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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스콧 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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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김동유 전시회 가기

구술생애사 방법론과 관련해 요즘은 '구체적 일반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들이 생긴다. 구술생애사뿐 아니라 사회과학 방법론 전반에 걸친 논쟁이 있을 수 있다. 더 깊게 본다는 사회과학 방법론과 관련한 철학적 논쟁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최근 김동유 전시회가 생각의 깊이를 더하게 하고 있다. 마침 광화문 나가는 길에 잠깐 김동유 전시회를 들르다. 운 좋게 이주형 전시회도 함께 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주형의 그림은 내게 기괴함 속에서 거부감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이주형 전시회를 보면서 그 그로테스크함 속의 거부감이 많이 없어졌다.

막상 두 전시회를 함께 보니 오히려 재미있었다라고 할까? 두 작가의 그림을 연결해 사회과학적 방법론을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닌었나 싶다. 관련해 간단한 단상을 남기다. 김동유 전시회는 이미 많은 관련 기사와 동영상이 있다.

박정희+먼로, <환상적 더블 이미지, 김동유전> 노컷뉴스 생활/문화 2010.03.30
‘잘 팔리는 작가’ 소문에 가려진 ‘진가’ 찾기 경향신문 생활/문화 2010.04.07

나의 결론을 먼저 남긴다면, 김동유의 그림 속에서는 사회과학 분석에 있어 분석 대상과의 '거리'의 중요성을, 이주형의 그림 속에서는 분석 대상에 대한 '공리적 시각' 버리기의 필요성이 아닌가 싶다. 나만의 해석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해석이 틀릴 수 있다. 그래서 틀릴 가정은 항상 열어놔야 한다는 생각이다.


II. 김동유 그림 속의 '구체적 일반성'

구술생애사 연구가 추구하는 바는 "생애사를 통해 드러나는 특정사회의 '구체적 일반성'을 재구성하는 것이다"(이희영, 2006). 즉 구술생애사는 한 사람의 생애사를 통해 사회를 재구성는 방법론인 것이다. 여기서 구술생애사는 한 개인의 생애사라는 미시적 접근을 통해 특정 사회를 재구성하는 거시사적 접근을 시도하기도 한다. 즉, 미시를 통해 거시를 그리는 한편 미시와거시의 구분과 경계 긋기의 무의미함과 이의 통합을 시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김동유의 그림은 미시와 거시라는 보는 거리에 따른 그림의 차이가 명백하게 존재함을 보여준다. 다시말하면 미시와 거시의 구분과 경계가 명백히 존재함을 증명하는 그림이다. 물론 역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번 성곡미술관에서의 '지독한 그리기 figure 2 figure'라는 주제의 전시는 김동유가 한편으로는 그림 속의 그림, 또는 그림을 통한 그림을 그리는 시도를 함으로써 미시와 거시의 경계 구분의 의미를 무의미하게 하는 시도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경제는 보는 거리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 문제다. 즉, 구분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시각의 거리 속에서 구분이 명백해지고 구분이 존재하게 된다.

이건 구체적 일반성이라는 가정 속에서 구체와 일반성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나비-보살'이라는 작품, 자세히 보면 나비 그림이지만 멀리서 보면 부처의 모습이다. 그래서 부처를 보고 가까이 가면 손을 내밀면 날아갈 것 같은 몽환적인 나비들 뿐이다(개인적으로 그 그림 속의 나비는 너무 예뻤다. 딱 한 마리만 떼어다 흰 바탕의 책상 위에 얹어 놓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심리는 뭔지...)

물론 '박정희 & 마를린 먼로'(작은 마를린 먼로를 통해 커다란 박정희 그리기)의 그림과 같은 것을 통해서는 마를린 먼로를 통해 박정희라는, 즉 사람이라는 공통성을 찾을 수 있겠지만, '과일 & 마를린 먼로(작은 마를린 먼로를 통해 커다란 사과 그리기)'를 통해서는 그런 공통성을 찾을 수 없다. 여기서 '그림 속의 그림 figure 2 figure'는 다양하게 그려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1) '박정희& 마를린 먼로'와 같이 구체적 일반성을 통한 미시와 거시 구분 없애기를 시도할 수 있고, (2) '과일 & 마를린 먼로'와 같이 구체적 일반성 성립의 불가능성을 통한 미시와 거시의 구분의 필요성을 제시할 수도 있는 것이다.  (3) 그리고 '부처 & 정치인(많은 작은 정치인의 그림을 통해 커다란 부처 그리기)'과 같이 다양한 분석대상을 일정한 거리에서 총체적으로 바라봄으로써 평가하는 방법을 제시할 수도 있다.

또 하나는 미시와 거시라는 거리의 문제와 함께 어떤 측면에서 볼 것인가 하는 시각의 문제가 존재한다. 기존 김동유의 그림에서는 주로 거리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복합적 이미지(접히는 세로형 브라인드에 대나무숲과 호랑이를 그려 좌측에서 볼 때는 대나묵숲이 보이게 하고 우측에서는 호랑이가 보이게 한 그림)라는 작품은 시각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것은 결국 사회과학 방법론에 있어 가치 중립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가치중립 속에서 진실은 가려지고 어느 측면도 대변하지 못하고 아무 것도 볼 수 없게 한다. 진실을 가치중립 속에서 은폐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과학 방법론에서 어떤 입장에서 볼 것인가를 밝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학문과 학자의 가치중립'이 허구일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이미 많이 논의되어온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III. 이주형의 '공리적 시각' 버리기


이주형의 그림은 미술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에 도전한다. 즉, 조형의 기본 요소는 점, 선, 면으로 구성되어있다는 칸딘스키적 사고를 부정하고 면과 선 두 가지를 조형의 기본 요소로 보는 것이다. 이런 생각 자체가 어떻게 보면 기존의 공리(公理, axiom)를 버리고 새로운 공리를 세우는 작업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들은 머리카락 같은 선 속에서 뒤통수가 그려지고 포자가 그려지고 풍경이 그려지는 것이다.

이주형 또한 모호한 구별을 통해 사물을 구별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기본요소가 개인과 개인의 합이라는 사회 명목론적 공리, 개인이 있지만 개인과 개인의 합은 단순한 합 이상으로 존재한다는 사회 존재론적 공리, 그리고 이 두 개의 공리는 대립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이 두개의 공리를 어떻게 버리고 재구성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주형이 원론적 질문을 던지듯이 왜 사회과학에 공리가 필요한지, 그 공리가 옳은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과학은 이미 답을 정해놓고 풀어내는 과정일 수 있다. 물론 문제를 푼다는 것은 공리 속에서 정해진 룰을 논리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순수학문에서의 가정이지 사회과학에서는 고정된 공리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 항상 사회 속의 공리는 부유한다. 그것에 대해 의심하고 재점검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구술생애사 관련 자료] 현실 이해를 위한 모색(이희영)
생애사연구가 추구하는 바는 이처럼 생애사를 통해 드러나는 특정사회의 ‘구체적 일반성’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3. 체험과 이야기: 구술텍스트의 특성 생애체험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