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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스콧 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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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III.

도시적 일상 속의 공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한편으로는 자유로운 공간처럼 여겨지지만 실상 그렇게 자유스럽지만은 않은 공간이다. 아침에 집을 나와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출근길에 올라야 한다. 하지만 출퇴근 시간대, 저 아스팔트 길 위의 모습과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한적한 시간대(모두 일터에 들어가 있는...)의 길 위의 모습은 다르다. 비록 각자 개인들은 자유스럽게 이 공간을 점유하는 것 같지만 시간의 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공간은 그렇게 시간에 의해 경계가 재구성되고, 시간의 변화에 따라 동일한 공간이 다른 모습 을 보이며 시간에 따른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시간과 공간의 재구성은 자본에 의해 재구성되는 것이다. 출근시간대에 출근길에 올라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행을 떠나도 되는 사람이 있듯이 말이다. 그리고 존 홀러웨이는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총체성과 공간적 경계, 그리고 자유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자본주의적 사회 관계의 총체성'은 지구적 (즉 세계적 범위의) 총체성이다. 자본은 본성상 어떠한 공간적 경계도 알지 못한다. 자본주의를 초기의 계급 착취 형태들로부터 구분하는 노동자의 '자유'는 동시에 (훨씬 더 실제적 의미에서) 착취자의 자유이다.(존 홀러웨이, 1999: 183)

착취관계는 공간 속에 존재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공간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공간은 불확정적이며 항상 변화한다. 공간의 절대적 우연성은 화폐로서의 자본의 실존 속에 요약되어 있다. 화폐 자본이 이동할 때는 언제나 (즉, 항상적으로) 자본과 노동 사이의 관계의 공간적 양식이 변화한다.(존 홀러웨이, 1999: 184)
이러한 개별적인 시간의 일상을 모으고 그 속에 있는 공간 속의 자유를 재구성해보면 기든스가 지적하듯이 감옥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의 자유도로 파악될 수 있다. 이에 반해 홀러웨이의 지적은 노동시간이 화폐에 의해 매개되고 자유를 가장한 시장에 의해 착취관계의 공간이 생성된다는, 즉 마르크스의 자본론 분석에서 그 이상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 사회 속에서 작동하는 자본주의적 메커니즘을 재확인하고 그 내용을 풍부히 하는 것 자체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 이후의 문제를 상상하거나 또 다른 대안적 존재의 확인도 중요하다.  

그 이후가 어떤 형태일까? 화폐와 시장이 사라진다고 착취적 공간이 사라질까? 그러나 지금 상태에서 화폐와 시장의 폐지는 공간의 폐쇄를 가져올 수 있다. 결과적으로 공간의 불확정성과 변화를 없앨 수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착취적 관계 구조의 고착화와 사회적 관계의 폐쇄를 가져올 수 있다. 그나마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일상의 자유도마저 폐지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기존 사회주의가 가지고 있던 한계들이기도 하다.

이는 화폐와 시장의 성격을 바꿔야 하는 문제, 또는 화폐와 시장 개념의 재구성 문제로 나갈 수 있다. 다른 의미로는 어떤 화폐와 시장인가 하는 대안화폐와 대안시장의 문제로 접근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도시 공간에서 존재하고 활성화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역으로 존해할 수 없는 조건은 무엇인가에 대한 접근과 조사도 필요하다.  

<참고문헌>
존 홀러웨이, "지구적 자본과 민족국가", 워너 본펠드, 존 홀러웨이 편, 이원영 옮김, 1999, [신자유주의와 화폐의 정치], 갈무리.
김왕배(1996)는 지역 정치경제학적 접근법을 통해 지역구조나 일상생활의 형성 조건을 자본의 축적과정과 변화 속에서 찾고 있다. 즉 지역구조의 변화 혹은 구조화(재구조화) 과정은 역사적 산물이자 동시에 자본축적 과정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 연구에서는 1970-80년대 중화학공업지대의 형성과 공간의 양극화가 1980년대 중반 이후 수도권의 산업재집중과 신산업지역의 등장으로 노동시장의 공간분화와 지역불균등발전이 진행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공간 분화를 바탕으로 지역노동시장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나누고 후기자본주의 거대 도시의 특징을 정리하고 있다.
첫째의 유형은 대기업 중심지 지역으로 보통 대기업가 군과 여러 하청관계에 있는 중소기업가, 그리고 대부분의 직덥생산자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지역이다.
둘째는 금융, 관리, 통제 등의 상위 노동기능을 담당하는 신중간층 그리고 판매, 유통영역에서의 하위 화이트칼라 사무직층이 몰려 있는 지역이다.
세째 유형으로는 전자본주의 생산관계가 아직도 온존하여 주로 소규모, 자영업이나 농업등의 계층이 주를 이루고 있는 지역이다.

여기서 후기자본주의의 거대 도시의 경우 그 내부적 계급구성은 파편화, 확은 양극화되어 가는 경향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정보기술의 발달과 함께 노동의 기능이 한편에서는 고도로 숙련화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탈숙련화됨으로서, 거대 도시의 노동층은 상위노동층과 만은 단순 사무 및 서비스, 생산 노동자층으로 양극화 되는 경향이 있음을 진적하고 있다. 최근 유연적 생산체계로의 이행과정에서 노동시장의 유연화 전략으로 인해 일용직, 파트타임노동자, 여성 등의 노동층이 급부상하고 있어 노동시장은 매우 긴 '스펙트럼'을 이룸을 지적하고, 이들은 제3세계의 도시비공식부문과 성격을 달리하는 도시 '하류층'을 형성함을 지적하고 있다. 한다(김왕배, 1996: 5)
 
이 연구는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 속성이 시공간에 따라 변형.유지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연구에서는 국가-자본에 의한 도시 구조의 재구성과 계급(계층)의 재생산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그 의의가 크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첫째, 구조와 행위라는 측면에서 볼 때 자본주의 구조라는 전제하에서 국가와 자본의 동학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즉 지배계급과 지배구조에 의한 '지배양식'과 그 변형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에 반하는 피지배계급의 저항과 역동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자칫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어쩔 수 없다는 식의 환원주의적 논리로 귀결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은 피지배계급에 의한 저항의 무의미함과 함께 지배의 정당화로 귀결될 수 있다.

두 번째, 후기자본주의로 접어들면서 국가의 역할이 축소되고 자본의 역할이 강화되는 측면에 대한 분석이 미흡하다는 점이다. 물론 국가의 역할이 축소되더라도 국가의 기본적인 기능, 예컨대 기존 질서를 보존하기 위한 폭력 수단의 담보와 같은 기능을 유지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역할이 축소된다는 점은 지역구조의 변화 또는 재구조화 과정이 기존 방식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첫째 부분과 관련한 지점이 카스텔(2003)의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나 네그리의 '다중'이라는 측면 등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부분과 관련한 논의는 먼저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 전략-관계적 국가론, 조절이론이라는 국가론과 함께 네그리의 '제국'이나 '자율주의' 등과 만날 수 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체'에서 피지배 계급이 저항 행위에 대한 분석이 미흡하고 '재구성 과정'에서 사회(노동)운동에 의한 재구성 과정에 대한 분석이 미흡하다는 점일 것이다.


김왕배(1996), 자본주의 산업구조의 변화와 지역의 구조화, 96년 전기사회학대회 자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