지는 장에 대한 분석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미국이라는 '내부하된 외부주체'에 반해, 역으로 잃어버린 주체가 있다. 일종의 '사장된 내부주체'라고 할까?  고정갑희는 이러한 문제를 여성을 비롯한 대안적 주체들의 틀 속에서 보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잃어버린 주체, 또는 주체의 누락이 어떻게 생산되는가도 고민해봐야할 지점이다. 고정갑희는 '가부장적 폭력'과 '국가폭력' 그리고 '자본의 폭력'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은 일반적으로 가부장은 문화나 이데올로기로 보지만, 사실은 문화가 아니고 자본과 국가가 어우러진 결과로 엄연한 하나의 체제로 봐야함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 세 폭력들의 어우러짐 속에서 이 사회는 다양한 주체를 누락시키고 제외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사례가 낙태문제, 매춘노동의 문제, 기륭전자 여성노동자 문제, 이주노동자 문제, 용산참사 문제 등일 것이다.

하지만 잃어버린 주체나 누락된 주체를 말하고 재해석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김원은 민주화 과정에서 이러한 주체가 왜 재해석되지 못했나를 봐야함을 주문한다. 그것은 기존 민주화 운동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그러한 비판 또는 반성없이 민주화 주체에 여성 주체와 같은 잃어버린 주체를 추가하는 사유는 단지 '온정주의'적 시각에 지나지 않는다.


III. '천민적으로 시장화된 시민주체'와 '한국적 시민종교의 탄생'

0. 천민적으로 시장화된 주체

랑시에르는 정치와 민주화, 그리고 주체 문제에 대해 '정치의 제도화'를 주장한다. 최장집도 이러한 선상에 있다. 이에 반해 조희연은 '정치의 사회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는 주체의 구성과 이의 실현이 제도를 통해 또는 사회를 통해 이루어져야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김진호는 한국사회의 압축적 근대화는 '정치의 사사화'로 수렴되고 있음 주장한다. 다시말해, 최장집이나 조희연의 생각은 일종의 바램일 수 있지만 현실은 그 반대라는 것이다.
김진호가 보기에  한국사회는 압축적 근대화 속에서 독재와 시장화의 경험을 겪고, 이 속에서 시민은 "천민적으로 시장화된 시민"이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대중의 무한 경쟁 상황이 통합 축"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일상생활 속의 정치와 권력은 개인의 영달과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며, 이를 위한 무한경쟁은 체제의 붕괴가 아니라 오히려 현 체제를 유지시키는 일종의 통합 기능을 한다는 역설이 성립하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이러한 무한경쟁은 "타자의 몰락과 자신의 주체화란 모순적 딜레마"을 겪게 한다. 이러한 딜레마는 민주화 속에는 불안과 딜레마가 있음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민주화는 좋다라는 식으로 '감정적 공조'를 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 이것을 사회적으로 묶어주는 '의미의 틀'이 없는 것이다. 즉, '감정적 공조'는 가능하지만 현실로 돌아와서는 내가 살고봐야하는 것이다.

0.  '한국적 시민종교의 탄생' : 종교의례 같은 착각 속의 민주화?
김진호는 '감정적 공조'는 있으나 그것을 엮는 '의미틀'이 부재하는 현 상황은 마치 '종교의례'와 같다고 본다. 종교의례는 의례 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틀을 열어 놓고 이중적 생활을 가능하게 한다. 즉, 현재 나타나는 민주화는 이러한 종교의례와 같은 착각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촛불시위와 같이 사람들은 모이기도 하지만 그것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절에 가서는 무소유를 생각하면서도 현실로 돌아와서는 하나라도 더  늘리는 부동산투기를 해야하는 것이다. 교회에 가서는 사랑과 믿음을 얘기하지만 현실에 그런 사람은 바보다. 항상 의심하고 확인해야 한다.

결국 한국사회 속의 주체들은 존재의 딜레마를 해소하기위해 마치 '종교의례' 같은 정치적 착각 속의 의례 속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김진호는 촛불시위를 오히려 불온하게 본다. 그리고 이를 '한국적 시민종교의 탄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진보적으로 생각한다는 사람들은 촛불시위를 불온하게 보지 않았다. 아니 오리혀 새로운 주체의 형성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김진호의 시각에서 보면 기존의 촛불시위에 대한 진보의 생각과 평가는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일종의 '한국적 시민종교의 탄생'을 찬양하며, 종교적 의례 속에서 안일함을 추구하는 이중적 생활을 하는 것일 수 있다.


IV. 제2의 민주화와 모순적 시민

하지만 김진호의 주장처럼 한국사회에서 주체를 '천민적'으로 시장화된 주체로 볼 수 있는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그렇게 되면 남는게 없다. 이성백은 오히려 근대화, 그리고 근대화된 시민이 의미하는 것은 '시장의 인간'으로 봐야 함을 지적한다. 이를 두고 '천민적으로 시장화된 시민'으로 평가하는 것은 오히려 시민을 고대의 철인으로 보려는 생각인 것이다. 즉, 김진호와 같은 비판은 '계몽적 민주화'의 사유 속에서 민주화를 바라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이성백은 마키아벨리적 시민이 오히려 근대적 시민이고, 그 속에서 존재의 딜레마를 겪는 것을 받아들여야 함을 주장한다. 비록 권모술수적으로 움직이는 시민을 근대시민으로 받아들일 때 제2의 민주화가 오히려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전에는 이러한 시민을 믿지 못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보고 누군가 지도를 해야했던 민주화가 지난 민주화라고 하면, 이제는  그것을 벗어나야하고 이를 위해 있는 그대로의 주체를 인정해야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근대사회에서 주체는 항상 '천민적으로 시장화된 시민'으로의 압력에 있으며, 이에 대한 딜레마 속에서 항상 저항이 존재하고 재구성된다고 본다. 일종의 주체의 변증법적 재구성이라고 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 국면이 어떠한 국면에 있느냐 하는 점이라는 생각이다. 그에 대한 판단이 부재하는 것은 양비론적 시각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판단을 유보하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거다. 이와 관련해, 나는 '천민적으로 시장화된 시민'의 심화라는 김진호의 지적에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