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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스콧 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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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청계산 산책길

아직은 이것저것 개념적으로 정리가 되지 않는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 때는 혼자 걸으며 발로 생각해보라던 지인의 말이 생각난다. 그렇게 생각도 정리할 겸 청계산을 들렀다. 서울대공원에서 산을 오르는 입구, 산을 오르기 전 혼자 벤치에 앉아 한참동안 그 풍경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청명한 가을 햇살을 받으며 또 다른 계절로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는 풍경들이 내겐 너무 생경한 모습들이다.

가끔 그런 생경한 풍경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가 이방인처럼 느껴지곤 한다. 낯선 설레임의 여행길에서 느끼던 감정들 같기도 하고, 그 속에서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살아가는 게 그렇게 꿈 같다는 생각도 든다. 시간이 지나고 돌아서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그 무엇들...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기보다는 그냥 청명한 가을 햇살을 맞으며 불어오는 바람을 즐기기로 했다. 떨어진 밤들을 줍기도 하고, 멀리 보이는 도시 풍경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약수에 들러 물 한모금을 추기기도 하고, 그러다 가끔 정신없이 나무를 오르내리는 청솔모 녀석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렇게 솔솔한 가을 바람을 만나다 산행 초입 길 중간에 내려왔다. 사실 나는 힘을 들여 산을 오르는 거는 별로 소질이 없다. 다만 풍경을 바라보며 그저 산책하며 거닐 수 있는 작은 길이면 족하다. 내려오는 길에 국립현대미술관을 들렀다. 
[국립현대미술관 관련 사이트]
국립현대미술관 :: 나누는 문화, 아름다운 세상
국립현대미술관 웹진
국립현대미술관 _ 네이버 블로그


II. 백남준 - <다다익선>과 디지털 사이니지 [ Digital Signage ]

국립현대미술관 램프코어 공간에는 백남준의 <다다익선>과 강익중의 <삼라만상>이 전시되어 있다. 백남준의 <다다익선>은 1,003개의 TV 모니터를 쌓아 놓고 영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백남준이 <다다익선>이라고 한 것은 많은 영상 메세지 중 하나라도 우리에게 의미를 전달해줄 수 있고 소통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도에서 작품명을 정했다는 후기다. 강익중의 <삼라만상>도 <다다익선> 만큼이나 많은 것을 보여주며, 나선형 벽면을 둘러 6만여 점의 오브제, 영상, 음향들이 3인치 연작 속에 박제되어 놓여 있다.

백남준의 작품이 끊임없이 변하는 영상 속에서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면, 강익중의 작품은 그 많은 영상 메세지들을 3인치 타일 속에 하나하나 문자처럼 새겨 놓은 느낌이랄까? 그런 강익중의 작품을 읽으며 벽을 따라 오르다 보면 마지막 꼭대기에서 떡하니 길을 막고 있는 백남준의 로봇 같은 모니터 작품을 다시 만난다.

<전시내용 및 설명 : 멀티플/다이얼로그 ∞>

전시장면 이미지  [사진출처: 국립현대미술관]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보다가 드는 생각, 어쩌면 백남준의 작품은 이제 더이상 예술작품으로 이 전시 공간에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 정류장에 설치된 평면 TV 속의 광고들, 집앞 LG25시 편의점 앞에 붙어있는 평면 TV의 광고들...그렇게 수없이 늘어나는 디지털 사이지 모습들...

백남준의 작품을 그의 의도와 같이 우리에게 유의미한 메세지를 전달하고 소통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까? 나는 그보다는 그의 작품과 같이 우리 일상생활 속에 있는 많은 미디어들이 의미와 메세지를 강요하고 상품을 선전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싶다. 백남준의 작품을 구태여 평가한다면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지금 나타나는 현실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그리고 백남준의 작품이 이미 디지털 사이니지가 되어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소비되고 있다는 생각 속에서 중요한 것은 그의 예술 작품이 문화상품이라는 틀 속에서 물질성을 가진 제품 광고와 연결되는 지점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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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문화상품과 사회적 노동


요즘은 문화상품에 대해 어떻게 개념규정을 해줘야할지 고민이다. 규정할 수 없는 문화라는 개념이 상품이라는 개념과 만난다는 것은 역으로 상품이라는 개념에 문화라는 접두어가 붙으며 규정할 수 없는 문화를 개별적 상품으로 규정해 들어가는 과정은 아닌가 싶다. 이 과정에서 문화상품은 소비 그 자체가 상품생산 과정으로, 즉 상품생산과정이 소비과정까지 연장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상품의 사회적 생산과 소비, 그리고 사회적 노동이라는 개념과 만나는 지점이다. 흔히 말하는 프로슈머 (prosumer) 개념이 확대되고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정의 이면에서는 예술이라는 영역이 자리잡고 있다. 이를 매개하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역할의 일부는 화가가 아닌 국립현대미술관이나 그림 경매장과 같은 옥션시장일 수 있다. 영화 배우나 감독 또는 제작사가 아닌 이 영상물들을 배급하는 배급사일 수 있다. 작가나 출판사가 아닌 서점일 수 있다. 일종의 유통자본 또는 소비자본의 역할과 기능이 강화되고 있다.   

한편으로 근 자율주의자들은 사회적 노동, 그 속에서 자율노동에 의한 노동의 해방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들의 논리 속에서 노동이 공장 밖으로 나와 사회적 노동으로 개념을 확장된다는 측면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사회적 노동과정을 통해 상품이 비로서 완성되고 유통자본이 이를 지배하고 재분배 한다는 측면을 다시 생각해보면 자율주의적 논리는 이론적으로 허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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