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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스콧 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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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게시판에  "너무 답답하고 어떻게 해야될지를.....모르겠네여..."라는 글이 올라왔다. 많은 부분 공감하고 고민하게 하는 글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글들도 많은 지점들을 생각해보게 하는 글이다. 기회가 된다면 이러한 글들은 좀더 풍부하고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할 사례들이다. 이 곳에는 현대적 삶 속에서 사회적으로 풀어야할 문제들이 개인적인 문제로 억제되고 있다는 생각에 단상의 글만을 남겨본다.

나는 사회구성원으로서 한 개인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관계 속에서 풀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먹고 살 걱정이 없는 무인도에서 혼자 산다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한 대부분의 문제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것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데 있다. 이러한 문제를 푸는 것도 물론 개인에서 사회적 관계로 문제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그리고 나는 인터넷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개별화된 현대사회에서 개인간의 의사소통을 매개하는 수단으로 인터넷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긍정적인 측면이 있고, 개인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계기로 이용될 수 있다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용이한 의사소통 수단이 확보되고 이를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서 개인의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확대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용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즉 의사소통의 활성화는 개인의 책임을 사회적으로 강제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단이 내용을 해결하지 못한다, 즉 의사소통의 활성화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아래는 다음(daum) 게시판 중에서 '백수들의 세상'이라는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너무 답답하고 어떻게 해야될지를.....모르겠네여..."라는 글로 29세 청년의 삶에 대한 좌절과 고민을 담은 사례다. 그에 대한 덧글들도 물론 현재의 상황에 대한 공감의 글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사례: http://job.daum.net/kntalk/talk/view.asp?gubun=10&page=1&seq=20246

하지만 문제는 그 공감의 방향이 어떤 해결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요약하면 '참고 열심히 하면 성공할 것이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참고 열심히 해왔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글을 올린 거였는데... 덧글들은 '궂은 날이 있으면 좋은 날도 있다', 참고 노력하자', '아무 일이라도 해보자', '기도하자'....등. 결국 돌아오는 답은 개인이 참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극단의 상황에서는 자살을 생각하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은 엥겔스의 '사회적 살인(사회 정책적 측면)'에 추가해 또 다른 형태의 '사회적 살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나도 내가 싫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사회적 차원에서 해결되기보다 개인적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개인의 문제가 당사자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억제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구성원들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강화되고 재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과정은 이미 고프만이 [일상생활에서의 자아표현]을 통해 정리하고 있다. 요약하면 인간의 모든 행동은 제 아무리 역사, 전통, 제도와 구조가 제약적인 조정을 가해도 결국 행동자 자신이 행동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삶의 문제는 개인의 선택과 해석의 과정에 의해 나타나는 문제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책임은 빠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오히려 개인과 사회 각 구성원들 상호간의 책임으로 돌려지고 있는 것이다.

만일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그러한 문제제기의 주체는 누구인가? 이 사례에서는 일단 현 상태에 대한 문제제기를 당사자가 하고 있다. 하지만 해결지점을 찾지 못해 그 해결점을 함께 논의하는 장으로 끌고 왔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자신이었다. 이를 고프만은 당연하다는 식으로 정리하고 있다. 그러나 고프만식으로 정리하고 넘어갈 문제인가? 왜 그 연극의 무대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이러한 한계를 알렝 투렌은 [현대성 비판]을 통해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지식인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한 사회에서 지식인이라는 존재는 지식이 유통되는 공간에서 살 수 있다. 그리고 그 공간은 권력이 매개된 공간이다. 푸코의 지식권력이라는 것은 이러한 지식과 권력과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지식인이라는 것은 권력을 가진 자의 시각에서 지식을 관리하는 입장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식 그 자체가 권력일 수 있다.

이런 지식인도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결국 현재의 당사자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조건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 그람시의 '유기적 지식인'이라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당자자가 어떤 입장에 발을 딪고 있는가 하는 지점도 중요하다. 노가다 생활을 하며 평생을 살아온 한 노인의 구술생애사. 그 속에는 사장과 같은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생애사가 있는가 하면 그가 실제로 살았던 생애사가 있다. 즉 하나의 생애사 속에 이야기된 생애사와 살았던 생애사가 각각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당사자의 현재의 위치와 그가 발을 딪고 서 있는 입장은 다를 수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 더 많은 생각과 고민, 그리고 수정이 필요하다.