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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스콧 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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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비정규노동자의 삶과 고시원 살인방화

송용한

1. 내 스스로 위안이라도 해야하나?
고시원 살인방화와 관련된 기사가 사회면 일면을 장식하고 있다. 이럴땐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우선 죽은 사람들에게 애도의 마음을 전해야할 거다. 그리고 방화범에 대한 생각에 앞서, 이 사회 속에서 나의 무력감을 느낀다. 이번 고시원 방화사건은 어쩌면 우리들이 느끼는 이 무력감에 대해 표출되는 한 개인의 사회적 저항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극단적 행위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는 "고시원 살인·방화는 '반사회성인격장애'의 전형"라는 표제를 달고 있다. 경찰에서는 정신병적인 증세로도 보고 있다. "다행이다...그래도 나는 아직 그런 '반사회성인격장애'는 아닌가보다"라고 내 스스로 위안이라도 해야하나?

2. 삶의 무게들 - 비정규노동과 부동산 문제
한겨레 신문 기사 ['궁핍, 사회불만의 흉기', 고시원 참극]에서 보듯이, 방화범(정씨)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02년 서울로 올라와 식당 보조원과 주차요원 등으로 일했으며, 최근엔 고시원 인근 분식집에서 배달원 일을 해 왔다. 정씨와 같은 조건에서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사실 이런 류의 단순서비스직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월급은 받아야 보통 100만원 내외, 많아야 150만원 정도다.  

이 돈으로 사실 정상적인 가족 생활, 그것도 서울에서 결혼해서 집을 얻고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결혼은 둘째치고 집을 얻는 것만으로도 버겁고 힘든 일이다. 싸도 몇 억대를 넘는 집을 산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고, 전세를 얻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이런 조건에서 비정규직으로 일을 하며 원룸이나 월세라도 얻고 생활하려면 한달 번 돈의 반 이상은 집세로 내야한다. 서울 변두리라면 40정도면 가능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변두리로 나가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설사 변두리가 아니라 도심에 일자리를 구한다 해도 출퇴근 시간만 한 두 시간은 족히 걸린다.

결국 시급이 다른 조건보다 좋은 조건에서 일자리를 구하려면 어떻게 해서라도 도심 안에서, 그것도 잘 나가는 동네서 일자리를 구해야한다. 그리고 일하는 곳에서 쪽방을 내주거나 일 끝나고 가게 쇼파 같은 곳에서라도 자라고 하면 다행이다. 이런 조건도 어려울 경우 도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주거공간이 고시원이다. 말 그대로 쪽방의 또 다른 이름이 고시원인 거다1).

그 곳에서 정씨는 빡빡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거다. 그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었던 사람도 정씨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비정규노동 문제'와 '부동산 문제'가 얽혀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우리의 삶을 내리누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3. 이중도시와 감정노동
강남이라는 공간. 이 공간은 전형적으로 '이중도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공간이다. 이 동일한 장소에서 강남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러한 향유를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강남에는 한국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를 비롯해 백화점과 음식점, 그리고 고급 유흥시설들이 즐비해있다. 아파트에는 경비아저씨가 있고, 백화점에는 판매원과 주차요원, 청소부가 있고, 음식점에는 식당 보조원, 배달원이 있다. 이런 일들은 정씨가 해 온 일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씨가 해 온 그 일들의 대부분 '감정노동'에 속하는 일들이다.

감정노동. 고객에게 무시를 당해도 웃음 지으며 화나는 나의 감정을 항상 참아내야하는 일이다.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지...그나마 돈이라도 많이 주면 그렇다치지만 그렇지도 않으면서 언제까지 참아내야한다는 말인가. 이건 말이 감정노동이지 인간의 영혼을 파는 일들이다. 이런 일을 저임금의 비정규직으로 생활하며 하루하루 참고 견뎌내야 한다는 거.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삶인데 정말 우울증, 화병, 대인기피증, 공황장애 등에 걸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이번 고시원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은 이 이중도시 속에서 감정노동을 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뎌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게 조금이라도 아끼며 빨리 버는 방법이기도 하다. 남들은 어떻게 저렇게 사나 하겠지만, 그래도 가슴 속에 꿈을 갖고 쇠붙이 같은 삶의 무게일지라도 열심히 길을 달려간다.

4. 삶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는 무력감
하지만 가끔은 더이상 넘을 수 없는 벽.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내가 오를 수 없는 산이 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들. 그럴 때는 지금까지 가져왔던 희망조차도 무너지고 더이상 삶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혼자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그 무력감...

이 무력감. 당사자인 나의 책임으로 물어야할까? 하지만 나도 나름 열심히 살아왔는데...더이상 내가 어쩔 수 없서서 그러는 건데.... 그럼 당신의 책임으로 물어야할까? 하지만 당신도 남에게 피해 입히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할텐데... 그럼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5. 인정투쟁과 사회적 대책?
결국 우리는 이렇게 양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양분된 두 당사자 가운데 한 사람만이 위협을 자신의 인격성과 관련된 문제로 인식한다. 그 이유는 상처받은 주체만이 대항 행위를 통해 자신의 전 인격체의 불가침성을 위해 투쟁하기 때문이다(엑셀 호네트, [인정투쟁] p.57)

하지만 이 사회가 그 문제에 대해 그건 너 혼자만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대답할 때...상처받은 한 개인은 혼자 분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확 불지르고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 싶다. 더 비참한 건 이렇게 상처받은 주체만이 위협을 자신의 인격성과 관련된 문제로 인식하고 혼자 죽음으로 해결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정작 상처를 준 이 사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사회가 가한 위협이 한 인격성을 어떻게 파괴했는지에 대해 생각하기보다 오히려 그들을 정신병자로 분류한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정상적인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치안을 강화하고, 그들을 격리시키고 교정할 생각부터 한다. 그런 사회적 정당성 속에서 치안사업, 교정사업, 복지사업은 더욱 확대된다.

그 울타리 속에 들어간 우리들은 한편으로 위안하겠지만...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 높은 벽을 느끼고 곧 무력감에 빠져들거다. 그러다 우리들은 다시 그 울타리 밖으로 내쳐질거다. 그 때에는 일본과 같이 '도리마' 공포가 한국 사회에도 확산되고 있다고 언론들은 떠들어댈거다...참 쓸쓸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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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번 방화사건을 계기로 고시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극단에는 고시원을 폐쇄하겠다고 난리를 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 이들이 어디로 갈지 의문이다. 찜질방? 그것도 하루이틀이지...아니면 노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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